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8화 (8/175)

# 8

제 딴에는 기를 죽이기 위한 행태. 하나 자운에게는 그저 웃음거리로 보일 뿐이었다. 자운이 다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마빡 터져 나간다. 좋은 말로 할 때 황충인가 누런 벌레인가 하는 노친네 기어 나오라고 해라.”

자운을 노려보던 놈이 무어라 소리치려 했다.

“너 이 새끼, 넌 누구…….”

뻐억―

그 순간 놈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이마가 터져 나갔다. 자운이 검의 운두로 때린 것. 한 번에 놈이 뒤로 나가떨어진다.

“마빡 터진다고 했지. 그것보다 내가 누구긴 누구겠어. 딱 보면 알지.”

자운이 쓰러진 녀석을 발로 뻥 차며 말했다.

“너네 적이지.”

자운의 일검을 막을 만한 무인은 지금 이곳에 없었다. 베고 때리고 밀어내고, 마지막으로 찔러 넣는 그 기술은 그야말로 신기. 일검즉살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운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자 자운을 향해서 검을 겨누는 인물들이 여과없이 썰려 나갔다.

거대한 파도에 쓸려 나간 이들은 단순간에 절명, 생을 달리 하고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벌써 이십에 가까운 적을 베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운에게서는 전혀 지친 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황충이 나온 것은 그때였다. 저 먼 곳에서 황충이 모습을 드러내고, 황충의 부하들이 그를 불렀다.

“황 노야!”

자운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단번에 황충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아, 네가 황충이라는 노란 벌레구나.”

자운이 휙 하고 검을 휘두르고, 불똥이 튀었다.

까강―

누군가가 자운의 검을 막은 탓. 자운은 자신의 검을 막은 셋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아, 그래도 버러지가 돈이 많으니까 개가 꼬이는구나.”

자운의 눈에 비친 적들은 호랑이나 용 따위가 아니다. 늑대도 되지 못한, 개 수준이었다.

“이놈이?”

자신들을 개에 비교하자 황충을 지키던 이 중 하나가 소리치며 자운을 향해 주먹을 쏟아내었다.

자운의 몸이 휙 흔들리며 놈의 뒤로 돌아간다.

“그렇게 느려서 누가 맞겠냐?

천천히 검을 휘두르는 자운. 검은 느렸으나 감히 막을 수 없다. 자운의 검이 느리게 허공을 가르고, 뒤이어 놈들 중 하나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화악 치솟는 피분수.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동료 둘과 황충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대충!”

“걱정하지 마. 너도 곧 따라갈 테니.”

자운이 다시 검을 움직였다. 검끝이 두 개로 갈라지며 허공에서 찌르기를 연발했다.

검이 비처럼 떨어진다 싶었을 때, 다른 하나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수십 발의 검이 꽂혀든 놈의 몸은 그야말로 벌집이다. 여러 군데서 동시에 피분수가 치솟고, 자운의 검에 찍힌 녀석은 그대로 절명했다.

황충이 수하의 이름을 불렀다.

“지은!”

안 어울리게 여성스러운 이름. 자운이 피식 웃었다.

“이제 너도 죽어라.”

자운이 남은 호위의 목을 베었다. 단번에 뼈까지 베여 나가며 피가 솟구치고, 자운은 시기적절하게 몸을 뺐기에 온몸에 피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아, 난 다 죽일 생각 없었고, 황충이라는 노인네랑 이야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자운이 고개를 돌려 황충을 바라보았다. 황충은 온몸이 떨리면서도 자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먼저 칼을 들이미니까 이렇게 되었잖아. 안타깝네.”

자운이 웃으며 황충을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몸을 움직이는 자운이 검을 장난스럽게 허공에 휘둘렀다.

쩌억―

황충의 양옆에 있던 벽이 단번에 잘려 나간다. 검기인지 검풍인지 알 수 없는 것. 노린 것이 황충이었다면 단번에 황충의 목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으으으으으.”

황충은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살아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흑의인이 나서준다면 놈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흑의인에게 자신은 그저 대역에 불과했다.

꼭두각시 인형. 인형이 망가지면 바꾸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래도 흑의인을 이용하면 살 수 있으리라.

황충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 흑의인을 나오게 할 방법을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응?”

자운이 황충을 향해 점점 다가온다. 그 순간, 황충이 목숨을 구할 방도를 생각해 내고는 크게 소리쳤다.

“저놈, 저놈이 흑우파를 몰살시킨 놈입니다!”

살기 위해 말한 것이나 틀린 말은 아니다.

자운이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답인데, 어떻게 알았지?”

순간 황충은 ‘저 미친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고, 황충의 뒤로 살짝 열린 방에서 비도가 날아들었다.

자운이 검을 들어 비도를 막고, 비도와 검이 충돌하며 불똥이 튀었다.

따당―

휘익―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며 황충의 앞으로 검은 옷자락이 날아들었다. 흑의인이 자운의 앞에 내려선 것. 흑의인이 자운을 향해 물었다.

“네가 흑우파를 멸문시킨 놈이 확실한가?”

“아, 그거? 내가 하기는 했지. 왜?”

흑의인의 눈이 가라앉았다.

“네놈을 죽여야겠구나.”

“아서라, 아가야. 그러다가 네가 죽는 수가 있다.”

자운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눈앞에 있는 놈은 늑대 정도 되나 했더니 역시 개다. 그래도 좀 훈련된 개라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제법 귀엽기까지 하다.

자운의 말에 흑의인이 양손으로 소검을 움켜쥐었다. 내공이 솟구쳐 소검으로 향하고, 흑의인에게만 들리는 소리가 울렸다.

우르릉―

“네놈, 찢어 죽인다!”

많은 양의 내공이 두 개의 소검으로 집중되는 소리. 자운이 먼저 검을 쑥 찔러 넣었다.

“네까짓 게?”

자운의 검에서 힘이 폭발했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검과 검이 충돌하고, 내공을 단단하게 끌어올려 놓았던 덕분에 흑의인의 몸이 뒤로 날려 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반보 정도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거 봐. 안 된다니까.”

“흥, 이 정도에 밀릴까?”

흑의인이 두 개의 소검을 비틀었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소검이 빙글빙글 돌며 바람을 뿌린다. 자운이 검을 거두어들였다. 소검에서 뿜어진 바람이 자운의 검에 충돌하고, 자운이 검을 휘둘러 모든 바람을 빗겨내었다.

그 순간, 흑의인이 비호처럼 자운을 향해 달려든다. 허공으로 녹아내리는 흑의인의 몸. 전형적인 살수의 보법이었다.

자운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충 예상은 했는데, 살수가 처음부터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면 어떡해, 이 삼류야. 푸하하하하!”

자운의 웃음이 신경에 거슬렸던 탓일까?

자운을 향해 그가 비도를 뿌렸다. 다섯 개의 비도가 자운을 향해 빠르게 날아든다. 하나 자운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발치 아래에서 바람이 불고, 그의 소맷자락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단번에 손끝에서 다섯 줄기의 경력이 뿜어졌다.

따다다당―

경력이 비도와 충돌했다. 비도는 허공에서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자운이 한 걸음을 성큼 움직였다.

바로 그곳은 비도가 날아온 곳, 흑의인이 몸을 숨기고 있는 담벼락의 그림자 아래였다.

흑의인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나고, 그 모습을 보며 자운이 물었다.

“잔재주는 이게 전부인가?”

이죽거리는 자운의 미소. 자운이 검을 횡으로 내리긋는다. 그리고 흑의인은 다시 몸을 숨겼다.

거검에서 강력한 힘이 솟구치며 일곱 개의 가로 선이 그어졌다.

단번에 일곱 줄기의 검격이 허공으로 비산하고, 사방으로 비산한 검격에 흑의인이 걸려들었다.

“큭!”

어깨가 살짝 베이는 신음. 신음성은 최대한 죽였지만 자운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또한 찰나지간에 흘러내린 어깨의 핏물을 숨길수도 없었다.

자운은 피가 떨어지고 신음성이 들린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숨으면 좋냐?”

허공에 수도를 내리긋는 자운. 자운의 손에 흑의인의 갈비뼈가 나갔다.

뚜둑―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신음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흑의인의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자운이 놈을 향해서 걸어갔다.

“자, 그래, 누가 누굴 죽인다고 했더라?”

“크윽…….”

흑의인이 신음을 흘리며 자운을 노려보았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렀다. 다시 어둠 속에 녹아들기 위해선 호흡 조절이 중요했다.

노린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폐에 구멍이 났으니 호흡 조절은 고사하고 조금 있으면 당연히 죽을 것이다.

자운이 히죽 웃었다.

“왜? 폐에 구멍이라도 났어?”

그 순간, 흑의인은 머리가 띵 울리는 충격을 받았다. 놈은 애초에 자신이 숨어든 곳을 알고 있었다. 그전에 검기를 비산시켜 위치를 찾은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실력을 숨기기 위한 속셈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으니 자신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정확하게 폐를 찌를 수 있었으리라.

“네, 네놈 실력을.”

“아, 쉿. 거기까지.”

자운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놈의 왼쪽 가슴을 단번에 꿰뚫어 버린다.

심장을 뚫렸으니 더 이상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놈은 자운을 향해 눈을 부릅뜨더니 그 자리에서 고개가 거꾸러졌다.

“별 것도 아닌 게 사람 귀찮게 하고 있어.”

자운이 몸을 빙글 돌려 황충을 바라보았다. 황충은 흑의인이 당하는 것을 보고 도망가기 시작한 지 오래. 자운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가볍게 발걸음에서 폭풍 같은 거력이 일어나고, 한줄기 섬광이 쏘아진 것처럼 빠르게 자운이 이동했다.

이동해 내려선 것은 황충의 바로 앞. 자운이 가볍게 황충의 앞에 내려선다.

“어딜.”

자운이 손을 뻗었다. 자운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충이 손을 휘둘렀으나 무공을 하나도 배우지 못한 황충이 무공을 익힌 자운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운의 손에 대번에 황충이 딸려 들어오고, 황충의 옷깃을 움켜쥔 자운이 그를 향해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

자운이 자신의 수하들을 아주 쉽게 죽이는 장면을 보아왔다. 지금까지는 민초들에게 그가 저승의 염왕처럼 보였겠지만, 지금 황충의 눈에는 자운이 그렇게 보일 것이다.

“모, 모릅니다.”

황충은 어느새 자신보다 새빨갛게 어려 보이는 자운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과 다리는 겁을 먹어 오들오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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