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40화 (40/175)

# 40

성우적하검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 한 번. 황룡문과 적성의 충돌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시의 오적이 황룡문주와 충돌하면서 성우적하검을 드러내었고, 그리고 오적은 당시의 황룡문주인 검존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 무공을 알아볼 수 있는 이는 당시의 황룡검존과 오적의 생사투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어떻게 이백 년이 흐른 지금 그것을 알아보는 이가 있다는 말인가?

오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그 검상을 알아보았다고 했느냐?”

오적의 말에 적발라가 머리를 처박고 답했다.

“현 황룡문의 문주인 철혈황룡이 그 무공을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현 황룡문의 문주라고 한다.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 지난 대업에서는 오적이 황룡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근데 이번에는 황룡문의 손에 적성이 백일하에 드러나 버렸다.

‘지긋지긋한 악연이라고 하면 될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황룡문의 문주지만, 이 정도면 정말 지긋지긋한 악연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른 칠적(七赤)은 이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느냐?”

적성은 내부에 규울을 잡음에 있어 장로라든지 당주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장 아래가 일천주(一千朱), 그 위가 백홍(百紅), 그 위로 지금 적발라가 속해 있는 삼십단(三十丹)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는 일곱 명의 절대자, 그들을 칠적(七赤)이라고 부른다.

그중 오적은 다섯 번째라는 의미로 오(五)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통솔하는 단 한 존재, 붉은 별의 기운을 받아 탄생한다는 존재인 일성(一星)이 있다.

이백 년 전에는 그 일성이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당대의 일성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활동을 하던 것인데, 일성이 완성되기도 전에 적성이라는 존재가 드러나 버렸으니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다른 칠적들께서는 각기 연락을 보내오셨는데…….”

“보내왔는데?”

말을 하는 적발라가 땅에 머리를 쿵 하고 찍으며 몸을 잘게 떨었다.

“칠적(七赤)께서는 하, 한심한 놈이라고.”

그 말에 오적이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칠적 내부에서도 분명 위계질서가 나누어져 있다. 일적이 가장 강하고 서열이 높으며 칠적이 가장 아래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존댓말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칠적 따위에게 한심한 놈이라는 말을 들은 오적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다른 놈들은, 다른 놈들은 무어라 하더냐?”

오적이 허탈한 웃음을 계속 흘리며 말했다.

“육적과 사적께서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하셨고…….”

“계속 말해보아라.”

드드드드드―

오적의 몸에서 기운이 뿜어지고, 그가 몸을 정양하고 있는 동굴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콰드드드득―

오적이 앉은 자리를 타고 바닥이 박살나며 위로 터져 나갔다. 하지만 적발라는 그 속에서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를 처박고 낮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자신이 비록 칠적보다 한 단계 아래인 삼십단이라고 하지만, 단(丹)과 적(赤)의 경계는 어마어마하다.

검기와 검강의 경계?

아니, 그 이상이다.

“이적과 삼적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일적께서는…….”

일적이라는 말에 오적의 기운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일적은 칠적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지고한 위치다. 자존심상 인정하기 싫지만, 모두 으르렁거리는 칠적들도 사실 일적에게는 한 수 접어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섬서가 아닌 다른 곳의 대계를 조금 앞당겨 사천의 독왕을 죽여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오적의 눈이 꿈틀 움직였다. 사천의 독왕이라 한다면 당가의 태상가주로서 매화검선과 비슷한 배분, 비슷한 경지를 이룩한 고수가 아니던가?

“독성을?”

사실 섬서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적이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적성의 행사에 대해서 오적이 관리를 맡은 부분이 섬서라는 말이다.

무림을 대표하는 고수들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자신과 같은 칠적이 하나씩 나가 있다.

그리고 독성이 있는 사천에서 움직이는 것은 육적(六赤). 아마도 독성을 죽이게 된다면 육적이 직접 움직일 것이다.

“전 무림의 시선이 적성을 주목하고 있다. 한데 어떻게 독성을 죽인다는 말이지?”

그 말에 적발라가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숨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숨기지 말라? 아직 일성께서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적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일적께서 말하시기를, 성(星)께서는 이제 본연의 힘을 팔 할 정도 이루셨다고 하십니다.”

팔 할. 일성의 힘이 지금까지 완전해진 적이 없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기록에 따르면 이백 년 전 적성은 육 할의 힘으로 일적을 압도할 정도였다고는 한다.

칠적 중 최고라는 일적을 육 할의 힘으로만 압도했다. 한데 이번에는 팔 할이라고 한다.

아마도 완전해지기까지는 오 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실수해서 별의 대계에 피해를 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먼.”

그가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웃음을 흘리고 있으나, 잘게 떨리는 눈가만은 절대로 숨길 수 없다.

그가 적발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일적을 포함한 다른 칠적에게 전하게.”

적발라가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다음 답을 기다린다.

“본 성의 대계를 망쳐 놓은 그 철혈황룡인가 뭔가 하는 황색 지렁이는…….”

그가 손을 움켜쥐었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적발라 바로 옆의 바위가 터져 나간다.

허공섭물만으로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 것. 채 완치되지 못한 그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다.

그것은 광포한 폭풍이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릴 거대한 폭풍이 천지사방을 휩쓸고, 암혈 내부를 무너뜨릴 듯이 휘몰아쳤다.

드드드드―

암혈이 흔들리고, 오적의 기운이 한순간 모두 멈추었다.

"내상이 완치되는 대로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적발라가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그의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나오고, 그것을 괘념치 않은 적발라의 목소리가 암혈 내부에서 크게 울린다.

"속하, 다섯 번째 붉음의 명을 받듭니다!"

* * *

북해의 사내들은 거칠기 그지없다. 북해의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 거칠지 않을 리가 없었다.

또한 어지간한 무림인은 견뎌내지도 못할 북해라는 척박한 땅에서 견뎌낸 이들이다.

그들의 순수한 완력은 이류 무인보다 뛰어난 정도였다.

"흐흐흐, 저년, 미친년 같은데?"

그런 북해의 사내 중 하나인 구덕이 멀리 보이는 여인을 보며 말했다. 백옥과 같은 나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눈마저 그녀를 피해갈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의 옆에 있던 그의 동료 칠수가 시시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흐흐. 저년, 아주 실하게 미쳤구만."

그의 눈이 음탕하게 여인의 위와 아래를 살폈다. 그들이 군침을 흘리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 역시 이쪽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런 그들을 북해에서 잔뼈가 굵은 노인 화씨가 만류했다.

"그만들 두게. 비록 미친년으로 보인다곤 하지만 저 여인은 북쪽에서 내려온 여인일세."

북쪽, 북해의 북쪽에는 지금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 북쪽으로 갈수록 바람과 눈보라가 거세지고 온도가 뚝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도 살기 어려웠다.

살고 있는 것이라고는 가죽이 두꺼운 동물 몇 마리뿐. 과거에는 빙궁이라는 무림 단체가 있어 북해의 북쪽에 자리했다곤 하나 그것은 이백 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아무것도 살지 않은 불모와 북풍(北風)의 대지.

한데 저 여인은 알몸으로 북쪽에서 내려온 것이다.

미친년이라고 하나 이상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마력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풍기는 여인의 매력에 중독된 사내들이 화씨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들이 말리는 화씨를 밀쳐 내고는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흐흐흐. 이거 참 죽이는구만."

가까워질수록 명확하게 보이는 새 하얀 나신. 흩날리는 눈마저도 그녀의 몸매를 숨길 수 없다.

새하얀 눈 천지인 북해에서도 이토록 빛나 보이는 여인이 있던가?

그들의 눈이 음탕함으로 물들었다.

그들이 걸음을 빨리 옮겨 여인의 앞으로 다가선다. 그들이 다가오자 여인이 자리에서 멈추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응시했다.

"흐흐흐. 이봐, 이렇게 추운 데서는 뭐라도 입지 않으면 죽는다고."

그가 입가로 침을 흘리며 말했다. 무엇이 그리도 탐이 나는 것인지 침을 삼키는 목젖이 꿀렁이고, 눈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여인의 구석구석을 관찰한다.

그가 꿀꺽 또 침을 삼켰다.

구덕의 말에 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게 말이지. 이렇게 나의 품으로 들어오라고."

"흐흐흐. 따뜻한 가슴으로 덮어줄 테니까 말이지?"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들의 눈에 여인의 허리춤에 매여 있는 검이 들어온다. 무엇으로 만든 검인지 알 수 없으나 눈처럼 시리고 투명하다.

그가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흐흐. 이런 위험한 물건은 가지고 다니면 안 된다……."

그 순간, 세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사내의 눈에 비친 세상이 두 개로 갈라지고, 하나의 세상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어?"

사내가 팔을 들어 자신의 미간을 만졌다.

무언가 축축한 것이 느껴지고,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는 와중에도 미간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그 뒤를 이어 고통이 엄습하는 순간,

칠수의 몸이 아래로 허물어져 내렸다. 그것도 머리가 두 동강이 난 채로 허물어져 내리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여인의 눈이 이번에는 구덕에게로 향했다.

"흐이익!"

자신의 동료가 단번에 죽는 것을 보고서야 이성이 돌아온다. 이런 북해에서 아무것도 입지 않고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이 여인은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상황 판단이 되기 시작한다.

어떻게 될까?

나도 칠수처럼 죽을까?

죽음과 관련된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여인이 구덕을 향해 검을 겨눈다. 투명하여 시리기까지 한 검신이 눈에 보이고, 저 검에 맞아 죽는구나 싶었다.

그 순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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