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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230화 (1,987/2,000)
  • 2230화. 한 걸음 한 걸음

    *

    같은 시각, 십방만선진 안.

    한립이 추레한 노파의 실종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말라죽은 동을신목 나무에서 푸른 빛이 일더니 어린나무로 변한 것이다.

    흐릿하게 사지가 자라난 나무는 여린 신영으로 변해 강력한 나무 속성 법칙의 힘을 드러냈다.

    “저건…….”

    어여쁜 용모에 가녀린 몸을 지닌 어린 여인은 모습은 완전히 달랐지만 추레한 노파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하하하. 한립 수사, 내 고영법칙(故榮法則)을 익히고 떠돌며 목숨을 건 전투를 한 게 수백만 년 전입니다. 오늘 당신의 양생수로 시든 몸을 되돌린 게, 수사에게는 큰 화가 될 겁니다.”

    갑자기 묘령의 소녀로 변한 주안이 명랑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등 뒤로 늘어트린 그녀의 검은 흑발이 덩굴처럼 커져 검은빛으로 주안을 감쌌다.

    시선을 돌린 한립은 주변 수십만 리로 머리카락들이 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라!”

    한립의 외침에 72자루 청죽봉운검들이 돌며 뇌전 채찍들을 날카롭게 뻗어 만연한 검은 머리카락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자삼이 지켜보다 도우러 오지 않고 중상을 입은 동리호를 데리고 진법을 빠져나가 버렸다.

    검진을 발동한 한립은 주안을 향해 쇄도했으나 수천 리를 이동한 후에야 끊어낸 검은 머리카락들이 둥실 떠서 그를 포위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늙은이의 공격을 받아보시지요!”

    어디선가 매서운 목소리가 들리고 머리카락들이 스스로 이어져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를 이루고 한립을 끌어당겼다.

    청죽봉운검이 이룬 검진이 파훼되고, 각각의 검이 검은 머리카락들에 묶여 웅웅 울어댔다.

    소용돌이 정중앙에 있는 한립은 손목과 발목 그리고 허리가 머리카락들에 묶여 뼈가 삐걱거릴 정도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법칙 파동이 머리카락을 통해 그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물결 같은 힘의 침식에 괴롭지는 않았지만, 물결이 지날 때마다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팔을 내려다본 한립은 피부가 쭈글쭈글하게 변한 것을 보았다.

    “이건 환술이 아니야. 그렇다면?”

    시간유속을 빠르게 해서 사람을 순식간에 늙게 만드는 술법은 그도 할 수 있었지만 주안은 시간법칙의 힘을 지니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진선이 된 이후 불로불사의 존재였는데, 어떻게 수십 초 만에 이렇게 나이가 들 수 있냔 말이다.

    이런 생각이 스치자 한립은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묵묵히 선령력을 운용해 말라붙은 피부에 푸른빛을 일으켰다.

    그의 선령력과 물결 같은 미지의 힘이 엎치락뒤치락 작용하면서 피부가 봄과 가을을 오가는 것처럼 말라붙었다 차오르기를 반복했다.

    이런 일이 계속될수록 피부에만 머물던 힘이 점점 골격으로 스며들고 있어 대라의 육체가 언젠가는 망가질 것만 같았다.

    “가짜 시간유속으로 나를 골탕 먹이겠다면, 내가 진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차갑게 미소지은 한립은 영역을 급격히 수축해 시간 물건들을 불러들였다.

    영역 안에 달, 별, 산, 강, 숲이 오행환세를 이루었다.

    오행환세 속에서 시간유속이 천 배는 빨라져서 주안의 고영법칙 유속도 천 배로 빨라져 한립의 피부 변화도 그만큼 극심해졌다.

    그러나 진작 그럴 줄 안 그는 천살진옥공을 펼쳐 전신의 현규를 밝히고 찬란한 진극막으로 몸을 보호했다.

    이렇게 주안의 고영법칙의 영향이 줄어든 틈에 한립은 극히 멀리 하늘 쪽을 살폈다.

    본체로 돌아간 금동 주변 하늘이 왜곡되면서 공간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희색을 드러낸 한립은 검은 머리카락에 숨은 주안을 주시했다. 주안도 그리 가뿐한 기색은 아니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한립을 붙잡아 두느라 적잖은 머리카락들이 은백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걸 본 한립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주안이 고영법칙으로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이상으로 천도가 그녀를 침식하고 있었다.

    누가 오래 버티냐에 따라 반격의 기회가 될 것이었다.

    생각 끝에 진언보륜 등의 도문을 반짝이며 시간 가속을 백 배는 더 빠르게 했다.

    주안도 속으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법칙의 힘으로 한립의 육신을 메마르게 만들려 했는데, 상대의 육신이 상상을 초월하게 단단해서 과도하게 법칙의 힘을 소모하게 되었다.

    한립이 시간법칙의 힘을 높이자 주안의 흑발이 거의 다 백발로 변해버렸다.

    안 되겠다고 여긴 주안은 머리카락들을 회수해 달아나려 했다.

    “이제 와서 어딜 가려고 그러십니까?”

    냉소를 흘린 한립은 물러나려는 주안의 머리카락 뭉치를 잡아채 은색 불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누군가 주안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졌다.

    자삼이 두 손을 뻗어 보랏빛 화염으로 은색 화염에 저항하고 있었다.

    한립을 물러나게 만든 자삼이 고개를 돌려 주안에게 말했다.

    “여기는 내게 맡기고 어서 서금충을 막으세요. 더 늦으면 끝이에요…….”

    “이미 늦었습니다.”

    한립의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일흔두 명의 검령동자들이 금동을 향해 질주했다.

    검빛으로 변한 청죽봉운검들은 도천신뢰를 거두고 숨겨두었던 만고검기를 드러내 오색 빛깔을 내고 있었다.

    “막아야 합니다!”

    자삼의 외침에 주안이 머리카락으로 청죽봉운검들을 추격하려 했다.

    그걸 본 한립이 손을 저어 고공의 단시류화가 변한 별빛들을 유성우처럼 낙하시켰다.

    구불구불 공간을 접으며 도래한 시간법칙의 힘에 주안과 자삼이 휘말렸다. 시간유속이 멈춘 그들은 광음의 강에 빠진 듯 고정되었다.

    이어 진정한 광음의 강이 그녀들을 휘감고 시간 금제를 강화했다.

    한립의 손짓에 둥근 달도 떨어져 그녀들 위로 금색 광선을 내리쬐었다.

    지난 실수를 잊지 않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산맥과 동을신목 숲은 이용하지 않았다.

    두 사람을 거두었을 때,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쿠우웅.

    그가 고개를 들자 청죽봉운검들이 일격을 가하고 검령동자로 변해 돌아오고 있었다.

    금동 쪽 허공은 하늘과 땅이 열린 듯 천장 입구가 벌어져 칠흑 같은 어둠을 드러냈다.

    그 어둠 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드디어 십방만선대진을 연 것이다.

    기뻐하며 청죽봉운검을 거두던 한립은 돌연 뒤쪽에서 강력한 기운을 느꼈다.

    몸을 돌려 보니, 시간법칙 물건들이 이룬 금제 속에 보라색 태양이 떠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그는 진언보륜 등이 손상을 입을까 서둘러 금제를 회수하고 몸을 날렸다.

    * * *

    한편, 요지승경 상공.

    윤회 전주, 마주, 이원구, 적융 네 사람이 고혹금을 둘러싸고 있었다.

    “고혹금, 내 오랜 세월 동안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목숨을 내놓거라!”

    윤회 전주는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힘있게 소리쳤다.

    “전주는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네 사람을 둘러본 고혹금이 당황하지도 않고 말했다.

    “이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겁니다. 선역 각지에 퍼진 병력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거라면 진작 중토선역 각지의 전송진법을 막아 두었어요. 헛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마주가 곧 무너질 것 같은 천정 수사들을 보며 웃음 지었다.

    아래쪽에서 싸우고 있는 수사들은 대라, 도조들에게는 그리 강력한 전력이 아니었지만 천정이 각 선역을 통치하는 기반이 되는 자들이었다.

    오늘 천정 수사들이 몰살당하면 천정은 기세가 크게 꺾이고 말 터였다.

    고혹금은 잔잔히 미소를 보이고는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맺어 미간에 복잡한 도안을 불러냈다.

    아홉 가지 각기 다른 색깔의 주술문자로 이루어진 진법은 아홉 가지 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아홉 가지 법칙의 힘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연결된 채로 기이한 기운을 내뿜었는데, 그건 천도의 힘과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쿵!

    현란한 (九色)구색 빛줄기가 고혹금의 몸에서 퍼져나갔다.

    고혹금의 행동이 너무 빨라 윤회 전주 등은 말릴 새도 없었다.

    네 사람은 급히 방어를 했지만 9가지 빛은 그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뭘 하려는 겁니까!”

    얼굴을 굳힌 마주가 은빛을 방출해 공격할 기미를 보였고 윤회 전주도 암홍색 빛을 일으켰다.

    그때 고통스러운 비명이 옆에서 터져 나왔다.

    비명의 주인은 이원구와 적융이었다!

    두 사람의 미간에 9색 도안이 떠올라 전신으로 퍼져나가 법칙의 힘을 통제하려 했다.

    도조인 그들이 완전히 제압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용할 수 있는 신통이 크게 준 것은 사실이었다.

    바로 이때, 두 사람 앞에 금색 거대 손바닥 두 개가 나타나 잔영을 남기며 머리를 후려쳤다.

    고혹금이 나선 것이다.

    이원구와 적융이 피하지 못하고 당하려는 찰나 귀를 찌르는 파공음과 함께 두 줄기 암홍색 빛이 횡으로 날아들어 대신 거대 손바닥들을 막아주었다.

    윤회전주의 암홍색 빛과 고혹금의 금빛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암홍색 빛은 즉시 부서졌지만 금색 거대 손바닥은 잠시 느려졌을 뿐이었다.

    이원구와 적융의 뒤로 공간 파동이 나타나 그들을 빨아들여 거대 손바닥들은 허탕을 치고 말았다.

    수백 리 바깥으로 이동한 이원구와 적융 옆에 마주와 윤회 전주가 번득 나타났다.

    “괜찮습니까?”

    마주는 고혹금을 경계하면서 물었다.

    “미간의 표식이 체내의 법칙을 통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심어 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이원구는 대답하면서 전력으로 구색 문양에 대항했다.

    적융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원구와 같은 처지인 게 분명했다.

    “도신인!”

    윤회 전주가 자세히 그들의 구색 문양을 보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라고요? 도신인은 천도 침식에 대항하는 신통 아닙니까?”

    적융이 놀라 소리쳤다.

    “도신인은 맞지만 내가 손을 좀 보았습니다. 전주, 어디서 도신인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예상치 못했을 거예요?”

    고혹금 날아들어 담담히 말했다.

    윤회 전주가 이원구와 적융의 앞을 가로막고 뭐라 답하려다 고개를 틀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자리를 떠났던 수사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다들 미간에 이원구, 적융과 마찬가지로 도신인 문양이 나타나 겁에 질린 기색으로 각양각색의 빛을 반짝이는 중이었다.

    표정으로 보아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생명을 불사르는 것처럼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그들은 예고도 없이 마역 대군의 후방을 기습했다.

    승리를 앞두고 있던 마역 대군은 광인처럼 달려드는 그들과 맞붙어야 했다.

    피가 비처럼 뿌려지고 곳곳에서 욕설과 비명이 들려왔다.

    연회에 초대받은 선역 수사들은 본래 마역 대군보다 수행이 높았기에 이번 기습은 치명적이었다.

    수세에 몰렸던 천정 수사들이 환호하며 방어진법을 거두고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실성한 선역 수사들을 앞세워 천정 수사들은 만황계역 대군을 향해서도 공격을 퍼부었다.

    * * *

    같은 시각, 외역 공간.

    한립이 막 시간법칙 물건들을 거두었을 때 보랏빛 태양이 터져 불바다를 이루었다.

    “당신에게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눈살을 찌푸린 한립이 소리치며 대오행환세결 공법을 운용하며 손을 뻗었다.

    “천번지복(天飜地覆)!”

    외부 계면들과 연결되어 있던 진법 공간에 괴이한 힘이 돌면서 불바다를 뒤집어 추락시켰다.

    이어 백만 장 크기의 금색 손바닥이 떠올라 부채질을 하듯 주안과 자삼을 날려버렸다.

    외부에서 밀려든 방대한 힘이 홍수처럼 금색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쿵쿵쿵쿵…….

    진법 공간이 겹겹이 수축하다 결국에는 무너져 내렸다.

    금동이 물러나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외역 공간에 있었네요.”

    금동이 주변을 살폈고, 한립은 창문처럼 난 공간균열들을 보았다.

    “진법을 깨기 어려웠던 이유가 선역 10개의 힘을 빌려와서 였어. 저들이 참지 못하고 진법 안으로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빠져나오는 데 더 오래 걸렸을지 모른다.”

    말을 마친 한립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삼, 주안, 동리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어찌합니까?”

    주안이 심각하게 물었다.

    “휴, 진법도 깨졌는데. 우리가 뭘 어쩔 수 있겠어요.”

    자심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주안이 뭐라 하려 했으나 자삼이 막았다.

    “맹연이 죽었고 동리호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뭐요?”

    “우리도 추격할 수 없을 정도로 중상을 입은 겁니다.”

    이를 악문 자삼이 결정을 내렸다.

    주안도 동의해 두 사람은 한립과 멀리 떨어진 공간균열로 몸을 날렸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한립은 굳이 막지 않았다.

    “곧 공간균열들이 닫히겠어요. 우리는 어쩌죠?”

    “우리도 가야겠지.”

    금동의 물음에 한립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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