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6화 (16/175)

# 16

하지만 이러한 느낌과는 달리 운산과 우천에는 이 산에 산적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산적 정도야 자운에게 걸리면 한주먹도 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으나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글세, 무인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훈련을 하러 왔다고나 할까?”

자운이 웃었다. 한데 그 웃음이 이전과 달리 씁쓸하기 그지없다. 무인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는 말에 우천이 소리쳤다.

“그럼 이 훈련을 거치면 우리도 진짜 무인이 되는 겁니까?”

“언제는 진짜 무인이 아니었냐. 최소한 고수가 될 각오는 되어 있다고 봐야겠지.”

자운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운의 걸음이 점점 길에서 벗어났다. 무언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 그를 따라가는 우천과 운산이 주변을 살폈다.

“대사형, 뭘 찾고 있는 겁니까?”

“글쎄, 잠깐만. 이제 찾은 것 같으니까.”

자운은 그렇게 말하며 앞을 가리고 있는 수풀을 치워내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산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엉성하게 만든 산채의 정문에는 두 사내가 서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산적의 모습이다. 자운이 찾은 것은 산적의 산채인 것이다.

우천이 질문하려 했다.

“여기는 왜…….”

우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운이 튀어나갔다. 그리고는 칼을 휘둘러 산채를 지키던 산적 둘을 베어버렸다.

단 한 수에 두 명의 산적이 베어 나간다. 그 모습을 산채 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산적이 동료들에게 경호성을 알렸다.

단번에 줄을 당겨 종을 치고, 자운을 향해 소리친다.

“누구냐!”

자운이 그를 향해 이죽거리며 말했다.

“글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우리랑 별 상관은 없는데 좀 죽어줘야겠다. 너무 원망하지는 마.”

자운의 검에서 검기가 뿜어졌다. 피가 튀며 종을 치던 자의 목이 잘려 나간다.

“너네도 불쌍한 사람들 많이 뜯어먹었잖아? 응?”

그렇게 말한 자운이 뒤를 돌아보며 우천과 운산을 향해 말했다.

“너네는 오늘 여기 있는 산적들과 싸워야 한다.”

자운의 말에 운산과 우천의 얼굴에 의문이 어리었다.

“왜냐고? 너넨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이들이 무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자운이 피식거렸다.

“아무 원한도 없을 수도 있지. 아무런 상관도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놈들한테 칼을 맞을 수 있는 곳이 강호다.”

자운이 손끝으로 산채의 문을 때렸다. 한 번에 산채의 문이 부서져 나가고, 자운이 한 걸음 움직인다.

휘익―

단번에 우천과 운산의 뒤로 이동하는 자운의 신형. 자운이 그들의 귀에 속삭였다.

“너희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지만, 이자들이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운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최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베어라.”

“이 미친놈들!”

산적 중 하나가 자운 등을 보고 소리쳤다. 그들의 모습에는 살기가 등등 했다. 산채를 침입한 적을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말한다.

“봐, 저쪽에서는 이미 너희를 죽여 버릴 각오가 되어 있잖아.”

자운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이었다. 자운이 뒤로 물러서자 우천과 운산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마라. 도와줄 생각 없으니까. 놈들이 너보다 하수지만, 강호에서는 눈먼 칼에도 죽는 법이야.”

자운이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자, 그럼 가서 싸워봐.”

자운의 손이 그들의 등을 짝 때렸다. 그 바람에 운산과 우천이 엉거주춤하게 산적들 앞으로 다가섰다.

그들이 다가오자 산적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어 들었고, 지지 않겠다는 듯한 걸음 다가왔다.

“싸우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자운의 말이 끝나는 순간, 산적들이 운산과 우천을 향해 달려왔다.

“우아아아아아아악!!”

우천과 운산은 처음부터 사라믈 베지는 않았다. 그들은 무공을 익혔고 산적들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수가 많다고는 하나 무공을 체계적으로 익히기 시작한 운산과 우천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검집째로 휘둘러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검을 휘둘러 적을 베지는 못하지만, 검집째로 휘둘러 몽둥이처럼 사용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운산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정확하게 틀렸다.

검집으로 얻어맞은 그들이 주춤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뿐, 주춤하거나 넘어지며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곧 다시 덤볐다.

쓰러뜨려도 쓰러뜨려도 사람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혈도를 제압해 버리면 좋지만, 아직 우천과 운산의 실력이 거기까지 되지는 않았다.

또한 상대의 수가 많았다. 검을 휘두를수록 지쳐가는 반면 산적들은 수가 많았기에 계속해서 치고 빠졌다.

점점 지쳐 가는 운산과 우천을 향해 산적들이 소리쳤다.

“흐흐, 이 새끼들아! 무공 몇 개 할 줄 안다고 우리가 그렇게 쉽게 제압당할 줄 알았냐!”

그 말 그대로 검집을 휘둘러 때려도 때려도 적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우천과 운산이 검집째로 휘두르는 것에 비해서 상대는 날이 선 무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자칫해서 베이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이 분명했다.

우천이 고개를 숙였다.

또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우천을 스치고 지나갔다. 칼날을 피해낸 우천이 검을 휘두른다. 검집이 바람을 부웅 가르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우천을 공격한 산적이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 또 밀려오는 산적들을 상대하느라 체력이 소비될 뿐이었다.

‘이대로는 힘들어.’

우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정말 이대로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이 들며 우천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아직까지 운산이 검을 검집에 넣어두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빠른 진도다. 나무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운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제 한 놈 되었네.”

아니나 다를까, 날이 선 검인을 휘두르는 우천의 검에 산적들이 픽픽 나가떨어졌다. 이번에 나가떨어진 이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으아아아악!”

뼈째 베어내지는 못했지만 검에 당한 상처는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산적들은 감히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혹은 죽어버려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천의 주위로 빠르게 산적들이 줄어들었다.

“제, 젠장.”

우천의 주위에 서 있던 산적들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놈들은 승냥이와 같은 녀석들이다.

강자와 약자가 있다면 강자를 노리기보다는 약자를 노리는 것을 좋아한다. 우천의 앞에 있던 산적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부분 운산의 앞으로 몰려간 것. 우천이 산적들에게 포위 된 자운을 향해 소리쳤다.

“사형!”

하지만 운산에게는 우천의 외침에 한가롭게 대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온 힘으로 날아드는 병기들을 막아내는 데 집중해야 했다.

“으악.”

도끼날이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으나 움직임에 방해가 될 것이다.

카앙―

검과 검집이 충돌하고, 검이 한순간 밀려났다. 하지만 그 정도일 뿐, 곧 그 자리는 다른 산적의 검이 메웠다.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검집이 휘둘러지고, 운산을 노리던 검이 밀려난다. 그 순간, 운산의 검에서 검집이 벗겨졌다.

나무로 만든 검집이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운산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날이 산적을 베었다.

푸슛―

피가 허공으로 솟구친다. 그의 주변으로 선혈이 낭자하게 흐르고, 피바다가 번져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그의 몸은 땀이 아니라 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그것을 발견한 운산이 소리쳤다. 사람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사람을 죽여 버린 것이다. 그 충격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살인에 대한 각오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상황. 그것은 운산의 정신을 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운산의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저거 위험한데.”

어쩌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고 광인이 될지도, 주화입마가 될지도 몰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자운이 나서려 했다. 하지만 자운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 우천이었다.

우천이 산적을 베며 종횡무진 운산을 향해 뛰어갔다.

“사형!”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해 온 우천의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운산이 주춤했다. 우천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쳤다.

“사형, 죄책감을 최대한 누르고 소리치세요! 죽지 않으면 우리가 죽습니다!”

자운이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가슴 아프긴 하지만, 강호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진리지.”

조금씩 운산의 눈이 진정되고, 폭주할 듯 날뛰던 그의 기운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광인이 되거나 폭주하여 주화입마에 들 위험은 줄어드는 듯 보였다.

우천은 운산을 설득하는 와중에도 주변의 산적들을 착실하게 줄여 나갔다.

“죄책감을… 죄책감을 최대한 누르라고?”

운산이 우천의 말에 반응했다. 우천이 눈앞을 가로막는 적을 베었다. 피가 튀었으나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베지 않으면 베인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뿐이다.

“예, 죽이지 않으면 죽습니다.”

마치 야생과 같은 세계, 그것이 강호다. 우천의 말에 운산이 검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그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자신이 베어 넘긴 사람들이 죽어 있다.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옆에는 그들이 들고 위협하던 무기들이 있었다.

이곳은 야생이다.

약육강식이 확실한 곳. 저들은 어금니를 가지고 있는 맹수였다. 우천과 운산 역시 마찬가지다. 저들보다 더욱 강한 어금니를 가지고 있었다.

약육강식, 강자가 약자를 죽이고.

강자독식, 모든 것을 취한다.

야생에서 모든 것을 취하는 것은 곧 살아남는다는 의미였다.

운산이 검을 말아 쥐었다.

“야생에서는…….”

그의 검에 강하게 내공이 주입되기 시작한다.

“으아아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