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황룡문으로 돌아간 자운이 처음으로 본 것은 연무장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운산과 우천의 모습이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옷이 흠뻑 젖어 있는 것이 꽤나 오랜 시간을 수련에 몰두한 모습. 하지만 자운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둘의 실력이 모두 일대제자와 이대제자라고 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어딜 봐서 직도황룡이냐!”
자운의 말에 운산과 우천이 동시에 자운을 바라보았다.
“대사형, 아침부터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운산의 말에 자운이 손을 휙휙 휘두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뭐 별거 아냐. 잠깐 일이 있었어. 그것보다 너, 직도황룡 다시 해봐. 그리고 너도.”
자운이 운산과 우천에게 말했다.
“직도황룡이요?”
의문을 표하는 운산과 달리 우천은 자운의 앞에서 직도황룡을 펼쳤다.
검이 일직선으로 허공을 내리긋는다. 마치 태산압정과 같은 초식. 하지만 직도황룡으로서의 멋은 전혀 살아나지 않았다.
“쯧. 다시 묻지 말고 너도 펼쳐 봐.”
자운의 득달에 운산도 어쩔 수 없이 자세를 잡고 직도황룡을 펼쳤다. 한데 그 직도황룡이 일대제자인 운산이 펼친 것과 이대제자인 우천이 펼친 것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삼류라고 부르긴 힘들지만 이류라고 하기도 힘든데.’
아무리 스승 없이 홀로 익힌 무공이라곤 하지만 기본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자운은 고개를 한번 절레절레 흔들고는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자운의 태도에 운산이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까?”
직도황룡은 황룡문의 무공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그것에 대해서 문파의 대사형인 자운이 불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자 걱정이 된 것이다.
“그게 어딜 봐서 직도황룡이냐. 잘 봐라.”
자운이 허리춤에서 낡은 검을 뽑았다. 검을 바꾸고자 하면 바꿀 수야 있지만 함께 이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온 녀석이라 생각하니 괜스레 정이 들어 바꿀 수 없는 검. 검이 풍압을 일으키며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상(上)에서 하(下)로 양단(兩斷)하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수법과 같이 보이는 초식. 허공에서 바람이 뿜어지고, 자운의 검이 다섯 번의 바람을 일으켰다.
변화의 중심이 되는 내려긋기는 그야말로 황룡이다. 황룡의 어금니와 몸뚱이가 한 번의 내려긋기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섯 번의 변화.
전황룡좌조(前黃龍左爪).
전황룡우조(前黃龍右爪).
후황룡좌조(後黃龍左爪).
후황룡우조(後黃龍右爪).
황룡미(黃龍尾).
앞발의 손톱과 뒷발의 손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꿈틀거리는 황룡의 꼬리가 힘차게 허공을 갈랐고, 어느새 검은 바람 소리와 함께 검갑 속으로 갈무리되어 있었다.
파파바바바방―
쑤아앙―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 그리고 뒤이어 검이 납검되는 소리가 들렸다.
착―
“이게 직도황룡이다.”
물론 여타의 직도황룡보다 강하게 보인 것은 자운의 거칠 것 없는 내력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자운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총 다섯 번에 이르는 변화,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가 뭔지 알겠어?”
운산과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생각한 직도황룡은 이 정도로 강맹하지 못했다. 또한 저토록 선명한 변화라니!
그들이 고개를 들어 자운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뭐해? 알았으면 너희가 해봐.”
“저희가요?”
“그럼 안 할 생각이었냐? 맞을래? 어서 해봐.”
자운의 독촉에 운산이 먼저 검을 쥐었다. 검끝을 바라보는 운산의 눈이 가볍게 떨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배에 힘을 주고, 기합을 가득 넣어라.”
옆에서 자운이 충고를 던져 주자 근육을 꽉 당겨 배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큰 기합성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흐아아아압!”
휘이잉―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고, 운산 나름대로 변화가 가미되었다. 검을 내려놓는 운산이 자운을 향해서 묻는다.
“하아, 미치겠네.”
운산을 보며 자운은 이마를 잡았다.
“이놈아, 내가 변화를 주라고 했지, 곡선을 그리라고 했냐?”
직도황룡의 기본은 태산압정과 같은 내려긋기다. 한데 운산은 내려긋기가 아니라 다섯 번 꿈틀거리는 곡선을 그려 버렸다.
변화는 다섯 번이 있으나 직도황룡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야, 이번엔 네가 해봐라.”
“제가요?”
“그래, 너. 너 말고 내가 지금 지목할 사람이 또 누가 있겠냐?”
자운이 우천의 몸을 콕콕 찔렀다. 우천 역시 운산과 마찬가지로 자세를 잡았다. 직도황룡은 황룡문의 기본이 되는 무공이다. 초식을 펼치기 전 자세가 어려운 것은 아닌지라 우천과 운산 모두 그 자세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었다.
수아앙―
또다시 검이 바람을 갈랐다.
‘문제는 그 뒤가 안 된다는 거지.’
이번에도 정확하지 못했다. 자운이 다가가 우천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너도 틀렸다. 왜 이걸 못하는 거냐, 이걸. 팔에 충분한 근력만 있으…응?”
우천의 팔을 잡은 그가 의문을 표했다. 근육이 느껴져야 할 팔에서 느껴진 것은 근육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운이 운산도 불렀다.
“야, 너도 이리 좀 와바.”
자운이 부르자 운산 역시 자운을 향해 다가갔고, 자운이 손을 뻗어 운산의 팔을 잡았다.
“하아! 이거 뼈밖에 없네? 너네 그동안 뭘 먹고 산 거냐? 그보다 오늘 아침은 먹은거냐?”
우천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둘이 아침을 먹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려고 한 순간이었다.
자운이 그 소리를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먹기는 뭘 먹어. 아무것도 안 먹은 소리가 들리네.”
자운은 운산과 우천의 손을 잡아끌고는 성큼성큼 부엌으로 들어갔다. 무엇이라도 해 먹일 심산이었다. 하지만 자운이 부엌에서 발견한 것은 더욱 황당했다.
“뭐야? 쌀독이 비었어? 그보다 왜 먹을 게 물밖에 없어? 니네 물만 먹고 살았냐?”
모든 쌀독이 비어 있고, 그나마 차 있는 것은 물 항아리였다.
“설마 쌀 살 돈도 없는 거야? 일하면 되잖아. 너희들을 보면 무인이라고 평범한 일은 안 할 그런 녀석들은 아닌 것 같고, 왜 쌀독이 비어 있는 거냐? 설명을 좀 해봐.”
그러고 보니 자운도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은 기억이 없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생각해 보니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게 아니라 이백 년 전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 괜히 배가 더 고파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운의 뱃속에서도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기다려 봐. 일단 뭣 좀 먹고 하자.”
황룡문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온 자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사슴 한 마리와 꿩 두 마리였다.
꿩은 아직까지 살아서 푸드득거리고 있었고, 사슴은 점혈이 된 것인지 눈과 입을 껌뻑거리면서도 자운의 등에 메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 동물을 좀 잡아왔어. 뭔가 있는 건 눈치챘으니까 숨길 생각 하지 말고, 우리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자운은 능숙하게 동물의 껍질을 벗겨내고 불을 피웠다.
손끝에서 내공을 충돌시켜 불을 일으킨다. 화섭자가 아니라 손으로 만들어내는 불길이 마른 나무에 옮겨 붙었다.
화악―
그 모습을 보고 우천이 소리쳤다.
“삼매진화!!”
“삼매진화 처음 보냐?”
예전의 자운이었다면 삼매진화는 무리는 알고 있어도 내공의 부족으로 직접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자운은 내공이 넘쳐난다.
넘쳐나는 내공으로 불을 붙이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자운의 손에서 다듬어진 고기가 불에 구워지기 시작하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이윽고 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자운은 그중 일부를 손에 들며 말했다.
“일단 배고플 테니 먹어.”
자운의 허락이 떨어지자 운산과 우천의 손이 머뭇머뭇 고기를 향해 다가온다.
마치 이 고기를 진짜로 먹어도 될까 하고 망설이는 모습. 자운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린 고기를 크게 베어 물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 그냥 먹어라.”
그제야 고기를 한 조각씩 입으로 가져가는 운산과 우천. 자운의 눈에 못 먹어서 앙상하게 마른 그 들의 두 팔이 들어왔다.
‘쯧쯧, 그러니까 좀 잘 먹어야 할 거 아냐.’
그들이 어느 정도 고기로 배를 채우자 자운이 운산에게 묻는다.
“자, 그럼 설명들을 좀 해봐. 어디 들어나 보자.”
왜 쌀독이 비어 있는가? 우천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운산이 만류했다.
“사형, 이건 저 때문이니 꼭 말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우천은 그런 운산의 만류를 뒤로하고 입을 열었다.
“사실 황룡문을 넘기라고 하는 곳은 흑우파뿐만이 아닙니다.”
그 말에 자운이 미간을 꿈틀 움직였다. 흑우파 말고도 또 그런 개잡놈이 있다는 말이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한 자운의 반응에 순간 우천은 움찔하였으나 곧 말을 이어나갔다.
“있어요. 그런 개잡놈이.”
우천의 입에서 개잡놈이라는 말이 나오자 오히려 움찔한 것은 자운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개잡놈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대사형?”
자운이 두 손을 흔들었다.
“아니, 네 입에서 개잡놈이라는 소리가 나오니까 별로 안 어울리는 거 같아서. 일단 계속해 봐.”
“그런가요? 대사형이 쓰시기에 저도 한번 써봤는데 안 어울리는 모양이네요. 일단 그쪽은 문파가 아니라 삼류 사파 몇 개를 아래에 두고 있는 염왕채입니다.”
“사파가 염왕채를 아래에 둔 게 아니라 염왕채가 사파를 아래에 둬? 이거 꼴이 웃기네. 근데 그게 우리 쌀독이랑 무슨 상관인 거야?”
보통의 경우는 사파의 아래에 염왕채가 있다.
사파가 수입원으로써 염왕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흑우파의 이권을 가져오면서 그 염왕채가 몇 개 딸려왔다.
물론 정리해 버릴 생각이었지만, 흑우파의 일에서 알 수 있듯 염왕채는 사파의 아래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데 이 경우는 그 반대라고 한다. 사파 몇 개위에 염왕채가 있다고 한다.
말을 들어보니 염왕채의 규모가 작지 않은 모양이다. 자운이 입술을 씹었다.
그동안 말을 한 것은 우천이 아니라 운산이었다. 운산이 침통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가 그 염왕채에 빚이 있어요.”
“빚? 왜 빚을 졌지? 알면서 사채를 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