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5화 (5/175)

# 5

그리고는 아직 살아 있는 흑우파의 잔당들에게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이제 흑우파의 모든 이권은 황룡문이 접수한다!”

그것은 황룡문의 새 출발을 알리는 자운 스스로의 다짐과도 같은 것이었다.

* * *

그날 밤 자운은 우천과 운산을 찾았다. 그들을 찾은 그의 손에는 흑우파에서 가져온 서류가 하나 가득 들려 있었고, 그 중 일부를 우천과 운산에게 주었다.

“이거 읽어보고 정리들 해.”

갑작스럽게 서류 뭉치를 들려주자 운산과 우천이 이것이 무엇이냐는 눈으로 자운을 바라본다.

“대사형, 이게 뭡니까?”

처음에는 인정을 하지 못한다, 어떻데 말이 많던 운산도 이제는 자운을 인정하는 모양이다. 그를 대사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배분의 차이가 훨씬 많이 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중간 과정을 이해시킬 방법도, 방도도 없었기에 자운은 그러려니 하고 대사형 역할을 하고 있었다.

“뭐긴 뭐야, 흑우파에서 가져온 문서지. 흑우파의 영역과 이권에 관련된 거니까 읽어보고 불법적인 건 정리해 버리고 합법적인 것만 취해.”

흑우파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주변에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파. 그 사파가 가진 사업장을 흡수한다면 지금 부실한 황룡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흑우파가 운영하는 사업에는 크게 도박장과 기루, 그리고 고리대금업이 있었는데 그 중 도박장과 고리대금업은 정파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자운은 그것을 정리해 버리라고 한 것. 그 외의 문서들은 자운이 챙겼다.

운산과 우천이 흑우파의 영역과 이권에 관한 문서를 확인하는 동안, 자운은 남은 문서를 읽어 내렸다. 황룡문을 이렇게 업신여긴 것이 흑우파만의 소행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던 것. 흑우파의 힘이 주변에 적은 것은 아니나 그 재정이 황룡문의 모든 부지를 사 들일 만큼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 자금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자운의 머리를 헤집은 의문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흑우파에서도 기밀로 보관하는 문서를 읽어 내리는 중이었다.

“쯧쯧. 이놈들, 더러운 짓을 참 많이 해먹었네.”

한데 그 문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가관이다. 관에 뇌물을 준 장부뿐만 아니라 갖가지 더러운 일들이 많이 나왔다.

보면 볼수록 가관 그 자체. 자운은 혀를 차며 다음 장으로 문서를 넘겼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을 사로잡은 부분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자운은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해 문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다.

‘역시 흑우파 따위가 이 큰 땅을 다 사들이는 건 무리지.’

황룡문이 가지고 있는 토지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대문파였던 만큼 그 부지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또한 황룡문의 이름으로 된 산도 몇 개가 있다. 지금은 관리할 능력이 없어 주인 없는 산처럼 취급되고 있으나, 분명 황룡문의 소유로 된 산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운은 흑우파가 감히 황룡문의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문서를 찾은 것이다.

자운이 그 문서를 보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과연, 그런 게 있단 말이지?”

자운이 문서를 덮었다.

제3장

“자, 그럼 못난 제자 놈이 사부를 한번 만나보러 가볼까?”

자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침 해가 어슴푸레 떠오고 있을 무렵이었으나 자운은 잠도 없는지 용케도 그 무렵에 일어났다.

방문을 열자 낡은 복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차가운 새벽 공기와 습기가 자운의 온몸을 촉촉하게 적셨다.

자운은 뚜둑 소리가 나도록 목을 좌우로 한 번 꺾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 그 목적지는 황룡문의 소유로 된 뒤편에 위치한 산이었다.

황룡문의 선대 문주들의 묘가 있는 산이나 이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도 없을 것이다. 십오 년 전이라고 하면 우천과 운산 역시 어린 시절이었으니 그 산에 문주들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을 것이다.

“과연, 관리가 되어 있을 리가 없지.”

산의 입구에서 자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길이 있었던 흔적은 남아 있으나 이미 이것은 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자란 풀이 눈앞을 가리고, 자운의 발아래에는 새벽 물기를 가득 머금은 잡초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운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본래 수풀을 해치기 위해서는 박도가 좋으나 검 끝에 힘을 조금만 더 실어주기만 한다면 일반 검도 박도와 같은 힘을 낼 수 있었다.

자운의 눈앞에서 풀이 휙휙 잘려 나갔다. 발 아래쪽에 있는 습기 가득 찬 잡초는 어찌할 수 없지만 이렇게 하니 그나마 길처럼 보인다. 자운은 바닥에 나 있는 흔적과 기억을 더듬어 천천히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휙휙―

그의 양옆으로 잘려 나간 잔가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자운이 만들어진 길로 걸음을 성큼성큼 옮긴다.

얼마쯤 걸었을까?

마침내 목적한 곳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운이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느린 걸음으로 움직여 당도한 곳, 자운의 시선이 천천히 추억을 더듬는다.

“여기도 역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네.”

솟아오른 봉분들이 이곳이 묘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 줄 뿐, 봉분의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자운은 천천히 초대 개파조사의 묘를 시작으로 하나씩 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무덤 위로 솟아난 잔풀을 쳐내고, 묘비에 얽혀든 덩굴을 잘라낸다. 그리고 먼지를 털어내고는 다음 묘로 이동했다.

그렇게 천천히 자운은 모든 모를 정리했다.

그 다음으로 그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그의 스승이 있는 곳이다.

황룡검존 함선소의 묘. 묘비의 먼지를 털어내며 봐두었던 이름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자운의 걸음이 멈추고, 자운의 눈에 두 개의 묘가 모습을 드러낸다.

황룡검존 함선소. 스승의 묘와 그 옆에 있는 묘.

묘의 주인은 추소룡이었다. 자운이 짤막하게 그들을 불렀다.

“스승님, 그리고 사형.”

추소룡. 함선소의 첫째 제자로 자운에게는 대사형뻘 되는 인물이다. 함선소 사후 그가 황룡문의 문주가 된 모양이다. 자운이 양손으로 두 개의 묘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묘를 쓰다듬는 자운의 손길에 따스함이 느껴지고, 자운이 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아니, 예전처럼 편하게 노친네라고 불러도 되겠지?”

자운이 우스갯소리를 흘리며 눈을 휘었다. 자운의 눈이 부드럽게 휘고, 어디선가 당장에라도 함선소가 나타나 검집째로 자운의 이마를 후려칠 것만 같았다.

하나 그 모든 것은 추억 속이다. 이제 함선소는 이 세상에 없다.

그의 대사형인 추소룡을 비롯한 다른 사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현실이고, 적응을 해야 한다.

“노친네야, 벌써 이백 년이 지났대, 벌써 이백 년이.”

폐관에서 나오지 않는 제자를 얼마나 걱정했을까.

얼마나 걱정하고 초조해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겠지?

대사형 추소룡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했겠지.

하지만 이렇게 돌아왔다.

“내가 돌아왔어.”

그러니까 좀 일어나.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운이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지는 않았지만 꽤 먼 곳까지 보이는 위치. 지평선이 보인다. 하나 자운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자운이 허리춤의 검을 움켜쥐었다.

“황룡문의 꼴이 개판이더라.”

개판도 그런 개판일 수가 없다. 그야말로 가관. 대황룡문이 저리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스승은 물론 그의 대사형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운이 괜히 발로 바닥에 돌을 차내었다.

지평선 너머, 자운의 시선이 지평선 너머를 향했다.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은 고작 시선이 닿는 곳이 아니다.

“천하!”

자운이 마치 이곳에 없는 누군가에게 들으라고 소리치는 듯 크게 소리쳤다.

“천하제일문!”

허공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노친네랑 대사형이 맨날 노래를 불렀지. 천하제일문.”

그가 주먹을 꾸욱 움켜쥐고 산 아래를 응시한다. 그의 눈앞에 광활한 천하가 펼쳐지고, 자운이 그 전부를 손에 쥐듯 주먹을 폈다가 다시 한 번 꽈악 말아 쥐었다.

“천하제일문, 내가 노친네랑 대사형의 꿈을 이루어줄게.”

그 역시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의가 아니었다고는 해도 고작 이런 황룡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백 년을 잠만 처잔 것은 아니다.

“위에서 기다려.”

황룡문이 천하제일이 되는 그날까지.

자운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말아 쥐었다.

꽈악―

* * *

산의 뒤쪽으로 돌아간 자운은 천천히 산의 아래쪽에서부터 산을 더듬었다. 눈을 좌우로 굴리며 산을 더듬어 나가는 것이 꼭 무언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하면 다가가 그 부분을 손으로 더듬었다.

“여기도 아닌데, 정말로 여기서 맥(脈)이 나왔다는 말이지.”

자운이 찾고 있는 것은 금맥(金脈)이었다. 흑우파에서 가져온 문서에 의하면 소문은 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흑우파에 개입한 문파가 노리는 것은 금맥일 터. 자운은 그 금맥을 찾기 위해 천천히 눈을 움직였다.

본래 금맥이라는 것은 땅 속에 있는 법이나, 금맥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소문이 난 듯하니 밖으로 튀어나온 금맥이 하나쯤은 있을 터이다.

산을 더듬기 시작한 지 한 시진이 조금 넘었을까? 자운이 툭 튀어나온 바위 위의 먼지와 흙을 털어내었다.

그 아래로 누런 황금의 흔적이 보였다. 정제되지 ㅇ낳아 금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이것은 분명 금맥이었다.

“호오, 과연!”

자운은 금맥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흙을 끌어와 다시 덮었다.

아무리 금맥이 있다고 하나 여기는 선대 황룡문주들의 안식처다. 그것을 고작 금맥 하나로 뒤집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흙을 덮어놓은 자운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새하얀 피부와 그 눈이 어우러져 더욱 냉담한 분위기를 만들고, 자운은 흙을 덮은 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자, 그럼 이제 일을 하나씩 슬슬 처리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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