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검의 각도만으로 검을 흘릴 생각은 하지 마. 나의 힘과 상대의 힘을 적절하게 응용해서 하는 거다.”
지금 자운이 하고 있는 말은 이화접목(移花接木)의 묘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속에서 얼마나 얻어내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우천의 오성과 노력에 달려 있었다.
지금 당장에 무언가를 얻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또한 운산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검기상인에 오르는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운이 지금 말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검기상인에 오르지는 못해도 검기상인에 오른 고수를 충분히 상대할 수는 있을 터였다.
우천이 무언가를 얻든 말든 자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요령만 생긴다면 적은 힘으로도 충분히 큰 힘을 이겨낼 수 있지.”
이화접목과 이어지는 것은 사량발천근(四兩拔千斤). 넉 냥의 힘으로 천 근을 움직인다.
지금 자운이 그려내는 검로는 그야말로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을 수련하기에 가장 접합한 검로였다.
자운의 검은 무거웠으며 충분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우천이 이 힘을 자신의 것으로 해 자운의 검을 움직일 수 있다면 검기를 밀어내는 것 또한 일이 아니리라.
자운이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천에게는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이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건져낼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자운과는 달리 우천으로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묵직하기 그지없으며 힘이 담겨 있는 직선 공세라 빗겨내기도 쉽지 않았다.
카앙―
자운의 검이 우천의 검 끝에 닿았다. 그 순간, 우천의 검이 우연스럽게도 살짝 휘어졌다. 용수철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듯 우천의 검이 튕겼고, 그 바람에 거력이 담긴 자운의 검이 살짝 방향을 바꾸었다.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긴다!
사량발천근(四兩拔千斤)!
완벽한 사량발천근은 아니었으나 우연한 한 수로 우천에게 활로가 생겼다.
‘이건가?’
자운이 우천의 검에 다시 검끝을 가져갔다. 검끝이 튕기듯이 자운의 공세를 조금 바꾼다. 이화접목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량발천근을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좀 더 세게 가볼까?”
대부분 깨달음이라는 것은 크든 작든 우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우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무재를 나누는 재능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이 우연을 조금씩 체화시키고 있는 우천은 재능이 있었다.
그것이 즐거운 자운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공세가 한층 강해졌다.
“대, 대사형, 이러다 정말로 죽겠습니다.”
자운이 검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안 죽어. 딱 안 죽을 만큼만 하고 있으니까.”
자운의 그 말 그대로 죽지 않을 만큼 하고는 있으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정말로 죽어요! 죽는다고요!!”
우천의 귓가로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머리칼 몇 개가 떨어져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그래, 원래 훈련은 죽을 만큼 힘든 거야.”
“죽을 만큼 힘든 게 아니라… 으악!”
자운의 검을 우천이 간신히 쳐내었다.
“정말 칼 맞아서 죽겠다고요!”
“원래 무림이 그렇지, 뭐. 칼 맞아 죽고, 장법 맞아 죽고, 주먹 맞아 죽고.”
“대사형이 나를 죽인다든 말입니다!”
자운이 싱긋 웃었다. 그 미소가 참으로 해맑았다.
“에이,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있겠어?”
우천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결국 자운의 수련을 마친 우천은 그 자리에 개구리처럼 대(大)자로 쫘악 뻗어버렸다. 연무장 주변에 이름 모를 풀벌레가 울었고, 자운이 그런 우천의 옆에 앉았다.
“힘드냐?”
자운의 말에 우천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헤엑! 헤엑! 정말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자운이 그를 탁 때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안 죽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죽는 줄 알았는데 정말 죽지는 않았다. 우천이 마지막에 느꼈던 그 감각, 그 감각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순간 세상이 멎으며 자운의 검이 보였다. 멈추어진 세상에서도 자운의 검의 속도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이지 않았던 자운의 검에 담긴 힘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자신의 힘으로 받았다. 그것은 속도가 있는 와중에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촛불의 불씨를 다른 촛불로 넘겨 붙이는 듯한 매우 조심스러운 움직임. 그리고 자운의 힘이 우천의 검으로 이어졌다.
마치 두 개의 검이 하나가 된 듯, 자운의 검은 우천의 검에 딱 달라붙어서 검의 궤도를 바꾸었다.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 자운이 우천을 툭 쳤다.
“마지막의 그 감각, 잊지 마라.”
아직도 호흡이 정리되지 않은 우천이 누워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천이 고개를 끄덕인 것을 확인한 후에 자운도 우천과 함께 연무장에 누웠다.
검은 밤하늘이 보이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자운이 그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별 참 많다.”
마치 강호와 같았다. 강호에는 수없이 많은 신성이 있고 별과 같은 고수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 사람들의 기억 속에 확실히 기억되는 것은 고작 몇 개뿐. 거기까지 생각한 자운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요. 별이 참 많네요.”
그런 자운의 생각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우천은 호흡을 고르며 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참 별 구경을 하던 우천이 자운을 향해 물었다.
“저는 언제쯤이면 대사형 같은 고수가 될 수 있을까요?”
“걷지도 못하는 게 뛰려고 하냐? 이백 년은 이르다.”
그 말에 우천이 웃었다.
“전 오백 년을 살 것 이니 이백 년 후면 대사형만큼 강해질 수 있는 거군요.”
“이게 한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죽을래?”
“안 죽이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자운과 우천이 동시에 웃었다. 아까도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안 죽었다. 그걸 우천이 빗대서 말한 것.
한참을 웃던 자운이 우천의 등을 탁 때렸다.
“한 번에 나가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라.”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있다. 모래 위에 지어진 누각, 그 누각은 파도가 한번 치면 모래와 함께 쓸려가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수가 언제 됩니까?”
“될 놈은 언젠가는 돼. 넌 근골이 괜찮으니까 잘 할 거야.”
그렇게 또 침묵이 이어졌다. 풀벌레 찌르르 우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우천이 조용히 말했다.
“대사형, 우리 앞에 나타나줘서 고맙습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제10장
염호명의 맞은편에는 붉은 머리칼을 자랑하는 적발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적발라 쪽이었다.
“진혼권과 전귀가 아주 박살이 났다고 하더군.”
“으음.”
적발라의 도발적인 말에 염호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진혼권과 전귀의 합격이라면 화산의 장로 역시 생사를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놈은 그것보다 더 위였나 보다.
“죽기 전에 전귀가 마지막으로 전서구를 보내왔다. 놈은 황룡문의 놈이 맞다고 하더군.”
염호명의 말에 적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썩어도 준치라더니 황룡문…….”
“아직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던 모양이군.”
왜 성에서 황룡문을 걱정했는지 알 것 같다. 이 정도의 저력을 숨기고 있었다면 정말 황룡무상십이강을 사용하는 고수를 숨겨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물론 최악의 경우였지만, 이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전이라는 것은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짜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거홍도에 이어 전귀와 진혼권까지 모두 죽였다. 그 정도의 고수에게는 수하를 아무리 많이 보낸다고 한들 잡을 수 없으리라.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수준이 어느 정도 엇비슷할 때다. 지금의 놈은 하급 무사 백을 보내도 잡을 수 없을 정도다.
“막막하군.”
그렇다고 흑령문을 직접 움직일 수는 없다. 흑령문이 직접 움직인다면 화산이 주목하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성에 대한 정체가 드러날 수 있다.
성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쉽게 흘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안전을 기하는 것이 좋았다.
“내가 좋은 소식을 알려주지.”
적발라가 붉은 머리카락을 어깨너머로 넘기며 말했다. 무슨 좋은 소식 말인가?
염호명이 들고 있던 다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어 적발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성에서 허가가 떨어졌네. 흑령문이 움직여도 된다고 하네.”
그 말에 염호명의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그런! 그렇게 되면 화산의 눈길이 흑령문으로 향할 텐데?”
그의 말에 적발라가 피식피식 웃었다.
“화산은 그럴 여력이 없을 걸세.”
그의 말에 염호명이 반문했다.
“화산이 그럴 여력이 없을 것이라니? 자네, 화산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잘 알고 있다. 구파일방의 하나로서 오악검파(五嶽劍派)의 수장이라 불리는 문파가 화산이 아니던가.
“물론 잘 알고 있네. 하지만 화산은 이번에 신경을 쓰지 못 할 걸세.”
아직도 염호명은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인가?”
적발라가 수도를 들어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손짓. 그리고 적발라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검선이 죽을 거니까”
* * *
구파일방 중의 하나이며 또한 오악검파의 수장. 본래 천하명산인 화산(華山)의 수려한 정기를 배경 삼아 봉우리마다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던 도가 검파들이 하나가 되었고, 그리하여 불리게 된 이름 화산파.
속가(俗家)와 도가(道家)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자리했으며 또한 정통적 검파(劍派)라는ㄱ jt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파.
그것이 바로 화산이었다.
그 화산의 선인봉(仙人峰). 우뚝 솟은 봉우리 위로 운해가 첩첩히 쌓여 거대한 바다가 흐른다.
구름의 바다가 흐르는 그곳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 그 위에서 평범한 촌노가 매화 가지를 다듬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다. 촌노는 신선의 매화를 다듬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신선의 매화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촌노 그 자체로도 이미 신선일 것이다.
매화검선(梅花劍仙) 소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