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네 개의 송곳니가 일어나고, 공기가 찢어발겨졌다. 용의 송곳니와 투견의 송곳니가 연달아 충돌한다. 충돌하는 순간, 전귀의 검을 막아내기 위해 자운의 검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순간을 노리고 진혼권이 주먹을 날렸다. 마혼권이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자운은 마혼권을 바라보고는 한 손으로 염룡교를 펼쳤다.
본래 염룡교는 두 손으로 펼치는 무공이다. 한 손으로 펼치게 되면 그 힘은 절반 이하로 내려간다.
염룡교와 마혼권이 충돌하는 순간, 자운은 재차 염룡교를 두 번 더 뿌렸다.
부족한 힘을 횟수로 막은 것이다. 하지만 마혼권이 다시 날아들고, 손으로 막게 된다면 속도가 떨어지는 손간 마혼권이 자운의 가슴에 직격할 것이다.
자운이 두 다리를 털었다.
퇴법을 밟았다.
밟는 동시에 자운의 발에서 강력한 각법이 펼쳐졌다. 용이 구름을 움켜쥐는 듯한 움직임. 용의 발톱에 움켜쥐어진 마혼권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동시에 다른 발톱이 그대로 전귀의 몸을 그어 내렸다.
한순간 비상하는 세 개의 발톱. 발톱은 전귀의 몸을 파고들고, 육중한 무게를 실어 그어 내린다.
상에서 하로 내리긋는 그 공격에 피가 솟구쳤다.
전귀의 옷이 터져 나가며 검에 당한 듯한 상처가 그대로 내려 그어진다. 무려 셋.
자운의 눈이 번쩍 빛났다.
“말할 필요 없어.”
정체 따위, 지금은 몰라도 된다.
“고문을 할 생각도 없어.”
귀찮게 왜 억지로 알아낸다는 말인가?
대충 추측되는 바도 있었고, 이 정도면 이름을 날리는 고수 일 것이다.
그러면 방법이야 충분히 있다.
“알아낼 방법이 있으니까.”
자운이 그대로 손을 뻗었다.
콰앙―
진혼권의 가슴이 자운의 손으로 딸려 들어오며 진혼권의 몸이 그대로 벽에 처박힌다.
그것으로 끝.
절명(絶命).
진혼권의 몸이 벽에 처박힌 채로 축 늘어졌다.
한 수에 죽어버린 것이다. 자운이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진혼권의 몸은 아래로 덜어지지 않았다. 몸채로 벽에 처박혀 버린 것. 뒤이어 자운이 또 손을 뻗었다.
이번에 잡은 것은 전귀의 몸이었다.
전귀의 몸 역시 그대로 들어 벽에 처박으려 했다. 전귀가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잡고 있는 자운을 향해 칼질을 했다.
“이익!”
카악―
하지만 자운의 검은 너무도 수월하게 그런 전귀의 검을 쳐내어 버린다. 진혼권과 전귀, 그 실력은 거홍도보다 떨어졌으나 그들 역시 흑령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둘이라면 충분히 거홍도라도 제압할 수 있다.
그래서 자운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운은 그들의 상상을 넘어선 괴물이었다. 그야말로 용!
아직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고, 승천하지 않는 용이다.
흔히 신진의 젊은 고수들을 용이라 한다. 그것은 용이 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운은 그들과 비교되는 용이 아니었다.
용이 될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용이었다.
‘잠룡(潛龍)!’
승천할 준비를 하며 아직은 물속을 노니는 용이었다. 이 용이 세상으로 나온다면 세상은 크게 놀랄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콰과광―
담벼락에 그대로 전귀의 몸이 틀어박히며 전귀가 절명했다.
신음 소리 한번 뱉어내지 못하고 벽에 처박힌 그들을 자운이 바라보았다.
“내가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했지?”
자운이 다가가 그들의 복면을 벗겨냈다. 얼굴을 본다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벗겨내었다.
그리고는 복면을 그대로 조각내어 허공에 뿌렸다.
“내일 아침에 보자고.”
자운이 손을 털며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 * *
황룡문으로 돌아온 자운을 우천과 운산이 맞이했다.
“대사형, 허리에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
자운이 새로 맞춰 입은 옷이 허리가 터져 나가 있는 것을 발견한 운산이 물었다. 운산의 물음에 자운이 침을 바닥에 뱉었다.
“퉤. 습격을 당했어.”
그리고는 터져 나간 자신의 옷을 살핀다. 지금 보니 바늘로 이으면 그럭저럭 티 나지 않게 이어질 것 같았다. 비싼 옷이니 벌써 새로 맞추고 싶지도 않았고,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 가서 바늘이랑 실 가져와라.”
자운은 우천을 시켜 바늘과 실을 가져오게 했고, 자운의 허리를 운산이 걱정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도대체 누가 습격을 한 겁니까?”
“몰라.”
“예?”
“넌 습격하는 놈들이 난 누구요 하고 말하고 습격하냐. 모른다고. 내일 아침이면 알게 되겠지.”
자운의 말은 더욱 의문을 만들 뿐이었다. 지금은 모르는데 내일 아침이면 알게 된다니.
이토록 해괴한 말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자운은 우천이 가져온 실과 바늘로 천천히 옷을 꿰매기 시작했다. 감쪽같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티가 나지 않게 옷이 꿰매어졌다.
곧 자운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안의 거랑 같이 꿰매 버렸어!”
두 개의 옷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자운이 말하던 아침이 되었다. 처참하게 벽에 처박혀 있는 전귀와 진혼권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다.
전귀와 진혼권은 섬서의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고수다.
그들이 얼굴을 다 드러낸 상태로 벽에 처박혀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한 이들 사이에서 많은 억측이 나돌았다.
물론 그 어떤 억측에도 자운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들의 정체와 억측이 나돌고, 그 가운데서 자운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정확하게 골라서 챙겼다.
“음, 전귀와 진혼권이라는 말이지.”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놈들이 소속된 곳도 알아내었다.
“흑령문.”
자운이 추측하고 있던 곳과 똑같았다. 자운이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강하게 깨물었다.
“기다려. 곧 흠씬 패주러 갈 테니까.”
자운이 알지도 못하는 흑령문주를 향해 씹어 뱉었다.
어둠이 내리고, 달빛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밤바람이 낮게 불어오며 풀을 스친다. 자운이 그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자운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황룡문의 뒤편에 위치한 연무장이었다. 얼마 전에 일꾼들이 손으로 복원된 연무장. 그 위에서 한 인영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날카로운 검세. 아직 부족함이 눈에 보이지만 나쁘지 않은 검이 어둠을 가르며 바람을 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자운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흐음.”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는 우천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온몸은 흠뻑 땀으로 젖어 있었고, 바람을 따르는 공세 역시 거칠기 그지없다.
그의 앞에서 바람이 잘려 나간다.
자운이 우천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기습적으로 우천의 손을 움켜쥐었다.
“너, 이게 뭐냐?”
우천의 손은 이미 부르트고 찢어져 피투성이다. 우천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자운의 말에 우천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는 자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사형.”
“과한 수련은 몸을 망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너는 이미 오전 중에 충분한 훈련을 했다. 그래서 쉬어야 하는데 또 이런 훈련을 하는 거냐?”
그의 말에 우천이 검을 움켜쥐었다.
“운산 사형이 검기상인에 들었습니다.”
자질만 놓고 이야기 하자면 더욱 높은 쪽은 우천이었다. 한데 우천보다 운산이 빠르게 검기상인에 접어들었다. 부럽기는 하지만 질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무인으로서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자신의 사형이 검기상인에 접어드는 것을 보고 어쩌면 그 마음이 더욱 자극되었을지도 모른다.
우천의 말 한마디에는 이런 감정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자운 역시 무인이다. 그도 과거에 내공이 쌓이지 않았을 때 이런 감정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다른 사형제들이 내공이 쌓이고 점점 강해지는 것을 부러워했고, 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운기에 투자했다.
하지만 하늘이 자운에게 내린 것은 그야말로 천형(天刑). 그의 몸에 내공이 쌓이는 축기의 속도는 그야말로 극악 그 자체였다.
그때 자운이 느낀 감정과 지금 우천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자운이 우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스릉―
검명이 울리며 자운의 허리춤에서 새로 맞춘 검이 뽑혀지고, 자운이 그 검을 우천을 향해 겨누었다.
“검을 들어.”
자운의 말에 우천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자운은 망설임없이 우천을 향해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강해지고 싶은 거 아니야? 검을 들어라.”
말이 끝나는 순간 자운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그대로 우천의 몸을 베어간다. 우천이 황급하게 검을 들었다.
검과 검이 충돌하며 어둠 속에서 불똥이 튀었다.
우천이 몸이 자운의 검에 밀려 주르륵 밀려났다.
우천이 검을 그어 내렸다. 자운이 성큼 다가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운에게 우천의 검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운의 검에서 기운이 일어나고, 한 번의 내리그음에 세 줄기의 검력이 일었다.
카라라락―
우천이 다급하게 검을 들었다.
“힘으로 막을 생각 하지 말고 기운을 흘려라.”
우천을 보고 자운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리고는 그것을 이해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밀어붙였다.
카가가가가강―
연달아 검이 충돌한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직선적인 공격이 단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흘려내기 좋은 각도로 검을 날린 것. 자운은 말 한마디를 던지고 우천이 그것을 체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간 충돌이 이어졌을까?
자운의 바람대로 우천이 검을 조금씩 흘려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운의 검이 조금씩 직선적인 공세로 접어들었다.
사선 공격에 비해서 직선 공격은 각이 없기 때문에 흘려내는 것이 쉽지 않다.
‘더 어려워졌어.’
막아내는 우천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흘려내는 것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공격을 흘리는 것이 익숙해졌을 무렵, 자운의 공격이 다시 변하며 흘러내기 어렵게 바뀐 것이다.
검과 검이 연달아 충돌했다.
카앙― 카앙―
힘으로는 자운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운의 황색 장포가 휘날리는 것이 우천의 눈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또다시 자운의 말이 귓가에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