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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237화 (1,994/2,000)
  • 2237화. 변수

    *

    금색 수정 실들은 한립 주변을 맴돌다 그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한립은 좀 놀란 얼굴을 했다.

    뜻밖에도 몸 안의 시간법칙정사가 사라져 그의 육체와 하나가 되면서 피와 살에 미세한 금빛이 어리며 온몸이 반투명하게 변한 것이다.

    원영도 의식세계 속에서 사라져 몸속으로 녹아들었고 거세게 들끓던 법칙의 힘도 흩어졌다.

    하늘 위에 무시무시하게 군림하던 도겁 구름도 사라지고 있었다.

    한립은 세상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구불구불 금색 강이 흐르고 거기서 갈라진 수많은 지류가 퍼져나가 그와 연결되었다.

    두 팔을 들어보니 피부가 종이보다 더 얇아져서 혈관을 흐르는 금색 핏물과 고운 옥 같은 뼈가 보였다.

    “이게 전설 속의 금맥옥골(金脈玉骨)이구나. 도조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어…….”

    한립은 숨길 수 없는 흥분을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눈을 감자 그의 의식에 중토선역 안의 모든 것이 포착되었다.

    산과 강, 수많은 생령들과 혼란스러운 천지원기, 그리고 부단히 커지고 있는 혼돈 소용돌이가 해를 가리고 거대한 허공을 집어삼켜 뒤집힌 솥처럼 중토선역을 덮고 있는 것도…….

    곳곳에서 산이 허물어지고 바다와 호수가 뒤집히고 있었다.

    처음 시간 수정벽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했을 때 영기의 빛이 흩어지던 것처럼 모든 것이 본원으로 돌아가 혼돈 소용돌이로 흡수당했다.

    천지에 시체가 깔리고 겨우 살아남은 수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곳저곳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허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멸망의 시기에 그들이 어디로 도망갈 수 있단 말인가?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는 대지 위에 몽파가 제자 여몽한을 데리고 아직 멀쩡한 대륙으로 달아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삼천도신대진에 대부분의 힘을 빼앗겨서 도조에 가까운 존재였던 그녀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 와도 그녀는 제자의 손을 놓지 않았다. 여몽한도 복색은 참담했지만 두려운 얼굴은 아니었다.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스승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기 때문이었다.

    겨우 공간균열을 피한 그들을 향해 공간 와류가 입을 벌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몽파는 미안하다는 듯 여몽한을 보았다.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고 종문에 두었으면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런 지옥을 경험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여몽한이 스승의 뜻을 알고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고개를 들어 고공을 올려다본 그녀는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했다.

    여몽한이 아쉬움에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허공에 금빛이 비단처럼 퍼져 그녀와 몽파를 휘감고 공간 와류에서 피하게 해주었다.

    “여 낭자와 수사는 잠시 내 동천보물 속에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그들을 끌어당긴 한립이 입을 열고 손을 저었다.

    “한…….”

    여몽한이 뭐라 말하기 전에 폭음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콰르르르.

    중토선역 상공의 둥근 달이 터지며 작열하는 광채를 남기고 있었다.

    뒤이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빛을 발산했을지 모를 달이 어둑해지며 중토선역이 영원한 어둠에 휩싸였다.

    “일단 들어가 있으세요.”

    고개를 들어 그걸 보고 미간을 좁힌 한립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입술을 달싹이던 여몽한이 먼저 빛의 문으로 들어가고, 그제야 한립의 신분을 눈치챈 몽파는 속으로 감탄했다.

    제자의 안목이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

    수행은 부족해도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진선계, 아니 전 계면의 억만창생의 운명을 뒤바꿀 변수라고!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고혹금은 벌써 계획에 성공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을 구한 한립은 금빛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고공을 바라보았다.

    고혹금이 홀로 남아 하늘을 받치고 떠서 몸 절반을 혼돈 소용돌이에 내주고 있었다.

    소용돌이에 잡아먹히면서도 그는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왼쪽에서 수결을 맺은 마주가 은색 보탑으로 고혹금을 공격하고, 오른쪽에서 윤회 전주가 육도윤회반으로 빛기둥을 뿜었다.

    고혹금은 두 팔을 좌우로 펼쳐 소용돌이 속에서 혼돈 거대 손을 불러내 공격을 막았다.

    눈빛이 신중해진 한립은 수결을 맺어 진작 불러낸 시간법칙 물건들에서 시간 파동을 일으키자 그의 의지에 따라 구불구불한 광음의 강이 나타났다.

    혼돈 소용돌이 속의 고혹금이 그걸 감지하고 시선을 돌렸다.

    “성공했다고? 아냐, 어떻게 나보다 더 시간법칙 대도와 친밀할 수 있단 말인가…….”

    고혹금은 홀연히 진단의 점괘를 떠올리고 마음속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과연 최후의 변수로구나! 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너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말겠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없어!”

    소리를 지른 고혹금의 몸에서 나선형의 주술문자들이 빠져나와 혼돈 소용돌이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혼돈 소용돌이에서 거대 회색 빛구슬이 분리되어 한립을 향해 쾌속으로 날아들었고, 이에 진작 경계를 하고 있던 한립은 합장한 손을 풀어 양 손바닥으로 전방을 밀었다.

    귓가에 바람이 스치고 대량의 금빛이 허공에서 나타나 회색 빛구슬을 향해 쇄도했다.

    금빛이 뭉치는 곳에 광음의 강의 윤곽이 또렷해져서 평온하던 물길이 철썩 물결치며 회색 빛구슬과 충돌했다.

    두 빛의 충돌에 하늘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회색 빛구슬은 금색 광선을 흡수해 점점 커지고 속도가 느려졌다. 크기가 수만 장이 되었을 때는 거의 한 자리에 정지해 있었다.

    그 순간, 천둥소리가 울리고 거대 혼돈 빛구슬 중앙에서 눈을 찌를 듯한 금빛이 퍼졌다.

    쿠콰쾅!

    백만 리 허공이 급속도로 부풀어 올라 천지원기와 모든 것을 허무로 되돌렸다.

    폭발의 여파는 삽시간에 줄어 검은 구멍으로 바뀐 다음 주변의 물질들을 흡수해 공간을 채웠다.

    고혹금이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수십만 리 밖에서 불쑥 나타난 광음의 강 위에는 한립이 허상처럼 서서 걸음걸음마다 시간을 거슬러 만리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고혹금이 시간보물을 두른 키 큰 청년을 보고 뭐라 말하려 했으나 그때는 이미 상대가 주먹을 뻗은 후였다.

    다섯 가지 시간 물건들을 품은 광음의 강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금색 주먹 허상이 나타나 활활 타오르는 금색 화염을 품고 고혹금을 강타했다.

    시간법칙의 진의를 품은 대오행멸절권이었다.

    쿠웅!

    금빛 주먹 허상이 폭발해 세상을 빛으로 밝히고 혼돈 소용돌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거대 손들을 털었다.

    마주와 윤회 전주는 압력이 줄어 십여만 리 바깥으로 물러섰다.

    “시간법칙을 이리 함부로 사용하다니 천도와 동화될 것이 두렵지도 않은가 봅니다.”

    마주가 걱정스레 전음으로 물었으나 윤회 전주는 묵묵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주먹 허상이 흩어지고 시간법칙 물건을 체내로 흡수한 한립은 고혹금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고혹금은 다친 곳이 전혀 없었고 기운이 이전보다 더 왕성했다.

    “혼돈은 만물을 집어삼킨다. 난 무적이란 말이다. 그리 시간법칙의 힘이 남아돌면 또 와보거라! 으하하…….”

    고혹금의 박장대소에 한립이 뭐라 말하려다 가슴이 뜨끈해 고개를 내렸다.

    암녹색 병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녀석, 뭘 보고 있는 게냐. 도조의 위치에 올랐으니 넌 장천병을 완전히 장악할 자격을 얻었다. 어서 시도해 보거라.”

    익숙한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렸다.

    “병령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장천병이 지닌 장천(掌天)이란 이름의 의미를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 물건은 천도가 일어날 때 혼돈 속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현천보물이다. 모든 천도의 법칙은 물론 혼돈까지 품고 있는 물건이란 말이다. 고혹금이 혼돈법칙을 받아들여 혼돈노조가 되려고 하니 장천병을 제대로 쓸 수 있어야 승산이 있을 것이다.”

    병령은 꼭 화가 난 것처럼 그를 재촉했다.

    “그걸 이제야 알려주신 이유가 뭡니까?”

    “귀찮게, 궁금한 것도 많구나! 내가 병령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윤회 전주가 오래전 보물에 시간법칙을 부은 순간 탄생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 말은 그냥 이 병에 깃들어 사는 병령이란 뜻이고. 나도 오랜 세월 수련을 해서 겨우 장천병의 본질을 알아낸 것이란 말이다.”

    한립의 질문에 병령이 빠르게 답했다.

    “그렇다면 평소에 불러도 대답이 없으실 때는 선배님도 수련 중이었단 말이군요?”

    “그래, 고혹금이 천도를 흐트러트리고 감히 세상을 다시 혼돈으로 되돌려 세상을 열려 했기에, 천도와 같이 태어난 장천병 안에서 나도 이런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 이제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하고 어서 장천병을 연화시키거라. 내 도울 것이니!”

    병령의 재촉에 한립이 뭐라 말하려는데, 하늘 위에서 회색 구름이 뭉쳐 청자색 뇌전 기둥인 혼돈뇌주(混沌雷柱)를 응결했다.

    한립이 명을 내릴 것도 없이 72자루의 검령동자들이 튀어 나가 거대 검진을 이루고 혼돈뇌주를 향해 수많은 도천신뢰를 뿜었다.

    두 뇌전이 만나 반경 수백만 리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길게 벌어진 구멍으로 각종 공간 폭풍들이 몰아쳐 중토선역 대부분을 무너트렸다.

    청죽봉운검은 검진을 풀어 사방에서 검령동자로 돌아간 다음 한립에게도 돌아왔다.

    “마주, 전주, 두 분이 호법을 서주셔야겠습니다. 제게 한 가닥 희망이 생겼습니다.”

    한립은 전음으로 부탁했고, 마주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윤회 전주가 먼저 승낙했다.

    “수사에게 고혹금을 막을 다른 방법이 없다면, 한 수사를 믿어봅시다.”

    윤회 전주는 마주를 향해 전음을 보내고 즉시 한립 앞으로 날아갔다. 그 말을 들은 마주는 미간을 좁혔지만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따라갔다.

    두 사람은 좌우에서 신전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한립 앞을 막아섰고,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립은 목에 걸어둔 장천병을 풀어 두 손에 쥐었다.

    이어 장천병의 새빨간 빛이 그의 몸으로 들어와 골격과 경맥을 붉게 물들였다.

    윤회 전주와 마주가 그걸 알고 한립을 힐끔 살폈다.

    장천병을 오랜 세월 지니고 있던 윤회 전주도 이런 기운을 발산하는 장천병은 처음 보았다.

    “한립, 네가 변수가 되게 두고 보지 않겠다.”

    고흑금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외쳤다.

    그는 수결을 맺은 손을 뻗어 혼돈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기둥을 분출하자, 수백 리를 감싸는 현란한 빛의 바다가 한립 무리를 향해 흘러내렸다.

    곧이어 하얀 바다가 닿자 공간이 찢어지고, 그 여파만으로도 살아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구나…….”

    그 모습에 윤회 전주는 암홍색 빛을 크게 일으켜 육도윤회반을 앞으로 날려 보냈고, 찰나의 순간 하늘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된 육도윤회반이 세 사람 앞을 지켰다

    쿠쿵!

    굉음이 퍼지기는 했지만 윤회반은 하얀빛의 바다를 막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빛들은 옆으로 퍼져 중토선역을 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립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대오행환세결로 시간법칙의 힘을 천만 줄기 빛의 실로 바꾸어 병과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처음으로 의식을 병 속에 집어넣어 병 속 공간을 살피는 중이었다.

    병 속에는 무한한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들어간 한립은 작은 씨앗이 된 듯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둠 속에서 별 같기도 하고, 횃불 같기도 한 다양한 색깔의 빛덩이들이 떠서 각기 다른 법칙 파동을 퍼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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