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42화 (42/175)

# 42

자운의 물음에 잠시나마 침묵이 이어졌다. 조고는 자운에게 몇 번이나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고, 그때마다 자운의 눈을 마주 보고는 다시 침묵했다.

한참 침묵이 이어졌을까.

그가 결국은 입을 뗐다.

"지킬 수 없는 보물은 화를 불러오게 마련이오."

"뭐?"

"나의 선조들은 황룡문의 주철법을 몇 번이고 계량하여 더 좋은 주철법으로 만들었소. 그리고 이 주철법을 가지고 황룡문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지. 그 마음은 선조들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마찬가지요."

"그런데?"

대충 짐작은 했으나 조고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그 이유를, 황룡문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자운이 그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황룡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소. 이 주철법을 가지고 황룡문으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황룡문은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겠지.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요."

그의 말에 자운이 미간을 꿈틀 움직였다.

"황룡문이 약하다고?"

자운이 검을 뽑는다. 허공으로 솟구치는 검기. 수십 다발에 이르는 검기가 허공으로 비산하고, 하늘에서 비처럼 검기의 다발이 내려친다.

콰과과과광―

산이 움푹움푹 파이고, 나무가 넘어졌다. 자운의 검기에 반경 삼여 장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하지만 자운과 조고의 주변을 그야말로 아무런 탈도 없이 무사하다. 조고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가 폐관에 들어 있는 동안 황룡문이 어땠는지 나는 정확하게 몰라."

자운이 검을 허리춤으로 다시 갈무리한다.

어디선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누군가가 달려오는 것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이 그들의 주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약하나마나 독향이 나는 것이 사천당가의 인물들이 분명했다.

하나 자운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조고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있는 황룡문은 다르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문주보다 거대하게, 강하게 만들 거다."

자운이 손을 뻗었다. 그가 조고의 품속에서 황룡신검을 움켜쥔다.

자운의 앞, 다시 말해 조고의 뒤에는 어느새 사천당가의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 검을 쫓아온 것이다. 자운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너 하나를 지켜줄 힘 정도는 충분히 있다."

자운이 황룡신검을 들고 사천당가의 인물들을 향해서 걸어갔다.

"돌아와라. 황룡문으로."

사천당가의 식솔들이 자운의 손에 들린 황룡신검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 검은 본가의 검이오!"

그들의 말에 자운이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사천당가의 가주에게로 안내해. 이 검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시비를 가려야겠다."

그의 말에 사천당가의 인물 몇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자운을 향해 소리친다.

"그 검은 본가의 검인데, 가릴 필요도 없는 주인을 왜 우리 가주님이 댁과 가려야 한다는 말이오!"

자운이 검을 들었다. 금룡진기가 황룡신검을 타고 흐르고, 검을 타고 불꽃이 튀었다.

파지직―

검이 백열하며 황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용우는 소리가 들리며 검에 새겨진 용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검은 이전보다 더욱 진한 예기를 발하며 자운의 손에서 오연히 빛난다.

"왜냐고?"

자운이 히죽 웃었다.

"내가 이 검의 주인이니까."

"당신이 그 검의 주인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검은 이백 년 전부터 본가에 내려오는 물건이다!"

자운의 말에 당묘기가 소리쳤다. 당묘기는 당가의 장로로서 직계 혈통을 가진 독의 고수다. 자운이 무슨 수를 부린 것인지 검의 기운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곳은 식솔들의 앞이 아닌가?

"이건 이백 년 전이 아니라 사백 년 전에 본 문의 신물이 되었어."

자운이 당묘기의 말을 받아쳤다. 하지만 사실을 모르는 당묘기가 믿을 리가 없다.

"웃기고 있군. 이제 보니 미친놈이구나. 네까짓 게 보고 싶다고 대당가의 가주님을 뵐 수 있을 줄 아느냐!"

그가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강력한 장력이 뿜어지고, 자운이 검을 들었다.

"그래? 그럼 힘으로라도 만나야지."

자운의 검기가 천지사방을 휩쓸었다.

제9장

당묘기가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으으으으으."

그는 보았다. 자운의 단 일 검에 수십에 이르는 당가의 실솔 모두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것을 말이다.

"이제 당가의 가주와 이야기를 하게 해줄 생각이 좀 들었나?"

자운이 당묘기의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자운이 다가오자 당묘기가 뒤로 물러선다.

"으으. 도대체 넌 누구냐? 당가에 이런 수모를 주고도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자운이 웃으며 계속해서 당묘기를 향해 걸어갔다.

"나? 나는 당연히 황룡문의 문주지,"

자운이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당가의 가주를 만나자고 했을 때 만나주면 일이 편했잖아."

자운이 고개를 으쓱해 보였다.

"이래 봬도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당묘기로서는 믿을 수가 없는 말이다.

황금빛 검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을 보았거늘 죽은 사람이 없다니,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검기에 닿고도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당묘기가 입을 가늘게 떨었다.

"설마......?"

"어, 검기점혈(劍氣點穴)했어."

검기점혈. 일반적인 점혈은 손가락으로 혈을 눌러 기운을 막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검기점혈은 조금 다르다. 검으로 찔러 점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검기를 상대방의 몸속에 혈을 타고 밀어 넣어 기운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일반적인 점혈보다 훨씬 더 상승의 경지. 그걸 지금 당가의 식솔 수십 명에게 동시에 펼쳤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당묘기가 후다닥 식솔 중 하나의 맥을 잡았다. 정말 죽지 않았다. 몸에는 상처 하나 없고, 잠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믿을 수 없다.'

자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이제 좀 믿겠어?"

당묘기가 바로 옆의 식솔의 맥을 잡았다. 이 역시 마찬가지 잠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맥이 고르게 뛰고 있었다.

"다, 당신이 황룡문의 문주라는 말이오?"

"그래."

"어찌해서 황룡문이 당가와 척을 지겠다는 말이오?"

"당가와 척을 지겠다고 한 적 없어. 이 검의 주인을 가리겠다고 했을 뿐이지."

자운이 어느새 다시 빛을 잃은 황룡신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검이 왜 당가에 있었는지도 궁금하고."

"그 검은 이백 년 전부터 본가에 있어온 것이오. 또한 대대로 태상가주님께서 관리하는 것이기도 하오."

"그럼 태상가주를 만나서 시비를 가려야겠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당묘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당가의 것이란 말이오. 시비를 가리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자운의 몸이 휙 하고 사라진다. 다시 나타난 곳은 당묘기의 앞이었다.

자운이 황룡신검을 들어 당묘기의 목에 겨누었다. 검신을 타고 벗겨진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단번에 목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자세. 자운이 위에서 당묘기를 내려다보았다.

"이봐, 지금 너에게 선택권은 없어. 이 자리에서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태상가주에게 데리고 가거나."

당묘기가 자운의 얼굴을 바라보고 침을 삼켰다.

* * *

말했듯 중강에서 성도까지는 말을 타고 반나절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자운이 당묘기를 따라가며 뒤따라오는 조고에게 말했다.

"말했지. 너 하나 지켜줄 힘 정도는 있다고."

자운의 말에 조고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가의 식솔들을 단 한순간에 잠재워 버리는 신위. 그 신위라면 지금 이 주철법을 지킬 수 있으리라.

당대의 황룡문주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괴물일지도 몰랐다. 화산에서 전해진 소식이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조고가 자운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등인데 저 등에 황룡문이라는 무거운 것이 실려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시종일관 장난스러운 태도. 그것은 무거운 짐을 내색하지 않기 위한 모습일까?

그렇지 않으면 가진 바 능력에서 묻어 나오는 여유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후자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가 자운의 등을 한참 보고 있을 때, 자운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하냐?"

조고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느새 해가 져 가고 있고, 말을 타고 있는 자운과 당묘기, 그리고 조고의 그림자는 성도를 향해서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뒤를 당가의 식솔들이 뒤따랐다.

"당신 노망났어?"

자운이 당가의 태상가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당가의 장로들이 분기탱천한 모습으로 자운에게 소리쳤다.

"이런 못 배워먹은!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오, 천문주!"

당가의 장로 중 하나가 자운을 향해 소리쳤다. 자운이 그를 향해서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럼 지금 이게 노망난 소리가 아니란 말이야?"

사실 당가에 간다고 해도 바로 태상가주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자운이 수강이 솟구치는 손으로 황룡신검을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처음에 당가의 인물들은 독으로 자운을 중독시켜 황룡신검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어찌 돼먹은 몸뚱인지 은밀하게 여러 가지 종류의 마비독을 풀었건만 전혀 통하지를 않는다.

그렇게 자운이 강기를 뿜어내며 황룡신검을 부수겠다는 시위를 한 지 이각이 좀 넘었을 때, 마침내 당가는 항복했다.

자운을 태상가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 것이다.

사실 태상가주가 자운을 불러들인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자운의 말에 당가의 태상가주 독성이 허허롭게 웃었다.

"허허허, 나는 노망이 나지 않았지. 안타깝게도 매우 정상이라니."

자운이 독성의 눈을 노려보았다. 독성이 작은 눈으로 자운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본다.

먼저 고개를 돌린 쪽은 자운이었다.

"젠장."

그가 황룡신검을 탁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이 검은 황룡문의 검이 맞다는 거잖아."

"그렇지."

독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가 왜 댁의 손녀랑 약혼을 해야 하는 거냐고."

자운이 손에 들린 황룡신검을 집어 던져 버릴 기세로 이리저리 휘두르며 말했다. 그 모습이 예의가 없어 함께 자리하고 있는 당가의 장로들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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