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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232화 (1,989/2,000)
  • 2232화. 마지막 기회

    *

    갑옷을 완성한 고혹금의 금빛은 일곱 개의 법칙의 힘에 고치처럼 둘러싸여 갇혀 있었다.

    일곱 개의 법칙이 결국에는 금색 갑옷을 파고들어 찢어냈지만 만장 고공으로 솟구친 고혹금은 미간에서 금빛을 반짝여 부서진 갑옷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고혹금에게 평범한 공격은 먹히지 않을 겁니다.”

    윤회 전주가 눈을 빛냈다.

    “이제 보니,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전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혹금이 그런 윤회 전주를 보고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순간 고혹금 주변에 은빛이 번져 공간을 응결했다.

    “공간을 동결했습니다! 어서요!”

    마주의 신호에 다른 이들이 기다릴 것도 없이 여러 개의 영역을 중첩해 고혹금을 가두었다.

    윤회 전주만이 나서지 않고 이상하다는 얼굴로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뭐 힘들게들 이럴 것까지야.”

    가볍게 웃은 고혹금이 갑옷에서 금빛 검 허상들을 날려 동결된 공간과 영역들을 찢어냈다.

    자유를 회복한 고혹금은 윤회 전주 등을 향해 쇄도해 ‘왕’ 자가 새겨진 산만한 금색 주먹 허상을 날려 보냈다.

    주먹 허상이 지닌 힘은 아까보다 열 배는 강해 마주가 응결한 거울과 같은 공간을 깨부수었다.

    “계속 똑같은 수법입니다. 고혹금이 천도 융합이 얼마 남지 않아 몸을 사리나 봅니다. 이 기회를 잡아야 해요!”

    마주가 냉랭히 소리쳤다.

    “어디 천정 1인자를 죽여 봅시다!”

    음승전도 후후 웃음을 흘렸다.

    ‘고혹금, 대체 무슨 수작이냐……. 무얼 노리고 의미 없이 시간을 끄냔 말이다.’

    윤회 전주의 미간에서 주름이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러는 사이 일곱 도조의 대대적인 공격이 재개되었다.

    도조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지만 고혹금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고혹금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가 아닙니까. 윤회 전주와 마주가 여러 도조들을 끌어들여 이번에는 화를 피하기 어렵겠어요…….”

    “보제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정말 세상이 뒤집히려는 걸까요?”

    십만 리 밖에서 경천동지할 싸움을 지켜보던 수사들은 진작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도쟁투였다.

    고혹금은 암홍색 소용돌이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신영들을 본체만체하고 살짝 고개를 기울여 혼자 중얼거렸다.

    “드디어…….”

    동시에 천정 깊은 곳, 고혹금이 폐관 수련을 하던 금색 궁전이 느닷없이 폭발했다.

    다양한 빛깔의 구슬들이 튀어 올라 허공으로 녹아들었고, 잿빛 하늘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무지개가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화려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 화려한 빛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거대한 바둑판처럼 교차하며 천정 상공을 뒤덮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빛무리 속에서 괴이한 법칙의 힘이 흘러나와 고혹금에게 달려들던 음승전, 검은 거한 그리고 피풍의 사내에게 침투했다.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은 그들은 각각 잿빛과 두 줄기 검은빛을 빼앗겼다.

    쿠릉!

    이 모든 일이 복잡하게 들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져 다른 수사들은 물론 도조들도 갑작스러운 중압감에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 체내의 법칙의 힘이 하늘의 무지개 빛과 서로 감응하고 있었다.

    육도윤회반을 쥐고 있던 암홍색 거대 손이 육도윤회반과 같이 터지면서 고혹금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윤회의 소용돌이도 흩어져 버렸다.

    마주, 이원구, 적융 등은 물론 멀리 선 창오진군 등도 윤회 전주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진여연, 은명 그리고 백운 도조 같은 천정 세력의 도조도 마찬가지였고.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고혹금이 감회에 젖어 말했다.

    “벌써 모든 법칙의 힘을 모아 삼천도신대진을 완성한 겁니까?”

    윤회 전주가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

    “삼천도신대진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진법을 발동하기 위해 꼭 모든 법칙을 다 모을 필요는 없어요. 핵심이 되는 36가지 법칙을 모으면 나머지는 절반만 모아도 되지요.”

    “마역과 만황계역 대군이 천정에 진입하게 둔 것도 모두 당신의 계획이었군요. 모두를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습니까?”

    “모두가 내 계획의 일부였던 것은 사실이나, 내 목표는 저기 3명이었습니다.”

    고혹금은 윤회 전주의 물음에 선선히 답해주었다.

    “설마…….”

    “핵심이 되는 36가지 법칙 중 몇 가지는 회계에서만 탄생하는 것이라 여간 구하기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회계로 사람을 보내서도 겨우 두 가지밖에 모으지 못했는데 이번 일을 미끼 삼아 저들을 끌어들인 게 납니다. 저들이 없으면 삼천도신대진을 발동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하하! 정말이지 계략으로는 당신을 따라갈 수가 없군요. 내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걸어온 길이 모두 당신의 계산 속에 있었다니,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안색이 수시로 바뀌던 윤회 전주가 참담하게 웃었다.

    “당신은 이 정도는 알고 갈만한 자격이 되는 인물입니다. 내가 만들어갈 진정한 천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만…….”

    미소를 머금은 고혹금이 주먹을 날렸다.

    푹! 푹! 푹! 푹! 푹!

    윤회 전주, 마주, 음승전, 검은 거한, 피풍의 사내 5명 앞에 금색 팔뚝이 나타나 가슴을 꿰뚫었다.

    팔뚝에서 피어오른 금색 안개가 그들을 뭉쳐 펑! 하고 터트렸다.

    윤회 전주와 마주의 몸이 그대로 재가 되었다면, 음승전 등 회계 도조 셋은 회색 빛덩이 하나와 검은 빛덩이 둘로 변했다.

    “마주!”

    “전주!”

    마역의 도조들과 만황계역 도조들이 절망에 차 소리 질렀다.

    무표정한 얼굴의 고혹금이 수결을 맺자 음승전 등의 법칙이 뭉친 빛덩이가 하늘의 무지개 바둑판으로 흡수되었다.

    쿵!

    크게 빛이 번진 하늘에서 주술문자들이 튀어나와 하늘과 땅을 뒤덮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쪽 수사들이 몸을 덜덜 떨며 빛을 빼앗기고 있었다.

    법칙의 힘에 선령력까지 품은 빛들을 무지개판 진법이 집어삼켰다.

    마역, 만황계역, 회계, 천정 수사들은 물론 백운 도조 등도 법칙의 힘과 선령력을 삼천도신대진에 빼앗기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칙의 힘이 실타래처럼 기다랗게 늘어져 하늘로 표표히 날아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멀쩡한 것은 고혹금 하나였다.

    “지존! 뭐 하시는 겁니까! 우리도 천도를 초월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백운 도조가 당황해 고혹금에게 따져 물었다.

    “삼천도신대진을 발동하면 세계종말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 세계에 속한 무엇도 그 힘을 벗어날 수 없고, 나도 대상을 특정할 수 없지요. 진정한 천도를 위해 세 분도 희생해 주세요.”

    고혹금의 당당한 대답에 백운 도조 등도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어둠이 있어야 한 줄기 빛으로 세상을 전부 밝힐 수 있는 겁니다. 난 새로운 세상을 열어 새로운 규칙을 창조할 겁니다! 천도의 억압이 없는 신세계를!”

    그간 살아온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회상하며 고혹금의 눈이 열정으로 빛났다.

    금색 태양처럼 빛을 발하며 고공으로 날아오른 그의 미간에서 나선형의 문양이 떠올라 현란한 빛을 발했다.

    고혹금의 주문에 금색 파문이 퍼져 요지승경에서부터 천궁대륙 그리고 중토선역으로 전해졌다.

    중토선역의 네 응천문은 거대한 확성기처럼 그 금색 파문을 진선계 각지로 퍼트렸다.

    36개 대형 선역 500개 중형 선역 그리고 3,000개 소형 선역이 동시에 금빛 파문에 흠뻑 젖었다.

    범인과 수행이 낮은 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몰랐고, 태을옥선 이상만이 세상에 실낱같은 변화가 생긴 것을 감지했다.

    하지만 이제 와 무언가를 알아낸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으하하! 천지개벽의 순간을 볼 수 있다니 모두 이 세상에 살다 가는데 한은 없겠습니다!”

    고혹금이 웃음을 터트리고 진법이 거대한 빛기둥을 쏘아 올려 청명역, 천풍역을 뚫고 역외허공까지 도달하게 했다.

    그 시각, 혼란스러운 동성대륙 연회장에서 청추진인이 급히 몸을 돌려 산 중 도관에 웅장한 금색 빛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금빛의 근원지는 동성대륙 진천루인 3층 누각이었다.

    이와 동시에 다른 대륙의 진천루에서도 같은 형상이 벌어졌다.

    “이건…….”

    청추진인이 이곳에 머문 지도 3천만 년은 지났을 텐데 이런 엄청난 진법이 숨겨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놀람이 가시기 전에 청추진인은 몸 안의 법칙의 힘이 스스로 일어나 수정 실로 변해 빛기둥으로 빨려드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경악하며 주위를 살피니 다른 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안 돼…….”

    “어, 어서 피해야…….”

    천정 수사도 윤회전 인물들도 죽기 살기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동천문의 전송진을 이용해 중토선역을 탈출하려 했으나 전송진이 발동되지 않았다.

    “지존,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청추진인은 멀리 천중선역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무슨 생각이든 빈도는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겠습니다.”

    길게 탄식한 청추진인이 수사들로 인해 꽉 막힌 동천문 안에서 번뜩 사라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려 했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웅장한 웅천문에서 기이한 금빛 파동이 소용돌이를 이루고 빠져나가지 못한 수사들을 순식간에 소멸시켰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 금색 소용돌이가 거대 빛기둥까지 퍼졌다.

    아직 멀리 벗어나지 못한 청추진인이 강력한 흡입력에 저항하다, 흩날리는 법칙정사에 이끌려 강제로 되돌아갔다.

    도조가 이런데 다른 수사들이야 어찌 행운을 바라겠는가?

    동서남북의 응천문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져 중토선역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법칙의 힘을 지니고 있던 수사들은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 * *

    천궁대륙.

    구름을 태우며 요지승경 위로 상승한 빛의 장막 바깥으로 새까만 역외공간이 보였다.

    역외공간 백여 리를 차지한 혼돈의 소용돌이가 점차 크기를 키워가는 동안, 고혹금은 중토선역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다른 연회장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빠른 요지승경의 광경은 더 참혹해서 바닥에 쓰러진 수사들은 전부 법칙의 힘이 응결한 실을 소용돌이에 빼앗기는 중이었다.

    고혹금은 법칙의 힘을 빼앗기고 선인의 육체를 잃는 이들을 보며 흡족한 기색을 보였다.

    더 많은 법칙의 힘을 모을수록 진법은 더욱 강하게 작용해 중토선역 너머 진선계 전체까지 영향력을 넓힐 수 있었다.

    문득 눈썹을 굼틀한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원구가 손바닥 크기의 병을 두 손으로 들고 특수한 법칙의 힘으로 금색, 붉은색, 녹색 노란색의 보호막을 만들어 주변 백 장을 우산처럼 덮고 있었다.

    오색 빛의 비호를 받은 그는 진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법칙의 힘도 유실되지 않았다.

    그 뒤로 십여 명이 더 숨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몽파와 여몽한도 있었다.

    보제도과를 먹지 않은 덕분에 도신인의 통제를 받지 않은 그들은 전장을 벗어날 기회를 노리다 진법이 발동되고 이원구 뒤로 숨은 것이다.

    이원구는 그들까지 보호해줄 마음이 없었지만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눈감아 주었다.

    어차피 사상자가 많은 와중에 한 명이라도 고혹금과 대항할 사람이 살아 있으면 좋은 일이었다.

    그는 작은 병을 이용해 진작 적융, 진여연 등의 도신인도 제거해 주어 잠시 결맹을 맺었다.

    “이원구, 칠군에 가장 늦게 합류했으나 개중에 가장 머리가 있었습니다. 허나 진법을 완전히 발동하는 데 수사의 힘도 꼭 필요한 성분이니 얌전히 내놓으시지요…….”

    “고혹금! 내 진작 당신이 이상한 짓을 꾸미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내 힘을 원하면 직접 가져가 보세요!”

    이원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피식 웃음 지은 고혹금은 더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소용돌이로 손을 뻗었다.

    콰르르.

    소용돌이 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회색빛 한 줄기가 이원구의 병이 만든 오색 보호막으로 떨어졌다.

    보호막은 웅웅 진동하면서 빠른 속도로 빛을 잃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어서 도우세요! 나와 같이 이 병을 발동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유일한 기회입니다!”

    이원구가 소리치며 전음으로 병을 조종하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일러주었다. 이에 적융과 진여연도 반박하지 않고 나섰다.

    몽파도 서둘러 선령력을 병에 불어 넣었고, 수행이 낮은 여몽한도 주저하지 않고 도왔다.

    창오진군 등 이원구에 의해 도신인을 제거한 사람들도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 필사적으로 선령력을 모았다.

    아직 법칙의 힘을 전부 빼앗기지는 않아 숨이 붙은 수사들도 도신인의 효과가 줄어들자 모두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생존자들이 많이 모일수록 어두워져 가던 병의 오색 보호막은 밝게 빛났고 회색빛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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