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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난신-9화 (9/175)

# 9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자신이 그렇게 겁먹었던 흑의인을 너무도 간단하게 날려 버린 사람이다.

겁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 황룡문에서 나왔어. 빚 갚으러.”

자운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에 비해서 황충은 오히려 죽을 맛이었다.

황룡문에서 빚을 갚으러 나왔다더니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온 건물을 다 부수어놓고 수하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았던가?

“비, 빚을 갚으러 왔으면서 수하들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오?”

“아, 그거? 빚 갚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자운의 말에 황충이 다시 물었는데, 묻는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목소리에도 이미 겁이 스며들어 있었다.

“무, 무슨 문제 말이오?”

도대체 그 문제가 무엇이기에 모든 수하들을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겁만 먹지 않았어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한데 그러기에는 눈앞의 상대가 너무나 무섭다.

그나마 지금 혼절하지 않은 것도 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혹시 이런 증상 들어본 적 있어?”

자운이 황충의 눈을 마주 보고 천천히 독의 증상에 대해서 읊었다.

“몸에 열이 없이 차가워지고, 백짓장처럼 사람 피부가 하얗게 변해. 근데 가슴에는 열꽃이 피기 시작하고 붉은 반점이 생겨나지. 그리고 잔병치레가 늘어.”

자운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천천히 사람의 수명을 끊어놓는 독이야. 내공이 강하면 처리할 수 있지만, 일 갑자가 안 되면 내공으로 처리하는 게 불가능하지.”

자운의 말을 듣고 있는 황충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운은 말을 이어나가는 걸 멈추지 않는다.

“사실 별로 강한 독은 아닌데 유명한 독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없어. 남만에서나 가끔 쓰이는 독이지. 치료제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는 않아. 근데 아는 사람이 없으니 치료제를 찾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지. 혹시 이런 독 들어봤냐, 개새끼야?”

자운이 주르륵 읊은 증상은 우천이 겪은 것이다. 단순히 병에 걸린 것인 줄 알았던 그 증상은 바로 독에 의한 중독 증상이었던 것. 기억에 있는 독이었기에 운산에게서 그 증상을 듣는 순간 이놈들이 무언가 수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 으헉!”

자운이 얼굴을 들이밀며 개새끼라고 하자 그가 대번에 숨넘어갈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자신의 옷을 움켜쥐고 있는 자운을 향해 고개를 계속해서 숙이며 살려줄 것을 비는 황충의 모습에 자운이 웃음을 터뜨린다.

“살려줘? 살려줄까?”

자운이 검을 황충의 목에 들이밀었다. 자운의 검에 살갗이 상하고 피가 검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자운이 황충을 노려보았다. 살려줄까? 살려줄까?

마치 그런 표정으로 황충을 노려보고, 황충은 계속해서 살려달라고 말하며 자운의 소매를 잡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좋아, 살려줄 수도 있어.”

살려줄 수도 있다는 자운의 말에 황충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자운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 살려만 주십시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해봐. 얼마든지 살려주지.”

“무, 묻기만 하십시오.”

그의 말에 자운이 히죽 웃어 보이고는 황충에게 물었다.

“네 뒤에 누가 있는지 말해.”

그 말에 황충의 표정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뒤에 누가 있는지 말하라니, 황충은 곧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풀고는 단번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네 뒤에 있잖아. 다른 문파. 그거 누구인지 말하라고.”

“무, 무슨 말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자운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고는 서서히 힘을 준다.

뚜둑―

어깨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며 황충이 죽는다고 소리를 쳤다.

“으아아아악!”

“시간 끌지 마라. 눈 굴리지도 말고, 머리 굴리지도 마.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으악! 으악!! 무, 뭘 다 알고 왔다는 말입니까!”

황충이 이번에도 모르는 척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마도 눈앞의 자운보다는 그 뒷배가 더 무서운 모양이다. 자운이 그의 목에 다시 검을 가져갔다.

“말해. 뒤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는 반대편 어깨를 부여잡는다. 내공이 흐르고 이번에도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조각나기 시작했다.

으득―

으드득―

“으아아아아아악!”

“팔 병신이 되기 싫으면 어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아직까지 자운이 준 공포에 비해서 뒤에 있는 놈들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황충이 필사적으로 고통을 견뎌내었다.

“말 안 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말해라.”

검을 움켜쥔 자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검날이 좀 굵은 혈관을 건드린 것인지 피가 왈칵왈칵 쏟아졌다.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다.

자신의 목에서 쏟아지는 피가 입고 있는 의복을 붉게 적시자, 황충의 눈이 미칠 것처럼 흔들렸다.

“마, 말하면 정말 살려줄 거요?”

“아까도 말했지만, 말하면 살려줄 거야.”

자운이 황충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황충을 안심시켰다.

“빨리 말해. 그럼 이것도 지혈해 줄 테니.”

황충의 목에서 솟아나는 피를 꾹 누른다. 지혈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나오는 피의 양이 훨씬 줄어들었다.

“다, 당신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오?”

“그래. 그렇게 해주지.”

황충은 지금 뒷배에 떨고 있는 것이다. 뒷배가 두려운데 죽기는 싫었다. 보호를 해준다는 자운의 말도 믿을 수가 없다.

황충은 마음속으로 모든 재산을 챙겨 시골로 들어갈 생각을 했다.

‘시골 깡촌에서 한 십 년만 살다 나와서 다른 성으로 가면 아무리 그곳이라도 나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황충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곳은 흑령문이오.”

흑령문이라 말을 할 때 황충의 혀가 살짝 떨렸다.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것. 흑령문이라는 말을 듣고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는 자운의 반응. 그 반응은 황충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그럼 이제 살려주는 것이오?”

자운이 황충을 바라본다.

냉담하다 못해 삭막한 시선. 인간적인 감정이라곤 일체 배재된 그의 시선에 황충이 몸을 흠칫 떨었다.

자운이 황충의 상처를 막고 있던 손을 뗐다. 단번에 막혀있던 피가 솟구쳤다.

황충의 눈에 의문이 어리고, 자운이 검을 치켜들었다.

“내가 널 살려줄 거라고?”

자운이 검을 더 높게 치켜들고, 황충이 눈을 크게 떴다.

황충의 눈이 심하게 떨렸다.

“사,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소?”

자운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황충의 목이 피분수와 함께 높이 치솟는다.

자운은 검을 빠르게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내었다.

“그걸 믿냐. 살려주긴 개뿔이.”

제5장

황룡문으로 돌아온 자운을 보고 우천은 기절할 뻔했다. 그의 소매에 묻어 있는 피 때문이다. 적지 않은 피의 양에 우천이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때린 겁니까!”

흑우파에서 보여줬던 신위를 생각한다면 자운이 맞았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을 패서 생긴 상처일 것이다. 그 말에 운산이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좀 격하게 했더니 많이 묻었네.”

운산과 우천이 인상을 팍 썼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격하게 팼으면 저렇게 된다는 말인가? 가장 먼저 현실을 직시한 것은 운산이었다.

운산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며 자운에게 물었다.

“죽였어요?”

자운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그럼 그 개잡놈을 살려놓을 줄 알았어?”

황충은 무공을 모르는 무림인이다. 어쩌면 관에서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 자운이 나가기 전에 우천이 한 말이다.

운산의 표정을 보고 자운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잘 태워서 파묻었으니까.”

그 말에 우천이 기겁하며 물었다.

“사람을 어떻게 했다고요?”

“사람 아냐. 시체였지. 아, 그건 그렇다 치고, 너희들 어떻게 한 점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냐?”

자운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를 보며 말했다. 오랜 시간 다녀온 것도 아닌데 그사이에 모두 먹고 없다. 자운이 뼛조각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쪽으로 던져 버리고는 운산과 우천을 바라보았다.

“그래, 배 부르냐?”

자운의 물음에 둘이 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부르다는 뜻. 둘의 고갯짓에 자운이 씨익 웃고는 남은 뼛조각들을 한쪽으로 발로 차버렸다.

“아, 그래, 배가 부르단 말이지.”

자운이 웃었다.

“그럼 이제 무공을 제대로 한번 해볼까? 기초 체력부터 시작하자고.”

운산과 우천은 황룡문의 일대제자, 이대제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약했다.

“너희들, 너무 약한 건 스스로 알고 있지?”

자운의 물음에 운산과 우천이 말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의 무공실력이 부족함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데 자운이 그 부분을 콕 집어 말하니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말을 안 하냐?”

하지만 자운은 답을 요구했다.

자운이 계속해서 눈빛으로 답을 요구하자 운산과 우천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대사형.”

“그럼 수련을 해야지. 일단 오늘은 먹은 거 소화되게 쉬어라. 내일부터 시작할 거니까.”

쉬라고 했는데도 밖에서는 검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운은 그 소리를 듣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보기보다 생각이 있고 노력을 하는 놈들이네.”

아무래도 수련 계획을 다시 짜야 할 듯하다. 저 정도면 조만간 만족할 만한 속도를 보이며 성장할 것이다. 나이를 먹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긴 하지만.

‘이거면 충분하지.’

자운이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우우웅―

손가락 끝에서 웅혼하고 정심한 내력이 맴돌고, 자운이 그것으로 탁자를 살짝 눌렀다.

우직―

탁자가 손가락 모양으로 살짝 파인다. 그 깊이는 미약했으나 자운의 손가락 자국만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럼 일단 이걸 마무리해야 하는데…….”

자운의 눈앞에는 빈 종이와 갈다 만 먹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무공을 열거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운이 자신의 앞에 놓인 백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 불만 나지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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