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7화 (17/175)

# 17

그의 검에 단번에 사람이 썰려 나갔다. 피가 후두두 쏟아지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외면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벤 사람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운산의 검에 굳건한 의지가 깃든다.

“내가 맹수가 되어야 하는구나!”

우우우웅―

운산의 외침에 반응하여 그의 검이 울기 시작했다. 내공이 검을 타고 흐르고, 희미하나마 검 위로 기운이 덧씌워졌다.

누가 봐도 확실한 검기. 그 모습에 자운이 박수를 쳤다.

“좋구나! 좋아!”

검기상인(劍氣傷人)이라니, 각오를 다지게 해주려고 온 곳인데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었다. 운산의 검에서 망설임이 사라졌고, 그의 주변도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검기상인으로 한 번에 경지가 상승한 터라 그 속도는 우천에 비해서 빨랐으면 빨랐지 절대로 느리지는 않았다.

처음과 다르게 이제는 산적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그들의 검에서 망설임이 사라지고, 진정한 무림인의 풍모가 드러나자 겁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맹수. 무림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겁을 집어먹어서는 안 된다.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

자운이 우천과 운산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저들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폐관에 들어설 때의 나이가 스물일곱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자신은 이미 살인에 익숙해져 있었다.

‘전장이었지.’

그가 열일곱이었을 무렵, 무림은 그야말로 전장과 전장의 연속이었다.

적성(赤星), 붉은 별이라는 무리가 창궐하였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무림을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를 막기 위해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의 여러 문파들과 사파의 대문파들이 연합을 했다.

그들의 힘이 정사를 연합하게 할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자운 역시 스승인 황룡검존을 따라 전장에 참여했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전장.

죽이고 죽이는 전장, 그 속에서 자운은 살인에 익숙해졌다. 전장에 능숙해지고, 무감각해졌으며 그의 검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자운이 그때의 모습을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그게 벌써 이백 년 전이라는 말이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진짜였다. 우천과 운산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이백 년 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이야기. 자운이 피식 웃었다.

“이제는 여기서 살아가야지.”

제9장

자운이 포목점을 나서며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황포(黃布)를 이용해 통을 넓게 만들었으며 소매에는 금실로 수놓은 용이 있었다.

용은 자운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며 그 힘을 자랑하려는 듯 움직인다. 그가 가볍게 손끝으로 허리춤을 때렸다.

탁탁―

허리춤에도 역시 새로운 검이 들려 있었는데 굳이 꺼내어 보지 않아도 검면에 용이 음각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자운이 입고 있는 옷은 본래 과거 황룡문이 성세를 자랑하던 시절 입던 정복이다. 검 역시 얼마 전 이가 나간 것을 대신하여 바꾼 것. 자운이 메고 있는 보따리에는 이와 같은 옷이 두 벌 더 있었고 검 역시 두 자루 더 있었다.

“역시 옷이 날개라니까.”

자운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본래 자운이 입고 있던 옷은 너무 낡았을 뿐만 아니라 우천 덕분에 한쪽 다리까지 뜯어져 민망한 모습이었다.

하여 이제야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자운이 황룡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개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한줄기 바람과 함께 자운을 향해 살기가 쏟아졌다.

쉬익―

파공음과 함께 검영이 자운이 서 있던 자리를 향해 쏟아졌다. 자운의 몸이 슥 하고 흔들리고, 불어온 바람에 호롱불이 꺼지듯 신형이 사라졌다.

기습이 실패하자 습격자는 단번에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자운이 나타난 것은 그 뒤였다.

“너 누구냐?”

자운이 손을 뻗었다. 손에서 강력한 경력이 일어나고, 단번에 습격자의 몸을 움켜쥘 듯한 조법이 펼쳐졌다.

그의 팔에 수놓아진 황룡이 꿈틀거렸다.

파앗―

손이 허공을 가르고, 허망하게 조각난 옷자락만이 떨어져 내렸다. 습격자가 자운의 손을 피한 것이다. 자운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호오.”

자운은 고개를 들어 습격자를 다시 살폈다. 검을 들고 있는 습격자. 얼굴에는 복면을 하고 있었다.

자운이 그를 보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복면 벗어도 난 못 알아봐.”

지금 이 시대의 고수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니, 얼굴을 본다고 해서 놈이 어디의 무슨 고수인지는 전혀 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자운을 습격한 것은 흑령문에서 나온 전귀였다. 전귀의 옆으로 진혼권이 내려섰다.

“어라? 이제 보니 두 놈이네?”

자운이 손가락으로 전귀와 진혼권을 콕콕 짚어서 말했다. 두 놈이라고 한 말에 화를 낼 법도 한데 전귀와 진혼권은 침착하다.

“황룡문의 고수.”

전귀가 복면 아래로 물었다.

“어. 그게 바로 나야.”

황룡이 자부심 가득한 모습으로 어깨와 허리를 세우는데 그 모습이 익살스럽다 못해 유쾌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운은 지금 장난치는 것이 아니다.

도발하는 것이다.

자운에게는 재주가 하나 있었다. 우천과 운산까지 인정하는 재주다.

말과 행동으로 사람의 속을 긁어버리는 재주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운의 재주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근데 틀린 게 있어. 황룡문의 고수라니?”

그 말에 진혼권과 전귀가 의문을 표했다.

“고수면 고수지 무슨 고수란 말이냐?”

“그냥 고수가 아니란 거야. 난 대고수다!”

말이 끝나는 순간, 자운의 몸이 전귀를 향해 날아들었다. 전귀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섰다.

“허업!”

하지만 자운의 주먹이 대번에 쫓아온다.

허공을 때리는 자운의 주먹.

퍼버벙―

강력한 권풍이 일었다. 전귀와 지지 않고 검을 뻗었다. 검과 권풍이 충돌하며 전귀가 몸을 뒤로 뺐다.

따다다당―

전귀가 몸을 빼고, 그 틈으로 진혼권이 몸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운을 향해서 주먹을 뻗는다.

진혼권이 자랑하는 마혼권(魔魂拳)!

그의 주먹에서 권경이 뿜어지며 자운을 후려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자운의 몸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쉬익 하고 움직인다 싶더니 발을 들어 그대로 진혼권을 찼다.

진혼권이 양팔을 교차시켜 자운의 발을 막았다. 장누이 군살이 박혀 있는 진혼권의 주먹을 보며 말했다.

“너 혹시 권법에 자신 있냐?”

그의 별호는 진혼권. 권으로 이름을 날린 고수이니 당연히 주먹에 자신이 있었다.

그가 뒤로 물러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 권은 섬서에서도 알아주는 주먹이지.”

그의 말에 자운이 피식피식 웃었다.

“포부가 작은 놈이네. 고작 섬서에 만족하다니.”

그리고 양팔을 뻗었다. 자운의 양팔이 용처럼 꿈틀거리더니 이리저리 얽혀들었다. 두 주먹이 붉게 백열하고, 용이 화염을 뿜는 것 양 주먹이 쏘아졌다.

“본 문의 염룡교(炎龍嬌)라는 권법인데 맛이나 보라고.”

자운의 두 주먹이 진혼권의 양팔을 때렸다. 그것은 마치 화인(火印), 불의 주먹이라도 된 듯 진혼권의 양팔에 선명한 자국을 만든다.

그 구경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진혼권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진혼권이 비명을 지르자 그의 동료인 전귀가 움직였다.

“진혼권!”

하지만 자운이 더 빨랐다. 비명을 지르는 진혼권을 무시한 자운이 그대로 날아서 당도한 곳은 바로 뛰어오는 전귀의 앞이었다. 자운이 전귀를 향해 검을 뽑았다.

바람 소리와 함께 이루어진 경쾌한 발도술!

휘이익―

바람이 날아들고, 전귀와 자운의 검이 충돌했다.

따앙―

“이놈이!”

전귀가 자운을 향해서 이를 드러내며 분노를 표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팔에 화인이 남은 진혼권이 자운의 등으로 권을 찔러 넣었다.

“어?”

등에 메고 있는 보따리에는 우천과 운산의 옷이 들어 있다. 지금 이게 찢어지면 옷을 새로 사야 한다.

자운이 허리를 비틀었다. 그 바람에 전귀를 누르고 있던 검의 힘이 약해지고, 한순간 전귀의 검이 자유로워졌다.

부우욱―

자운의 허리춤이 찢어진다.

진혼권의 주먹은 피했으나 전귀의 검은 미처 피하지 못한 탓이다. 등에 메고 있던 보따리만 아니었어도 공격을 피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자운이 뒤로 빠졌다.

화끈거리는 감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처는 없는 듯했다. 통을 넓게 만든 탓에 옷만 베여 나간 것이다. 자운이 찢어진 자신의 허리춤을 보며 말했다.

“너네 이제 죽었다.”

그가 등에 메고 있는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검을 움켜쥐고 진혼권과 전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말해. 살려줄지도 모르니까. 어디서 온 놈들이냐?”

자운도 알고 있었다, 답할 리가 없다는 것쯤은. 자운이 한 걸음을 더 다가갔다.

저벅―

그의 몸에서 기운이 일었다.

“그렇지. 말해줄 리가 있나.”

자운이 검을 아무렇게나 휙휙 휘둘렀다. 그 모습이 마치 난봉꾼과 같아 전혀 고수의 풍모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진혼권과 전귀는 방심하지 않았다.

방금 전의 싸움으로 알았다. 놈은 고수다. 그것도 감히 경시하기 힘들 정도의 고수다. 천하에 이름을 논할 만한 고수, 그런 고수를 만났기에 쉬이 긴장을 풀 수 없다.

또한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진혼권과 전기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섬전과 같은 속도!

단번에 자운의 앞으로 날아드는 두 개의 신형!

자운이 그것을 보고 이죽거렸다.

“그래, 둘이 함께 나와야 같이 죽지. 좋은 선택이야.”

자운이 검을 뿌렸다. 검에 기운이 일고, 검기가 둘을 향해 날아든다.

전귀 역시 검기를 불렀다. 검 위로 푸른 검기가 덧씌워지고, 자운이 날린 검기와 전귀의 검기가 충돌하며 폭음을 일으켰다.

번쩍번쩍하며 불똥이 튄다.

자운이 뒤로 물러서며 다시 검기를 뿌렸다. 이번에는 진혼권이었다. 진혼권의 두 주먹에 선명하게 기운이 담기고, 검기를 주먹으로 쳐내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자운을 향해 쇄도한다.

먼저 공격을 한 것은 전귀였다. 전귀가 자신의 절초 투견검(鬪犬劍)을 펼치며 다가왔다.

동족을 물어뜯는 이빨을 가진 동물, 투견(鬪犬)!

날카로운 송곳니가 자운에게 닿으려는 순간, 자운의 송곳니가 일었다.

용의 송곳니, 자운이 황룡문의 용아행(龍牙行)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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