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41화 (41/175)

# 41

잘못 들은 것인가? 분명 여인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하고 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가 귀를 기울였다.

"뭐?"

아무런 표정도 없이 차갑기만 한 여인의 얼굴, 그 얼굴에 달린 입이 움직였다.

"…옷 줘."

* * *

황룡문이 있는 섬서와 당가가 있는 사천은 서로 꼬리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사천성은 중국 남서부의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성으로서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가(四天唐家)이 자리하고 있고, 또한 구파일방에 속해 있는 아미와 청성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운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그중에서도 중강(中江), 사천당가가 있는 성도에서 말을 타고 한 나절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땅으로서 자운이 찾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또한 뱃길과 관도가 중강을 십(十)자로 관통하기 때문에 쉬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운의 발이 중강에 당도한 것은 섬서를 나온 지 딱 팔 일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자운이 중강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후우! 사천 땅이라……. 이게 얼마 만에 오는 거지?"

체감 시간으로 놓고 보면 오래지 않은 것 같으나, 사실은 이백 년 전에 와보고 처음 와 보는 것이다. 이리저리 변해 버린 사천 땅의 모습. 과연 이백 년의 세월이 적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자운은 품속에서 하오문에서 그려준 약도를 꺼내 들었다.

이곳에 자운이 찾아가고자 하는 철기방이 있다. 얼마나 약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을까?

후끈한 열기가 자운의 얼굴로 와 닿는다.

철기방에서 나오는 열기.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철기방이었으나 그 화력만큼은 절대로 적지 않았다.

평가철방.

이곳에 황룡문의 검을 만들 수 있는 비전을 가진 대장장이가 있다.

자운이 철방 안으로 한 걸음을 들였다.

따앙―

강한 철을 만들고, 강한 검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서 망치질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무림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철방답게 대부분의 제품이 검을 비롯한 병기들이었다.

거대한 패도(覇盜)도 있었으며 무게중심이 잘 잡힌 중검도 있다. 자운이 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때, 야장으로 보이는 노인 하나가 자운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소?"

자운이 그의 눈을 바라본다. 하오문에서 적어준 생김새와 다르다. 이 사람은 아니다.

"사람을 하나 찾으러 왔는데……."

자운이 말꼬리를 흘리고, 노인이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에 조고라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의 망치질이 멎었다. 따앙 하고 망치와 함께 한 짝이 되어 소리를 내던 모루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던 야장들의 시선이 자운과 노인에게로 집중되었다.

노인이 아무렇게나 손을 휘둘렀다.

"뭣들 해. 어서 작업들 하라고. 당가에서 들어온 주문이 얼마 남지 않았어. 설마 작업량을 다 맞추지 못할 생각은 아니지?"

그가 눈을 부라리며 손을 흔들자 다시 야장들이 망치질을 시작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불과 철에만 집중하는 모습. 그들이 다시 작업을 시작하자 노인이 자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로 그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제 우리 철방에는 없소."

자운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이곳에 있다고 해서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왔는데 뭐?

이곳에 없다고?

자운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나 흔들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 듯했다.

"여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자운이 그를 향해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지."

"지금은 없다는 건가?"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놈의 실력이 최고이기는 했으나, 놈은 대장장이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소."

자운이 물었다.

"대장장이로서 해서는 안 될 일?"

"검에 욕심이 생겨 그 검을 가지고 도망갔소이다. 사천당가에서 수리를 부탁한 검인데, 그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그가 말꼬리를 흐렸다.

자운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그 검을 가지고 도망을 가고 안 가고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검이 사천당가의 것이냐 아니냐도 자운에게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과 지금은 이들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럼 당신들도 그놈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지?"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운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철방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럼 여기서는 더 이상 볼일이 없지."

자운이 나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오문의 눈과 귀를 한 번 더 빌리는 수밖에 없나?'

조고는 산을 타는 중이었다. 그의 등에는 헝겊에 조심스럽게 감싸진 검이 하나 있었고, 무엇이 불안한지 산을 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 검을 왜 사천당가가 갖고 있는 거지? 허억! 허억!"

스스로 의문을 던져 보았으나 답을 해줄 이는 없었다. 조고가 알고 있는 이 검, 선조들에게서 입으로 암암리에 전해지는 이 검은 사천당가가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었다.

이 검은 분명 그의 선조가 만든 검이 분명했고, 그의 선조가 주인에게 바쳤다는 검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 주인은 이 검을 신검이라 불렀다.

지금은 망해가는 문파라지만 얼마 전에 살아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 검을 그들에게로 전해주어야 한다. 자신은 비록 그들에게 돌아가지 못했지만, 이 검만큼은 그들에게로 전해주어야 한다.

그 생각을 가지고 조고는 한참을 산을 탔다. 중간 중간 추격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용의 어금니를 천 일간 제련하여 만들었다는 검, 그래서 달리 용신검이라 불리지."

젊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조고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지금 사내가 설명하는 검, 그것은 자신이 등에 메고 있는 검과 같은 것이었다.

'추격자인가?'

조고가 검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듯 검을 품에 품었다.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달리 부르는 이름은 황룡신검. 황룡문의 신물이지."

저 멀리서 나무 사이로 사내가 천천히 걸어나온다.

소맷자락에 황룡이 수놓아진 황색 장포를 입은 사내, 그가 천천히 나무를 헤치고 걸어나왔다.

산보라도 나온 듯한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 사내는 조고의 앞으로 와 있었다.

그리고 헝겊으로 감싸진 검을 움켜쥔다.

"조고, 너는 이 황룡신검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었지?"

사내는 바로 자운이었다. 하오문을 이용해 알아낸 사실에 의하면 사천당가의 가주가 물건의 수리를 조고에가 맡겼다고 한다.

조고는 사실상 사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장장이였으니 그의 실력을 믿은 것이다.

한데, 조고가 그 물건을 들고 사라졌다.

자운은 조고의 행방과 함께 그 물건에 주목했다. 그리고 몇 다리를 거쳐 알아낸 것은 그것이 황룡신검이라는 사실이었다.

조고는 그 검이 황룡신검임을 알아본 것이다.

조고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운에게 답했다.

"이, 이것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검이오."

자운이 옳다는 듯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그것의 주인이 황룡문의 문주 맞지?"

조고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운이 손을 뻗었다.

"내놔."

"뭐?"

자운의 말에 조고가 의문을 표하고, 자운이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 칼 내놓으라고."

"이 검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자운의 몸에서 황금색 기운이 솟구쳤다. 그 어느 문파도 가지지 못한 황금의 기운, 그것은 면백한 금룡진기였다.

자운의 온몸이 황금색 기운에 휘감긴다. 그 모습은 마치 기운을 장포처럼 두른 듯한 모습. 온몸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입고 있는 황색의 장포가 기운과 어울려 반짝이기 시작한다.

단순한 착시현상이지만, 보고 있는 조고는 정말로 한 마리의 용이 인간으로 화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조고가 감탄성으르 흘렸다.

"아!"

금룡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자운이 다시 조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황룡문의 문주야."

어느새 기운을 거둔 자운과 조고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았다.

"당신이 정말 황룡문의 문주라는 말이오?"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아까 그걸 보면서도 못 믿나?"

사실 금룡진기는 황룡문의 제자가 아니라면 흉내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자운이 보인 금룡진기의 양으로 보아 초절정의 수준에 이른 고수.

조고 역시 소문을 들은 적이있다.

망해가던 황룡문에서 경지에 이른 고수가 나와 다시금 황룡문을 일으켰다고.

그가 바로 황룡문의 당대 문주 철혈황룡 천자운이라는 말을 말이다.

조고가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 있는 사내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자가 바로 천자운이다.

자운이 손을 흔들었다.

"믿기 어려운가 본데,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널 죽여 버리고 그 검을 가져갈 수도 있어."

자운의 말에 그가 검을 품에 꼬옥 품었다. 두려움에 휩싸이면서도 검을 지키려는 것이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황룡문을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군. 근데 왜 황룡문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지?"

자운의 말에 조고의 움직임이 멈칫한다.

갑작스러운 자운의 말, 왜 황룡문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나는 사실 그 검에 대한 정보를 알지는 못했어. 널 황룡문으로 데려가기 위해 찾은 거지."

자운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겸사겸사 황룡신검도 알게 되었으니 일거양득이네."

어깨를 으쓱해 보인 자운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지금 네 태도를 보니까 궁금한 게 생겼어. 황룡신검을 그렇게 아끼는 걸 보면 황룡문에 대한 마음은 여전한가 보지?"

자운의 말에 조고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왜 황룡문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안 했지? 황룡문이 힘들 때, 그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넌 황룡문이 다시 살아나는 기미가 보이자 그 검을 들고 황룡문으로 향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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