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아무래도 이 오가상단은 후자인 듯싶었다.
"허허. 왜 거래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까. 문파를 운영하다 보면 제자들을 먹일 식재료도 필요할 것이고, 그 외에 검이나 옷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그것들을 싸게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운산이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황룡문에는 문도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아 그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본 문의 세가 커지게 되면 그때 다시 오가상단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오가상단의 상단주가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요. 그런데 황룡문의 문주님이 굉장한 고수라고 들었습니다.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다른 일을 하고 계신가 봅니다?"
이자도 역시 다른 이들처럼 자운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럴 때는 자운이 하라고 일러둔 말이 있었기에 운산이 그것을 그대로 읊었다.
"사실 며칠 전에 문주님께서는 폐관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만나 뵙기는 조금 힘들 듯합니다."
이번에도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황룡문과 거래를 트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그 대단한 고수라는 이와 안면을 트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한데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내 지금은 돌아가 황룡문의 연락을 기다리겠소."
운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사람을 배웅했다.
곧이어 다른 사람이 들어올 것이다.
우천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본 문에 몸을 의탁하고 싶으시다는 말이군요?"
우천의 말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천이 자신의 옆에 있는 총관을 바라보았다.
총관은 하오문에서 나온 이로서 지금 우천에게 이들의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우천이 총관에게서 정보를 받아 들었다.
이름:관자기.
나이:서른셋.
별호:없음.
무공:웅력도(雄力刀). 이류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
출신 내력:하남 출신. 낭인 일을 하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스스로 창안한 웅력도라는 도법을 익히고 있음. 제대로 된 내공 심법을 익히고 있지 않다.
또한 과거 산적 일을 한 경험이 있으며, 그때 지방관리의 딸을 겁탈하여 현재 은원 관계에 얽혀 있음. 당시의 이름은 관자서였으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관자기로 개명.
총관에게서 받은 정보에는 이자가 숨기고 싶어하는 정보까지 세밀하게 적혀 있었다.
정보를 읽어 내려가는 우천의 눈이 꿈틀 움직였다.
그의 입에서 존댓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네가 본 문에 몸을 의탁하고 싶다고?"
우천의 말투가 자운과 비슷하게 변했다. 또한 그의 말투가 싸늘하기 그지없다.
영문을 모르는 관자기는 불편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 비록 낭인이라고는 하나 어디 가서 쉽게 패하지 않을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오. 또 내가 직접 창안한 웅력도는......."
우천이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상을 뒤집었다.
상이 대번에 뒤집어지며 쾅 하고 관자기의 얼굴을 후려친다.
"나가!"
관자기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도를 뽑아 들었다.
"크악! 이게 뭐하는 짓이냐!"
우천이 마주 검을 뽑았다.
"뭐하는 짓이냐고? 너 미쳤냐? 우리 황룡문이 일 저지르고 튀면 받아주는 덴 줄 알았냐? 우리가 사파냐?"
우천이 관자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눈에서 범과 같은 안광이 뿜어지고, 관자기가 욕지기를 뱉으며 도를 휘둘렀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뭐긴 뭐야. 범죄자 새끼지."
우천이 검을 뻗었다. 그의 검에서 화려한 기교가 뿜어진다. 자운에게서 전수받은 기교, 감히 이류 따위가 막아낼 수 있는 기교가 아니다.
우천의 발길질에 차인 관자기가 밖으로 튕겨 나갔다.
총관은 익숙하게 그가 튕겨 나가는 순간 문을 열었다.
이전에 문을 열지 않고 있다가 문이 박살 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총관이 문을 열자 그는 거칠 것 없이 밖으로 튕겨 나가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뒤이어 우천이 날았다.
부웅 하고 날아선 그의 몸이 단번에 관자기의 옆에 내려서고, 관자기가 도를 휘두를 틈도 없이 그를 잘근잘근 짓밟기 시작한다.
"이 미친놈아, 우리가 사판줄 아냐? 응? 사판 줄 알아?"
마치 자운을 보는 듯한 말투와 움직임. 시정잡배와 같은 그의 발차기 속에 무리가 몇 개 녹아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한참 관자기를 밟아버린 그가 하인들을 불렀다.
"이거 밖에다 내다 버려."
관자기는 온몸에 멍이 들고 상처를 입어 혼절한 상태였다. 하인들은 우천의 말에 따라 그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우천이 다시 방으로 돌아가며 뒤에 줄을 서고 있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분명히 경고하는데, 우리 황룡문은 실력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본다! 그러니까 죄짓고 황룡문 그늘로 튀려고 하는 것들은 저렇게 될 각오하고 들어와라!"
우천이 문을 탁 닫아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친 범죄자 놈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에 또 저런 새끼 들어오면 양물을 잘라 버릴 거야."
그 말에 몇몇이 자신의 양물을 움켜쥐며 뒷걸음질을 쳤다.
운산과 우천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자운은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있었다. 정확한 내력의 양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의식이 몸속 깊은 곳으로 침전되어 간다.
천천히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기운이 흐르는 길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공은 마르지 않아 마치 대해와 같다. 당금 무림에 이 정도의 내력을 지닌 이가 몇이나 될까?
자운의 선천적인 체질상 내력이 잘 쌓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백 년간 모아온 내공은 절대로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도대체 이게 뭐지?'
자운이 내면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했다. 단전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알 수 없는 덩어리, 내력과 반발하지 않고 내력의 흐름에도 순응하는 것으로 보아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다.
한데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내단인가 싶기도 했는데, 어찌 사람의 몸속에 내단이 생긴단 말인가.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나 황룡문의 내공심법에 어떠한 특징이 있을지도 몰라 다시 뜯어 연구했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참고하려니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운의 의식을 움직여 그것을 단전 속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말랑한지 딱딱한지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것, 이것은 흡사 알과 같지 않은가.
'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스승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어, 이거 설마?'
자운이 천천히 그것을 움직이며 다시 살폈다. 둥근 것이 정말 알처럼 생기기도 했다.
의식으로 그것을 움직이고 있는지라 정말 알처럼 단단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휘몰아치는 내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또한 크기.
그 크기가 이상하게도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처음 잠에서 일어나 이것을 발견했을 때에 비해서 성장한듯한 크기. 마치 생물이 점점 성장하는 것과 같다. 자운이 씨익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건졌네,'
대충 정체를 실감한 그의 감각이 다시 의식 위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몸을 순환하던 내력이 다시 단전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와 동시에 자운이 눈을 번쩍 떴다.
황금빛 광망이 사방을 휩쓸고, 다시 자운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운산과 우천이 자운의 방으로 들어왔다.
제7장
운산과 우천이 자운의 방으로 들어왔다.
자운이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좀 지쳐 보이는데, 성과는 좀 있어?"
운산이 먼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쉰다.
"지금 당장 상단들과 거래를 하기는 조금 힘이 들 듯합니다. 상단도 지금 당장 거래를 트기보다는 대사형을 뵈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아직은 본 문이 힘이 적으니 그럴 수밖에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던 바다. 이번에 자운의 시선이 향한 것은 우천 쪽이었다.
자운이 우천을 바라보자 우천 역시 고개를 저어 보인다.
"무공 실력이 괜찮으면 일단 죄를 짓고 숨어들려는 자들이네요. 그놈들은 받아주면 언제 뒤통수를 치고 도망가 버릴지 모르니 전부 쫓아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우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고 무공이 약하더군요."
"그래서 쓸 만한 자는 하나도 건지지 못했어?'
자운의 말에 우천이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
"제가 누굽니까. 당연히 쓸 만한 자들을 몇 추려내 보았지요."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태원삼객(太原三客)이다. 섬서성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산서의 성도인 태원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무림인으로서 본래 낭인과 같은 생활을 했으며 셋이서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화화공자 교두현을 잡은 것으로 태원삼객이라는 별호를 가지게 되었다.
자운이 그들을 불렀다.
"데리고 와봐."
곧 태원삼객이 자운의 앞에 섰다. 그들이 자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람이 철혈황룡(鐵血黃龍)!'
당금 무림에 당당히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고수다. 자신들은 고작 산서 내에서 이름을 날리는 태원삼객인 것에 비해서, 자운은 지금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무인이다.
괴걸왕과 함께 화산에 얽힌 음모를 풀어낸 무인.
또한 일신의 무력이 화산의 검수보다 강하며 기습이나마 소림의 장로보다 한 단계 낮은 배분인 범(凡) 자 배분을 패대기쳐 버릴 수 있는 이다.
자운의 눈이 매와 같이 날카롭게 그들을 살폈다.
"좋아. 너희가 황룡문에 들어오고 싶다는 건 잘 알겠어."
그가 가볍게 탁자를 두드린다. 손끝으로 장난치는 듯 탁자를 두드리는 움직임. 하지만 그 움직임에 태원삼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운이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며 말을 이어나간다.
"근데 말이야, 난 아직까지 너희가 황룡문에 들어오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거든."
자운은 계속해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태원삼객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태원삼객 중 가장 나이가 적은 홍우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