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1화. 다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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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요지승경 상공
마역과 만황계역 대군이 실성한 선역 수사들과 천정 수사들의 공격을 받는 동안 소수는 제 자리에 멈춰 있었다.
창오진군 등 세 도조도 미간에 도신인 문양이 떠있었으나 전력을 다해 저항했기에 제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세 사람 다 가슴이 철렁했다.
고혹금이 숨겨둔 이 한 수는 전세를 뒤집기에 충분했다.
천정 쪽 도조들은 기뻐했고 마역과 만황계역 쪽 도조들은 표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도신인을 이렇게도 쓸 수 있다니 새로운 사실을 배워갑니다. 하지만 이걸로 우리를 물러나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윤회 전주는 실성한 듯 달려들어 싸우는 수사들을 내려다보고 평온하게 말했다.
수결을 맺은 그의 미간에서 수정빛이 무형의 사슬을 이루고 잿빛 공간 위쪽으로 스며들었다.
마주도 굵직한 은빛을 방출해 사슬이 스며든 곳으로 보냈다.
촤악!
회색 뇌전이 한 번, 두 번 공간을 가르고 있었다.
별안간 수백 개의 회색 뇌전이 뇌전 대문을 이루었다.
“이건…….”
이채를 띤 고혹금이 주먹을 내질렀다.
쿵!
거대한 주먹 허상이 은색 뇌전 대문을 때렸다.
금색 주먹 허상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었고, 기세가 대단해서 대문에 닿기도 전에 위압감이 윤회 전주 등을 억눌렀다.
“술법에 집중하세요. 저건 내가 막고 있겠습니다!”
마주가 몸을 날렸다.
그를 중심으로 수백 리에 은빛이 차올라 부서진 공간을 회복하고 천만 배는 견고하게 만들었다.
현묘하고도 강대한 공간의 힘이 수만 리를 꽁꽁 얼린 것 같았다.
윤회 전주는 마주가 공간법칙 금제로 공간을 구금한 것에 안심하고 열 손가락으로 수결을 맺었다.
더 많은 회색 뇌전이 떠올라 대문에 스며들면서 극히 선명한 빛을 내뿜었다.
세상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오로지 은색 빛의 문만 남은 것 같았다.
대문 중앙에 구불구불하게 뇌전문양들이 모여 어딘가로 통하는 거무튀튀한 공간 통로를 이루었다.
고혹금은 표정 변화 없이 한 쪽 소매를 털어냈다.
두 눈동자가 찬란한 금빛으로 변한 그의 목덜미와 피부에 난해한 고대 문양이 떠올라 의복의 문양과 연결되면서 혈관처럼 금빛을 교류했다.
괴이하게도 그가 앉은 바퀴 의자에서도 똑같은 문양이 나타나 피부의 문양과 연결되었다.
금빛이 반짝일 때마다 바퀴 의자에 앉은 고혹금의 허상이 생겨나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방대한 시간법칙의 힘은 이전에 고혹금이 펼쳤던 어떤 시간법칙과도 다르게 사납게 날뛰었다.
금빛이 은빛과 교차하며 모두의 시야를 멀게 만들었고, 은빛으로 응결된 공간이 무궁무진한 금빛의 침식을 받아 공간 폭풍을 일으켰다.
부서진 공간은 은색 수정 파편처럼 공간 폭풍에 휘말려 나부꼈다.
그러나 마주는 공간동결 신통이 뚫린 것에 놀라지 않고 손바닥으로 허공을 때려 공간법칙의 힘을 내뿜었다.
공간 폭풍이 10배는 맹렬해져 방대한 공간 난류를 이루고 금색 허상들과 고혹금을 휩쓸었다.
예기치 못한 변화에 슬쩍 뒤로 밀려난 고혹금이 금빛을 일으켜 몸을 가누며 멀쩡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준비를 마친 윤회 전주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열려라!”
회색 뇌전으로 만든 빛의 문 위로 ‘개(開)’ 자가 떠오르고 문 안쪽의 풍경이 또렷해졌다.
잿빛의 세계는 회색 구름이 퍼진 하얀 하늘과 검은 대지를 이루고 있었고, 적막한 공간에는 잿빛 신영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놀랍게도 마역 혹은 만황계역 대군에 필적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회계 수사들이었다.
수행으로 따지면 회계인들이 당연히 뛰어났고, 그중에서도 발군은 참시를 당해 쫓겨난 대라 회선들이었다.
천정 쪽의 적잖은 대라 수사들은 참시 회선들을 보고 안색이 달라졌다.
천지영기와 회계의 기운이 흘러나와 두 기운의 충돌에 요지승경이 흔들리고 인근 천지영기가 희박해졌다.
격렬히 싸우던 천정, 마역, 만황계역 수사들의 동작도 느려졌다.
“회선!”
누군가 새로 나타난 잿빛 인물들을 알아보고 놀라 소리쳤다.
빛의 문에서 강력한 파동을 지닌 3명이 나섰는데, 그 중 창백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분명한 중년인은 음승전이었다.
나머지는 까맣고 거대한 몸을 지닌 흑승역 출신 회선과 회색 피풍의로 전신을 가리고 긴 팔을 늘어트린 인물 모두 도조였다.
세 사람은 등장하자마자 천정 수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쿠쿠.
무수히 많은 회계 수사들이 성난 회색 파도가 되어 광증에 걸려 살인을 해대는 수사들을 막고 전투를 개시했다.
회계의 기운은 천지영기를 억제하는 속성이 있어 회계 수사들보다 수행이 높은 천정 수사들도 제약을 받았다.
회계 대군의 선봉에서 수십 명의 참시 회선들이 천정의 대라 수십 명을 맡아 싸웠다.
회선들 중에는 천정 대라들이 베어낸 이들도 있었기에 서로 잘 아는 사이라 할 수 있었다.
마역와 만황계역 대군도 전열을 정비하고 천정 수사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판이 뒤집히자 마주, 적융 등이 한시름을 놓았다.
윤회 전주는 흔들림 없이 고혹금을 주시하고 있었다.
줄곧 후방에서 조용히 있던 이원구가 눈을 뜨고 금빛을 퍼트려 9색 문양을 약화시켰다.
길게 숨을 토해내는 그의 입에서 금색, 붉은색, 남색, 녹색, 노란색 다섯 가지 빛을 발하는 작은 병이 빠져나왔다.
교삼 등이 구원관에서 훔쳐내려 한 병과 똑같이 생긴 병이었다.
파앗!
오색(五色) 병은 즉시 성대한 빛을 내 이원구를 감쌌다.
금속, 나무, 물, 불, 흙 다섯 가지 오행법칙을 대표하는 빛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도신인처럼 화합해 이원구의 9색 빛을 병 속으로 빨아들였다.
그제야 얼굴색이 나아진 이원구는 금빛을 바늘처럼 만들어 나머지 9색 빛도 몸 바깥으로 밀어냈다.
펑!
오래지 않아 이원구 미간의 9색 문양이 부서지고 9색 빛은 모조리 병 속에 갇혀버렸다.
고혹금이 그걸 보고는 안색이 달라졌다.
쉭!
그때 음승전 등 회계 도조 세 명이 윤회 전주 곁으로 와서 그들과 협력해 고혹금을 포위했다.
눈을 반짝인 이원구는 적융에게 손을 뻗자, 오색 병이 적융 머리 위로 날아가 빛으로 그녀를 감쌌다.
9색 빛이 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적융 미간의 도신인도 깨져나갔다.
두 사람도 고혹금의 포위망에 합류했다.
일곱 명의 도조가 손을 잡고 고혹금을 가두고 있었다.
“음 수사, 나 수사 그리고 이분은……. 섭혼 수사 아닙니까? 이 세 명을 끌어들이다니 수단이 놀랍습니다.”
고혹금은 음승전 등 세 명을 훑고 윤회 전주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당신의 음모를 안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욕심이 과했어요. 감히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다니.”
윤회 전주의 말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마역의 네 도조와 싸우던 진여연은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끼리 승부를 내는 게 중요할까요? 힘을 아껴두었다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면 어떻습니까?”
매혹적인 여인과 사자 머리 괴수를 상대로 싸우던 진여연이 푸른 연기로 변해 백 리 밖으로 벗어나 말했다.
“헛소리!”
질투심이 가득한 눈빛을 한 매혹적인 여인이 흑자색 장도를 높이 들어 공격하려 했다.
“하란 수사, 잠시만요. 진여연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마주 쪽에서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생각합니다.”
사자 머리 괴수가 백의 뚱보 여인으로 변해 매혹적인 여인 앞을 가로막았다.
이에 씩씩거리던 하란은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장도를 내려놓았다.
그들은 진여연이 달아날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두 여인을 향해 다소곳한 미소를 보인 진여연은 고요히 서서 멀리 마주 등을 살폈다.
진여연이 싸움을 멈출 무렵 은명 도조도 돌연 전장에서 물러섰다.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것 같은데. 다시없을 이 기회를 다 같이 누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은명 도조는 저음의 목소리로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만장 간시와 황삼 사내는 시선을 마주치고 말없이 손을 거두었다.
진여연, 은명 도조와 달리 백택, 백운 도조 등 여섯 명은 멈추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고혹금이 일곱 명의 도조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본 백운 도조 등 세 사람은 어떻게든 백택 무리에게서 벗어나 도움을 주려 법칙의 힘과 영역, 보물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러나 백택 등은 그들이 고혹금을 돕게 둘 리 없었다.
세 사람은 전부 본체로 변신했고, 상서로운 짐승으로 변한 백택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이 있고, 턱 아래로 산양 수염이 자라나 입을 벌릴 때마다 수천수만의 하얀 폭풍들을 불어냈다.
악면이 변한 유천곤붕은 수많은 뇌전으로 몸을 감고 가는 곳마다 뇌전빛으로 물들였다.
민머리 거한도 물고기를 닮았지만 물고기는 아닌 추악한 검은 괴수로 변해 백택, 악면보다 더 큼지막한 몸집을 자랑했다.
머리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입안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가득 나 있었는데, 마치 안쪽으로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듯 강력한 흡입력을 발산했다.
여섯 명 모두 도조의 경지였기에 법칙 위력은 엇비슷해도 만황진령들의 탄탄한 육신의 힘은 따라오지 못했다.
셋이 미친 듯이 육탄전을 펼치자 백운 도조 등은 뇌전빛이 퍼진 공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날 죽이겠다는 겁니까?”
고혹금이 일곱 명의 도조들을 둘러보며 한가롭게 물었다.
“과욕을 부린 자신을 원망하세요.”
마주가 그런 고혹금을 향해 서늘하게 말했다.
“과욕? 세계의 끝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과욕이란 말입니까? 지금의 경지에 이른 당신들도 놓지 못하는 집념 한두 가지는 있을 텐데요.”
고혹금은 차분하게 말하며 소매 속에서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소리 없이 부수었다.
“간사한 잡니다. 무슨 짓을 꾸미기 전에 없애야 합니다!”
눈을 반짝인 윤회 전주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고혹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중에 암홍색 갑옷을 입은 귀신이 나타나 손을 뻗어 고혹금의 머리를 날리려 했다.
다른 이들도 즉시 공격을 시작했다.
“공간파쇄(空間破碎)!”
“금제열천(金帝裂天)!”
“화신강세(火神降世)!”
“유환멸살(幽幻滅殺)!”
“패도성공(覇道星空)!”
“탄혼서백(呑魂噬魄)!”
일곱 명의 몸에서 극강의 법칙이 응결해 고혹금을 향해 최강의 공격을 날렸다.
이에 만 리 허공이 들썩들썩하며 파쇄되고, 모든 것을 찢을 듯한 금빛이 하늘과 땅을 채우며 투명한 지옥의 불길, 무형의 검은 그림자, 눈길을 잡아끄는 하얀 별빛들, 공간을 삼키는 힘이 나타났다.
요지승경 안의 수사들은 물론 요족과 마족 대군까지 겁을 먹고 만 리 밖으로 달아났지만 수행이 부족한 이들은 다채로운 법칙의 파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갔다.
이제 어느 편이든 간담이 서늘해져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 서로 달려들지 못했다.
시간도조인 고혹금은 천정칠군의 우두머리로 3대 지존법칙 중 하나인 시간법칙을 익힌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는 당금의 절대 강자였다.
그를 둘러싼 일곱 명 중 윤회 전주와 마주는 말할 것도 없이 시간법칙과 동급의 지존법칙인 윤회법칙과 공간법칙을 익힌 극강의 존재였고, 나머지 다섯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모두 숨죽이고 대체 누가 이길지 지켜보고 있었다.
고혹금은 무너져 내리는 공간 중심에서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홀로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두 손으로 수결을 맺은 그의 몸과 바퀴 의자에서 금빛이 밝게 일어나 용 문 양에 들어가 갑옷을 이루고 수시로 금색 불길을 뿜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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