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23화 (23/175)

# 23

자운이 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자운의 모습이 마침내 완전히 달빛 속에 드러나고, 그의 검에 새겨진 황룡의 문양이 달빛을 받아 번쩍였다.

황룡문을 상징하는 검. 어떻게 염호명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

그의 총관 고섬도 놀라 소리쳤다.

“저, 저놈! 황룡문 놈입니다!”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염호명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자운의 검에서 아직도 흘러내리고 있는 피였다.

그가 유엽도를 꽈악 움켜쥐었다.

“놈, 그들을 모두 죽였구나.”

“그럼 내가 살려줄 줄 알았냐? 우리 문파 치러 오는 걸 그대로 살려줘? 공자라도 그런 짓은 안 하겠다.”

자운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염호명과 자운 사이의 거리는 다섯 걸음도 안 되는 거리. 서로가 무기를 휘두르면 닿을 거리였다.

염호명이 눈짓으로 고섬과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을 받은 고섬과 수하들이 둥글게 자운을 포위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자운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떻게 이렇게 다른 점이 없냐?”

일전에 만난 흑령문의 고수들도 모두 이러했다. 자운을 만나는 즉시 수하들과 함께 둥글게 포위를 한 것이다. 자운이 씨익 웃었다.

“이렇게 해봐야 소용없지.”

자운의 몸이 휙 흔들린다.

방금 전까지 자운이 서 있던 자리에는 그저 달빛만이 떨어지고, 자운이 다시 나타난 것은 한 무사의 뒤였다.

자운이 무사의 등을 통해 심장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무사의 가슴팍을 뚫고 나온 검이 달빛에 반사되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것을 참지 못한 염호명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노오오옴!!”

그리고 고섬이 단창을 휘두르며 날아든다. 고섬은 대외적으로 흑령문의 총관. 비록 총관이라고는 하나 그 순수한 실력만으로도 흑령문에서 이인자다.

고섬의 창이 화려하게 분영을 일으키며 자운을 압박했다. 창영을 막기 위해 자운의 검 역시 분영을 일으켰다. 검영과 창영이 허공에서 연달아 일어나며 충돌했다.

자운이 자신의 검에 충돌하는 창영을 보며 말했다.

“너 혹시 용의 비늘이라고 알아?”

달리 용린(龍鱗)이라고도 하며 전설상의 기보다. 강기로 만든 모든 공격을 튕겨낼 수 있으며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얇고 작아 옷으로도 만들 수 있는 천고의 기물이 바로 용린이었다.

그의 표정을 읽어낸 자운이 씨익 웃었다.

“아는가 봐? 그럼 내가 보여줄까, 용린?”

말이 끝나는 순간, 자운의 검영이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검영은 천천히 움직여 비늘이 되고, 수십 개가 쌓여 용의 피부를 만들었다.

피부를 촘촘하게 덮어 나가는 것은 분명 용의 비늘. 자운의 기운이 의지를 받아 형상되는 것이다.

용의 비늘과 충돌한 창영이 모두 반대로 꺾이며 고섬을 향했다.

공격이 그대로 반사되어 돌아간 것이다. 고섬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펄쩍 물러섰다.

“으아악!”

하지만 모든 창영을 피해내지는 못하고, 몇 개의 창영이 그대로 고섬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공격에 자신이 당한 꼴이다. 고섬이 그 꼴이 수치스러워 자운을 노려보았다.

고섬이 노려보거나 말거나 자운은 웃어 보인다.

“용린벽(龍鱗蘗)이라는 건데, 어땠어?”

자운은 아직까지 여유로웠다. 그의 몸에서는 여유가 흐르고, 자운이 히죽히죽 웃으며 고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 자운을 막는 도가 하나 있었으니 염호명의 유엽도였다.

염호명이 자운을 향해서 으르렁거린다.

“이러고도 네가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의 말에 자운이 지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거리며 웃었다.

“원래 살려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진부한 말 하지 말지 그래?”

이죽이는 자운의 표정. 염호명은 저 얼굴을 주먹으로 박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 아는군.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주지.”

자운이 씨익 웃었다.

“네가 그럴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돼.”

자운의 몸이 직선으로 뻗어온다. 염호명의 도가 허공을 가르고, 자운이 허공에서 검을 연달아 뿌렸다.

검과 검이 충돌하고, 자운의 검에서 솟구친 검기가 염호명의 도에 맞아 방향이 틀렸다.

자운이 호들갑스럽게 소리쳤다.

“어이쿠!”

방향이 틀린 검기가 하필이면 염호명의 수하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자운이 노린 바였다.

염호명이 그런 자운을 향해서 크게 소리쳤다.

“이노오옴!”

“왜 그래? 네가 방향을 잘못 틀어서 네 부하가 죽은 거잖아. 그걸 나보고 이놈 저놈 하면 안 되지.”

자운은 그렇게 말하며 염호명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염호명의 부하들을 죽이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를 막기 위해 염호명과 함께 고섬이 나섰으나 재빠르게 도망 다니는 자운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모든 수하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주변에 진득한 피 냄새가 흐른다.

“이제 너희 둘만 남았네?”

자운의 검과 고섬의 창이 연달아 충돌했다. 그의 검에 음각된 황룡이 연달아 꿈틀거리고, 검이 거대한 용의 아가리를 만들었다.

콰우우우우―

검이 허공을 베는 소리가 끔찍하게도 크게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 사이로 검을 날아든다.

고섬이 창을 뻗었다.

그의 창에서 창기(槍氣)가 솟구치고, 허공에 붉은 창기의 궤적이 그려진다.

자운의 내공이 팔을 타고 이동해 검을 뻗어갔다.

츠츠츠츠츠츠츳―

무지막지한 내력이 팔로 이동하며 선명한 불꽃이 타오른다.

검기, 금색의 영롱한 검기가 붉은 창기와 연신 충격을 일으켰다.

합이 벌어지는 와중에 자운의 발이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고 튀어올라 무릎으로 고섬의 명치를 차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이다. 그 행동에 당황한 고섬이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헙!”

그대로라면 명치에 자운의 무릎이 틀어박힐 상황. 그 상황을 타개해 준 것은 붉은 검기를 줄기줄기 뿌리고 있는 염호명의 유엽도였다.

유엽도가 자운의 허리를 일도양단할 기세로 들어왔다.

자운이 뒤에 눈도 없으면서 기운을 읽어내었다. 그의 허리가 유연하게 접히고, 철판교의 수법으로 유엽도의 공격을 피해낸다.

자운의 코앞으로 붉은 검기가 줄기줄기 지나갔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튕기듯 용수철처럼 일어나며 벼락같이 주먹을 꽂아 넣었다.

주먹이 파고들어 간 곳은 고섬의 복부였다. 단박에 고섬이 날아가 처박히고, 그가 검은 피를 토해내었다.

“케엑케엑! 쿨럭쿨럭!”

찢어진 내장 조각이 피를 타고 흘러나왔다. 자운이 자신의 주먹을 가볍게 털며 발을 굴렀다.

“어때? 내가중수법으로 후려쳤는데 좀 화끈하지?”

자운의 내공이 고섬의 몸속을 파고들어 그대로 내장을 박살 내어버린 것이다. 고섬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자운을 노려보았다.

“으으.”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극심한 고통은 그가 말을 하는 것을 막았다.

고섬이 비틀거리며 창을 삿대 삼아 집고 일어났다.

“고섬! 괜찮나?”

염호명이 그런 고섬의 앞에 내려서 자운을 씹어 죽일 기세로 노려본다.

하지만 자운은 고개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만 있다면 자운은 이미 천참만륙이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왜 그래? 어차피 우리는 적이고, 너도 나 죽일 거였잖아?”

그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자운의 말을 들은 염호명이 웃었다. 그의 얼굴이 악귀와 같이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얼굴 가득 악의에 찬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래, 우리는 어차피 적이었지.”

염호명의 몸에서 꾸르릉 하고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양의 내력이 몸속에서 준동하는 소리. 내력은 온몸을 순회하여 팔을 타고 도로 뻗어 나간다.

콰과과과―

노도와 같이 휘몰아치는 내공이 그의 팔을 타고 흘러 검에 내려섰다. 그리고 거대한 불꽃이 도 위로 타올랐다.

이윽고 불꽃은 정제가 되어 도의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도 위로 한 자가량 솟아난 내공의 불길, 그것은 분명 도강(刀?)이었다.

“네놈! 썰어 죽이겠다!”

도강을 완성한 그가 자운을 향해 튀어 올랐다.

자운이 몸을 슬쩍 뺀다. 그리고는 검기를 사각으로 뻗었다.

검기와 도강이 만나고, 한순간 검기의 불꽃이 사그라졌다.

휘리릭―

그리고 도강이 담긴 유엽도가 단번에 자운의 검을 끊어버릴 것처럼 몰아쳤다.

“나도 널 썰어 죽일거야.”

자운이 내공을 움직였다.

검기가 다시 솟구치며, 강기가 자운의 검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검기로서 도강을 빗겨낸 것!

힘을 기교로 맞받아낸 멋진 한 수였다.

도강을 흘려버린 자운이 손을 뻗었다. 손에서 내력이 솟구치고, 다섯 줄기의 빛무리가 쏘아졌다.

흑우파를 부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장력. 장력이 쏘아져 유엽도를 때렸다.

따다다당―

유엽도가 한순간 휘청하였으나 도강이 다시 타오르며 자운을 쪼갤 듯이 베어온다.

자운이 뒤로 물러났다.

바로 앞의 공간이 잘려 나가며 자운의 앞섶이 헤쳐졌다.

다행히도 가슴을 가로지르는 검상은 입지 않았다.

자운이 빠르게 신형을 회복하며 쏘아졌다. 그의 검에서 검기가 솟구치고, 일곱 다발에 달하는 검기가 둥글게 쏘아졌다.

“이까짓 거!”

염호명이 소리치며 도강을 휘둘렀다.

자운의 검기 다발을 그는 도강으로 너무 쉽게 막아버렸고, 곧 이은 공격이 자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자운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아, 젠장. 나 혼자 검기로 하려니까 좀 힘드네.”

그리고 그 순간, 자운의 검에서도 역시 한 자 길이의 강기가 솟구쳤다.

선명한 내력의 불길. 그것은 검강(劍?)이었다.

염호명이 도강을 뽑아낸 것과 마찬가지로 자운 역시 검강을 뽑아내었다. 붉은 도강과 금빛 검강, 둘 모두가 강기를 쥐고 있으니 이제 국면은 알 수 없게 치달았다.

그런 염호명의 옆으로 내상을 조금이나마 수습한 고섬이 창을 말아 쥐고 섰다.

다시 이 대 일. 분명 수에서는 자운이 불리했다.

하지만 자운에게는 시종일관 여유가 있었다.

“넌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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