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239화 (1,996/2,000)

2239화. 장천병

*

윤회 전주는 힐끗 한립과 고혹금을 보다가 길게 숨을 내쉬고는 수결을 맺어 육도윤회반을 준비시켰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동안 품어온 원한을 갚을 때였다.

‘모든 게 이 순간에 달렸다, 가자.’

의지를 다진 윤회 전주가 먼저 튀어 나갔다.

그를 뒤따르는 육도윤회반이 여섯 줄기의 윤회 빛기둥을 뿜어 고혹금을 공격했지만, 상대는 혼돈 안개로 몸을 두르고 사라졌다.

다음 순간 6개의 윤회 빛기둥을 관통한 고혹금이 윤회 전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빨라!”

한립도 긴장감을 키웠다.

마주의 공간법칙으로 상당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을 텐데 고혹금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죽어!”

고혹금은 윤회 전주의 목을 쥐려 했고, 눈을 반짝인 윤회 전주가 허상화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지려 했다.

하지만 코웃음을 친 고혹금이 잿빛을 방출해 윤회 전주를 감싸자, 허상화되려던 몸이 돌아왔고 목에는 핏빛이 튀었다.

푸훅!

윤회 전주의 몸이 부러져 머리가 분리되는 것을 본 한립의 두 눈이 흔들렸다.

“멈춰!”

한립이 소리쳤다.

고혹금은 그가 도울 기회도 주지 않고 윤회 전주의 머리를 퍽, 발로 차서 터트렸다.

그렇게 윤회 전주의 기운은 철저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눈이 찢길 것처럼 두 눈을 부릅뜬 한립은 검결을 맺어 고혹금을 향해 손을 뻗었다.

72자루 청죽봉운검의 자금색 뇌전과 만고 검기가 튀어나와 자금색 거대한 용을 만들고 고혹금을 향해 쇄도했다.

치지지지직!

뇌전빛이 교차해 수만 리가 금색 뇌전 늪이 되고 말았다.

금빛에 둘러싸여 혼돈 안개가 가루가 되었다가 형태도 없이 사라졌으나, 고혹금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립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금방 뇌전 늪을 벗어난 고혹금은 뇌전을 맞고 정신을 차렸는지 이전의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의나 분노가 걷히고 보제연에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느긋하고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한립은 더 강한 살의를 느낄 뿐이었다.

한립은 청죽봉운검을 합친 거검을 쥐고 빠르게 휘둘렀다.

72줄기 자금색 뇌전이 뭉쳐 자금색 용이 되어 고혹금을 향해 날아갔고, 고혹금을 중심으로 수만 리가 금빛으로 물들어 뇌전 늪을 넘어 뇌전 바다가 되었다.

혼돈 안개를 두른 고혹금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한가롭게 정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한립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한립을 죽이고 장천병을 빼앗으려던 고혹금은 순간 안색이 변해 그대로 멈춰 섰다.

뒤쪽에 떠있던 윤회 전주 잔해가 사라지고 육도윤회반이 유유히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윤회반에서 여섯 개의 주술문자가 동시에 빛을 일으켜 암홍색 빛 속에서 약간 말랐지만 키가 큰 윤회 전주를 만들어냈다.

윤회 전주가 등장하자마자 윤도윤회반이 번개처럼 질주해 암홍색 빛의 우리로 고혹금을 가두었다.

“그리 쉽게 죽일 수 없을 줄 알았지.”

고혹금은 이미 예상했는지 손을 저어 암홍색 우리를 붕괴시켜 버리고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귓가에 한립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심하셨습니다…….”

고혹금 옆에서 삼두육비 마신으로 변한 한립이 나타나 진언보륜 등 다섯 개의 시간보물을 띄우고 유리알처럼 맑은 광채를 터트렸다. 그러자 여섯 개의 팔이 금빛으로 폭발하며 대오행멸절권을 내뿜었다.

펑펑펑펑펑…….

고혹금 주변에 혼돈 소용돌이들이 생겨 대오행멸절권을 막아냈다.

주먹 끝에서 나온 힘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소용돌이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여섯 개의 주먹이 육백, 육천, 육만 끊임없이 많은 주먹 허상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고혹금도 가볍게 대응했지만 한립이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져 주먹의 힘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힘이 중첩되어 쌓여갔고, 각각의 주먹이 대륙을 뒤흔들고 하늘에 구멍이 뚫리게 만들 위력을 담고 있었다.

수천 번의 주먹질이 허공에 겹겹이 주름을 만들어 윤회 전주도 돕지 못하고 연달아 물러서야만 했다.

스스로 천지를 봉쇄하는 결계의 일부가 된 마주도 강대한 압박감에 놀라고 말았다.

한립이 1,672번의 주먹질을 마쳤을 때는 압력이 극에 달해 폭발했다.

쿠쿠쿠쿠쿠.

고혹금 위로 작열하는 금빛 태양이 떠올랐다.

그걸 본 윤회 전주가 긴장해 육도윤회반을 움직여 순식간에 천만 리를 벗어났다.

마주 역시 즉시 공간결계를 거두고 번득 윤회 전주 옆으로 향했다.

다음 순간, 금빛 태양이 밀물처럼 금빛을 내뿜어 모든 것을 철저히 가루로 만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자 곧바로 강력한 흡입력이 잔존하는 천지영기와 먼지들을 끌어당겼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허공은 안정을 되찾았다.

윤회 전주는 한립과의 특수한 감정 연계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고 고개를 돌렸다.

한립은 검령동자들에게 둘러싸여 거칠게 가슴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가 다치기도 전에 검령동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던 것을 보면 한립을 무척 아끼는 것 같았다.

1,600번이 넘는 주먹질을 한 뒤에 한립은 도조의 몸으로도 약간의 피로를 느껴 검령동자들의 뇌둔 신통을 이용해서야 폭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본 그는 의식을 퍼트려 고혹금의 종적을 찾았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다면 그건 고혹금이 아니었다.

원래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혼돈법칙을 흡수한 뒤로는 더 그랬다.

고개를 들어 장천병이 있던 곳을 보니 탑만 하던 병이 원래 크기로 돌아가 초록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폭발에도 병은 상한 데가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윤회 전주와 마주가 시선을 마주치고 급히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크하하하…….”

그들이 도착하기 전 광소가 들려오고, 회색 소용돌이 속에서 고혹금이 한걸음에 튀어나왔다.

부상을 당하기는커녕 어쩐 일인지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조금 놀랐기는 했지만 이게 다란 말이냐? 겨우 이런 실력으로 내게 대항하려 하다니.”

고혹금은 그들을 조롱하면서 멀지 않은 곳의 장천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힘으로 장천병을 부수려는 듯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회색빛이 반짝이자 암녹색 빛이 작은 병에서 발산되어 단단한 빛의 장막을 이루고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고혹금은 의외라는 얼굴로 힘을 더했다.

“그만둬!”

한립의 신형이 제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한 줄기 검빛이 고혹금의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고혹금은 뒤를 돌아볼 것도 없이 등 뒤로 혼돈의 빛을 일으켜 매서운 검빛을 막았다.

검빛이 혼돈 빛에 흡수당하고 오래지 않아 그의 옆 허공에서 무언가가 병을 움켜쥐려는 고혹금의 손을 공격했다.

마주가 공간법칙을 운용해 검빛을 고혹금의 손으로 이동시켜 준 것이었다.

쿵!

고혹금의 손목이 터지며 병을 쥔 채 떨어져 내렸다.

그 아래에는 은빛 공간 회오리가 나타나 있었다.

작은 병이 그 안으로 떨어지기 전, 고혹금의 팔에서 혼돈 안개가 실처럼 떨어져 분리된 손을 불러들였다.

차갑게 한립 무리를 훑은 그는 급히 장천병을 부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가슴 피부가 서서히 함몰되며 암녹색 작은 병을 몸속으로 품었다.

장천병은 벗어나려 웅웅 울었지만 대량의 혼돈 안개가 침입해 어쩌지 못했다.

겉 표면의 주술문자들이 암담해진 병은 꺼져가는 불씨 같았다.

화륵!

이어서 회색빛이 불길처럼 고혹금 가슴에서 일어나 장천병을 포위했다.

“장천병을 연화시키려나 봅니다! 막아야 해요!”

한립이 안색이 급변해 윤회 전주와 마주에게 소리쳤다.

“혼돈법칙을 익혀 불사에 가까워진 고혹금을 어찌 막는단 말입니까!”

마주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제게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침묵하던 윤회 전주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의식으로 한립과 마주에게 상세한 방법을 일러주었다.

“될지 안 될지는 해봐야 아는 겁니다.”

마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한립은 약간 망설이고 있었다.

“성공하고 실패하고는 네게 달렸으니 망설이지 말거라. 난 너를 믿는다. 날 실망시키지 말거라.”

윤회 전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 지었다.

한립은 그런 윤회 전주를 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가벼워진 윤회 전주가 놀랍게도 고혹금을 향해 접근했다.

“고혹금, 전에 도조경에 이르지도 못했다고 날 비웃지 않았습니까? 오늘 어디 그 도조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봐야겠습니다.”

백만 리 거리를 두고 윤회 전주가 멈춰 소리 질렀다.

“넌 대라경의 수행으로 도조에 속한 법칙의 힘을 쓰며 천도 침식을 당해왔다. 그런데 선을 넘겠다니 마음대로 해보거라.”

고혹금이 냉소했다.

윤회 전주 뒤의 육도윤회반이 조금씩 회전하며 윤회 주술문자들을 그의 몸으로 떨구었다.

주술문자들이 많아질수록 윤회 전주의 암홍색 빛이 진해져 지옥의 사신(死神)처럼 붉게 물들었다.

두 눈에 붉은빛이 어린 그의 전신에서 윤회법칙을 담은 실들이 흘러나와 육도윤회반과 연결되었다.

육도윤회반은 여전히 돌아가며 여섯 개의 윤회의 빛으로 윤회 전주의 몸을 채웠다.

기합 내지른 윤회 전주는 강렬한 윤회법칙 파동을 발산했고, 뿌연 붉은 빛에 둘러싸인 상대를 보고 고혹금이 두 손을 뻗었다.

순간 혼돈 소용돌이가 형성되어 충돌하는 혼돈의 힘을 품고 윤회 전주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동시에 윤회 전주도 고혹금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윤회 빛다발이 뿜어져 나가 혼돈 소용돌이를 막고 대치했다.

“석 수사!”

한립의 외침에 마주가 한 걸음을 내딛어 고혹금 뒤에 이른 다음 양손을 끌어당겨 주변 백 리 공간을 중앙으로 압축시켰다.

카카칵…….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고 압축된 공간에서 수정빛이 흘러나와 고혹금을 겹겹이 속박했다.

“너희가 3대 지존법칙을 동시에 펼친다고 해도 나에게는 안 된다!”

고혹금이 웃으며 외쳤다.

혼돈의 빛이 다시 혼돈 소용돌이를 만들어 세 사람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헛소리!”

마주가 공간법칙이 담긴 은빛을 진하게 일으키자 등 뒤로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등 뒤의 마족 날개를 야금야금 잠식해 나갔다.

그래도 마주는 멈추지 않고 전력을 다해 법칙의 힘을 발휘했다.

윤회 전주 뒤의 육도윤회반도 속도가 빨라져, 원반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전주의 기운은 상승했다.

그렇게 대라와 도조의 경지를 가르던 창호지같이 얇은 벽이 뚫려 나갔다. 이제 윤회 전주도 진정한 의미의 윤회도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어 하늘이 느닷없이 어둑해지고 먹구름과 바람이 몰려들어 곳곳에서 몰려든 윤회법칙이 육도윤회반으로 주입되었다.

회전하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윤회반은 미친 듯이 암홍색 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한립이 고공으로 뛰어올랐다.

천살진옥공과 진령혈맥을 극성으로 일으킨 그가 백 배로 몸집을 부풀려 12개의 진령 머리와 36개의 팔을 지닌 통천마신(通天魔神)으로 변신한 것이다.

각각의 팔이 청죽봉운검을 들고 천지의 기운을 모아 거대한 금색 용들을 만들어냈다.

진언보륜 등 다섯 개의 시간보물도 달과 별, 산과 강이 되어 회오리치면서 피차간에 금색 뇌전을 연결해 일체화되고 있었다.

금빛 용들 사이로 만고검기가 종횡무진하고, 하늘에 펼쳐진 통천검진에 무시무시한 위력이 어렸다.

고혹금이 그들이 하는 양을 보고 멈칫해 포효했다.

“다 같이 죽자는 것이냐! 좋다!”

두 팔로 마주가 전력으로 만든 공간 속박에 저항하면서 가슴에서 혼돈의 빛을 뿜어 혼돈 소용돌이와 대치 중인 윤회 빛다발을 제압했다.

작아져만 가던 육도윤회반이 그 순간 사라지면서 암홍색 힘으로 흩어져 윤회 전주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몸이 팽팽하게 차오른 그는 이전과 달리 천지의 윤회를 좌지우지하고 사람들의 생사를 장악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고혹금, 너도 윤회를 벗어날 수는 없다! 영원히 윤회해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도 없을 것이고! 하하하!”

윤회 전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핑!

한 줄기 정순한 윤회의 힘이 혼돈의 빛을 밀어내고 번득 고혹금의 체내로 주입되었다.

모든 일은 한 호흡에 지나갔다.

“……!”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는지 고혹금은 모골이 송연해져 막으려 했지만 늦고 말았다.

찰나의 순간, 세상의 윤회가 멈추고 살기 위해 달아나던 자들이나 아니면 담담히 죽음을 기다리던 자들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혼백이 잠시 몸을 떠나 핏빛 잔영과 같은 햇살을 보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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