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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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문의 내공심법은 태원삼객이 익히고 있던 내공심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공심법이다. 진기를 주천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혈도가 다르며 또한 그 순회 순서가 다르다.
한 가지 더 문제가 있다면, 그들이 지금까지 익히고 있는 내공 역시 문제였다.
황룡문의 심법으로 쌓은 내공과 그들의 내공심법으로 쌓은 내공이 전혀 다르다.
지금이야 두 개의 내공심법을 익히더라도 본래 익히고 있던 심법의 내공이 우세하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황룡문의 내공인 금룡진기가 그들의 단전에 자리 잡아가게 되면서 두 개의 내력은 계속해서 충돌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충돌이 격해지면 단전이 터져 나가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흔히들 주화입마라고 한다. 주화입마라 부르는 것은 폐인에 다가가는 지름길로서 자칫 잘못할 경우 무인으로서의 삶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금룡진기를 쌓으려 하면 그들이 익히고 지금까지 쌓아온 내력은 버려야 했다.
태원삼객이 망설이기 시작한다.
하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내력이 무인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으나 경지와 실력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물적 증거가 아닌가.
그 누구라도 내력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쉬이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앞에 있는 황룡문의 내공심법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이 심법으로 지금까지의 내력을 쌓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나가던 자운이 발견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냐?”
사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으니까.
그들이 자운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대표로 입을 연 것은 장석지였다.
“심법을 보고 있었습니다.”
자운이 손을 들어 그들의 이마를 때렸다.
따악―
스물 중반이나 된 무림인들이 이마를 맞았다. 화를 내기도 전에 자운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민하는 거 다 티 나니까 숨기려고 하지 마라.”
자운이 그들을 내려다봤다.
“너희가 배신하지 않는 이상 너희는 이제 황룡문의 제자야. 좋든 나쁘든 그 무공을 익혀야 한다는 거지. 그게 황룡문의 기본이니까.”
그 점은 알고 있다. 자운이 그들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근데 솔직히 좀 아깝지?”
아까울 분이랴. 말로 표한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태원삼객의 속에서 솟구쳤다.
“이 방법밖에는 없는 거겠지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정말로 용구절천수를 익히고 싶다면 그거밖에 없겠지. 그리고 황룡문의 무공은 너희가 익히고 있는 무공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자운이 검을 뽑았다.
“그걸 보여주지.”
자운의 신형이 휙 하고 사라진다. 그가 나타난 것은 바로 홍우의 뒤였다. 홍우가 대경하며 뒤를 돌아본다.
자운이 검을 쭈욱 뻗었다. 그의 검집 위로 단번에 일곱 줄기의 검상이 생겨나며 홍우가 밀려났다.
단순한 찌르기처럼 보였는데 한 번에 일곱 번에 이르는 공격.
그리고 이 밀어내는 육중한 힘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운이 그들을 향해 웃었다.
“그게 황룡의 발이다.”
다시 자운의 몸이 사라졌다. 그가 솟구친 것은 평격우의 앞이었다.
태원삼객중 둘째 평격우. 그는 홍우가 당하는 것을 보고 있었기에 미리 검을 뽑았다. 그리고 자운의 검과 얽혀든다.
카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의 몸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연검도 아닌 검이 어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거친 소용돌이가 자운의 검에서 솟구쳤다.
소용돌이는 한순간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하여 평격우의 검을 빨아들이는가 싶더니,
콰우우우―
다시 쏘아 보낸다.
자신의 힘이 그대로 역이용당한 평격우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용은 바람을 부리지.”
그리하여 용오름을 만들고 소용돌이를 만든다. 또한 용이 부리는 것은 바람뿐만이 아니다.
뇌전!
꾸르릉―
자운의 검에서 벽력이 치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뇌전은 아니지만 비슷한 기운이 자운의 검을 타고 흘렀다.
한순간, 허공을 번쩍하고 그어 내리는 자운의 검. 그 끝을 타고 허공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금색 빛줄기가 그어 내려진다.
콰앙―
그의 검은 장석지의 바로 앞의 땅을 후려치는 것으로 멈추었다.
마지막의 한 수는 극에 이른 쾌검(?劍). 자운이 지금 그들의 목숨을 거두고자 했다면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인물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장석지를 비롯한 태원삼객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자운을 바라보았다.
“이, 이것이 황룡문의 무공입니까?”
자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 너희가 익힌 검법과 심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황룡문은 과거 화산에 비견되던 문파다.”
정파 중 가장 최정예라는 구파일방, 그중 검파의 수좌 격이라는 화산, 그곳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파가 바로 황룡문이었다.
“그런 황룡문의 무공이 약할 리가 없지.”
선택은 자운이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선택해, 황룡문을 찾아왔던 그때처럼.”
자운이 허리춤으로 갈무리하며 오연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내려다보는 것 같다.
이것이 고수인가?
이것이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고수란 말인가?
황룡문의 무공을 익히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이런 고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의 마음이라는 호수에 조약돌이 떨어졌다.
작은 파문이 일고, 파문은 점점 커지며 어느 순간 호수 전체로 퍼져 나갔다.
장석진이 검을 내려놓았다.
“버리겠습니다.”
그를 선두로 평격우와 홍우가 검을 놓았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자리에서 운기에 들어간다.
단전에서 내공을 비워내는 것이다. 곧 그들의 몸에서 나름대로 정순한 진기가 흘러나왔다.
지금껏 그들이 쌓아온 내력이 밖으로 뿜어지고 있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일류에 근접한 고수 셋이 뿜어내는 내력은 확실히 느껴졌다.
자운이 손을 흔들어 아무렇게나 기운을 틀었다.
그러자 기운은 곧 천지 중에 녹아들며 평범한 기운으로 변해간다. 이윽고 그들이 눈을 뜨자 자운이 웃었다.
“잘했다. 그럼 내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주지.”
자운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기에 그러는 것일까?
태원삼객은 자운의 말에 의문과 동시에 호기심을 느꼈다.
“자, 너희들에게 이만한 창고가 있어. 이걸 가득 채울 정도로 돈을 벌면? 이 속에 있는 돈의 일부로 다른 창고를 지어야겠지. 그리고 거기에 돈을 다시 모을 거야.”
자운이 연무장 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은 창고로 보이는 그림을 하나 그리고, 그 속에 돈으로 보이는 동그라미를 마구 그려 넣는다.
그 옆에 새로운 창고를 그리고 동그라미를 마구 채워 넣었다.
“근데 이것도 다시 차면?”
자운이 동전 몇 개를 손으로 문질러 지우고 더 큰 창고를 그렸다.
“또 다른 창고를 사겠지. 물론 처음에 가지고 있던 돈이 소비가 되니까 그리고 창고를 짓는 데도 시간이 걸리니까 그렇게 쉽게 다시 창고를 다 채울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일단 커진 창고는 줄어들지 않아.”
자운이 발로 모든 그림을 지워버렸다.
“단전 역시 마찬가지. 처음에는 내공의 일부를 소비해서 단전의 크기를 넓히고 튼튼하게 하지. 그리고 그 커진 단전을 채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고. 그래서 축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야.”
자운이 손바닥을 짝 하고 때렸다.
“그런데 이미 큰 창고가 있다면?”
애초에 창고가 있다면 창고를 살 필요가 없으니 창고를 중축하는 데 드는 돈이 전혀 없다.
그러니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창고는 단전이고 돈은 내공이다. 자운의 말에 그들이 반색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자운이 아무렇게나 손을 흔들었다.
그러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사실이지.”
축기의 속도가 느린 것은 단전의 크기를 형성함과 동시에 축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내공회복이 빠른 것은 이미 만들어진 단전 속에 기운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기와 회복 모두 내공을 주천시키는 것인데, 어찌 그리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날까. 자운이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내린 견론이며, 이론적으로는 완벽했다.
물론 저들이 사용하던 기맥과 금룡진기의 기맥이 불일치 하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개척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확실한 건 너희가 예전의 내력을 되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지.”
기맥만 뚫린다면, 축기가 아니라 그냥 내력을 회복한다고 보면 무방할 정도의 속도로 내력이 찰 것이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론이지만.’
제8장
오적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그가 불편한 시선을 숨기지 못하고 적발라를 노려보았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이냐?”
그의 말에 적발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죽기를 각오하고 하는 말이다. 절대로 그가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화산에서 일이 터졌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도 전에 적성이라는 꼬리가 잡혀 버린 것이다.
적발라가 죽음을 각오하고 다시 한 번 말을 고했다.
“괴걸왕과 철혈황룡의 손에 적성이라는 전재가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그의 말에 오적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못하고 침음성을 뱉었다.
“으음.”
하지만 오적도 길길이 날뛸 수는 없는 것이, 사실 적성이라는 단체가 드러나게 된 것에 오적이 남긴 검상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매화검선은 진신 실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상대였기에 무공을 숨기면서 상대할 수는 없었다.
무공을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이 흔적을 누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려 이백 년 전의 무공이고, 비슷하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무공이니 말이다.
그저 이름과 그 위력만이 세간에 맴도는 것이 성우적하검(星雨赤霞劍)이 아니던가.
한데 그것을 알아보는 이가 나왔다. 가장 먼저 오적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의문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아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