# 45
쉽게 생각했는데, 이 철혈황룡이라는 애송이 역시 독성에 못지않은 실력자가 아닌가.
그런 실력자 둘에게 에워싸인 것이다.
격장지계에 속아 자운의 실력을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했다.
그가 분기탱천하여 자운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 날 속였구나."
자운이 검을 맞닿은 채로 한 손으로 염룡교를 뿌리며 이죽거렸다.
"그럼. 어짜피 우리는 적이었잖아."
육적이 소리쳤다.
"그렇지! 우린 적이지! 그래서 넌 죽어야 한다! 넌 죽어야 해!"
그가 자운의 검을 힘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염룡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수공과 검공이 부딪치면 수공을 쓴 이가 전문적으로 권각술을 익히지 않은 이상은 십의 팔구는 패한다.
자운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운이 대번에 손을 빼며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로 독성이 날아들었다.
"죽기는 자네가 죽어야지. 왜 내 손녀사위를 죽이려 하나."
"아직 아니니까 확정하지 마시죠."
"곧 그렇게 될걸세."
독성의 신형이 허공을 질주한다.
그의 양 어깨에서는 강력한 독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독기운을 날개라도 된 양 달고 날아오는 독성의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자운은 어느새 육적의 뒤로 돌아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그냥 다 죽여 버리고 싶은데, 이 둘의 실력이 육적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그러니 이렇게 시간만 가고 있다.
"크아아악!"
육적이 괴성을 지르며 자운을 향해 돌진했다. 독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독성보다는 자운이 안전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자운이 그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마주 돌진한다.
육탄과 육탄, 저돌적인 돌진과 충돌. 한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소리가 멎고, 폭음이 멎었다. 둘의 충돌이 있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폭음이 터졌다.
콰앙―
사방이 먼지에 휩싸이고, 반경 오 장의 땅이 뒤집어지며 구덩이가 파였다.
그 속에 육적과 자운이 어깨를 맞댄 채로 서 있었다.
"너, 뒤 조심해라."
자운이 어깨를 맞댄 채로 육적에게 말했다. 육적의 뒤에서는 독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독성이 달려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육적이 욕지기를 뱉었다. 방금 전의 충돌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내상을 입은 것은 자운도 마찬가지일 것이나 뒤에는 독성이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공격을 적중당할 것이다. 육적이 빠르게 눈을 굴렸다.
자운이 육적이 눈 굴리는 것을 알아보았다.
"도망가려고?"
자운이 손을 뻗는다. 어깨를 맞닿은 채로 육적의 몸을 움켜쥐려는 것이다.
육적이 빠르게 박도를 움직였다. 도강이 묻어나는 박도와 수강이 한 자 길이로 뻗어난 자운의 손이 충돌했다.
쩌엉― 쩌엉―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독성이 날아들었다.
독성의 손바닥이 정확하게 육적의 등판을 후려친다.
육적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독성이 뿜어내는 독기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그가 쌓아온 독의 정수 일부분인 것이다.
전설 속에 나오는 절독에 비견될 바는 아니지만, 현존하는 그 어느 독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것이 독성의 독기다.
그런 독기가 육적의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독기가 퍼져 나가 단전과 심장으로 향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육적의 내공이 거꾸로 돌았다.
"크아아아악!"
그의 눈이 뒤집어지고,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육적이 익히고 있는 무공, 그것은 광혈신공(狂血神功)이라는 것으로 죽음을 직감한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돌며 한순간이나마 파천(破天)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파천기(破天氣)가 육적의 몸을 타고 돌았다.
육적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손을 뻗었다.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자운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독성은 그의 몸속으로 독기를 밀어 넣고 있던 중이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일격을 허용했다.
"커헉!"
독성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당가의 유서 깊은 건물 중 하나가 그대로 와르르 무너진다.
누군가가 독성을 목 놓아 불렀다.
"태상가주!"
아마도 당가의 식솔일 것이다. 하지만 자운은 독성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육적이 그대로 공간을 젖히고 들어온 것이다.
광혈신공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이상 육적은 이적과 비교해도 쉬이 밀리지 않는다.
일적에 비교하면 조금은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적은 육적에게 쉬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캬아아아악!"
그가 비명인지 괴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자운을 향해 박도를 던졌다.
쐐애액―
박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뿌리며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자운이 황룡신검을 휘둘러 박도를 쳐냈다.
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박도가 빗겨 나가고, 자운을 지나쳐 간 박도는 그대로 당가의 담벼락에 처박혔다.
콰앙―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한 담벼락이 그대로 무너지고, 자운은 얼얼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빗겨내었는데 손이 얼얼하다. 아까는 둘이서 쳐서 가볍게 이겼지만 지금 독성은 혼절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놈은 더 강해졌다.
더 강해진 놈을 자운 혼자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자운이 쓰게 미소 지었다.
"젠장. 역시 구타는 집단이 제 맛인데."
아쉬움이 묻어나는 미소였다.
제11장
자운과 육적이 연달아 충돌했다.
번쩍번쩍 번개가 튀며 육적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뒤로 날아간 육적이 신음을 흘리면서 튀어나온다.
그 모습을 보며 자운이 징글징글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 미친놈아, 왜 넌 때려도 때려도 죽지를 않냐!"
자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인이 되어 폭주하기 시작한 육적이 괴성을 터뜨렸다.
"크아아아아!"
"나는 으아아아아다! 이 새끼야!"
자운이 발을 길게 뻗었다.
단전에서 시작된 기운이 넘실거리며 단전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발을 뻗어 나가 황금빛 유성의 궤적을 그린다.
자운의 몸이 길어진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그대로 발이 육적의 가슴팍에 처박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육적이 뒤로 밀려나고, 자운의 몸이 실 끊어진 추처럼 훨훨 날았다.
자운이 공중에서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는 낙법을 사용하여 사뿐하게 바닥에 내려선다. 그에 비해 광인이 되어버린 육적은 낙법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그대로 날아가 처박히며 담벼락을 박살 내어버린다.
자운이 얼얼한 자신의 발을 한번 주무르고는 독성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혼절해 있는 것이 충격이 적지 않은 듯 했다.
확실히 그런 것이 검을 들어 막아도 얼얼할 정도의 반탄력이 전해져 온다. 어떻게 되어먹은 것인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 틀림없다.
미친놈이 왜 강해지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어쨌든 놈은 미친놈이 되면서 강해졌다.
그것도 이전에 비해서 족히 배는 강해진 것이다. 독성의 도움이 없으면 자운 혼자서 쉽게 제압하기는 힘들 것이다.
제압한다 해도 아마도 당가가 개판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만 해도 충분히 개판이 되기 직전이 아닌가.
"빌어먹을."
자운이 욕지기를 뱉으며 정면을 노려보았다.
육적이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게 강하게 처박혔는데, 가슴이 함몰될 정도의 타격을 입었는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몸이 상하는 걸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어느 쪽이든 문제였다.
자운이 입맛을 다시고 검을 들었다.
아무래도 저걸 처리하려면 검을 썰어버리는 수밖에 없을듯하다.
"크르르르!"
놈이 자운을 향해서 강한 적개심을 표출했다. 놈의 손을 가득 덮을 정도의 강기가 줄기줄기 피어오르고, 눈은 미친놈답게 광기를 표출해 내었다.
자운이 놈의 눈을 노려보았다.
"쑤셔 버리기 전에 깔아라."
자운 역시 낮게 으르렁거려 보지만 통할 리가 없다. 놈은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놈이 다시 돌진해 왔다.
좌우를 번갈아 가면서 치고 나오는 돌진. 자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저 새끼 다리를 잘라 버리든 팔을 잘라 버리든 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입을 닥칠 리가 없다.
자운이 침을 뱉어 입안에 고인 피를 토해내었다. 그리고 검을 곧추세우고 놈과 마주쳐갔다.
정면충돌은 아무래도 자운이 불리하다.
저놈은 몸을 아끼지 않지만 자운은 달랐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그래서 정면충돌은 싫다. 자운이 운해황룡을 펼쳤다.
자욱한 구름을 가득 채워둔 그 상태 그대로 자운이 뒤로 빠지며 강기를 날렸다.
황금색 강기가 반월 형태로 주르륵 뿜어진다.
열 겹이 넘어서는 강기가 자운의 검끝에서 폭사되고, 강기는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황룡(黃龍).
검에서 솟구친 황룡이 크게 울부짖는다.
콰우우우―
"이거나 처먹어라."
탄검황룡(彈劍黃龍).
자운이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황룡이 아가리를 벌리고, 그대로 돌진해서 육적을 씹어버린다.
육적의 몸통이 강기에 난자된다 싶은 순간, 그의 몸이 붉은 빛에 휩싸였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침을 뱉었다.
"젠장."
썰어버리려고 하는데 온몸을 호신강기로 덮어 그걸 막아내었다. 자운이 욕을 뱉으면서도 단번에 질주했다.
"이것도 먹어봐, 그럼."
자운의 몸이 회전하고, 회전력을 얻은 검이 하단에서부터 원을 그리며 상단까지 치고 올라갔다.
마치 잠룡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 혹은 천룡이 비상하는 듯한 모습. 올라간 검이 그대로 직선 베기로 바뀌며 직도황룡을 그어 내린다.
노ㅁ의 손에서 공수탈백인이 펼쳐졌다. 자운의 검을 뺏을 수는 없지만, 공수탈백인을 이용하여 한순간이나마 자운의 검의 궤적을 바꿀 수는 있다.
자운의 몸이 휘청하며 방향이 바뀌었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놈이 날아들었다.
자운의 허리에 놈의 주먹이 그대로 처박히고, 자운이 악을 쓰며 허리를 틀었다.
"으아아아악!"
고통에서 나오는 비명이 아니라 맞지 않기 위한 생존을 외치는 비명. 자운의 허리가 기기묘묘한 각도로 꺾어지며 충격을 흘려내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모든 충격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자운이 바닥에 처박히며 신음을 흘렸다.
"으으으으으. 더럽게 아프네. 저 영감은 저걸 맞고도 죽지 않았다는 말이야?"
고작 혼절이라고?
아파 죽을 거 같은데?
빗겨내었는데도 죽을 만큼 아픈 걸 맞고도 안 죽었다니, 새삼 독성이 대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