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자운이 우천에게 보라는 듯 칼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런 자운의 모습에 막요삼은 분노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노옴!”
자운의 검이 움직이는 꼴을 보자면, 그야말로 손으로 파리라도 잡는 듯 휙휙 움직이고 있었다. 그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한 움직임. 막요삼이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너보다 나이 많으니까 이놈 저놈 하지 말라고!”
자운이 검을 다시 휙 움직였다.
검에서 검기가 일고, 거치도의 도인을 타고 도기가 흘렀다. 검기와 도기가 충돌하자 주변을 타고 짜릿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미친놈아아아!!”
막요삼이 거치도를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리그었다. 그 기세 하나만큼은 일품. 가히 도기를 뿜어낼 수 있는 고수라 할 만 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적이라면 이 공격 한 수에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상대는 자운이었다. 자운은 검을 막는 대신 몸을 틀었다. 그의 몸이 빙글 회전하며 막요삼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공격에 들어갔다.
자운의 검에 방금 전 회전에서 생긴 힘이 들어갔다. 힘을 얻은 검은 질주하는 우마와 같이 막요삼의 허리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막요삼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으악!”
하지만 미처 자운의 검을 다 피하지는 못했고, 허리를 지나가는 검상이 생겨나고 말았다. 그의 허리가 새어 나오는 피에 축축하게 젖어든다.
붉게 물들어가는 막요삼의 허리를 바라보던 우천은 옆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도박장의 주인이 자운이 반쪽 낸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려 한 것이다. 우천이 날쌔게 움직였다.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우천이 도박장주를 제압하러 간 동안, 막요삼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승기는 이미 확실하게 자운에게로 넘어간 지 오래다. 놈은 최소한 막요삼보다 몇 줄은 위의 고수였다. 막요삼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상처를 빠르게 지혈했기에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는 않으나 몸을 격하게 움직인다면 이 상처는 곧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넌 누구냐?”
자운이 우천에게 제압된 도박장주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황룡문 사람이라고.”
그가 입술을 떨었다.
“흑우파를 몰살시킨 고수가 바로 너구나.”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답.”
막요삼이 주변을 살폈다. 중간에 도박으로 빠지기는 했어도 본래 막요삼이 상주까지 오게 된 이유가 바로 눈앞에 있는 놈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문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가 상처를 만지는 척하며 품에 손을 넣었다. 가죽으로 싸여 있는 단검 몇 개가 잡혔다. 비도에 비해서 던지기가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내공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암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조심스럽게 비도를 감싸고 있는 가죽을 벗겨내었다.
“내 뒤에 어떤 문파가 있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의 턱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자운이 얼굴 가득히 이죽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지. 흑령문이 있잖아. 흑. 령. 문이.”
자운이 유독 흑령문이라는 글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흑령문, 흑우파와 황충의 배후가 되는 곳이었다. 자운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하다니. 배짱이 좋은 건지 미친 건지 모르겠군.”
자운이 검을 바닥에 꽂아놓고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도 분명히 말했지만 미친 건 아니다.”
그 순간, 그의 품에서 세 자루의 단검이 날았다. 목표는 자운의 심장. 자운이 싱긋 웃으며 바닥에서 검을 뽑았다.
그의 몸이 빙글 회전하며 검끝에서 단검이 비켜나간다.
타다다당―
그럴 새도 없이 막요삼이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빠르게 질주하는 막요삼의 다리. 애초에 단검으로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한순간 멈칫하게 만들 정도면 충분했을 뿐. 자운이 그런 그를 뒤따라 몸을 날렸다.
“그럴 줄 알았다, 이 새끼야.”
자운의 몸이 비호처럼 허공을 가르고 포물선을 그렸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이 펄럭이며 자운의 신형이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아아아아악!”
막요삼이 거치도를 크게 베었다. 자운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운과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자운의 검이 더 강했다.
쩌엉―
기운이 한껏 주입된 자운의 검이 단박에 그의 거치도를 절반으로 잘라 버렸다. 덕분에 자운의 검날이 상했고, 자운이 그걸 보며 툴툴거리는 와중에도 막요삼의 배를 발로 찼다.
퍼엉―
“에이, 칼 바꿔야겠네. 아깝게스리.”
배를 차인 막요삼의 신형은 공기 주머니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도박장 안으로 훨훨 날았다. 자운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거치도의 조각을 발끝으로 찼다.
떠엉―
반 토막 난 거치도의 조각이 자운의 발길질에 차여 자신의 주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 으아악!”
막요삼이 반 토막 난 거치도를 들어 날아오는 조각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뿔싸!
그의 거치도는 이미 반 토막이 나지 않았던가?
익숙하게 거치도의 끝으로 조각을 쳐내려 했지만, 그 끝은 이미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중이었다.
“억!”
반 토막 난 거치도의 길이 계산을 실수한 대가로 그는 자신의 도가 가슴에 박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자운은 그런 막요삼의 시체에는 더 이상 시선을 두지 않고 우천에게 제압된 도박장주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니까 왜 곱게 가라고 할 때 안 가. 갔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자운이 두 주먹을 뚜뚝 소리가 나게 꺾었다. 마치 시정잡배와 같은 모양새. 그런 건들거리는 모양새가 값싸게 보였으나 도박장주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의 사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었다. 그가 자운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지,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명령하신다면 두, 두 번 다시 도박장을 하지 않겠습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자운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건 우리에게 칼을 겨누기 전에 했어야 하는 말이야.”
물론 죽일 생각은 없다. 놈은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 아니었으니까. 자운이 멱살을 놓고 그의 팔을 잡았다.
“넌 앞으로 이 손으로 밥 먹을 생각 하지 마라.”
뚜두둑―
“커허허허허헉!”
그의 입에서 단발마가 아닌 긴 비명성이 토해져 나왔다.
팔이 꺾일 수 없는 기형적인 각도로 꺾어진 것이다.
그냥 꺾어서 분질러 버린 것도 아니었다.
부러진 부분이 조각조각 나서 화타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그 부분을 다시 이어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자운의 말대로 두 번 다시 그쪽 손으로 밥 수저를 들 수 없게 된 것이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고, 오른팔이 기형적으로 꺾여 있는 도박장주를 뒤로하고 자운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제7장
황룡문으로 돌아온 자운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황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쌓아두고 허둥지둥하고 있는 운산의 모습이었다.
자운이 운산을 보고 물었다.
“너, 뭐하는 거냐?”
자운의 물음에 운산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봐도 꼴이 우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 큰돈으로 어떻게 문파를 운영해야 하는 건지 전혀 감이 서지 않았다.
살아생전에 이토록 큰돈을 만져보는 것이 처음일 뿐만 아니라 문파의 운영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그런 느낌을 운산의 표정에서 읽어낸 자운이 인상을 팍 썼다.
“돈을 줘도 못 쓰고 죽을 놈아. 에이, 퉤.”
자운은 운산의 머리를 쾅 쥐어박고는 금전이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를 발로 찼다. 꽉 매어진 주머니가 한쪽으로 육중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쿠웅―
은은하게 바닥이 울리고, 자운이 몸을 돌렸다.
“그거 챙겨 들고 따라와라.”
자운의 말에 운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금전이 가득 든 보따리를 챙겼고, 자운은 그런 우천과 운산의 앞에 서서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운이 향한 곳은 도박장에 들어가기 전 자운이 혀를 가볍게 찼던 바로 그 기루였다.
자운의 걸음이 기루 앞에 멈추어 서자 당황한 것은 운산과 우천이었다.
운산이 소리쳤다.
“대사형, 여기는 기루가 아닙니까?”
자운이 어깨를 털었다.
“불만 있냐?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밥 좀 먹고 하려고.”
“밥이라면 객잔에 들어가서도 충분히…….”
자운이 운산을 향해 씨익 웃었다. 이제는 알고 있다. 저 미소가 나올 때면 항상 무언가가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천과 운산이 침을 꿀꺽 삼켰다.
“걱정하지 마. 여긴 충분히 돈을 쓸 가치가 있는 곳이니까.”
자운이 당당하게 기루의 문을 벌컥 열었다. 순간 일층의 모든 시선이 자운 등에게로 향했다.
대부분의 기루가 그러하든 일층은 돈이 그리 많지 않은 이들을 위한 곳으로서, 독방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탁자로 이루어져 있다.
탁자에서 싸구려 기녀들을 끼고 술을 마시던 시선이 자운에게로 집중되었지만 항상 그런 것처럼 그 시선은 곧 사그라졌다.
그런 자운의 앞으로 기루의 관계자로 보이는 여인 하나가 다가왔다.
입고 있는 옷이나 미색으로 볼 때 그리 높지는 않은 위치. 아무래도 자운 등이 입고 있는 옷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사람이 다가온 것일 게다.
“손님들이군요. 이리로 오시지요.”
기녀는 나름대로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운을 일층에 있는 자리로 안내하려 했다. 그녀의 안내에 자운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 우리는 이런 데서 안 마실 거야.”
자운이 눈짓을 하자 운산이 자신이 메고 있는 보따리를 살짝 열어 기녀에게 보였다.
누런 황금빛 금자가 가득한 보따리. 대번에 기녀의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그녀는 자운 등에게 고개를 수경 보인 후 종종걸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뛰어갔다.
아무래도 좀 더 높은 사람을 불러오려는 모양. 곧 이전에 비해서 조금 늙었으나 미색 하나 만큼은 더욱 뛰어난 여인이 자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본 기루를 책임지고 있는 총관 다월(多月)이라 합니다. 귀하신 분들이 오셨는데 미처 알아 뵙지 못하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자운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휙휙 흔들었다.
“아니, 뭐, 옷이 이 꼴인데 알아보면 그게 이상한 거지. 결례라고 할 것도 없으니 신경 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