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7화 (7/175)

# 7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운의 표정이 냉담해졌다.

“천 사제가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몸이 차갑게 식어가더니 온몸에 열이 하나도 없는데 가슴에서는 열꽃이 피고 붉은 반점이 솟아났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잔병치레가 늘어갔지요.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봤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이제 대충 알 것 같았다. 자운이 툭 말을 내뱉었다.

“그때 치료할 수 있다는 의원이 나타나서 큰돈을 요구했겠지?”

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염왕채에 손을 벌렸다.

“그 염왕채 뒤에 황충(黃蟲)의 염왕채가 있었습니다.”

“황충?”

“황룡문의 땅을 내어놓으라고 하는 염왕채의 주인입니다.”

자운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일의 대략적인 면모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 이 순진한 놈들이 모르는 다른 것이 있음을 자운은 눈치 챈 것이다.

하지만 자운은 빠르게 표정을 바꾸며 혀를 찼다.

“쯧쯧, 그래서 일을 한 돈은 전부 그쪽으로 뺏겼겠구만.”

자운의 말에 우천과 운산은 답을 하는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자운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거 완전히 개판이네.’

자운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운산과 우천을 마주했다.

“이건 내가 해결하고 올 테니 너희는 고기나 먹고 있어라.”

자운이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운산과 우천이 황급하게 자운을 바라보았다.

“대사형이 어떻게 해결을…….”

말을 하던 그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어떻게 해결할지 눈에 선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자운의 주먹이 말아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안 됩니다!”

우천이 자운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그 바람에 낡은 옷이 부욱 하는 소리를 내며 찢어지고, 자운의 한쪽 다리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거 안 놔? 옷 찢어져서 춥잖아. 이거 놓으라고.”

자운은 자신의 옷을 잡고 매달리는 우천의 이마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때렸다.

“가서 주먹 휘두르고 다 부수려고 그러죠! 안 됩니다. 안돼요. 황충의 염왕채 아래에 무림인이 있다고는 하지만 황충은 엄밀하게 무공을 하나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을 죽였다가는 관에서 움직일 겁니다.”

“죽이긴 누가 누굴 죽인대. 내가 사파의 대마두냐? 네가 죽어볼래?”

자운의 말에 우천이 더욱 강하게 자운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럼 어쩔 건데요?”

“어쩌긴 뭘 어떡해. 내가 폐관에 접어들기 전 전장에 맡겨 놓은 돈이 조금 많아. 그러니까 그걸로 빚을 갚는다고. 이것 좀 놔라.”

“부족하면요?”

“부족하면 그땐 좀 때리면 되고.”

자운의 바지를 움켜쥔 우천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안 돼요!!”

자운이 빽 소리쳤다.

“아, 젠장! 이것 좀 놓아라!”

제4장

황룡문을 나서며 자운은 두 팔을 빙글빙글 돌렸다. 운산에게 황충의 염왕채가 어디 있는지는 이미 듣고 나왔으니 이제 움직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정장에 모아 놓은 돈?

물론 있기는 있었다. 그게 이백 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지. 이백 년 전에 돈을 맡겼는데 이제야 찾아가서 내놓으라고 하면 얼마나 미친놈 취급을 할까?

애초에 자운은 애초에 돈을 줄 생각이 없었다.

황충의 염왕채로 향하는 자운의 걸음에 힘이 실리고 눈에서 냉기가 풀풀 뿜어진다.

“자, 그래, 어디 한번 움직여 보자.”

자운의 뒤로 바람이 불고 모래가 휘날렸다.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고, 곧 다시 바람이 불어 모래바람이 밀려났다. 그 자리에 자운의 신형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땅으로 꺼진 듯.

자운이 다시 솟아난 곳은 운산에게 들은 염왕채의 앞이었다. 자운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좌우를 살피며 말했다.

“이야, 민초들 피 빨아먹고 사는 놈 집치고는 너무 좋네.”

자운의 입에서 으드득 하고 이 갈리는 소리가 난다. 얼굴은 웃고 있으나 냉기가 풀풀 풍겨 마치 저승사자를 마주 하는 듯하다. 자운이 슥 하고 좌수를 뻗었다.

좌수의 손가락이 확 펼쳐지며 염왕채의 문을 세게 때린다.

콰과과광―

그 일이 일어날 무렵 황충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흑우파가 멸문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사실 흑우파와 황충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목적은 황룡문의 부지를 매입하라는 것이었고, 그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둘은 불철주야 힘을 쓰고 있었다.

한데 그 흑우파가 멸문했다고 한다. 황룡문의 손에 말이다.

황충이 늙은 손톱을 이빨로 딱딱 씹었다.

“으으, 으으으, 어쩌지? 어떡하지?”

무언가 불안한 듯 황충이 좌우를 살핀다. 오늘은 장에서 사람이 오기로 한 날이다. 한데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고, 흑우파가 멸문하는 것을 수수방관하고만 있었으니 문에서 나온 사람이 그를 가만둘 리 없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지?”

아니나 다를까?

분명히 아무것도 없던 황충의 뒤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황충이 기겁을 하며 앞으로 넘어졌다.

“으아아아악!”

그 비명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 황충의 부하들이 달려올 법도 한데 그 누구도 오지 않는다.

‘기파로 차단했구나.’

많이 봐온 광경이라 황충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떨리는 손과 다리는 숨길 수 없었다.

황충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흑색의 피풍의를 입은 이가 걸어나왔다.

어둠이 일렁이는 곳에서 천천히 그가 걸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어둠이 뭉쳐져 사람 형상을 이룬 듯 했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황충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황충을 내려다본다.

“흑우파가 멸문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나?”

그의 물음에 황충이 겁에 떨면서도 상 위에 있는 문서를 집어 그의 앞에 두 손으로 넘겨주었다.

공손한 자세다. 흑의인이 그것을 받아 들고 시선을 넘기는 동안 황충은 고개를 숙이며 구석으로 물러나 있었다.

황충의 부하들은 단 한 번도 황충의 저러한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황충이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흑의인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다.

문서를 읽어 내려가던 흑의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꾸깃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문서가 단번에 구겨졌다.

“지금 이 말을 믿으라는 건가?”

“조, 조사 결과 그렇습니다.”

조사 결과를 처음 받아봤을 때, 그 내용은 황충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다 죽어가던 황룡문이 어떻게 흑우파를 멸문시킨단 말이냐!!”

사내가 크게 소리쳤다. 그렇다. 사내가 믿을 수 없는 것은 황룡문이 바로 흑우파를 멸문시켰다는 말이다.

“다른 이가 있었던 듯합니다.”

황충이 목소리를 잘게 떨며 답했다. 흑우파가 멸문당한 당시에 황룡문의 문도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개입한 것 역시 사실로 드러났다.

한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흑우파의 무사들이 모두 일 검에 즉살당했다는 것이다.

일 검에 한 명이 죽어 나간다.

이것은 그가 파악하고 있는 황룡문도, 운산과 우천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분명 다른 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방수가 있었단 말이지? 그래서?”

“예?”

“그래서?”

흑의인의 목소리가 고압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황룡문의 땅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말이지?”

그가 입술을 곱씹는다. 황충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단번에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황충의 몸이 단번에 낮아진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꼭 황룡문을 비워놓겠습니다.”

“흥! 그 말은 저번에도 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이번에는 정말입니다.”

그가 눈물콧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황충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애원하지 않으면 그의 목은 단번에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 황충의 호위무사가 이자의 손에 그렇게 되었다. 사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자, 이자가 바로 그 자다.

흑의인은 한참 황충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기회야.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의 소매춤에서 비수가 쏘아졌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비수가 뇌전처럼 허공을 갈랐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황충의 어깨보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높은 곳에 꽂혀 들었다.

부르르―

황충이 흔들리는 눈을 슬며시 돌려 벽에 박힌 비수를 바라보았다. 비수는 아직 여력을 잃지 않고 떨리고 있었고,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만 낮은 곳에 박혔더라면 황충의 팔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으으…….’

황충이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황충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극도로 겁을 먹어 몸을 유지할 힘이 풀린 것이다.

“네 팔을 가져갈 것이다.”

사내의 말에 황충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난 것은.

콰앙―

그 소리에 황충과 흑의인의 시선이 모두 밖으로 향하고, 황충의 부하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운의 손끝에서 염왕채의 정문이 터져 나갔다.

콰앙―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박살이 나 사방으로 비산하고, 자운은 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놈이 낡은 옷을 입고 한쪽 다리를 휑하니 드러내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바라본 다른 이들의 시선이 어떠할까?

미친놈?

그에 준하는 시선으로 자운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들의 눈에 자운의 허리춤에 걸린 검이 들어왔다.

자운의 검이 스르릉 하고 뽑혀져 나왔다. 그리고는 이죽이듯 말한다.

“여기 황충이라는 노인네 있지? 나오라고 해.”

자운의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의 움직임이 한순간 멈췄다. 단번에 염왕채로 쳐들어와서는 한다는 말이 뭐?

자운이 사방을 에워싸는 황충의 수하들을 노려보았다. 아마도 이들이 황충의 아래에 있다는 삼류 문파의 잡졸들일 것이다.

자운이 그들의 기세를 가늠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을 자신들에 대한 비웃음으로 정확하게 해석한 그들이 이마에 핏줄이 붉어져 나올 정도로 힘을 주며 자운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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