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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난신-31화 (31/175)

# 31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운이 보기에는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검상만으로 흉내를 내는 것은 가능했지만, 이것은 검에 육중한 무게가 담겨야 가능한 초식이다.

자운이 이러한 초식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찾아내기 시작했다.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초식이라면, 하다못해 이 정도의 위력을 가진 초식이라면 이름은 들어보았을 법도 한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자운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휘이익?

바람 갈라지는 소리가 나면서 강력한 힘이 자운의 뒤통수로 향했다. 자운이 피식 소리가 나게 웃고는 그 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그의 몸이 흐릿해진다 싶더니 땅으로 꺼지는 것처럼 아래로 사라졌다.

자운이 다시 나타난 것은 오 보 정도 떨어진 곳.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치려 했던 시건방진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이건 웬 거지 새끼야?"

자운이 이죽이며 말했다. 자운의 동공에 비친 이는 거지였다. 머리는 백발로 산발이었으며 사이사이에 씻지 않아 때가 끼어 있었다.

또한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고 똥밭에서 구르기라도 한 듯 악취가 진동한다.

자운이 코를 씰룩였다. 역한 냄새가 올라왔던 탓. 그러면서도 자운은 이죽거리는 미소를 풀지 않았다.

'감히 나의 뒤통수를 후려치려고 해?' 라고 말하는 듯한 자운의 눈빛. 그 말에 거지가 껄껄 웃었다.

"흘흘, 검선 그 노인네가 죽었다기에 죽은 자리에 와봤더니 웬 젊은 놈이 있구나."

자운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뭐?"

'젊은 놈인지 늙은 분인지 네가 아냐?'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적당히 참았다.

"흘흘흘. 이상하지 않느냐? 아래쪽에는 매화검수들이 지키고 있는데 올라오는 젊은 놈, 그런데 그 젊은 놈이 이 수법까지 흉내 낸다면?"

그가 괴장으로 자운이 만들어낸 검상을 꾹 누르며 말했다.

자운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쯤이야… 이렇게, 이렇게 하면 간단하게 되는 거 아닌가?"

자운이 검을 다시 흔들었다. 그의 옆에서 다시 같은 검상이 파이고, 이번에는 거지노인이 이죽거렸다.

"흘흘,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게 이 수법을 알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 설마 모르는 걸 한 번 보고 만들었다는 건 아니겠지?"

자운이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난 천재니까."

"흘흘. 고놈, 입이 참으로 건방지구나. 요 입이 문제렸다."

노인이 쭉 괴장을 뻗었다. 사실 거지노인은 무림에서 이름이 자자한 괴걸왕(怪乞王)이었다. 기행을 일삼으며 다니기 때문에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무림명에는 괴(怪)라는 글자가 붙었고, 개방의 태상방주 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걸왕(乞王)이라는 별호가 추가되었다.

괴걸왕의 괴장에 기운이 솟구친다.

"이 노인네가 미쳤나. 왜 갑자기 시비야?"

자운이 마주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황금색 기운이 솟구치며 괴장의 기운과 연달아 충돌한다.

"으음."

자신의 기운과 자운의 기운이 계속 충돌을 거듭하자 괴걸왕이 신음을 흘렸다. 반발력이 밀려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삼성의 공력을 실은 공격인데 자운이 너무나 쉽게 막자 자존심이 상했던 것.

"이놈아, 젊은 놈이 한 수 재간이 있었구나."

"두 수, 세 수도 보여줄까?"

자운이 다른 손을 휙휙 움직였다.

그의 손이 허공중에서 휙 하고 사라진다. 손이 다른 곳으로 뚝 사라진 듯한 움직임. 그 움직임에 괴걸왕의 눈이 치켜떠졌다.

"이놈이!"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휘둘러 장법을 펼쳐 낸다. 단번에 괴걸왕의 옆에 나타난 자운의 손과 그의 손이 연달아 충돌했다.

쾅쾅쾅―

자운이 괴걸왕을 향해 이죽거리며 말했다.

"여기서 더하면 선인봉이 무너질 텐데?"

기가 막힌 말. 그 말은 자신이 괴걸왕과 검선과 비슷한 경지에 올라 있다는 말이 아닌가?

'저렇게 젊어 보이는 얼굴에?'

괴걸왕이 미친놈 바라보는 눈빛으로 자운을 바라보았다.

"흘흘, 네가 반로환동이라도 했다는 말이냐, 이 미친놈아."

자운이 검을 뻗었다. 검에는 금색 기운이 일어나며 단번에 괴장을 쳐 낸다. 괴장을 타고 얼얼한 감각이 타고 올라오고, 자운이 단번에 괴걸왕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앞에 건 비슷하고 뒤에 건 틀렸어."

반로환동 비슷한 걸 하기는 했는데 반로환동은 아니다. 그리고 뒤에 말한 미친놈은 절대로 아니었다.

자운이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자 화들짝 놀란 괴걸왕이 주먹을 뻗었다. 자운이 주먹을 피하기 위해 몸을 회전시켰다. 회전과 동시 뒤로 빠지며 뿌리는 퇴법. 용의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괴걸왕의 낡고 더러운 옷 조각이 찢어져 날렸다. 괴걸왕의 미간이 꿈틀 움직이며 용 우는 소리와 함께 괴걸왕의 손가락이 성큼 다가왔다.

개방이 타 절기에 비해 유명하지는 않으나 위력만큼은 절대로 뒤지지 않는 절기, 용음십이수(龍吟十二手)가 펼쳐진다.

용 우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동시에 손가락이 각기 열두 번의 변화를 일으켰다.

총 육십에 달하는 변화가 자운을 향해 파고든다. 적지 않은 내력이 담겨 있어 맞으면 죽지는 않겠지만 치명상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자운이 발끝으로 땅을 때렸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며 철판교의 수법으로 머리가 땅에 닿을 듯 등을 굽힌다.

머리칼이 땅을 스치고, 용음십이수의 힘이 자운의 옷 고리를 스쳤다.

고리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풀려나고, 자운의 허리가 용수철마냥 튕기듯 제자리를 찾는다.

"미안하지만 안 맞았어."

그의 옆으로 용음십이수에 떨어져 나간 옷고름이 땅으로 흘러내렸다.

괴걸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흘흘, 나도 안 맞았다."

자운이 주먹을 흔들었다.

"괜찮아. 이제 때릴 거니까."

자운에게는 시종일관 여유가 있었다. 이제 스물 조금 넘은 얼굴로 보이는 인물이 천하의 괴걸왕을 상대하며 여유를 가진다?

괴걸왕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뿐더러 인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튀어나왔는고.'

자운이 그대로 돌진한다. 그의 손에서 파공음이 일며 그대로 공간이 좁혀졌다.

팡― 팡― 팡―

공간을 통째로 잡아먹는 듯한 자운의 주먹!

주먹이 단번에 허공을 가로질러 괴걸왕의 면전에 도달했다. 괴걸왕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고개를 비틀었다.

화살과 같이 빠른 자운의 손이 단번에 그의 얼굴에 있던 자리를 파고들고, 미처 피하지 못한 머리카락 몇 개가 그로 인해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자운이 자신의 손을 회수하며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아, 더러워. 젠장."

"거지에게 더러움은 최상의 미덕이지."

"구걸이 아니고?"

"그 또한 좋고! 흘흘."

괴걸왕이 취팔선보를 계속해서 밟았다. 취팔선보의 족적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자운에게로 향했다.

취한 신선의 걸음. 자운이 운해황룡을 펼치며 괴걸왕에게로 날아들었다.

"아해야, 이제 말해보아라. 도대체 여기에 온 이유가 뭐냐?"

그가 자운을 향해 두 주먹을 뻗으며 말한다. 괴장은 어느 틈엔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고, 괴장이 없는 양손에서 연달아 장력이 뻗어 나왔다.

"그러는 넌 이곳에 올라온 이유가 뭐냐?"

"흘흘. 고놈이 참, 말버릇은 고쳐지지 않는구나."

그가 자운의 뒤통수를 후려칠 기세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쉽게 뒤통수를 허락할 자운이 아니다. 그 역시 마주 뻗어 뒤통수를 노렸다.

"이게 어디서 감히 어르신의 뒤통수를 때리려고."

자운이 어깨를 흔들며 주먹을 뻗었다. 괴걸왕의 뒤통수에 자운의 주먹이 닿으려는 찰나, 아슬아슬한 순간에 괴걸왕이 머리를 흔들었다.

독한 냄새가 풍기며 자운의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젠장."

자운이 욕지기를 뱉으며 운해황룡의 퇴법을 밟았다.

눈앞 가득 모래먼지가 일어 눈을 가리고, 자운이 그 틈에 뒤로 빠져나간다.

"흘흘, 좋다. 노부가 이곳에 올라온 이유를 말해주면 너도 말을 해주는 것이렷다?"

"거래를 하자는 거야? 글쎄. 그건 들어봐야지."

자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흘흘, 장사를 할 줄 아는 놈이로고."

말없이 다시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자운. 괴걸왕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전에 일단 넌 좀 맞아야겠구나. 흘흘흘, 입이 문제야, 입이."

주먹을 타고 개방 특유의 심법이 감돌고, 그의 손에 파지직 하고 전류가 휘감겼다.

전류는 한 마리 용이라도 된 듯 포효하며 자운을 향해 달려든다.

개방의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과 비슷하나 전혀 다른 초식. 자운은 이 초식을 사용하는 인물과 안면이 있었다.

자운이 화들짝 놀라며 그 인물의 이름을 외쳤다.

“공우!”

공우라는 말에 괴걸왕의 움직임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자운이 단번에 성큼 괴걸왕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괴걸왕의 머리카락을 틀어쥐었다.

움찔했던 탓에 괴걸왕은 변변한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자운의 손에 머리채가 틀어쥐어졌다. 자운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괴걸왕을 향해 물었다.

“너 공우랑은 무슨 사이냐?”

공우. 이백 년 전 자운의 또래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개방의 후개였다. 또한 개방의 무공에 요상한 짓을 가해 세상에 다시 없을 뇌기를 띠고 있는 장력을 만든 놈이기도 했다.

자운이 인정한 무학의 천재였다.

저 수법, 뇌기를 머금은 강룡십팔장은 그가 자주 사용하던 수법이 아닌가?

그의 입으로 호언하기를, 이 수법은 자신의 제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 괴걸왕은 공우의 제자, 혹은 사손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자운이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말하자 괴걸왕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너, 너, 이놈, 이거 놓아라! 이거 놓아!”

자운은 괴걸왕의 머리채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더욱 단단히 잡아채었다.

잡히기 전이라면 모르겠으나 자운의 손에 머리채가 들린 이상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머리카락째로 우드득하고 뜯겨 나가는 것을 감수한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는 있겠지만, 괴걸왕이 머리 중간이 빠져나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그건 안된다!”

갑자기 자지러지듯 비명을 지르는 괴걸왕. 자운은 그런 괴걸왕을 끌어다 자신의 앞으로 가까이 놓았다.

“말해. 너 공우의 제자냐, 아니면 사손이냐?”

그 말에 괴걸왕의 눈이 커지며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소리쳤다.

“으아악! 아윽! 으악! 이놈, 이놈아, 넌 도대체 누구기에 남의 사조님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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