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8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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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윤회 전주의 말을 듣다 표정이 급변하거나 몸을 떨었다.
윤회 전주가 하는 말이 워낙 기상천외해서 바로 납득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백운 도조 등 천정 도조들도 가슴이 떨렸지만 그래도 그들은 도조였기에 굳건한 심지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혹금의 얼굴에도 파문이 일지 않았다.
견사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파르르 입술을 떨더니 고혹금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존은 아까 윤회 전주와 대화를 나누며 천도를 돌파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삼천도신대진을 이용해 그리하려는 것이 맞습니까?”
다른 수사들도 이제 전부 고혹금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천도를 돌파하는 것은 세상천지에 이 방법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 수사, 내 말이 맞습니까?”
고혹금이 답하기 전에 윤회 전주가 다시 물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견사음이 그런 윤회 전주를 노려보며 확인했다.
“삼천도신대진을 발동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방대한 원기를 공급해야한다. 천정이 그간 미친 듯이 각 선역의 재료와 자원을 약탈하고 끌어모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럼 두 번째 조건은요?”
윤회 전주의 말에 견사음이 계속 질문했다.
“당연히 세상천지의 삼천 대도를 모아야지요. 이 일은 천정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기는 했지만 선옥으로 잡혀간 죄수들이 결국에 어찌 되었는지 아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천정이 특수한 법칙의 힘을 지닌 보물을 쉬지 않고 모았던 연유도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윤회 전주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요지승경 안의 수사들은 격동했다가 점차 감정을 가라앉히고 거의 그의 말에 설득이 된 듯 천정 수사들을 달라진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헛소리! 삼천도신대진이 뭐고, 천지를 멸하고 천지를 개벽한다는 것은 또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립니까! 천정이 선옥의 죄수들에게서 법칙의 힘을 거둔 것은 벌을 주기 위한 목적과 그걸 이용해 선역에 도움이 될 선기를 제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간 특수한 법칙의 힘을 지닌 재료를 모은 것 역시 특수한 성질의 보물을 제련해 당신들 윤회전에 대항하기 위함이고요. 다들 간사한 윤회 전주의 말에 현혹당하지 마십시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백운 도조가 급히 외쳤다.
“그렇습니다! 윤회전이 평소에 각 대륙에 분란을 일으키며 벌였던 일들을 떠올려 보세요. 다 우리의 단결을 해치려는 수작입니다!”
난쟁이 노인 등도 소리를 높였다.
“백운 수사, 난 진작부터 당신들 천정이 어째서 죄인들의 체내에서 법칙의 힘을 뽑아내는지 의심해 암암리에 조사 중이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추출된 법칙은 천정의 선기 제련을 맡은 백련봉(百煉峰)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보내지더군요.”
견사음이 입을 열었다.
백운 도조가 훽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백운 수사, 이렇게 된 것……. 내 더는 천정을 신뢰하지 못해도 이해해 주세요. 사실 내가 천정과 윤회전 사이의 갈등에 연관이 된 것도 아니니 알아서들 하란 말입니다.”
견사음은 천정 수사들을 향해 공수를 해보이고 요지승경 바깥으로 날아올랐다.
윤회 전주가 마주를 향해 눈짓하자, 마주가 손을 들어 마역 대군을 양쪽으로 물려 길을 터주었다.
견사음은 완전히 떠나지 않고 비교적 안전한 곳까지 날아가 멈춰 섰다.
그를 시작으로 보제연에 참석한 다른 선역 수사들도 더는 눈치를 보지 않고 견사음의 행보를 따라 했다.
창오진군과 풍 씨 성 도조도 시선을 마주치고 날아올랐다.
별안간 요지승경의 각 종문 수사들 대부분이 자리를 비우고 남은 것은 셋에 하나에 불과했다.
“당신들…….”
백운 도조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났으나 고혹금이 태연자약한 것을 보고 그들을 강제로 막아서지는 않았다.
눈을 반짝인 진여연은 떠나지 않았다.
은명 도조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마역 대군 앞에 떠있었다.
원래도 많지 않던 요지승경 내 수사들이 거의 떠나니 주변을 둘러싼 마역과 만황계역 대군에 비해 차이가 극명해졌다.
“허허! 전주, 대단하십니다. 말 몇 마디로 상대방 전력 태반을 떼어냈어요.”
마주가 미소를 지으며 윤회 전주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과찬이십니다. 고혹금이 도를 거슬러 악행을 저질러 사람들의 신뢰를 잃은 것이지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생하셨으니, 앞으로는 저희 쪽에 맡겨두세요.”
대화를 마친 마주가 앞쪽으로 손을 까딱였다.
쿠쿠쿠!
마역 대군이 즉시 앞으로 나서서 그 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만황계역 대군도 앞쪽으로 이동했기에 그들이 포위하는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 * *
한편, 십방만선진 안.
파칙!
이어 한립의 손바닥에서 뇌전빛이 흘러나왔다.
맹연의 머리통 눈코입귀에서 푸른 연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그의 마지막 저주가 분노에 찬 욕설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법칙의 힘인지 몰랐지만 듣고 있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명연의 기운이 철저히 가라앉자 시선을 마주친 자삼과 동리호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한립은 천도신뢰로 겉이 새까맣게 탄 머리통을 두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은빛을 반짝였다.
은염 소인이 손바닥에서 나와 머리통 속으로 쏙, 사라졌다.
“그래도 갈 때는 하나여야겠지.”
그런 맹연의 머리를 몸통 쪽으로 던지자 화륵! 은색 불길이 일어 시체 전체를 불살랐다.
“이제 당신들 차례입니다.”
한립은 동리호와 자삼을 향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맹공을 가해야겠습니다. 적수가 되지 못하면 나는 개의치 말고 십방만선진 안의 모든 걸 불살라 버리세요.”
길게 한숨을 내쉰 동리호의 말에 자삼이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에서 수정빛을 반짝인 동리호가 양팔을 휘저어 강렬한 법칙 파동 속에서 거대한 산 허상들을 줄줄이 불러내기 시작했다.
“한립 수사, 내 붕산권(崩山拳)을 막아보시겠습니까!”
“못 할 것 없지요.”
크게 웃음 지은 한립은 청죽봉운검들을 검령동자로 변하게 하고 금색 영역을 펼쳐 동리호를 덮쳤다.
그러자 힘껏 돌격하려던 동리호는 진흙에 빠진 것처럼 한 걸음을 옮기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 와중에 기합을 넣으며 주먹을 뻗은 동리호 앞에서 산봉우리 허상들이 속속들이 사라져 그의 팔뚝으로 흘러들었다.
동리호의 팔이 눈부신 금빛으로 빛나는 순간, 진선계 여러 선역의 거산들이 메말라 원기를 상하고 심지어는 지면이 폭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백여 산의 기세를 담은 주먹이었다.
그걸 본 한립은 기뻐했다.
“와라…….”
등 뒤로 진언보륜 등 다섯 개 시간 물건들을 불러낸 한립이 주먹 끝에 오행멸절의 힘을 끌어모았다.
쿠릉!
다섯 가지 강대한 시간법칙의 힘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금색 주먹이 동리호의 산악 주먹과 함께 충돌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사나운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공간을 주름지게 만들고 공간균열들을 만들었다.
그저 그 균열들이 아주 미세해서 잠시 생겨났다 사라졌다.
폭발의 여파에 한립과 동리호가 동시에 수만 리를 물러났다.
허공을 한쪽 발로 쿵, 찍은 한립은 그곳에서 더는 밀려나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덜덜 떨리는 주먹을 쥐고 동리호는 섬뜩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순수한 힘의 대결에서 한립에게 지고 만 것이다.
핑!
이때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고 동리호 뒤에서 누군가 활과 화살을 들고 뛰어올랐다.
보라색 화염이 응결된 불화살이 활시위를 떠나 허공에 보랏빛 궤적을 그리며 불가사의한 속도로 한립에게 날아들었다.
급속도로 진언보륜을 회전시킨 한립은 두 손을 뻗어 중첩된 시간법칙 파동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그러나 보라색 불화살은 시간파동에 들어서서도 거침없이 그의 심장을 노렸다!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한립은 성신지력을 응결한 두 주먹을 교차해 막으려 했지만, 화살은 마치 형체가 없는 것처럼 그의 팔을 투과해 가슴에 꽂혔다.
가슴에 꽂힌 순간 실체를 가지게 된 화살이 보랏빛 화염을 이글이글 일으켰다.
몸이 타는 고통을 느끼면서 한립은 화살에 실린 힘에 나가떨어졌다.
“이게 어떻게…….”
한립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 보라색 화염은 정말 괴이해서 허상과 실재를 자유롭게 오가고 신체에 들어온 이후로 몸을 불살라 선령력까지 봉쇄할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한참을 몸부림치던 그는 아직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자염(紫焰)으로 몸을 봉한 틈에 죽여야 합니다!”
자삼의 외쳤다.
그녀가 말할 것도 없이 동리호가 펄쩍 날아올라 한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노란빛의 고리를 두른 그의 등 뒤로 산을 옮기는 역사(力士)의 허상이 나타나 짙은 산의 법칙을 발산했다.
역사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산은 속세에서 태산(泰山)이라 불리는 거대 산처럼 위풍당당했다.
꼼짝없이 이번 공격을 맞게 되면 한립이 연체술을 익혔다고 해도 태산에 눌려 제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던 한립의 가슴에서 정염불새가 나타나 대신 보라색 불화살을 막은 것이다.
정염불새는 도조의 경지와는 거리가 있어서 보라색 불화살을 대신 막으며 중상을 입는 것도 감내하고 한립과 함께 이런 연기를 한 것이다.
미안함을 표한 한립은 바닥을 손바닥으로 밀치며 떨치고 일어섰다.
진령혈맥과 천살진옥공을 전력으로 운용해 흑자색 비늘이 뒤덮인 백 장 높이의 거대 마신으로 변한 거의 어깨에 열두 개의 머리가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마(巨魔)로 변한 그의 등에서 푹푹 소리가 들리고 24개의 팔뚝이 튀어나왔다.
“저건 또 뭐란 말인가!”
자심이 깜짝 놀라 동리호 뒤를 바짝 쫓았다.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인 동리호는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빠르게 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괴성을 터트린 한립의 24개의 팔이 상공으로 뻗어 주먹 허상들을 만들어냈다.
펑펑펑펑펑.
솟구치는 무수히 많은 주먹 허상에 공간이 심하게 흔들려 도움을 주려던 자삼을 밀어냈다.
백 개, 천 개, 만 개…….
삽시간에 한립의 24개 팔들이 풍차처럼 돌며 주먹 허상들을 수북하게 쌓아 올렸다.
카착!
동리호의 등 뒤에서 역사 허상이 들고 있던 산이 쩍쩍 갈라져 붕괴했다.
한립은 멈추지 않고 주먹을 더욱 높게 들어 올려 동리호를 쫓으며 비처럼 주먹 허상을 날렸다.
천지간에 들리는 건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타격 소리뿐이었다.
전신에서 퍽퍽 소리가 들려온 동리호는 백만 주먹을 맞은 후에는 눈이 풀렸고, 천만 주먹을 맞은 후에는 온몸의 뼈가 부러져 흐물흐물해졌다.
그제야 한립은 주먹을 거두고 당당히 섰다.
12개의 머리가 품고 있는 감정은 달랐지만 눈빛은 하나 같이 살기가 가득했다.
“시원하구나!”
오랫동안 눌러놓은 억울함을 터트리자 속이 다 후련했다.
거마의 시선이 홀로 남은 자삼을 찾아 이동했다.
긴장한 자삼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싸울 힘을 완전히 상실한 동리호를 보고 있자니 퇴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으나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언뜻 한립 너머 환진사가 응결해 만든 산맥 쪽을 본 것 같았다. 그걸 눈치챈 한립도 방대한 몸을 돌렸다.
마치 무언가가 본원의 힘을 흡수당해 말라 죽은 것처럼 산맥에 울창하던 동을신목 숲 일부가 예상치 못하게 누렇게 말라 있었다.
의식을 방출해 산맥을 훑은 한립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문득 산맥 아래 깔려 있어야 할 노파의 기운이 감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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