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44화 (44/175)

# 44

본디 강기라는 것이 내공의 양이 많다고 무조건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집약할 수 있는 깨달음과 내공의 숙련이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자운이 독성과 눈을 마주 봤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눈앞에 보이는 떡이 너무 크군."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못 먹는 떡은 원래 커 보이는 법이지요."

"으음."

독성이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다시 운산을 위아래로 살폈다. 독성의 눈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뿜어내자 자운이 이번에는 덥석 우천을 붙잡았다.

"그럼 이놈은 어떻습니까? 아직 검기지경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기교만큼 제 사형에게 뒤지지 않는 놈이지요."

독성의 시선이 우천에게로 향했다.

우천이 속으로 자운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사제들을 팔아넘기는 겁니까!'

물론 속으로만 소리친 것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놓을 용기는 없었다. 자운의 말에 독성이 우천과 운산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작은 놈보다는 큰 놈이 강한 듯한데…….'

자운이라는 놈은 두 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배의 배는 강한듯하니 쉬이 포기가 되지 않는다.

그 순간이었다.

거대한 폭음이 터진다.

콰앙―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당가의 후원까지 들려왔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독성과 자운이 깜짝 놀라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터진 모양이군요."

자운의 미간이 보기 흉하게 모아졌다. 당가의 입구에서부터 전해지는 흉흉한 기운이 좋지 않다.

자운이 느낀 기운을 독성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독성과 자운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운이 운산과 우천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는 여기 있어라. 괜히 뛰어 나갔다가 다치지 말고. 그러면 골 아프니까."

그리고는 몸을 휙 날린다. 독성은 자운보다 한발 빠르게 몸을 날렸다.

불길한 기운이 더욱 커진다. 독성의 걸음이 당가의 입구에 다다라갈 무렵, 누군가가 독성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자운과 함께 당가에 온 당묘기였다.

당묘기가 독성을 알아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태상가주님, 육적(六赤)이라 하는 이가 당가로 쳐들어와 태상가주를 찾으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육적이라는 말에 자운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아는 자인가?"

독성의 물음에 자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적성의 일곱 절대자 중 한 명입니다."

독성이 노기 어린 표정으로 당가의 입구를 노려보았다. 화산에서 있었던 일로, 적성이라는 존재는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많은 이들이 이백 년 전 적성이라는 단체를 떠들고 다녔기 때문에 독성도 그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독성의 몸에서 독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간다.

독성이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다.

"이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가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자운이 쾅 하고 솟구쳤다.

그의 몸이 단번에 당가의 입구를 향해서 튀어나가고, 자운이 허리춤에서 황룡신검을 뽑았다.

황룡신검이 금색의 찬란한 광채를 뿌린다.

"그 약속, 저놈 죽여줄 테니 그냥 없는 걸로 하면 안 됩니까?"

독성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자운이 그대로 튀어나갔다. 황금색 화살이 그대로 육적을 향해서 쇄도한다.

자운이 주먹을 뻗었다.

황금색 강기가 줄기줄기 넘쳐 흐르고, 그대로 자운의 주먹이 육적의 가슴과 충돌한다.

"뭐냐!"

자운이 갑자기 돌진해 오자 육적이 경호성과 함께 발을 뒤로 물렸다.

그의 몸이 단번에 뒤로 물러나고, 자운이 그를 쫓았다.

"너, 적성에서 나온 놈이지?"

황룡신검이 허공에서 연달아 일곱 번의 변화를 그린다. 변화가 하나하나 실제로 변해 육적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육적이 황금빛 강기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황룡문!"

그가 자운의 모든 공세를 피해내었다. 하지만 자운의 공세는 쉬지 않고 이어진다. 검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람을 찢어발겼다.

그와 동시에 검에 새겨진 황룡이 꿈틀거리고, 자운의 발이 운해황룡을 좇았다.

구름이 일어나고, 황룡이 그 속에서 노닌다.

"정답이다."

팡―

쾅쾅―

자운의 검과 육적의 도가 연달아 충돌을 거듭했다. 우적이 사용하는 무기가 검이었다면, 육적이 사용하는 무기는 박도였다.

기형적으로 휘어진 박도가 자운의 공세를 밀어내고, 자운을 향해 단번에 날아들었다.

"네놈이 괴걸왕과 함께 붉은 별의 대계를 방해한 놈이구나."

자운이 히죽 웃었다.

"그러는 너란 새끼는 본 문을 말아먹으려 했던 놈들의 수괴중 하나지."

자운이 뒤로 물러서며 연달아 강기를 뿌렸다.

금빛 강기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자운의 검에 따라 하나씩 쏘아진다.

육적이 도를 움직였다. 도에서 줄기줄기 도강이 솟구치고, 도강이 자운의 검강과 충돌을 거듭했다.

쾅쾅쾅―

거친 폭음이 일고, 자운이 운해황룡의 보법으로 사방을 날았다.

단번에 모래먼지가 일며 자운의 몸이 그 속으로 숨어든다.

육적이 감각을 끌어올렸다. 단전에서 시작된 내공이 사지 백해로 뻗어 나가며 충분히 감각을 상승시키고, 동시에 기감이 올라갔다.

보지 않아도 자운의 위치를 잡을 수 있다.

자운의 기척이 느껴진다.

"정면!"

자운이 정면에서 그대로 돌진했다. 저돌적인 육탄 돌진. 자운의 어깨가 육적의 가슴팍에 틀어박힌다.

육적이 시기적절하게 자운의 어깨와 자신의 가슴 사이에 좌수를 들이밀었다.

"크윽!"

하지만 모든 충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 그가 신음을 흘리며 얼얼해진 손을 털었다.

"정면에서 오다니, 나도 얕보였나 보군."

자운이 웃었다.

"어. 무지 얕보였어."

눈을 흘깃 뒤로 하자 뒤따라온 독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습니까? 저 새끼로 이번 일을 마무리하는 게. 적성인지 나발인지가 황룡문을 밀어버리려고 해서 저도 저 새끼한테 빚이 있거든요."

독성이 자운의 말에 피식 웃었다.

웃었으나 그의 눈은 은은한 노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거야 자네 사정 아닌가. 본 가를 이렇게 만든 놈을 다른 사람의 손으로 제거한다면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겠나?"

자운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협상이 안 되는 노인네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독성이 팔을 걷어붙이며 자운의 옆에 내려섰다. 그의 손에 가득 독기가 모여든다. 스치기만 해도 일반인이라면 한 줌 독수로 녹아내려 버릴 정도의 독기. 과연 독성이다.

그의 다른 손에는 암기가 들렸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몇 개씩의 암기가 들리고, 당가 비전 암기술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변한다.

"어떻게 말인가?"

"같이 패죠."

그 말에 독성과 육적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같이 패자니? 허허,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먼. 그러면 자네가 내건 조건이 사라지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같이 패자고 했지 누가 저놈을 나눠 먹자고 했습니까?"

"계속 말해보게."

"마지막으로 놈을 쳐서 죽이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지요."

독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허허허, 그거 참, 재미있겠구먼."

독성이 육적을 바라본다. 육적의 표정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적성에서도 절대자라는 칠적(七赤) 중 일인이다.

한데 저놈들은 자신을 두고 내기거리로 삼고 있는 것이다.

"들었나? 지금부터 우리가 자네를 같이 팰 걸세."

독성의 말에 화가 난 육적이 진각을 쾅 밟았다. 잘 정돈된 정원 바닥이 조각조각 터져 나간다.

바위 조각이 튀었다. 이미 당가의 다른 식솔들은 뒤로 대피한 지 오래. 육적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쳤다.

"그래 이놈들, 와라!! 한꺼번에 죽여주마."

사실 육적은 경지에 오른 고수인 만큼 정신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어설픈 격장지계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설사 화가 난다고 해도 그 화를 밖으로 표해낼 정도의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운은 사람 약 올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도 격장지계에 있어서만큼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재주였다.

그 재주 앞에 육적이 무너진 것이다.

"화가 난 것은 자네만이 아니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독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독성이 서 있던 자리에는 발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자운이 그 발자국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이런, 성급하시기는."

혀를 차는 자운. 독성의 신형은 어느새 육적의 지근거리에 근접해 있었다.

그가 독을 재빠르게 뿌렸다.

독성이 왜 독성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알게 해주는 독장이 그의 손에서 뿜어진다.

한순간, 모든 생물이 질식해 버릴 듯한 독이 그의 손에서 뿜어졌다.

오색의 독이 조화롭게 움직이며 육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흥! 이까짓 것."

육적이 박도를 치켜들었다. 강력한 내력에 의해 오적의 박도가 백열한다.

그러더니 곧 강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독과 불은 상극이다.

열기와 독 역시 상극이다.

육적이 박도를 내리그었다. 그만큼 독성의 독장이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독성은 괜히 독성이 아니었다.

독성이 내공을 가득 불어 넣은 암기를 던졌다.

암기가 독 속에서 소리도 없이 날아든다.

육적의 감각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잡혔다. 매우 작고 세밀하여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하면 이것은 육적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육적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육적이 몸을 뒤틀었다. 그의 허리가 있던 자리로 독성의 암기가 지나갔다.

"당할 줄 아느냐!"

독성이 소리쳤다.

"좀 당해주면 안 되냐!"

독성이나 육적이나 둘 다 정파의 절대자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 그것은 타고난 성격이기 때문에 아무리 무공을 닦고 정양을 한다고 해도 쉬이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육적이 피한 자리로 자운이 날아들었다.

자운의 몸이 비상한다 싶더니 어느 순간 검과 하나가 되어 육적을 내리그었다.

화끈한 감각이 정수리 위쪽에서 느껴지자 그가 박도를 들며 장을 쳐냈다. 들어 올린 박도로는 자운의 검을 막는다.

땅―

불똥이 튀었다.

쏘아 보낸 장력은 독성의 장력을 밀어내었다. 장력과 장력이 충돌하고, 검과 검이 충돌한다.

그제야 육적은 아뿔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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