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22화 (22/175)

# 22

그가 말을 하며 으득 이를 갈았다. 그리고 곧 그의 명령대로 흑령문의 고수들이 각기 몇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주변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자운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꼬리가 기이하게 뒤틀려 올라간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미소.

운산과 우천이 자운이 저런 표정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까무러칠 것이다.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자운이 숨었던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역시 멍청하게도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구나.’

개령검(慨嶺劍)은 흑령문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고수다. 그가 투덜거리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수풀을 베어내었다.

“젠장. 고작 그런 삼류 문파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건지…….”

그의 뒤에는 수하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수하들의 얼굴에는 잠이 가득했다. 대부분 잠을 자다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령검은 사실 처음부터 이 일을 반대했다.

고작 삼류 문파 하나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움직인다는 말인가?

거홍도와 전귀, 진혼권이 죽기는 했지만 그들도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다른 고수 두셋 정도만 나서도 황룡문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의 뒤에서 수하가 개령검의 말에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문주님이 그따위 삼류 문파에 너무 과한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개령검이 동의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문주는 황룡문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보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가 고개를 돌리며 멈칫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수하 뒤에 초면의 사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사내의 얼굴에서 밤의 어둠이 일렁였다.

더 생각할 여유는 없다.

개령검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넌 누구냐!”

그가 외치자 그의 수하들 역시 빠르게 뒤를 돌아보며 자운을 바라보았다.

“누굴 거 같냐?”

하지만 그사이 수하 하나의 목이 단번에 날아간다. 자운의 검이 단번에 수하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자운이 또다시 다른 수하를 노렸다.

개령검이 바르게 검을 뻗어 자운의 검을 막았다.

카앙―

검이 충돌하고, 순간적으로 개령검의 팔을 타고 시큰거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큭!”

개령검이 뒤로 물러서고, 수하들도 저마다 검을 뽑으며 자운을 포위했다.

“놈, 불침번 서던 녀석들을 죽인 놈이구나.

자운이 이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네. 그럼 그것도 알아?”

“……?”

자운이 검을 휘둘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들도 죽을 거라는 거.”

단번에 검풍이 뿜어진다. 검풍은 개령검을 향해 쏟아지고 개령검이 펄쩍 뛰어 피했다.

그가 허공으로 날아오른 사이, 자운이 개령검의 수하들을 향해 연달아 권풍을 뿌렸다.

휙휙휙―

한 권풍에 한 명씩, 벌써 세 명의 수하가 날아가 나무에 처박힌다.

“커헉!”

한 방에 즉사를 하지 않았지만 한 놈은 나뭇가지에 심장이 꿰뚫려 죽었다. 자운의 움직임은 거기서 기치지 않는다. 단번에 무너진 포위망을 넘어 나무에 처박힌 수하들을 향해 쇄도했다.

나무에 처박힌 충격으로 잠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의 목을 베어버릴 심산이다. 개령검이 노호성을 토하며 검기를 뿜었다.

“이노옴!”

쉬이익―

기다란 검기가 채찍처럼 이어지며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자운의 검에서도 검기가 일었다.

검기와 검기의 충돌. 한순간 불꽃이 튀고, 그 와중에도 자운은 손을 뻗어 그대로 무사의 목을 꺾어버린다.

일곱이나 되던 수하 중 셋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이대로 간다면 수하들이 모두 죽게 되리라.

개령검이 소리쳐 수하들을 자신의 뒤로 불렀다.

“내 뒤로 와라! 내 뒤로 와!”

“수하들의 아끼는 마음씨가 참 갸륵하네.”

자운이 개령검의 뒤로 이동하는 그의 수하들에게로 이동했다.

검이 휘익 허공을 가르고, 단번에 두 토막이 난 무사의 몸이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넷.

네 명의 수하가 죽었고, 다행히도 살아남은 셋은 개령검의 뒤로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크윽.”

개령검이 신음을 흘렸다.

“놈. 도대체 본 문에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

그의 말에 자운이 웃었다.

“지금 너희가 어디로 가는 건지 잊은 거야?”

흑령문이 향하고 있는 곳, 바로 황룡문이었다. 황룡문에 전귀와 진혼권의 합공을 받아낼 정도의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크게 소리쳤다.

“이놈! 네가 바로 진혼권과 전귀를 죽인 놈이구나!”

“어! 정답!”

크게 소리친 그가 피식피식 웃었다. 숲이 다 울리도록 크게 소리쳤으니 이 소리를 들은 동료들이 그를 돕기 위해 올 것이다.

자운이 개령검이 웃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뭘 그렇게 웃어? 웃지 마. 정들잖아.”

“흐흐. 네 실력이 생각보다 제법이라는 것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동료들과 나의 협공을 받아낼 수 있을까?

“글세, 네가 웃는 이유가 그거였어?”

자운이 땅을 굴렀다.

단번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는 자운의 신형. 그가 자운을 막기 위해 검을 뻗는다. 하지만 자운은 너무도 쉽게 개령검의 검을 타고 넘었다.

그리고 자운이 주먹을 쭈욱 뱉었다.

“웃지 말라고.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지만 주먹은 날릴 수 있거든.”

“커헉!”

자운의 주먹질에 단번에 개령검의 광대가 내려앉았다.

“설마 웃는 이유가 동료들에게 네 소리가 전해졌으리라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니겠지?”

자운이 검을 휙휙 휘두르며 다가왔다. 차가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흐르고, 그것보다 더 차가운 살기가 자운의 검에서 좌르륵 흘렀다.

마치 사신과 같다.

자운이 씨익 웃는다.

“웃지 마, 새끼야. 네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일은 없으니까.”

자운의 말에 개령검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다니, 그것은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

뒤를 돌아보니 멀지않은 곳에서 그의 수하들이 겁을 먹고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들이 무어라 개령검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 보이기는 한데 들리지는 않는다.

‘들리지는 않아?’

개령검이 놀란 눈으로 자운을 바라보았다.

“설마!”

검이 눈부신 섬광이 되었다.

섬광은 순식간에 개령검의 목을 꿰뚫어 버리고, 피가 검을 타고 흘러내렸다.

즉사하지 않은 개령검이 입을 뻐끔거려 무언가 말하려했다.

자운이 그 말을 대신 해주었다.

“어, 그래. 그 설마야.”

푸슛―

검이 개령검의 목에서 뽑혀져 나오고, 피가 허공으로 분수처럼 솟구쳤다.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했어.”

* * *

고섬과 함께 수하들을 이끌고 주변을 수색하던 염호명은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고섬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며 염호명을 향해 물었다.

“문주님,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는 염호명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확실히 너무 조용하군.”

그가 유엽도를 들고는 주변을 경계했다. 염호명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염호명을 따라 움직이는 무사들 역시 긴장감을 놓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마치 당겨진 시위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주변에 깔리고,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이 분명한데, 호랑이 아가리 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듯한 긴장감이 든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가고, 그 와중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주변을 수색했다. 적을 찾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암습으로 더 많은 무사들이 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섬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기인 단창을 들고 주변을 살핀다.

그의 앞에는 가장 선두에서 무사들을 지휘하는 염호명이 있었다.

염호명이 신중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디에 있는 거지?”

염호명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중얼거렸다. 답이 들려올 리가 만무한 물음. 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이게도 답이 들려왔다.

“어디 있긴, 여기 있지.”

그 말에 염호명과 고섬이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흐읍!”

도대체 이 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왔다는 말인가?

염호명이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주변을 살폈다.

처음에는 헛소리를 들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들려 두렵다.

염호명은 느끼고 있었다, 놈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그것은 본능이었으며 동시에 무인으로서의 타고난 감각이었다.

“놈, 거기 잇는 것이냐?”

한동안 주위를 살피던 그가 정면을 응시했다. 고섬과 다른 무사들 역시 같은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염호명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곳이었다. 한 점 달빛마저도 허용되지 않아 그야말로 어둠으로 가득 찬 허공. 그곳을 염호명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염호명의 물음에 대한 답이 들려왔다.

“이야, 꼴에 문주라고 찾아내는구나. 정답이야.”

어둠이 일렁이고, 희미하게나마 들어온 달빛에 자운의 황포가 빛이 났다.

자운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놈, 넌 누구냐?”

염호명이 유엽도를 자운을 향해 겨누며 말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위협이다. 하지만 자운은 태연하게도 그를 향해 점점 다가온다.

“글쎄. 내가 누구일 거 같아?”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장난스러운 도발. 자운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으며 미소는 이죽거리고 있다.

“다시 묻는다. 넌 누구냐?”

도를 쥐고 있는 염호명의 손이 축축하게 젖었다. 새어 나온 땀이 손잡이를 감고 있는 천을 적시고 그의 손마저 적신 것이다.

“그 질문, 방금 전에도 일곱 번이나 받고 오는 길이야.”

그 말에 염호명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일곱, 그것은 자신이 이끌고 온 고수들의 수와 같았으며, 동시에 놈을 찾기 위해 나눈 수색조의 수와 같았던 것이다.

수하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염호명의 눈에 노기가 어렸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가 노기를 숨기지 않고 물었다.

“놈, 그들을 어찌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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