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27화 (27/175)

# 27

백견과 흑견이 다시 맞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살기가 한순간 폭발해서 큰 놈을 물어뜯은 거지. 숨지 마라. 물러설망정 숨지 말고 살기를 계속해서 속으로 품어라. 그리고 살을 주고 뼈를 취해. 팔을 버리더라도 놈의 목을 노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거야.”

그게 실전이다.

굳이 투견장까지 둘을 데리고 와서 투견을 보여준 이유가 그것이다. 두 마리의 개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찍어 누르려는 놈을 간단하게 찍어 누르는 법이 있다. 무공의 고하에 관계없어. 이건 사람의 마음이니까.”

우천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자운의 소맷자락이 펄럭이며 살기가 뿜어졌다.

츠츠츠츠―

기운의 동반이 없는 순수한 살기. 단 한줄기의 내공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질식할 듯한 살기가 주변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갑작스러운 살기의 방출에 자운과 우천이 당황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오한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심지가 약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고, 물러나는 사람들도 공포감에 젖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자운의 살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경험한 듯, 사신을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도 같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자운의 신형은 검은 개와 흰 개로 향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싸우던 두 개는 자운의 살기를 받은 순간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살기를 뿜어내던 개 두 마리가 자운의 살기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두 마리를 바라보며 자운이 씨익 웃었다.

“간단해. 더 큰 살기로 찍어 눌러 버려야지.”

자운이 살기를 거두어들였다. 확실히 살기의 고하와 농도는 내공과 전혀 별개다. 그것은 순수하게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 담긴 시선, 악의가 담긴 의념이었기에 자운의 말에 둘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바라보며 자운이 고개를 으쓱 움직였다.

“그리고는 도저히 못 이길 거 같잖아?”

자운이 고개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또 자운이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어서 우천과 운산은 긴장을 단단히 하며 자운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자운은 그저 자신의 두 다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행동을 끝냈다.

“별거 있어? 죽어라 도망가야지.”

마지막 한마디가 이어졌다.

“두 다리 뒀다가 구걸할 때 쓸 건 아니잖아?”

제2장

황룡문으로 돌아온 자운은 운산과 우천과 함께 저녁을 들었다. 문파원이 단 셋이라 단출한 저녁 식사. 자운은 허기를 채우고 나서 만족한 듯 가볍게 배를 두드렸다.

그의 배에 잡힌 잔근육이 위로 부풀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배를 두드리자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자운은 그것을 참지 않고 뱉었다.

“꺼어어억.”

그가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길게 뱉고, 우천 역시지지 않겠다는 듯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뱉었다.

“꺼억.”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으아, 잘 먹었다.”

우천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요. 그것보다 이 고기 맛있네요.”

“그래서 네가 나보다 하나 더 먹었냐?”

“대사형은 쪼잔하게 그런 것까지 세고 있습니까?”

“만두는 네가 나보다 두 개나 더 먹었지. 고기만두였는데.”

자운이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기만두를 먹지 못해 우울해 보이는 모습. 그 모습에 둘을 보고 있던 운산은 기가 막혔다.

이 나물은 대사형이 저보다 다섯 젓가락이나 많이 먹었거든요.“

“그건 고기가 아니잖아.”

“그게 그거 아닙니까?”

한마디도지지 않고 받아치는 우천을 자운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렇게 한동안 우천을 보던 그가 툭 말을 뱉었다.

“너 누구 닮아가는 거 같다?”

“무공 실력이요?”

가당치도 않는 우천의 말에 자운이 낄낄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있나. 이백 년은 이르다고 했지.”

“그럼 뭐가 닮아가는데요?”

우천의 말에 자운이 계속해서 낄낄거렸다.

“입담이. 어디 가서 밥 굶지는 않겠어.”

입담이 닮아간다는 말에 우천이 대번에 머리를 싸잡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여 망했다는 듯 말을 흘린다.

“아, 젠장. 그럼 안 되는데.”

“왜?”

“많이 맞을 테니까요.”

“넌 내가 많이 맞고 다니는 걸로 보이냐, 많이 패고 다니는 걸로 보이냐?”

자운의 말에 우천이 웃었다.

“그거야 대사형이니까 그런 거고요.”

자운이 우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게 끝까지 한마디를 안 지네.”

그리고는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까지 닮아간다. 운산은 그런 우천을 바라보며 자신의 사제가 원래 저런 성격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런 성격은 아니었다.

‘닮아가고 있어.’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그 역시 그저 실실 웃어 보일 뿐. 한참을 웃던 그들 사이로 총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총관이 들어와도 웃음을 그치지 않는 자운. 그런 자운을 향해 총관이 말했다.

“배첩이 왔습니다.”

배첩이라는 말에 자운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화산파에서 왔습니다.”

그 대답에 자운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염호명이 죽으며 화산파로 가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화산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차에 화산파에서 배첩이 왔다고 한다.

자운이 손을 뻗었다.

휘리릭―

총관의 손에 있던 배첩이 단번에 자운의 손으로 빨려들어 왔다. 허공섭물. 일전에 우천과 운산은 자운이 보인 허공섭물의 신기를 보았기에 놀라지 않았지만, 정보로만 들었던 총관은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허업!”

자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뭘 이 정도에 놀라고 그러나.”

그리고는 태연하게 배첩을 펼친다. 배첩의 내용은 꽤 길었으나 미사여구가 많았다.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내용은 간단했다.

“매화검선이 죽었으니 와서 조문을 표해 달라.”

아무래도 섬서에 있는 정파 문파에 배첩이 갔을 것이다. 배첩을 탁 소리가 나도록 상 위에 내려놓은 자운이 운산을 보고 물었다.

“매화검선이 누구냐? 검선이라고 하는 거 보니 이 양반 칼질 좀 하나봐?”

그렇게 말하며 자운이 수저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형식도 의미도 없이 장난스럽게 휘두르는 수저. 웃으라고 한 행동인데 아무도 웃지 않는다.

총관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눈으로 자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운이 총관을 향해 툭 뱉었다.

“왜, 내가 못할 말 했어?”

“아, 아닙니다.”

총관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자운에게로 향하고 있는 시선은 둘. 자운이 고개를 휙휙 돌려 우천과 운산을 각각 한 번씩 바라보았다.

“왜 말을 안 해. 내가 물었잖아, 이 양반 누구냐고.”

우천이 탁자를 내려치며 일어났다.

“사형, 정말 매화검선이 누군지 몰라요?”

“몰라. 근데 죽었다는데?”

자운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한숨을 내쉰 운산이 매화검선에 대해서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화검선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있었으나 자운이 간단하게 하라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정말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자운이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좀 유명하고 칼질도 하던 화산파 늙은이가 죽었다는 말 아냐.”

자운을 점점 닮아간다고 생각되던 우천도 이번에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대사형, 밖에 나가서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왜?”

“칼 맞아요.”

그 말에 자운이 웃었다.

“찌르라 그래. 대신 나는 열 번 찔러줄 테니.”

그 말에 운산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있으나 정말로 그렇게 할 리 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둘이 말을 하지 않자 자운이 배첩을 펼쳐서 둘에게 보여줬다.

“일단 오라고 하는데, 그만큼 거물이 죽었다고 하니까 가서 향이라도 하나 피워줘야겠지?”

이것은 명분일 뿐이다. 사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자운이 총관을 향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삼 일 안에 출발할 수 있도록 짐 좀 챙겨봐.”

자운의 말에 총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단출하게 짐을 챙긴 자운이 황룡문을 나선 것은 배첩이 도착하고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런 자운의 뒤를 우천과 운산이 따라나섰다.

원래는 귀찮다며 두고 가려고 했으나 둘이 끈덕지게 달라붙은 것이다.

둘 다 속마음이 같았다.

‘화산에 대사형을 혼자 풀어놓으면…….’

상상하기도 싫다.

그것은 그야말로 황룡문에 있어서는 대재앙과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실수로라도 화산파 장문인에게 칼질 좀 하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운산과 우천이 동시에 쓴 입맛을 다셨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운의 발걸음은 가볍기 기지없다.

“이번에도 좀 잘 부탁해. 며칠 걸릴지도 모르니까.”

총관에게 가볍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자운이 황룡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화산!

* * *

검선을 거꾸러뜨리고 화산의 고인을 추락시킨 오적은 온몸에 입은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고 있었다. 그 역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고, 당분간은 가볍게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내상을 입었다.

그가 입맛을 다셨다.

그의 앞에는 적발라가 부복을 하고 있었고, 붉은 머리칼이 땅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다.

“이거 참, 족히 반년은 움직이지 못할 듯하구먼. 그래, 황룡문은 어찌 되었는가?”

그 말에 적발라가 땅에 이마를 찧으며 크게 고개를 숙였다.

쿠웅―

“실패했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자 이마에서 바닥까지 눌어붙은 피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는 오적이 혀끝을 찼다.

“쯧쯧, 보기 흉하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게. 그보다, 염호명이 실패했다는 말이지?”

적발라가 말로써 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안타깝게 되었구만. 그래, 흉수는 알아내었는가?”

적발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불민하여 흉수의 정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황룡문에 젊은 놈이 하나 새로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놈의 외모로 볼 때 그놈은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런가? 혹시 반로환동한 자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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