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29화 (29/175)

# 29

손이 지나가는 그림자밖에 보지 못했다. 기습적인 움직임이라 해도 십오 년 전을 기점으로 망해간다고 들었던 황룡문의 문주가 보일 움직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갈수를 구해야 한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저 고수에게 맞을 것이다.

“천 문주, 내 조카 교육을 잘못시켰음을 인정할 테니, 그만해 주시지요.”

제갈운의 말에 자운이 제갈운을 바라보았다. 자운은 서 있고 제갈운은 앉아 있다. 높은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자운이 곧 손을 놓으며 탁탁 털었다. 그러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우천을 바라보았다.

‘대사형이 왠일로?’

지켜보단 운산으로서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자운은 절대로 저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운이 손을 털더니 다시 제갈운을 내려다보았다.

“그렇지.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겠지. 그렇지요?”

자운의 말을 제갈운이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분명 제갈수가 잘못한 것이니 체벌은 해야겠는데, 그것을 자신의 손이 아닌 아이들의 손으로 끝내자는 말 아닌가.

잘하면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문주, 고맙소.”

그가 자운에게 고개를 숙여 포권을 취해 보였다. 자운은 아무렇게나 손을 흔들고는 우천을 불렀다.

“야.”

“예, 대사형.”

“비무 준비해라.”

우천의 귓가로 자운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황룡문을 모욕한 놈이다. 가볍게 끝내지 말고 뼈 하나로 합의 보자.]

우천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상대는 무림에서 용의 칭호를 받은 현룡이다.

자신 역시 무공을 배웠다고는 하나 정식으로 배운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한데,

‘현룡이랑 비무라니…….’

어쩌면 뼈가 나가는 쪽은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우천의 귓가로 다시 자운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걱정 마. 잘 때리면 네가 이겨.]

제3장

객잔의 뒤뜰을 빌렸다. 차가운 바람이 우천의 다리 사이로 스치고 지나갔다. 눈앞에 있는 자는 현룡이다.

긴장되지 않을 리가 없다.

비무의 특성상 진검을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검집째로 휘두르기로 했다.

제갈수가 자운을 한번 노려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우천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올 테면 오라는 신호다. 그것은 도발이었다. 제갈운이 제갈수의 태도를 보고 버럭 소리쳤다.

"수야!"

하지만 제갈수는 못 들은 척 계속해서 손을 까딱인다.

그런 제갈수를 바라보는 우천의 귓가에 자운의 전음이 또 다시 날아들었다.

[오라는데 가서 패줘 버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천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우천이 오지 않자 제갈수가 한 걸음 움직였다.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지."

제갈수가 제갈가의 직계만이 배울 수 있는 소천성신공(小天星神功)을 끌어올렸다.

소천성신공 특유의 기운이 제갈수의 몸을 타고 뻗어 나갔다.

츠츠츠츠츳―

제갈수의 신형이 휙 하고 당겨져 온다. 역시 제갈세가에서 자랑하는 보법 천기신행(天璣神行)이었다.

절정에 이른 천기신행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천기신행의 속도는 절대 느리지 않았다.

그가 천기신행으로 단박에 우천의 앞으로 이동하고 손을 뻗었다.

소천성신장의 공력이 맴돌고 있는 소천성신장(小天星神掌).

장력이 우천을 향해 쇄도했다. 우천이 검을 들었다.

'이상한데?'

소천성신장이 눈에 보인다. 현룡이라 불리기에 어마어마한 고수인 줄 알았는데 그의 공격이 눈에 보인다.

순간 나를 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막고 보자.'

그가 자운에게 배운 대로 검을 움직였다. 검끝으로 소천성신장의 경로를 바꾸어 버린다.

애꿎은 허공을 소천성신장이 때린다.

퍼엉―

그 바람에 우천의 머리칼이 휘날렸으나 전혀 타격은 없다.

자신하던 장이 허공을 때리자 제갈수가 의문을 표했다.

"어?"

제갈운 역시 안타까움을 토하고.

"저런!"

그 순간 틈을 놓치지 않는 우천의 검끝이 제갈수의 갈비뼈를 때렸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제갈수가 뒤로 빠졌다. 몸을 뺐기 때문에 큰 충격은 입지 않았으나, 검이었으면 가슴에 검상이 생겼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한 방을 먹은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다 무너져 가는 삼류라고 말한 문파의 제자에게 말이다.

그 점은 제갈수에게 있어서 수치였다.

"이익!"

제갈수가 화를 내며 공력을 더 끌어올렸다.

화가 난 제갈수와 달리 우천은 얼떨떨한 감각을 경험하고 있었다. 분명 엄청난 고수라고 생각하고 찔러 넣었는데, 그게 성공하기까지 했다.

'내 공격이 먹히는 건가?'

자운을 바라보자 자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동안 한 훈련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눈앞에 다시 장력을 뻗는 제갈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우천이 경로를 틀기 위해 검을 뻗었다.

"우연이 두 번이나 일어날 줄 아느냐!"

하나 이번에는 제갈수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전혀 틀어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갈수의 장력이 미세하게 틀어지고, 틈이 생겼다.

우천이 그 사이로 몸을 뺐다.

날랜 제비처럼 우천의 몸이 제갈수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제갈수의 장력이 또 허공을 때렸다.

옆에서 바라보던 제갈운이 감탄을 토했다.

"굉장한 기교군요."

제갈운의 말에 자운이 못마땅한 듯 툴툴거렸다.

"에잉. 그러게 말입니다. 항상 기본에 충실하라고 했는데 또 기교를 부리니."

말을 하는 자운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하지만 비무에 집중하고 있는 제갈운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운산 역시 비무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런 운산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있었다.

바로 제갈수련의 시선이었다.

여태껏 말이 없던 제갈수련이 뚫어져라 운산을 바라본다. 운산은 비무에 집중한 나머지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시종일관 제갈수련의 시선은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묘하기 그지없어 백치미까지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천과 제갈수의 비무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천의 기교에 제갈수의 장력은 계속해서 허공만을 때렸다. 빈틈을 잘 감춘 덕에 더 이상 공격당하지는 않았으나, 처음에 한 방 먹은 것은 제갈수에게 있어서는 수치. 그것을 돌려주려고 하는데 모든 공격이 허공을 때리자 점점 열이 받쳤다.

"이익!"

화가 난 그가 소천성신공의 공력과 대천성신공의 공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정순한 제갈수의 내력이 두 팔로 뻗어 나간다. 수천성신공은 좌수로 흘러가 소천성신장으로 화했다.

대천성신공의 공력은 우수를 타고 내려 대천성신장으로 화했다.

"우연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가 계속해서 우연을 소리치며 소천성신공의 장력을 먼저 뻗었다.

뒤이어 대천성신장이 따라온다. 시간차에 이른 이 연격. 공격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배는 강했다.

우천이 빠르게 상황을 읽었다.

먼저 소천성신장은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흘렸다. 소천성신장의 장력이 흘려지는 것이 손끝을 타고 들어온다.

확실한 감각. 뒤이어 거대한 존재감이 성큼 다가왔다.

대천성신장이었다.

제갈수 역시 소천성신장이 흘려진 것을 알았기에 이를 악 물고 공격을 들이민 것이다.

"허어! 끝이 난 것 같군요."

제갈운이 자운을 보며 말했다. 우천은 잘했다. 무림에서 후기지수로 유명한 현룡을 상대로 저 정도의 선방을 했으니 잘했다 할 것이다.

제갈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운이 제갈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끝났네요."

우천의 감각이 활성화되었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대천성신장의 눈에 들어온다.

대천성신장을 향해 그가 검집을 뻗었다.

화르륵―

대천성신장의 공력이 우천의 검에 옮겨 붙었다. 화력을 빼앗긴 대천성신장의 위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약해진 대천성신장이 우천의 가슴팍을 때렸다.

쾅―

우천의 속에서만 들릴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대천성신공 절반 이상의 공력을 품은 검집이 제갈수를 향해서 날아들었다.

제갈수가 막기 위해 좌수를 뻗었다.

제갈운이 크게 소리친다.

방금 전 우천이 보인 한 수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다리를 탁 하고 때렸다.

"사량발천근!"

그것과는 별개로 자운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위험하군.'

이것은 비무다. 죽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제갈수의 버릇을 고쳐줄 생각이었지만, 제갈세가와 입장이 껄끄러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콰직―

검집이 제갈수의 좌수를 부수었다. 뼈가 가루가 나지는 않았으나 당분간은 좌수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도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뻗어 나가는 우천의 검집. 그대로 나아간다면 검집은 제갈수의 이마를 후려칠 것이다.

운이 좋으면 뇌가 상하는 정도로 끝이 날 것이고, 운이 나쁘면 그 자리에서 두개골이 박살 나 즉사할 수도 있다.

자운의 신형이 흔들리듯 휙 사라졌다. 제갈수의 머리로 향하던 검집을 그가 붙잡았다. 그리고 팔을 한번 회전시켜 우천의 검집을 검째로 날려 버렸다.

휘리릭―

허공에서 회전한 검이 바닥에 떨어진다. 대천성신공의 공력이 남아 바닥을 후려쳤다.

쾅―

저 공격을 그대로 맞았다가는 두개골이 박살났을 것이다. 그 증거로 바닥에는 반 뼘 깊이 정도의 구멍이 파였다.

자운이 늘어지는 우천을 안아 들었다.

아까 가슴팍을 맞은 충격에 기절을 한 것이다. 자운이 고개를 돌려 제갈수와 제갈운을 바라보았다.

제갈수는 부러진 손을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저 정도면 충분하지.'

자운이 제갈운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패했군요. 이만 우리는 돌아가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운은 객잔으로 돌아갔다.

운산 역시 우천의 검을 챙겨 자운의 뒤를 따르고, 손을 감싸 쥐고 고통을 호소하는 제갈수에게 제갈운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실전이었으면 넌 죽었을 거다."

제갈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삼류라고 무시했는데 그게 아니다. 저 정도면 무림의 다른 용이라 불리는 후기지수들에게도 통할 것이다. 나름 무림의 신룡이라 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참히 깨졌다.

경각심이 들었다. 제갈수가 멀어지는 우천을 향해 말했다.

"다음에는 꼭 이길 겁니다."

어느새 그는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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