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그래, 그냥 내친 김에 지금 당장 나가서 족치고 올까?”
자운이 두 팔을 걷어붙이며 밖으로 걸어나가려 했고, 그런 자운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또 다른 목소리였다.
“우 사제, 그 사람은 누구야?”
자운은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우천과 같은 고아 출신의 황룡문의 일대제자라 한다.
이름은 검운산(劍雲山). 본래 고아 출신이라 성이 없을 줄 알았는데 태생부터 고아는 아닌 모양이다. 검(劍)이라는 흔치않은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
운산 역시 눈앞의 자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일단 우천에게서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 그리 신용은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삐딱하게 서 있는 모습이 마치 파락호와 같지 않은가.
‘천 사제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문제지.’
운산이 자운을 빤히 바라보고, 자운도 운산을 빤히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자운이었다.
“너무 멋진 대사형의 모습에 반했나? 그러지 마라. 나 남자한테는 취미 없다.”
자운의 말에 우천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뱉는다.
“저도 남자한테 취미 없습니다. 그보다 나는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요.”
“나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어. 황룡문이 이렇게 훌륭하게 개판이 되어 있다니, 이거 정말 문제잖아.”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황룡문을 둘러보았다. 견적을 내보았는데, 쉽게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운산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운산의 말에 자운이 발을 휙 하고 굴렀다. 그리고는 단박에 운산의 앞에 나타난다.
사라지는 모습은 호롱불이 바람에 꺼지는 듯했고, 갑자기 솟아나는 것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운산이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운해황룡(雲海黃龍)!”
황룡문의 보법 중 운해황룡. 황룡이 구름바다에서 노니는 듯한 보법으로서 먼지구름이 일어나며 모습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듯 꺼졌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그 증거로 자운의 뒤로 솟아나는 먼지구름. 자운이 휙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바람이 일어 먼지가 단번에 날아간다.
“이봐, 나에게 증명을 하라고 하는데, 뭐로 증명하면 되지? 자, 무엇으로 증명을 해야 하는지 말해봐. 그리고 내가 증명을 한다고 해서 네가 믿을까? 네 사제처럼 쉽게 믿어 주면 고맙겠지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자운이 다시 몸을 휙 돌려 운산에게서 멀어졌다. 그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순간까지 운산은 숨 한 번 쉬지 못했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자운의 움직임에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자운이 다시 멀어지자 운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순간, 황룡문의 낡은 경첩이 흉측한 소리를 내며 뜯겨 나가고, 문짝이 그대로 넘어지며 누군가가 황룡문 내부로 들어왔다.
“어이, 이봐! 이제는 땅을 좀 팔 마음이 생겼겠지?”
석견은 나름대로 흑우파에서도 알아주는 무인이라 할 수 있었다. 행동대장 격의 무인, 그런 석견이 자기 부하들을 뒤에 세우고 앞서서 황룡문의 문을 발로 찼다.
낡은 문이지만 오늘 따라 유달리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단번에 부서진다.
“쯧.”
그 모습을 보고 석견은 혀를 찼다.
‘이렇게 문파가 낡아서야…….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땅 팔고 좀 꺼질 것이지.’
오늘도 땅을 팔지 않겠다고 우길 두 놈을 생각하니 석견은 괜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황룡문이 날리는 문파였다고는 하나 그것은 과거 한때일 뿐, 이제는 스스로의 영역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호구스러운 문파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황룡문이 두려울 리 없다.
석견이 내부를 들여다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어이, 이봐! 이제는 땅을 좀 팔 마음이 생겼겠지?”
석견이 그렇게 소리치자 가장 먼저 석견과 눈이 마주친 것은 우천이었다.
우천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보기 싫은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닥에 못이라도 박힌 듯 고정되어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무시하는 거야? 그래, 오늘 땅을 팔 거야, 말 거야!”
석견이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며 험악하게 소리쳤다.
그런 그의 눈에 평소 못 보던 녀석이 들어왔다.
‘응? 저놈은 뭐지?’
석견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자운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자운이 허리춤의 검을 검집채로 뽑아 들고 석견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한쪽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는 명백한 비웃음. 자운이 검집째로 쥐고 휙휙 휘두르며 우천의 어깨를 다른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들리도록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래, 저 새끼로 증명하면 되겠네.”
말을 하는 순간, 자운의 몸이 단번에 석견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검집이 허공에서 통째로 석견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제2장
대강적인 사정을 들었으니 상황을 유추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다. 눈앞에 보이는 녀석이 어떻게 된 놈인지는 모르나 확실한 건 황룡문을 능멸한 녀석이라는 것이다.
번쩍하는 안광과 함께 자운의 손에 들린 검집이 움직였다.
그대로 수직으로 내리긋는 직도황룡(直道黃龍)!
황룡의 어금니부터 시작하여 앞발, 뒷발, 꼬리가 연달아 놈을 때리고 지나갔다.
단번에 이어지는 칠연격의 타격. 일곱 번 연달아 격타음이 울렸다.
그리고 단번에 석견의 몸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구르는 석견을 발로 뻥 차버리고는 자운이 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는 다리의 각도를 살짝 꺾어 자세를 잡았는데 그 자세가 사뭇 오만해 보인다.
자운이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 보이고, 검을 검집째로 허공에 휘둘렀다.
“잘 봐두라고. 이게 황룡문의 무공이지.”
조용히 말했으나 운산과 우천의 귀에 자운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그리고 직도황룡에 이어 여러 가지 황룡문의 초식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검결 속에 황룡이 노닐고, 황룡의 힘이 사방을 휩쓸었다.
검갑은 회전하며 구름을 불렀고, 황룡이 구름을 둘러 천지를 노닐었다.
“으아악! 내 팔! 내 팔!”
“다리, 다리가 부러졌어!”
검집째로 휘둘렀기에 잘려 나가는 일은 없었으나 대번에 팔다리가 뚜둑 하는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그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자운은 쓰러진 흑우파 놈들 위에서 오만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만하면 증명이 되었겠지?”
자운은 무공으로써 증명하려 한 것이다. 황룡문도가 아니면 익히지 못하는 수준 높은 무공. 개중에는 우천과 운산이 상상도 하지 못한 초식도 있었다.
자운이 운산을 흘깃 돌아보고는 흑우파의 놈들을 발로 뻥뻥 차버렸다. 단순한 발길질에 일 장 이상을 날아가 처박힌다.
자운이 고개를 돌려 운산을 바라보았다. 자운의 신형이 흐릿해진다 싶더니 단번에 운산의 앞에서 솟구쳤다.
“증명이 더 필요한가?”
자운이 씨익 웃었다.
어찌 반박을 할 수 있을까!
그토록 완벽한 황룡문의 무공을 두 눈으로 보았는데 말이다. 운산은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 황룡문을 구해줄 희망과 같은 존재를 발견했다고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자운은 그저 웃어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 웃음에 운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자운이 운산의 어깨를 잡았다.
“자, 이제 황룡문의 긍지를 보여주도록 하지.”
운산의 귀를 향해 자운이 낮게 중얼거린다.
“안내해.”
자운의 말에 운산은 도대체 어디로 안내하라는 거냐는 표정으로 자운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무 오랜만이라 지금 여기 지리를 잘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흑우파로 안내해.”
자운이 이번에는 검집이 아니라 검을 뽑아서 휘두르겠다는 듯 황룡이 음각된 검을 반쯤 뽑았다.
낡은 검신에 빛이 난반사되었다.
“황룡문을 욕하고 능멸한 놈들, 당연히 벌을 줘야지.”
* * *
자운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운산은 자운을 흑우파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의 자신감이 운산에게도 알지 못하는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흑우파의 문을 마주한 후에 운산은 생각을 바꾸었다.
꿀꺽―
침이 절로 삼켜지고, 식은땀이 턱선을 타고 내려와 목 아래까지 흘러내린다.
‘한 손으로 열 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운산이 고개를 돌려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는 자운을 바라보았다. 일당백, 일당천의 무사가 있을 수 있을까?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이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이,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운산이 자운을 향해 묻자 자운이 예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태도. 자운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혀 나온다.
스스릉―
낡은 검신에 빛이 난반사되고, 자운이 흑우파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잘 봐라.”
자운의 좌수가 빛을 뿜는다. 황색의 빛이 자운의 손가락 끝에서 쏘아졌다.
단번에 날아간 빛은 흑우파의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을 때렸다.
“크악!”
“캐액!”
지풍이 허공을 가르고, 놈들의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지풍은 놈들을 꿰뚫고 그대로 흑우파의 문을 날려 버렸다.
문이 날아가고, 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흑우파 안으로 넘어지며 나뒹굴었다.
그 앞으로 자운이 천천히 걸어간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흑우파의 무사들이 모여들고, 흑우파의 문주인 진삼이 거대한 덩치를 보이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옆에는 방금 전 자운에게 일 초에 나가떨어진 석견 역시 함께였다.
석견이 자운을 알아보고는 손가락으로 자운을 겨누었다.
“저, 저기 저놈입니다! 저놈이요!”
석견의 말에 진삼이 자운을 향해 미간을 좁혔다.
“여기가 흑우파 맞지?”
자운이 건들거리며 검을 이리저리 둘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장난감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고, 진삼이 자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바로 흑우파의 문주 진삼이다! 그러는 넌 누군데 백주의 남의 문파에 쳐들어와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진삼의 말에 자운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백주에 남의 문파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그건 오히려 내가 물어야지. 너넨 나 없을 때 대낮에 황룡문에 찾아와서 뭐했냐? 응?”
자운의 말에 진삼이 옅게 신음을 흘렸다.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