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4화 (4/175)

# 4

‘황룡문의 제자인 모양이구나. 젠장, 조금만 더 하면 황룡문의 부지를 먹을 수 있었는데 저건 또 뭐야?’

진삼의 눈에 비친 자운의 모습은 그야말로 굴러온 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는 모습이었다.

“왜, 할 말이 없냐? 사실 나도 할 말은 별로 없어/ 내가 온 이유는 이것 때문이거든.”

자운이 낡은 검신을 다 보이도록 드러내며 진삼을 겨누었다.

“감히 대황룡문을 능멸한 죄, 그 죄는 목숨으로 씻어도 모자라다.”

진삼은 냉정하게 자운을 평가했다. 놈의 실력이 제법인 듯 보이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해낼 수는 없으리라.

거기다 흑우파의 고수들이 더해진다면 더욱 수월하게, 진삼 그 스스로 마저 한 손 거든다면 더더욱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이것은 자운의 기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진삼의 실수라 할 수 있었다.

진삼의 몸에서 내력이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피차 할 말은 없겠군. 그렇다면 하나만 물어보지.”

진삼이 허리춤에서 유엽도를 꺼내 들며 자운을 향해 말을 건넸다.

그의 말에 자운이 얼마든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가 지면 어떻게 할 거지? 네가 죽으면 황룡문의 땅을 우리에게 넘길 건가?”

자운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죽는다면 얼마든지 그러도록 해. 그럼 내가 너희를 모두 죽이면 흑우파의 모든 땅과 이권은 우리 것이 되는 거겠지?”

이렇게 되면 일이 편해진다.

그냥 눈앞의 놈을 족쳐 버리면 되는 것이다. 돈을 주고 헐값에 황룡문의 부지를 매입할 생각이었는데, 헐값이라 할지라도 황룡문의 땅이 좁지 않아 고민이었다.

한데 이렇게 쉽게 접수하게 해주는 것이다.

진삼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일이 편해진 것이다.

“으하하하하하하! 좋군! 좋아!”

진삼이 혀로 유엽도를 핥았다.

“좋군.”

그리고는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나는 유엽도를 자운을 향해 겨누고 소리쳤다.

“죽여라!”

“우와아아아아아아!”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합친 것에 족히 배는 될 듯한 흑우파 문도들이 각자 무기를 빼 들고 자운을 향해 뛰어왔다. 사파의 잡졸들답게 통일된 무기를 가지지는 않았고, 대부분이 검이었으나 간간히 유성추와 같은 무기가 보이기도 했다.

그 기세가 섬뜩하여 운산과 우천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자운은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묵직한 기세가 솟구치고, 기세는 온몸을 덮고 검을 타고 흘렀다.

“불나방 같네.”

자운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다섯 줄기의 경력이 솟구쳐 쏘아진다. 쏘아진 경력은 황룡이라도 된 양 꿈틀거리며 놈들을 때렸다.

콰앙―

단번에 땅이 뒤집어지는 충격이 퍼져 나가며 흑우파 문도 열이 날아갔다.

그리고 자운의 몸이 흔들린다.

그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일어나고, 운산이 목격한 보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운해황룡(雲海黃龍)!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 마치 구름이라도 된 듯 자운의 주변을 덮었다. 자운이 검과 함께 모습을 감추고, 흑우파의 잡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흙먼지 속으로 들어왔다.

자운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구름 속에서 황룡의 발톱이 모습을 드러내고, 황룡의 발톱은 기계적으로 흑우파의 잡졸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쩌억 하고 가슴이 벌어지고, 피가 위로 튀었다. 자운의 옷에 튄 피가 묻을 법도 한데, 피가 떨어지는 순간 자운은 이미 그곳을 벗어나 있다.

일검즉살.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이 죽어 나간다.

처음에 보여준 수법을 쓴다면 단칼에 모두를 처리할 수 있을 듯 하나 자운은 내공을 아끼려는지 하나하나 따로 처리했다.

한데 그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무공 활용의 극치!

최소한의 힘으로 적을 베어 넘기는 것이다.

자운의 손에 자신의 부하들이 베여 나가자 진삼이 얼굴을 붉히며 문파의 장로들에게 소리쳤다.

“뭐해! 어서, 어서 저놈을 죽이라는 말이야!”

그의 명을 받은 장로들이 자운의 앞에 내려섰다. 자운이 눈앞을 막아선 흑우파의 장로들과 눈을 마주쳤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자운. 그 웃음에 장로들의 미간에 꿈틀 움직인다.

“이놈!”

자운이 맞받아쳤다.

“내 나이가 몇 살인 줄 알고 이놈저놈이냐! 이 개잡놈아!”

자운의 검에서 기운이 솟구쳤다. 그리고 검이 허공을 가르며 황룡의 움직임을 그린다.

흑우파의 장로들이 각자 무기를 빼 들고 자운의 검을 막았다.

거대한 패도가 자운의 검을 막으며 불똥이 튀고, 자운이 패도와 충돌하는 순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단번에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스악―

배가 통째로 잘려나가며 놈의 내장이 아래로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장로들이 자운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든다.

“이놈이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자운이 검으로 쌍장을 막으며 말했다.

“그럼 살려줄 거였냐? 웃기는 개소리 하고 있네!!”

검과 쌍장이 충돌하고, 충돌한 장로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자운의 검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로가 신음을 흘렸다.

“크윽!”

‘내력이 적지 않은 놈이다.’

자운의 모습이 어려 보여 내공이 일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반발력이 거대해 놀랐다.

장로들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초조해진 것은 진삼이었다.

“이익!”

진삼 자신 역시 유엽도를 휘두르며 자운을 향해 뛰어들었고, 동시에 세 명의 장로와 함께 자운을 압박했다.

세 방향에서 자운을 압박했으나 자운의 손은 어지러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먼저 온 것은 먼저 제압하고 늦게 온 것은 늦게 제압한다.

공격의 시간차를 이용해 모든 공격을 제압하고 튕겨내며 자운은 여유롭게 놈들 사이를 노닐었다.

“이익! 뭐해! 족쳐! 족치란 말이야!”

자운이 여유롭게 말했다.

“그러다 니네가 족쳐지는 수가 있다.”

자운의 검이 내력을 강하게 머금었다. 검기가 자운의 검에서 일어나고, 장로의 검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댕강 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간 것은 장로의 검만이 아니었다. 장로의 몸이 피를 분수처럼 뿌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봐. 이렇게 족쳐진다니까.”

하나가 죽자 자운은 더 여유로워졌다. 뒤에서 잡졸들이 간간이 공격을 해오곤 있으나 그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운은 여유롭게 공세들을 피하며 착실하게 적들을 줄여나갔다.

그런 자운을 바라보던 운산과 우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실력이 있을 거리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의 고수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건 그야말로 우천과 운산이 부러워하던, 대문파의 이름난 고수와 같은 모습이 아닌가?

그런 운산과 우천의 뒤를 향해 접근하는 놈이 하나 있었다. 본래 흑우파의 무사인데 뒤에 물러서 있는 운산과 우천을 인질로 잡으려 접근한 것이다.

하나 우천이 뒤를 돌아봄에 따라 그의 계획은 무산이 되었다.

“누구냐!”

우천이 검을 빼 들고 놈을 향해 겨누었다. 우천의 대응에 운산 역시 검을 빼 들었다. 상대도 우천과 운산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다. 본래라면 위축되었겠지만, 지금 눈앞에는 황룡문의 고수가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황룡문의 기상과 황룡문의 무공을 보여주는 이가 있지 않은가?

괜스레 마음이 설레고 자부심이 솟구쳤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황룡문의 무공을 갈고닦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생각은 힘이 된다. 그들의 몸에 힘이 깃들었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과연, 잘 따라주니 다행이군.’

생각했던 대로 우천과 운산이 따라온다. 홀로 수십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황룡문의 기상과 긍지, 그리고 황룡문의 무공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자운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자운이 눈앞에 있는 진삼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우리도 이제 그만 정리를 해야지?”

이미 그와 합공을 하던 장로 모두 죽거나 불구가 된 지 오래였고, 그것에 질린 다른 무사들은 감히 자운을 향해 공격을 하지 못했다.

공격을 했다가 손이 잘려 나가는 이들을 열이 넘게 본 탓이다. 진삼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이, 이러지 마.”

“이러지 마? 말이 짧다?”

자운이 짝다리를 하고 진삼을 내려다보았다. 진삼의 몸은 이미 무너져 있었고, 자운이 진삼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자운이 건들거리며 진삼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낡은 검이 빛에 반사되고, 진삼이 넘어진 채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제법 웃긴 탓에 자운은 실소를 흘렸고, 자운이 점점 다가오자 진삼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으악! 이, 이러지 마세요!”

“이럴 건데?”

“그럴 줄 알았어!”

이때까지 겁먹은 척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을까? 그의 품에서 순간 빛이 번쩍하며 세침이 쏘아졌다.

우모침(牛毛針)에 비견될 바는 아니지만 끝이 보라색으로 빛나는 것이 독이 묻어 있음이 분명한 침. 그 한 수로 진삼은 자운을 거꾸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 자운은 진삼이 생각하는 정도의 그저 그런 고수가 아니다. 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침을 잡아버린 것.

그 모습을 보고 진삼이 웃음을 터뜨리며 크게 소리쳤다.

“으하하하하! 그 침의 끝에는 독이 묻어 있는데, 아주 잘되었구나, 잘되었어!”

진삼의 말에 자운이 자신의 손에 잡힌 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 그래?”

푸욱―

단번에 진삼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허벅다리에 침을 찔러버린다.

독이 묻은 침이 진삼의 허벅다리를 파고들고, 독은 삽시간에 그의 혈관을 타고 뻗어 나갔다.

“이, 이게 무슨…….”

“지랄.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냐?”

그의 다리 피부가 독에 중독되어 푸르게 죽어버리고, 그때 진삼은 볼 수 있었다. 자운이 잡고 있는 부분은 독이 묻은 부분이 아니라 독이 묻지 않은 뒷부분이라는 것을. 독기가 머리로 치밀었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입에서 피가 왈칵왈칵 솟구치고 눈이 까뒤집힌다.

“끄러르르르르르.”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진삼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져 내렸다. 그의 입에서 독기가 섞인 피가 쿨럭쿨럭 흘러나오고, 자운이 검을 바닥에 꽂아 넣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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