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자운이 바닥에서 바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에서 퍼석 하는 소리가 나며 돌가루가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단 한 번에 돌이 가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돌이 저렇게 되는데 사람의 머리라고 다를쏘냐.
사내의 눈에 겁이 어리었다.
“말해. 네가 어디서 나온 녀석인지. 지금 말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지.”
자운이 이죽거렸다. 괴걸왕 역시 마음대로 해보라는 듯 자운이 하는 양을 보고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근심 어린 전음 하나를 자운에게로 보낸다.
[흐흘. 선배, 여기는 그래도 검선에 대한 주문을 표하는 자리라오. 최대한 피는 적게 보았으면 좋겠는데…….]
자운이 답 대신 고개만을 끄덕여 보인다.
“자, 말해봐. 넌 어디서 온 놈이야?”
자운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들어간 힘 정도가 더 들어가면 사내의 머리는 그 자리에서 터져 비산할 것이다.
자운의 눈에 자비는 없었다. 언제든지 너를 죽일 수 있다는 눈빛.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의 머리를 터드려 버릴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사내가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저… 적…….”
그 순간 그의 머리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으,으아아아아아악!”
그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며 핏물이 흘러나온다. 자운이 깜짝 놀라 그의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뗐다.
그의 머리가 점점 부풀어 오른다. 그 모습은 마치 짐승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바람을 불어 넣는 모습과 같았다.
“흐윽, 흐아아아악!”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르는 사내. 괴걸왕이 빠르게 나서 진정시켜 보려 했으나 진정되지 않는다.
괴걸왕이 빠르게 그의 혈을 몇 개 눌렀다. 지금 폭주하는 기운을 막아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혈이 모두 꼬여 막아지지가 않았다.
이맥(移脈)이 이루어지는 금제.
괴걸왕이 그것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배교(拜敎)의 불단맥금(不斷脈禁)!”
불단맥금, 기운을 머릿속에서 날뛰게 해 폭발시키는 금제 수법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금제가 발동되면 몸속의 기맥이 이리저리 꼬이기 때문에 기운을 통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번 발동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수법 중의 하나였다.
사내의 머리가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괴걸왕이 큰 소리로 범혜를 불렀다.
“범혜! 사자후를!”
소림의 수법 중 하나인 사자후. 그것은 사마를 파하는 공능과 함께 역시 일정 수준 이하의 금제를 멈추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범혜는 사자후를 배우지 못했다.
아직 사자후를 배울 정도의 실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창룡후는 알고 있다. 그가 웅혼한 불문의 내공을담아 입으로 뿜어낸다.
“갈!”
쾅 하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뿜어지며 창룡후의 기운이 금제를 후려쳤다.
금제가 한순간 주춤하다가 다시 폭발할 듯 날뛰기 시작한다. 범혜가 계속해서 창룡후를 펼쳤다.
내력 소모가 심한 수법임에도 불구하고 내력을 아끼지 않았다.
“갈!”
“갈! 갈!”
“갈! 갈! 갈!”
그에 덩달아서 창룡후를 익힌 승려가 범혜와 함께 창룡후를 내질렀다. 그러자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금제가 멈추어간다. 금제가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니다. 창룡후의 힘에 이기지 못해 잠시 정지되었을 뿐이다.
자운이 그의 몸을 붙잡았다.
“말해. 넌 어디서 온 놈들이지?”
좌중은 지금의 상황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정말로 적성이라는 단체가 움직이는 것인가?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교차되고, 모든 이의 눈이 그와 자운에게로 집중되었다.
소림승들의 창룡후가 조금씩 약해진다. 그들의 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예감한 그가 온몸을 경련하기 시작한다. 자운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말해. 말하라고.”
이자가 말하지 않고 죽어서는 안 된다. 아직 세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몸에도 역시 금제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금제를 막을 수 있는 소림승들의 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운산이 자운에게로 달려와 방법을 말했다.
“대사형! 황룡후를!”
그 말에 자운이 손바닥을 짝 치며 입을 움직였다.
?우우우우우우우
그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웅혼한 내공과 함께 소리가 움직이고, 허공으로 용 우는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 어떤 짐승의 소리보다 황홀한 소리가 금제를 밀어낸다.
역시 금제를 완전히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자운의 무지막지한 내력으로 오랜 시간 지속한다면 놈이 적성이라는 단체를 말하고 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운의 황룡후와 그의 금제가 거듭 충돌하고, 자운이 황룡후에 내력을 더 불어넣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내력이 금제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의 몸 구석에 처박아 버렸다. 황룡후가 지속되는 동안은 금제가 다시 발동되지 못할 것이다.
자운이 황룡후를 펼치며 괴걸왕에게 눈짓을 했다.
괴걸왕은 자운의 신호를 받기 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흘흘. 말하면 편하게 죽여주겠다. 말해라. 넌 어디서 보낸 놈이냐?”
배교의 금제는 죽어가는 자에게 상당한 고통을 준다. 단번에 죽이지 않고 서서히 뇌를 파괴시켜 죽이기 때문이다.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해 그 과정에서 광인이 되어버리고, 그 후에 죽는 이들도 있었다.
사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적성.”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으나 모든 사람들의 귀에 정확하게 들렸다. 그가 적상이라고 말하자 자운이 용음을 멈추었다.
용 우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그와 함께 다시 금제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으, 으아아아악!”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괴걸왕이 조용히 그의 심장을 눌렀다. 편하게 죽게 해준다고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괴걸왕의 내공이 그의 몸을 파고들어 심장 박동을 멈추었다.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가며 생을 마감하는 사내. 하나 금제는 대상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치지 않고 발동한다. 그의 머리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진득한 뇌수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자운이 손바닥으로 장력을 이리저리 뻗어 뼛조각과 뇌수가 달라붙는 것을 밀어내었다.
대부분의 고수들이 자운과 같은 행동을 했지만, 고수가 아닌 이들은 그 뇌수를 그대로 뒤집어쓰는 수밖에 없었다.
범혜가 머리가 터져 나간 사내의 시체를 보며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부디 극락왕생하시오.”
합장과 함께 고개를 숙여 보이는 범혜. 그를 따라 다른 소림승들 역시 불경을 외우며 합장을 해 보인다.
하지만 자운의 시선은 이미 그들에게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나머지 세작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세작들을 한 번씩 노려보고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봤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설마 아직도 못 믿겠다는 놈 있어? 그럼 말해.”
자운이 세작 중 한 놈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한 놈 더 죽여 버리면 되니까.”
다시 황룡후를 펼쳐 놈에게서 정보를 알아내겠다는 자운의 말. 그의 입에서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무림의 인물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이제는 적성이 움직인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운과 괴걸왕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생각한 대로 풀린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금제는 예상과 조금 달랐으나, 그래도 결과는 계획한 바와 같았다. 자운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우천과 운산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황룡문으로 돌아간다.”
* * *
화산에서 있었던 일은 많은 이들의 입을 타고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자운에 대한 이야기와 황룡문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함께 퍼져 나갔다.
물론 화제의 중심은 자운과 적성이었다.
매담자들은 자운의 냉정하면서도 과감한 손속을 비판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옹호하기도 했다.
정파이면서도 너무나 과감하며 냉정하다. 또한 시건방지다는 의견도 있었고, 달리 그 정도 배짱과 포부, 그리고 과감함은 있어야 적성들을 상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오갔다. 바로 그의 별호.
철혈황룡(鐵血黃龍).
과감하고 냉정한 그의 손속이 철혈과 같다 하여 붙여진 무림명이다.
적성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여러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이들은 성급하게 판단을 내려선 안 된다고 했다.
반대로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분명 적성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고 말들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림에 불길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운이 화산에서 황룡문으로 돌아온 지 삼 일째. 지금 황룡문은 상당히 시끌벅적했다. 화산에서의 일로 인해 황룡문의 문주 대리인 자운의 실력이 백일하에 드러났지 않은가?
물론 자운으로서는 그것이 매우 일부라고는 하지만, 화산의 검수들을 제압하고, 소림의 범혜를 기습으로 가볍게 패대기쳤다는 사실은 무림에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자운을 주목하고 친분을 맺길 바랐으며, 황룡문의 무공을 익히길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상인들이 자운을 찾아왔으며, 거처를 정하지 않는 무림인 몇도 황룡문에 몸을 의탁할 것을 부탁해 왔다.
자운이 그들과 만나는 것을 우천과 운산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바빠 죽는 것은 그들이었다.
상인들과 만나는 것은 운산이었고, 무림인들과 만나는 것은 우천이었다.
우천은 성격이 자운을 닮아가기 때문에 호전적인 기질이 강해 상인들과 만났다가는 일이 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가상단(吾家商團)에서 오신 분이라는 말씀이군요.”
운산이 눈앞에 있는 중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자가 다섯 번째 만나는 상인이었다.
오늘만 크고 작은 상단이 몇 개 황룡문을 다녀갔다. 지금 이자도 자신들의 상권을 자랑하기 여념이 없다. 우리가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거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운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당히 좋은 상단이군요. 하지만 죄송하게도 본 문에는 지금 귀하의 상단과 거래를 할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거래를 할 품목 역시 없고요.”
대부분의 상단이 이렇게 말하면 곧 물러났지만 그렇지 않은 상단도 몇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