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2화 (2/175)

# 2

기억 속에 있는 문주의 집무실에 비교하면 아담한, 그래도 나름대로 잘 정리가 되어 있는 집무실. 자운은 집무실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자운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놈이 이제는 창룡전에까지 발을 들였구나!”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운이 몸을 휙 하고 틀었다. 낡은 장포가 바람에 휘날리고, 자운이 손을 뻗었다.

뻗어진 손이 바람을 타고 자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바람 터지는 소리가 나며 자운에게 주먹을 뻗은 녀석이 날아간다.

퍼엉―

날아가는 놈의 품에서 나무로 만든 패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자운이 비호처럼 손을 움직여 패를 움켜쥐었다. 자운의 손속에 맞고 날아간 녀석은 등을 기둥에 찍은 후 바닥을 형편없는 모양새로 굴렀다.

“으윽!”

신음성을 흘렸지만 자운의 시선은 이미 그쪽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곳에 있는 것은 방금 전의 목패였다.

황룡이 입을 벌린 모습이 음각되어 있는 패. 황룡문의 이대제자를 의미하는 패였다.

자운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휙 움직여 방금 전에 바닥을 구른 녀석의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녀석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이대제자 모두의 얼굴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어느 정도 안명도 없는 얼굴. 지나가면서 본 적도 없는 얼굴이다.

그가 폐관에 접어든 지 이 년 정도 되었으니 그사이에 이대제자가 일대제자로 올라가고, 삼대제자가 새로운 이대제자로 올라왔을 리는 없다.

기간이 맞지 않는다.

자운이 그의 앞에서 패를 달랑달랑 흔들며 물었다.

“너 누구냐?”

다른 손으로 자운이 품속에서 여섯 마리의 황룡이 음각된 옥패를 꺼내며 물었다.

“그러니까… 십오 년 전에 정사대전이 일어났고, 그때 모든 황룡문도들이 죽었다는 말이지?”

자운이 과장스럽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과장스럽게 손을 흔드는 이유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 이 년 정도 폐관에 들었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난 모양이다. 자운이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도대체 몇 년이나 지난 것인지 추측해 보기 시작했다.

“젠장. 하나도 모르겠네. 그래, 그럼 문주님도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 거란 말인데…….”

자운의 눈에서 한순간 맹수와 같은 기세가 일었다. 화악 일어나는 기세에 자운의 앞에 쪼그려 있던 녀석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으헉!”

우천(雨天). 고아여서 성은 없고, 황룡문의 이대제자라고 한다. 십오 년 전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정사대전에 나가지 못했고, 지금은 이렇게 망해 버린 황룡문의 터를 지키며 살고 있다고 한다.

“문주님을 죽인 게 누구지? 말해.”

황룡문의 문주라고 하면 자운의 스승 천주오존 황룡검존을 말하는 것이다. 당금 천하에 있어 황룡검존과 무(武)를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 그중 누가 스승을 죽였단 말인가?

자운은 당장에라도 찾아가 목을 베어버릴 듯 입술을 적셨다.

자운의 몸에서 한순간 뿜어진 광포한 기색에 우천은 입을 떨면서도 천천히 말했다.

“사, 사도천주(邪道天主) 풍천옥에게 일검을…….”

“풍천옥?”

자운이 듣다 말고 물었다. 풍천옥과 사도천, 그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자운이 기억하고 있는 사파 중 사도천이라는 세력은 없었다. 비슷한 이름을 말해보자면 사황성이다.

사황성주(邪皇姓主) 갈무기. 천주오존 황룡검존과 무를 논할 만한 현천삼야(玄天三夜) 중 한 명이고, 그라면 충분히 황룡검존을 상대할 만했다.

정사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기에 갈무기에게 목숨을 잃은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듣도 보도 못한 녀석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말인가?

‘영감, 도대체 어떤 새끼에게 칼을 맞은 거야? 중독이라도 당한 거야?’

자운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에 황룡검존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괜히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것을 숨기며 자운이 다시 우천을 바라보았다.

“사도천은 또 뭐야? 사황성은 어떻게 되었고?”

자운의 말에 오히려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것은 우천이었다.

“사황성이요? 사황성은…….”

우천이 말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헤아리듯 몇 번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사황성은 사황성주 갈무기가 죽으면서 벌써 이백 년 전에 망했는데요?”

자운이 그 말에 바닥을 때리며 일어났다.

“이백 년!”

입으로 크게 소리를 쳤다.

우천이 말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니, 꽤 오래 폐관에 들어 있었나 보다. 아마도 무공을 변형시키다가 실패한 모양이다. 그 시간에 고작 해야 십오 년에서 이십 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백 년이라니!

무공을 만들던 게 실패해도 아주 크게 실패한 것이다.

자운으로서도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이백 년, 이백 년이란 말이지.”

자운이 선채로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인간의 몸으로 이백 년을 산다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자운이 만든 내공심법은 귀식대법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에 육본이 거의 늙지 않았다.

이백 년 이라는 세월을 잠들어 있었지만, 그의 몸은 고작 이 삼 년 정도 늙었을 뿐. 자운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우천이 자운을 향해 물었다.

“대사형께서는 어찌 이곳에 계시는 겁니까?”

우천은 아직까지 자운이 이백 년 전 사람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안다고 해도 믿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백 년 전 사람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그래도 우천이 자운을 대사형이라 부르는 이유, 그것은 패 때문이었다.

자운이 보인 여섯 마리 용이 음각된 옥패. 그것은 황룡문의 직전제자들에게만 지급 되는 패였다.

마지막으로 그 패를 받은 사람이 벌써 이십 년 전의 사람. 눈앞의 사람이 고작 이십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약관을 훌쩍 넘은 나이일 것이다.

“음? 글쎄…….”

자운도 멍하니 이백 년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다 우천의 말에 현실로 돌아왔다. 과연 이백 년 전 사람이라고 하면 믿을까?

대사형이 아니라 태사조, 혹은 태사숙조 그 이상이라고 하면 믿을까?

자운이 홀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나라도 안 믿겠다. 젠장’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자운이 결론을 내렸다.

“무공의 성취를 위해 폐관에 들어 있었지. 그래서 그동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하나도 듣지 못했어.”

말을 하며 내쉬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더욱 그럴 듯 했다. 자운 역시 거짓말한 것은 없다. 폐관에 든 것은 사실이고 말하지 않은 것은 그 기간뿐이다.

자운의 말에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오 년 전의 사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니 오랜 시간 폐관에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자, 그런데 아까 네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그건 또 뭐야?”

“처음 만났을…때요?”

“그래, 내가 창룡전에 있을 때, 네가 처음 한 말. 그리고 문도들이 없는 건 둘째치고 문파는 왜 이렇게 작아진 거야? 창룡전은 왜 또 저리로 옮긴 거고.”

우천은 자운과 처음 만난 곳을 생각했다. 열려 있지 않아야 할 창룡전의 문이 열려 있어 기이하다 생각했고, 이상하다 싶어 가보니 그 안에 자운이 있었다.

그때 우천은 이렇게 소리쳤었다.

“이놈이 이제는 창룡전에까지 발을 들였구나!”

우천이 그렇게 소리친 것은 자운이 흑우문에서 온 자인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정사대전 이후로 무림은 아직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흑도 문파와 백도 문파의 충돌이 일어났다.

섬서 역시 마찬가지. 그중 황룡문이 자리 잡고 있는 상주(商州)는 흑도 문파가 득세한 곳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 곳에 있는 백도 문파 황룡문. 다른 흑도 문파들의 반발은 당연했고, 그중 황룡문을 압박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흑우문이었다.

흑우문은 여러 가지 수법으로 황룡문을 괴롭혔고, 지금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수법이 바로 황룡문의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몇 백 년이나 이어져 내려온 황룡문의 터를 흑우문의 새 건물을 짓겠다고 팔라고 하는 것이다.

“실은…….”

우천은 자운에게 그간의 사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주 오랜 기간 폐관에 들어 있었던 자운이 현재 무림과 섬서무림의 정세를 잘 몰랐기 때문에 설명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주변에 사파의 개잡놈들이 많다는 거잖아.”

우천의 말을 모두 들은 자운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자운의 말에 우천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주변에 사파 문파가 넘치듯이 많으니 자운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파의 개잡놈들이 황룡문이 약해진 틈을 타서 아예 세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고.”

“예. 그리고… 놈들이 황룡문에 불까지 질렀습니다.”

그 말에 자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파 개잡놈들이? 황룡문에?”

자운의 말에 우천이 황급하게 두 손을 흔들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지만, 황룡문에 불이 나고 창룡전이 불타는 날, 흑우파 놈들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운이 손으로 흙바닥을 탕 하고 때렸다.

“그럼 놈들에게 죗값을 물어야지. 불을 지르고 지르지 않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감이 대황룡문을 업신여긴 대가를 치러줬어야지!”

자운의 말에 우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사형은 황룡문에 대한 자부심이 참 강하구나.’

그리고는 곧 씁쓸하게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물론 우천 역시 황룡문을 좋아하고 아꼈다.

고아였던 자신을 거두어준 곳이 황룡문이고, 무공을 가르쳐 줬을 뿐만 아니라 사람 대우를 해주었다.

어찌 그런 황룡문을 아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황룡문을 아끼는 것과 자부심이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가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의 황룡문은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진 문파. 아끼고 사랑하지만 자부심은 없는 것이다.

우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황룡문에는 이제 예전과 같은 힘이 없어요.”

자운이 손으로 우천의 등을 탁탁 두드렸다.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걱정 마라.”

자운이 허공을 향해 주먹을 흔들자 공기가 팡팡 하고 터져 나갔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권경. 자운이 권경을 뿌리다 말고 우천을 내려다보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