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불이 나 황룡문의 무공을 보관하고 있던 승룡전이 반쯤 불에 타버렸다. 그때 소실된 무공도 있으며 일부는 보관을 잘 하지 못해 사라졌다.
그리고 불에 그을려 중간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된 무공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니 자운이 머리를 싸잡으면서도 당장에 필요한 무공들을 옮겨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종이를 보니 막막하기만 하다.
“일단은 적어보자.”
* * *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마보다. 마보는 하체의 힘을 튼튼하게 해줄 뿐만이 아니라 허리와 목의 근육 역시 강하게 해준다. 허리와 목의 근육은 회전이 가미된 초식이나 공격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부위이니 이 부분을 단련해두면 공격 시에 굉장히 쓸 만하지.”
자운이 손을 흔들었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야.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자운이 발끝으로 가볍게 땅을 박찼다. 신형이 허공을 향해 쏘아진 듯 솟아오른다.
허공에서 잠시 바람을 타며 체공을 하던 자운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렇게 허공에 떠 있을 때 보통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
자운이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보를 통해 허리와 목, 그리고 다리 근육을 충분히 단련한다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자운이 자신의 다리를 틀었다. 동시에 허리가 휘감기며 회전이 발생하고, 그 회전이 등 근육을 타고 올라가 목까지 이어졌다.
바람이 동반되며 자운의 몸이 휘리릭 허공에서 회전한다.
허공에서 몸을 뒤틀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바꿔 버리는 움직임. 자운은 그런 회전을 한 후 유유히 땅에 내려와 가볍게 허리를 두드렸다.
“아이고, 오랜만에 하니까 죽겠다. 어쨌든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거야.”
자운이 마보를 취하며 온몸으로 땀을 흘리고 있는 운산과 우천을 바라보았다.
“근데 너네 표정이 안 좋은데?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아, 아닙니다!”
운산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소리치는 그의 뺨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래? 아직 견딜 만하단 거야?”
자운이 황룡문의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누가 봐도 큼지막한 바위 하나씩을 집어 들어 다시 운산과 우천의 앞으로 걸어왔다.
“너희 둘 중 한 명이라도 마보 풀리면 한 시진씩 마보 더 한다. 알겠냐?”
그렇게 말하며 그 큰 돌을 운산과 우천의 팔 위에 올려놓았다.
“큭.”
둘의 입을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오고, 단번에 둘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자, 이제 반 시진밖에 안 남았다. 열심히 해라.”
웃으며 손을 흔드는 자운을 보고 둘이 침을 삼켰다.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은데 여기서 무너지면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겨내야 황룡문의 무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운산과 우천은 흑우파에서 자운이 보여준 신위와 훈련에 들어서기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걸 견뎌내지 못하면 그 어떤 황룡문의 무공도 소화할 수 없지. 원래는 천천히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너넨 나이도 있고 빨리 해야 하니까 좀 팍팍 해야겠다. 이해하고 알아서 참아라.’
대충 말했으나 한 가지 의미는 확실하게 전달이 되었다. 이걸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황룡문의 무공도 익힐 수 없다.
운산과 우천이 이를 꽉 깨물었다.
‘견뎌내자.’
둘의 눈에 강한 의지가 서리고,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자운은 그 외에도 둘의 훈련을 적극적으로 관리해 주었다. 마보 이외에도 연무장을 달리도록 하는가 하면 무공을 익히는 데 필요한 잔근육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동을 시켰다.
그 중간 중간 자운이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는 그들의 수련에 있어 그야말로 중요한 금과옥조가 되었고, 그것을 발판 삼아 그들은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예전과는 다르게 근육이 잡힌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제 그릇은 얼추 된 것 같고. 본격적으로 해볼까?”
“황룡문의 무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검공이다. 대부분의 무공이 검공으로 이루어져 있고, 열에 일곱 정도가 검공이라 할 정도로 검공의 비중이 높지. 이 정도는 알고 있지?”
황룡문이 예전에는 날리는 검문이었다는 사실은 운산과 우천 역시 알고 있었다.
둘은 자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자운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검이라는 거 하나로 싸울 수는 없는 법 아니냐. 칼질 좀 하다 보면 도망갈 때도 있고 필요하면 주먹질도 해야 하고, 가능하면 발길질도 해서 저 멀리 치워 버리고 해야지, 안그래? 덤으로 손바닥으로 뺨따귀도 좀 때려 버리고.”
자운의 거칠 것 없는 말에 우천이 딴지를 걸었다.
“대, 대사형, 보법, 장법, 권법, 각법이라는 좋은 말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건…….”
자운이 손끝으로 우천의 이마를 딱 때렸다.
“손바닥이든 장법이든 잘 죽이기만 하면 그게 그거야. 알았어? 대충 알아서 들어. 뭐 어쨌든 검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도 중요하다는 거지. 그 기본이 되는 것은 움직임이다. 너네는 지금까지 그 움직임의 기본인 근육을 만들었다. 물론 내 덕분이니 다음에 술 한잔 사도록 하고.”
자운이 손바닥을 탁탁 떨며 생색을 내었다.
“술을 사기 전에 너네는 오늘부터 보법 훈련과 반사신경 훈련에 들어간다. 알겠냐?”
“보법이라면 어떤 보법부터…….”
그들은 내심 자운이 운해황룡을 알려주기를 바랐다. 구름 속을 노니는 듯한 용의 모습, 얼마나 멋있는가?
자운이 그들의 생각을 읽고 콧방귀를 꼈다.
“운해황룡은 너네들에게는 아직 안 돼. 그러니까 먼저 지룡천보행(地龍千步行)부터 시작한다.”
“예에? 지룡천보행이요?”
지룡천보행. 지룡은 땅에 사는 용으로서 이무기를 의미한다.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천 걸음을 발로 기어간다는 의미로써 천 번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킨다는 보법이었다.
물론 황룡문의 기본 보법이고 실제로 천 번이나 되는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타의 보법에 비해 변화의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왜? 기본이라서 다 할 줄 아냐?”
자운의 말에 운산과 우천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그렇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룡천보행이라니, 그것은 황룡문에 입문하면 처음 배우는 보법이 아닌가?
“그래? 그럼 내가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뭘 던질 거야. 그걸 지룡천보행만으로 피해봐라. 일다경만 피할 수 있으면 운해황룡을 알려주지.”
“그게 정말입니까?”
“얼마든지. 그럼 자세 잡아.”
자세를 잡으라고 하며 자운은 모래 한 주먹을 폈다. 중간 중간 자갈이 섞여 올라왔다.
“지금 그걸 던지시려고요?”
운산과 우천이 자운이 주워 든 모래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모래를 피하란 말인가?
“피하든 방향을 바꾸든 보법만 사용해서 알아서 처리해봐.”
“정말로 그걸 던지실 겁니까?”
“내공도 담을 건데?”
그 말에 운산이 소리 쳤다.
“그게 말이나 된……?!”
소리치려는 순간, 모래가 날아든다. 운산과 우천이 바쁘게 보법을 밟았다. 하지만 내공을 담은 모든 모래를 피할 순 없다.
대사막의 용권풍에 휩쓸린 듯한 거친 모래 알갱이가 그들의 몸을 때렸다.
“으악!”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한 우천이 뒤로 벌렁 넘어지고, 운산은 그 자리에서 다른 보법을 써서 빠져나왔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이걸 어떻게 못하냐.”
눈에 들어간 모래를 비벼 꺼내는 우천, 운산은 기침을 하며 말했다.
“콜록콜록! 그럼 대사형은, 콜록, 저걸 다 피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피하는 건 무리지만 지룡천보행으로 어떻게든 할 수는 있지.”
그 말에 우천이 갑작스럽게 모래를 집어 확 던졌다.
자운의 발이 변화를 일으켰다. 지룡천보행,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한 고행의 천 걸음을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자운을 향해 던져진 모래 알갱이가 한 자리로 모이기 시작했다.
둥글게 모여드는 그 모습은 흡사 여의주와 같았고, 마침내 자운이 마지막 변화를 마치자 자운의 발치 아래에는 모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게 지룡천보행이다. 지룡은 괜히 천 걸음을 움직이는 게 아니야. 고행으로 여의주를 만들려고 하는 거지. 그걸 알고 힘을 집약시키면 이렇게 어떤 공격이든 자신의 아래에 둘 수 있다.”
물론 이건 지룡천보행이 극에 달해서야 가능한 것이었다.
“너희들에게 이 정도를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공격을 통제 하에 두기 위한 노력이라도 좀 해봐라.”
그리고는 우천이 그랬던 것처럼 자운이 모래를 갑작스럽게 휙 던졌다.
그것에 맞은 우천이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산불 맞은 멧돼지처럼 뛰었다.
“으아아아악!”
“후욱! 후욱!”
지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운산과 우천을 향해 자운이 다가왔다. 자운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가오자 운산과 우천은 움찔했으나 곧 다시 호흡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자운은 그런 운산과 우천의 옆에 주저앉았다.
“힘드냐?”
대답을 한 것은 우천이었다.
“헤엑! 헤엑! 대사형 같으면 안 힘드시겠어요?”
“물론 힘들겠지. 힘들어서 미칠 거 같겠지. 그래도 해야 해. 왜냐하면 너넨 약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자운이 양손을 뻗었다. 자운의 손에 운산과 우천의 맥이 잡히고, 자운이 맥으로 기운을 흘려 넣었다.
찌릿―
찌릿한 감각이 맥을 타고 흘러들어 오자 운산과 우천은 한 순간 움찔했으나 그것이 곧 자운의 기운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가만히 있었다.
‘쯧쯧, 맥이 얇고 좁아.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네. 그리고 내공의 양은 이게 뭐야? 그나마 다행인 건 근골이 나쁘지 않다는 건데, 맥은 수련하면서 단련해야겠네.’
자운이 운산의 맥을 놓으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곧 우천의 맥을 살피기 시작한다.
우천의 맥을 살피던 자운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근골이 좋지 않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우천의 맥이 넓고 탄탄했던 것이다.
마치 오랜 시간 내공을 정양한 고수와 같은 맥. 자운이 눈을 치켜뜨며 속으로 감탄을 토했다.
‘호오, 이놈 봐라? 내가고수가 되기 위해 타고났네. 거기에 불순물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