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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난신-24화 (24/175)

# 24

그 여유를 보고는 참지 못한 고섬이 소리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만한 고수가 황룡문에 있을 리가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크윽.”

말을 하면서도 상처 입은 속이 울렁이는지 그가 가슴팍을 붙잡았다.

자운이 그런 고섬을 향해 이죽거렸다.

“말해줘도 못 믿을 텐데?”

그의 검에서 검강이 화악 뻗어 나온다.

그 검강을 막기 위해 염호명이 도강을 마주 뻗었다. 허공중에서 연달아 검강과 도강이 충돌하고, 폭음이 사방으로 뻗었다.

쾅―

쾅쾅―

쾅쾅쾅―

조금이었으나 분명 자운의 검강이 염호명의 도강을 압도하고 있었다. 염호명이 이를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는 대번에 자운을 향해 접근한다.

좌상(左上)에서 우하(右下)로 그어내리는 베기!

자운이 반대로 강기를 올려치며 그 공격을 받아내었다.

둘의 몸이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흔들리며 뒤로 물러났다.

“말해줄까?”

자운이 씨익 웃었다. 염호명은 얼얼한 손으로 내려다보다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뭘 말해준다는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 방금 전에 고섬이 자운에게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이백 년 전.”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던져놓고 자운이 냅다 날아들었다.

그의 검에서 검강이 분영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여덟 겹에 달하는 검강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염호명이 도강을 뻗었다.

고섬은 아직 강기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이 모든 강기를 염호명이 막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콰앙―

도강과 검강이 충돌하고, 염호명이 모든 강기를 빗겨내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허공에서 다른 검강이 떨어져 내렸다.

‘크윽!’

아홉 번째 검강이 그대로 낙하하며 고섬의 몸을 꿰뚫는다.

“커헉!”

고섬의 몸에 깊게 검상이 생겨나며 그가 눈을 까뒤집었다. 뒤로 천천히 넘어지는 고섬. 강기에 몸이 관통되어 그 자리에서 절명한 것이다.

염호명이 아직까지 피가 솟아나고 있는 고섬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자운이 그런 염호명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제 너 혼자네.”

염호명은 아직까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그가 이끌고 온 이들은 흑우파의 최정예였다. 한데 이렇게 쉽게 끝이 나다니…….

머릿속으로 왜 이렇게 쉽게 끝이 났는가 생각을 해보았다. 가장 먼저 이어진 암습, 그 암습으로 인해서 자신들은 분산되어 흉수를 찾으려 했다.

분산이 된다고는 했지만 각자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염호명이 자운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라도 흘러내릴 듯하다.

“이놈! 처음부터 우리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목표였구나!”

자운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지금에 와서 알아봐야 늦었다. 애초에 처음 암습부터가 그들을 분산시키기 위한 수작. 염호명과 흑령문은 자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었다.

“흑령문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나? 하긴, 네 실력이 그러기에는 부족했겠지.”

염호명이 자운의 심지를 흔들기 위해 도발을 던졌으나 자운이 흔들릴 리가 없다.

자운이 피식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런 말 못 들어봤어?”

“……?”

“무림에서 실력의 삼 할은 숨긴다는 말.”

자운이 이죽거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염호명은 알았다. 애초에 분산되게 한 것은 흑령문의 정예 전체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놈은 자신의 정체가 흘러나갈 것까지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령문이 몰살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여러 시선이 흑령문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신의 정체가 세상으로 흘러나가게 된다면 자운은 홀로 흑령문의 정예 오십 명과 고수 모두를 상대 할 수 있는 실력자라고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흑령문의 정예들이 분산된 상태에서 죽었다면?

아마도 무림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흉수는 흑령문도 전원을 한 자리에서 제압할 실력이 없어 일부러 분산시켰다고, 분명 대단한 고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흑령문도 전원을 한 자리에서 이길 힘은 없었던 것이라고.

그 치밀한 심계에 염호명이 치를 떨었다.

“하지만 너는 죽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너는 분명히 죽는다!”

자운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럴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보든가.”

자운의 몸이 쏘아지고, 염호명의 몸이 동시에 쏘아졌다.

허공에서 불똥이 튀며 검강과 도강이 연달아 충돌했다.

염호명의 손목을 타고 얼얼한 감각이 들어왔으나 염호명은 이를 꽉 깨물었다. 자운만은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로 검을 잡은 것이다.

그에 비해서 자운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자운이 용린벽을 펼쳤다. 강기로 만들어진 벽과 도강이 연신 충격하고, 도강이 그대로 돌아 염호명을 때렸다.

도강이 염호명의 몸을 베고 지나간다.

하지만 염호명은 자신의 몸이 무너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운이 염호명을 바라보며 웃었다.

“너, 조금 있으면 죽어.”

용린벽이 풀리며 자운이 그대로 발을 차낸다.

자운의 발이 염호명의 복부에 틀어박히고, 그가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고섬이 당한 것과 같은 내가중수법이다. 다행히 내력으로 몸을 보했기에 내장이 조각나는 일은 없었으나 그 역시 고섬과 마찬가지로 검은 피를 토해내었다.

쿨럭쿨럭.

자운이 그런 그를 향해 이죽거렸다.

“어때? 죽을 맛이지?”

자운이 천천히 다가간다. 염호명이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자운을 막기 위해 도를 휘둘렀다.

자운이 검강으로 유엽도를 내려쳤다.

카앙―

강기가 실리지 않은 유엽도가 단번에 잘려 나가고, 자운이 천천히 염호명을 향해 접근했다.

“이 입이 황룡문을 밀어버리겠다고 말한 입이지?”

퍼억―

자운의 주먹이 그대로 염호명의 입에 틀어박혔다.

“이 팔이 황룡문도를 베어버리겠다는 그 팔이지?”

자운이 염호명의 팔을 잡고 그대로 반대로 꺾어버렸다.

이번엔 발을 들었다.

“네놈에게는 두 팔도, 두 다리도 필요없다.”

콰직!

자운이 발을 들어 그대로 염호명의 두 다리를 분질러 버렸다.

염호명이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으어어어어!”

두 팔이 틀어지고, 두 다리가 박살나는 고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로 올라와 퍼져나간다.

하나 박살 난 입 때문에 그 비명마저 제 소리를 갖지 못하고 일그러져 나왔다.

자운이 운두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시끄러.”

퍼억―

단번에 흰 이빨이 부러져 밖으로 빠져나왔다. 붉은 피와 침이 한데 섞여 바닥을 구르는 이빨의 모습은 과히 보기 좋지 않았다.

“아프지?”

자운이 염호명의 턱을 잡고 물었다. 두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입마저 박살 난 염호명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숨을 쉬고 있을 뿐 시체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변변찮은 반항도 할 수 없다.

“근데 내가 이렇게 안 했으면 우리 운산이랑 우천이가 많이 아팠겠지?”

밀려오는 엄청난 고통에 염호명이 실신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킬킬킬킬킬킬킬.”

평소 그의 웃음과는 전혀 다른 웃음. 미치광이가 흘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을씨년스런 가운데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자운이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았다.

“왜 웃는 거지?”

그가 한참을 웃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쿨럭거렸다.

“쿨럭쿨럭! 퉤엣!”

염호명이 침을 뱉어놓는다. 침에는 피가 한 사발 섞여 나오고, 그가 잘 벼려진 칼날과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자운을 노려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다 못하고 죽으면 억울할 거 아냐.”

말할 기운도 없어 보이는 염호명을 향해 자운이 이죽거렸다. 유언 정도는 들어줄 생각이 있었다. 그 유언을 귀담아듣거나 기억해 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말에 염호명이 다시 킬킬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아으어 어우어으어아으아느아느아!!!”

자운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말을 할 거면 똑바로 해.”

자운이 그의 뺨을 주먹으로 몇 대 더 후려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염소명의 입에서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을 법한 말이 흘러나온다.

“킬킬킬. 이훼 끄치아고 항각하지 아라.”

입이 박살 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

마치 흑령문의 배후의 끝이 아니었다는 듯한 말이 아닌가. 그 말에 자운의 표정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죽기 직전에 농담 따먹기라도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

자운이 콧방귀를 뀌었다.

“킬킬킬. 쿨럭! 미기 시르며 미지 마하. 무힘은 고 저장터호 벼한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무림은 곧 전쟁터로 변한다.

자운이 다시 고개를 숙여 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죽어가는 중이라 생기가 전혀 없으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말해. 그게 무슨 말이지? 지금 말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퉤!”

그가 자운의 얼굴로 피 섞인 침을 뱉었다. 자운이 끈적끈적하게 얼굴에 달라붙은 침을 닦아내고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로 매섭게 그를 노려본다.

염호명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죽음을 예감한 것인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운이 손을 뻗어 그의 턱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우드득―

턱뼈가 틀어지는 소리가 났다. 자운이 숙였던 고개를 펴며 검을 들었다.

“말하지 않겠다는 거지?”

자운의 검이 월광을 갈랐다. 물결이 검에 갈라지듯 달빛이 산산히 부서져 내리고, 자운의 검이 허공에서 빠르게 내리꽂힌다.

쐐애애액―

“그럼 죽어.”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의 검이 염호명의 심장으로 박혀들었다.

검날을 타고 아직 죽지 않은 심장 박동이 전해져 왔다. 강기지경에 오를 정도로 강력한 내공 덕분에 간신히 살아 있긴 하나 심장에 검이 틀어박힌 이상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길어야 반각.

자운이 검을 비틀었다.

“커헉!”

다 죽어가는 염호명의 입에서 피가 쏟아지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죽음을 실감했다고는 하나 심장이 검으로 비틀어지는 고통은 적지 않았던 것.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자운이 과연 정파의 사람이 맞는가 의문이 들었다.

“자, 편하게 죽고 싶으면 말해. 네 뒤에 누가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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