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28화 (28/175)

# 28

적발라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단언하는 모습. 그에 대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귀밑머리가 검고 치아가 젊은이의 그것처럼 고르고 하얀색이었다고 합니다.”

자운은 정확하게 말하면 늙었다가 젊어진 것이 아닌, 전혀 늙지를 않은 것이다. 반로환동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그러니 반로환동의 증표로 나타나는 노인의 치아와 새하얀 귀밑머리가 나타날 리가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황룡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인이 있는 모양이군.”

“제가 황룡문에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오적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 같은 수하를 잃고 싶지 않네. 관두게.”

“하지만…….”

“황룡문에는 내 몸이 다 나으면 내가 가보도록 하지. 황룡문의 고인이라…….”

그가 매화검선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와의 대결은 그야말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감각. 몇가지 깨달음도 더 얻었으니 정리를 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입맛을 다셨다.

“부디 이번에도 그런 감각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자였으면 좋겠는데…….”

“예?”

“아닐세.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말게.”

그가 매화검선에 대한 생각을 접고 황룡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반년, 그 후에 보도록 함세.”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에게 하는 말. 말을 하는 그의 옆으로 매화 가지 하나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 * *

“이제 하루 저녁만 더 가면 화산에 당도하겠군요.”

운산이 객잔 밖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화산을 보며 말했다.

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하루거리. 그러거나 말거나 자운은 객잔에 들어오는 순간 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는 빈둥빈둥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아, 진짜 지친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지친다.

한참을 빈둥거리던 그가 일어난 것은 우천의 말에 반응해서였다.

객잔 일 층 식당에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 그 말을 들은 자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섬전과 같은 속도. 자운이 밥이라고 흥얼거리며 아래로 내려간다.

대부분 무림과 관계없는 인물들이 자리해 밥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간간히 무림인들도 보이는 것이 화산으로 가는 모양이다. 자운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단번에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운산과 우천 역시 뒤이어 자리한다. 그들이 차고 있는 검이 무림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무림인들의 시선이 거칠 것 없이 느껴진다. 하지만 악의를 담은 시선은 없었기에 괘념치 않았다.

대부분의 시선의 궁금증과 의문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들의 시선은 거두어졌다. 한 무리의 사람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이는 무림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제갈세가를 달리 신기제갈(神機第葛)이라고도 칭한다. 그렇게 불릴 정도로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는 만큼 수많은 고수들을 데리고 있는 제갈세가에서도 특히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신기수사(神機秀士)였다.

신기수사 제갈운.

신기제갈과 같은 앞의 두 글자 신기(神機)가 들어간 만큼 가장 제갈세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선두로 들어오고, 그 외에 다른 이들이 들어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들은 제갈세가다.

주변의 인물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 함은 일반적인 무림인들과는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 긴장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운산과 우천의 눈 역시 그들을 향했다.

제갈운을 뒤따라 들어온 이들은 우천과 운산의 또래였다. 하나는 정파무림의 칠룡으로 이름을 날리는 현룡(賢龍) 제갈수일 것이고, 그 옆의 여아는 제갈수의 동생인 제갈수련일 것이다.

그들은 들어오며 장내를 살폈다.

자리가 없는 것을 확인한 제갈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자리가 없군요, 숙부님.”

그 말에 제갈운이 너털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늦게 온 우리가 잘못이니 먼저 올라가서 여장을 풀도록 하자꾸나.”

그 말에 제갈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주변을 찾았다.

자리가 남는 곳을 찾는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합석을 생각한 것이다. 제갈수는 곧 단 셋만이 자리하고 있는 자운의 자리를 발견했다.

“저들에게 합석을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제갈운이 제갈수에게 물었다.

“저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겠느냐?”

“양해를 구해보겠습니다, 숙부님.”

자운 역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듣고 있으니 제갈운이라는 사람은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운이 오리 다리를 집어 들었을 때, 제갈수가 다가와 물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합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우천과 운산의 시선이 대번에 자운에게로 향한다. 자운이 오리 다리를 우적 물었다.

‘이 사람이 이들을 이끄는가 보군.’

운산과 우천의 시선이 자운에게로 향하자 제갈수 역시 시선을 자운에게로 향했다. 자운의 입을 타고 오리 다리의 육즙이 흘러내렸다.

“츠릅. 자리가 남으니 얼마든지.”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면 흔쾌히 수락했다. 제갈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곧 제갈운이 선두에 서서 제갈수와 제갈수련이 그들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제갈운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합석을 허락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소협은…….”

자운이 물고 있는 오리 다리를 내려놓으며 포권을 가볍게 취했다.

“황룡문의 천자운이오.”

반존대. 존대를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제갈수의 미간이 모아졌다. 하나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었는지 단번에 화를 내지는 않고 불편한 시선을 보일 뿐이다.

“황룡문의 검운산입니다.”

“황룡문의 우천입니다.”

우천과 검운산 역시 제갈운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들이 공손히 포권을 취하자 제갈수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들었으나 여전히 자운을 향하는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다.

“허허, 황룡문의 소협들이셨구려. 제갈운이라고 한다오. 무림의 동도들이 과하게도 신기수사라고 불러주고 있소.”

그러든지 말든지 자운이 다시 오리 다리를 뜯었다. 우천과 운산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갈운 대협의 존성대명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니 고맙구려. 뭐하느냐, 인사들 하지 않고.”

제갈운의 채근에 마지못해 제갈수가 고개를 숙였다.

“제갈수라고 합니다.”

뒤이어 제갈수련이 고개를 숙였다.

“제갈수련이라고 합니다.”

포권을 취해 보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 후로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곧이어 점소이가 와서 제갈운에게 주문을 받아가고, 제갈운이 오리 다리를 다 뜯고 내려놓는 자운을 향해 물었다.

“화산으로 가는 길들이오?”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선이…….”

“검선께서 귀천(歸天)하셨다 하여 조문을 표하러 갑니다.”

자운이 매화검선을 자기 친구 이름 부르듯 하려 하자 단번에 운산이 나서 그것을 막았다. 운산이 말을 하자 자운은 고개를 으쓱하고는 손에 묻은 기름을 탁자에 아무렇게나 문질러서 닦았다.

“그렇지요. 정파무림의 큰 별이었는데…….”

“걱정입니다.”

곧 운산과 제갈수는 배분의 문제도 잊고 무림의 안위에 대해서 걱정했다. 자운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넌 황룡문이나 걱정해.’

아직 황룡문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는데 무림의 안위 어쩌고 하는 운산을 보니 웃긴 것을 넘어 귀엽기까지 한 것이다.

제갈운이 무어라 말을 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계속 음식을 뜯는 자운의 모습이 제갈수는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는 결국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그쪽의 당신은 참으로 무례합니다. 저희 숙부님은 분명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분이시고, 그런 분이 무어라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하여야 할 것 아닙니까.”

자운이 들고 있던 오리 뼈를 뜯다 말고 다시 그릇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제갈수를 빤히 바라본다.

“듣고 있었다. 무림의 안위 머라 하고 있던 거 아니야?”

그리고는 귀를 후비적거린다. 참으로 예의없는 태도. 그 태도에 경험이 적은 제갈수는 책상을 치면서 일어났다.

“당신! 무림에서 당신보다 배분이 높은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태도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 말에 우천이 답했다.

“이분은 황룡문의 문주 대리이십니다. 또한 이렇게 젊은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 나이가 불혹(不惑)을 넘으셨습니다.”

불혹(不惑)?

넘은 지 오래다.

상수(上壽)를 두 번 넘었는데 불혹 따위가 대수인가?

불혹을 넘었다는 말에 제갈운이 소리쳤다.

“허어! 환골탈태라도 한 것이오?”

환골탈태라는 말이 무림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환골탈태는 그야말로 무림인들이 꿈에서나 바라는 경지다. 제갈운도 아직 환골탈태는 겪지 못했다.

환골탈태라는 말에 제갈수가 움찔했다. 상대가 정말로 환골탈태를 겪은 이라면 그로서는 쥐새끼가 범에게 시비를 건 격이다. 자운이 씨익 웃었다.

“그저 얼굴이 젊어 보이는 거지 환골탈태라니, 황송하군.”

타고난 동안이라 하는 자운. 그 말을 제갈수는 주안술을 익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안술 따위로 젊음을 유지하는 건가?”

제갈수가 콧방귀를 꼈다. 제갈수의 말에 이번에도 우천이 반박했다.

“말조심해. 우리 대사형은 일문의 문주야. 아무리 황룡문의 세가 죽었다고는 하지만, 넌 아직 후기지수고,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는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이번에는 반말이다. 운산이 머리를 짚었다.

우천이 자운에게서 나쁜 것만 배운 모양이다. 이러다 싸움이 나겠다.

“허, 웃기는군. 먼저 예의없이 군 것은 그쪽이 아닌가! 일문의 문주라고 하나 우리 숙부께서는 신기수사. 다 망해가는 삼류 문파의 문주 따위가 무시할 만한 입장이 아니란 말이다.”

그 말에 제갈운이 소리쳤다.

“수야!”

제갈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그가 말을 하는 순간 자운이 손을 쭈욱 뻗었다.

어떻게 잡혔는지 알 수도 없이 제갈수의 몸이 자운의 손아귀에 잡혀들었다. 자운이 활활 타는 눈으로 제갈수를 노려본다.

“너 방금 뭐라고 지껄였냐?”

자신의 앞에서 손이 쓰윽 지나가는 것을 본 제갈운이 속으로 감탄했다.

‘대단한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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