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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난신-12화 (12/175)

# 12

처음에는 말로 해보았지만 들어 처먹을 것들이 아니니 부득이하게 자운이 주먹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길을 가던 자운이 기루의 한곳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혀를 가볍게 찼다.

“이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건 없네.”

자운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기루의 깃발이었다. 깃발을 한참이나 보던 자운이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돌려 우천을 바라보았다.

“이제 몇 개나 남았냐?”

자운의 물음에 우천이 품에 가지고 있던 서류를 몇 장 넘겨보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의 말에 자운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네. 이제 들어가서 밥 좀 먹고 잠 좀 잘 수 있겠다.”

자운이 도박장의 문을 밀었다. 해가 지고 있는 저녁인 만큼 도박장 내부에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니나 으레 그러하듯 도박장을 지키는 삼류도 되지 못한 칼잡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자운의 앞으로 다가와 길을 막았다.

“어디서 오시는 분들이오?”

불법적인 도박장의 경우, 일반적으로 고정 손님들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로운 손님이면 자연스럽게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무림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자운이 놈을 향해 이죽이며 말했다.

“황룡문!”

놈의 표정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고, 자운이 발을 쭉 뻗었다.

발이 땅과 수평으로 뻗어지며 그대로 칼잡이를 걷어찬다. 단번에 문 너머로 날아간 칼잡이가 바닥을 굴렀다.

콰타다당―

그 바람에 몇 개의 도박판이 뒤집어지고, 아래쪽에서 자운을 올려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대부분 도박을 하고 있던 인물들. 자운이 그들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며 도박장이 있는 지하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오늘 여기 영업 끝났으니 다들 일 없으면 가봐.”

자운이 검을 들고 그렇게 말했으나 아무도 가는 이는 없다. 이전에 다녀온 대부분의 도박장 역시 그러했다. 이 정도 소란은 도박장에서 항시 있는 일이었고, 도박장에 있는 칼잡이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앞의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자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가란다고 곱게 가면 그게 말이 되겠냐.”

그런 자운의 뒤로 우천이 따라 들어오고, 그들의 앞에 도박장에 소속된 칼잡이들과 도박장의 주인이 섰다.

“어디서 온 누구냐?”

자운이 도박장주를 향해 이죽거렸다.

“그걸 알면 뭐하게?”

도박장주가 씨익 웃는다. 사람 여럿 죽여 본 미소. 그가 이죽이며 자운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황룡문에 소속된 도박장이지. 황룡문의 초고수가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황룡문이라는 말에 자운의 이마에 실금이 갔다. 흑우파의 이권이 황룡문에 넘어간 것은 사실이나 지금 자운이 방문한 문파는 황룡문에서 정리를 통보 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황룡문 이름을 막 팔아?’

자운이 검을 꾸욱 움켜쥐었다. 자운의 검에 음각된 황룡이 꿈틀거렸다.

“지랄들 한다.”

자운이 주먹으로 허공을 때렸다. 허공이 그대로 밀려나며 강력한 권풍이 터져 나왔다.

“푸악!”

그 권풍 단 한 방에 코가 무너진 사내가 뒤로 날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자운이 연달아 주먹을 뿌리며 외쳤다.

“내가 바로 그 황룡문의 고수다, 이 멍청한 놈들아!”

자운의 손에 걸린 그들이 멀쩡하게 끝이 날 리가 없다. 꼭 어딘가 한쪽이 부서지고 꺾이고 박살이 났다. 자운의 권은 무자비하게 공간을 덮었고, 사방으로 권풍이 휘몰아친다.

가장 처음 자운의 권풍을 맞고 날아간 자가 부러져 피가 흐르는 코를 움켜쥐고 말했다.

“크윽! 이놈! 이 아래 누가 있는 줄 아느냐?”

“아까는 내가 여기 뒷배라고 하더니 이제는 또 누가 있는데?”

자운이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으로 검기를 쏘아보냈다. 단번에 검기가 날아들어 도박장주가 가리키던 문을 절반으로 쪼개었다. 그러자 그 안으로 한층 더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난다.

“자, 문도 열어줬으니 어디 한번 불러내 봐.”

자운이 여유롭게 말했다. 이미 주변의 기물들은 모두 부서진 지 오래고 손님들도 도망간 지 오래였다. 도박장주의 수하들은 모두 성한 몸으로 서 있질 못했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던 그가 빠르게 몸을 날려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안 쫓아가도 됩니까? 저기 혹시 비밀 통로라도 있으면…….”

우천의 말에 자운이 딱 부러지게 답했다.

“안 쫓아가. 그리고 비밀 통로는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지.”

자운이 반대편으로 검기를 날렸다. 평범한 벽이었던 곳이 동강나며 그 너머로 텅 빈 공간이 드러난다.

“비밀 통로를 이렇게 벽처럼 위장해 둬야지 저렇게 문으로 만들어놓는 놈이 어디 있냐. 그거보다 비밀 통로가 아닌 저 아래를 택했다는 거지.”

자운이 턱을 쓸었다.

“말 그대로 저 아래에는 비밀 통로보다 더 믿음직한 게 있다는 거고, 우리는 그걸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라는 거지.”

자운이 팍 소리가 나도록 검을 나무 바닥에 박아 넣었다. 검이 거칠 것 없이 나무 바닥을 파고든다. 그 깊이는 자운이 언제든지 손잡이를 움켜쥐고 검을 휘두를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자운은 계속해서 도박장주가 내려간 곳을 바라보았고, 우천은 질식할 듯한 긴장감 속에 침을 꿀꺽 삼켰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의 시위와 같은 긴장감이 이어지고, 곧 자운이 어둠 속을 보고 말했다.

“온다.”

자운의 말대로 어둠 속에서 거도를 가진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대한 거치도의 도인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마치 성성이와 같이 털이 난 사내. 얼핏 보기에는 산적 두목과 같이 생겼고, 두 팔은 왠만한 아낙들 허벅다리보다 굵었다.

타고난 신력을 자랑하게 생긴 사내. 우천이 그를 알아본 듯 동공이 커졌다.

하지만 자운은 그를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누구냐, 저거?”

자운이 경망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거치도의 사내를 지목했다. 그의 손짓에 사내의 눈이 꿈틀 움직인다.

“어린놈이 꽤 잔망스럽게 구는구나.”

외모가 이십대라고는 하나 자운의 나이는 이미 이백 살이 훌쩍 넘었다. 그런 그에게 어리다는 말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표현 중 하나일 것이다.

자운이 피식 웃었다.

“어린놈? 얼굴만 보고 만만하게 생각하다가 훅 가는 수가 있다?”

자운이 이죽거렸다.

“고작 삼류 사파 비슷한 거 몇 개 부숴놓고 기고만장하게 구는구나. 네놈이 반로환동이라도 했다는 말이냐?”

거치도의 사내가 도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자운이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응시하다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뭐, 그 비슷한 거.”

자운의 입꼬리가 쓰윽 말려 올라가고, 사내가 씹듯이 말을 뱉으며 이죽거렸다.

“미친놈.”

“거홍도(居弘刀) 막요삼.”

거치도 사내의 정체가 흘러나온 것은 우천의 입에서였다. 사내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우천이 뱉은 말이었다. 자운이 우천을 쿡 찔렀다.

“강하냐?”

“무, 무지하게 강합니다. 흑우파 정도는 단번에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로요.”

자운이 목이 뚜둑 소리가 나도록 꺾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뼈 소리가 나도록 어깨와 관절을 풀기 시작했다.

“그거 참 때리는 재미가 있겠구만.”

“이, 이놈! 이분이 어디 계신 분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냐!!”

도박장주의 말에 자문이 반문했다.

“저 아저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걸 알 거 같으냐?”

자운이 바닥에 박힌 자신의 검 손잡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으로 운두를 건드리는 것으로 보아 언제든지 뽑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 자운의 신형이 조금 낮아졌다.

“이분의 뒤에는 흑령문이 있단 말이다!”

흑령문. 감히 흑우파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거대 사파다. 섬서 사파무림을 삼분하는 세력 중의 하나로서 섬서에서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화산마저 쉽게 건들지 못하는 사파였다.

흑령문이라는 말에 자운이 반색을 했다.

“어? 흑령문 놈이었어? 마침 잘됐네. 주인을 불러내야 하는데 일단 개부터 때려야지. 그럼 주인이 나오겠지.”

자운의 행동에 기가 막힌 것은 오히려 막요삼 쪽이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흑령문에서 흑우파와 황충이 운영하는 염왕채의 몰살에 관련해 사건의 조사를 막요삼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비록 임무를 받아오기는 했으나 천성적으로 도박과 주색잡기를 좋아하는 그가 도박장을 비켜갈 리가 없었다.

그리고 도박장에 들른 그를 알아본 주인이 그에게 지하 특실을 내주면서까지 도박을 하게 해 좋은 관계를 맺고자 했고, 마침 그것이 다 되어가는 참이었다.

“미친놈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가 거치도를 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자운이 그의 눈을 낮은 자세에서 노려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자운의 몸이 비스듬하게 솟구치며 튀어나왔다.

카라라락―

자운의 손에 대번에 검이 들리고, 소리쳤다.

“안 미쳤으니까 못하는 말이 없는 거지!”

자운의 검이 거치도와 얽혀들었다. 쇳덩어리 충돌하는 소리가 울리며 불똥이 튀었다.

자운이 검이 충돌된 상태에서 그대로 힘을 주었다.

양팔에 힘이 가득 들어가고, 막요삼의 거치도가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한다.

“애송이가?”

힘에서 자신이 밀렸다는 생각에 인상을 쓰며 막요삼이 굳건하게 두 다리로 땅을 밀며 자운의 신력을 이겨내었다.

내공 외에도 막요삼의 신력은 타고난 것이어서 자운이라고 쉽게 밀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운의 몸이 흔들린다.

몸이 흔들리며 자운의 검이 사라졌다.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막요삼의 신형이 거치도와 함께 앞으로 휘청했다.

자운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두 발이 움직이고, 두 발을 따라 검이 궤적을 그렸다.

막요삼이 빠르게 도를 틀었다.

거치도와 다시 검이 부딪치고 자세를 채 잡지 못한 막요삼의 거치도가 뒤로 밀려나며 막요삼의 무릎이 구부려졌다.

“크윽.”

막요삼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사정을 봐주지 않는 자운의 검은 연달아 막요삼을 몰아쳤다.

막요삼은 무너진 와중에 검을 들어 최선을 다해 자운의 검을 막았으나 몸에 옅은 검상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봐, 때리는 맛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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