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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227화 (1,984/2,000)
  • 2227화. 엄청난 음모

    *

    윤회전주가 미미하게 안색이 변해 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렸고, 이원구와 적융도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피하려는 듯 움직였다.

    그 순간, 공중에서 남색 빛이 웅장한 얼음의 법칙 파동을 머금고 떨어져 고온의 요지승경을 급격히 식혔다.

    윤회전주 등 셋도 한빙법칙(寒氷法則)에 둘러싸여 움직임이 둔해져 있었다.

    이때 진여연과 같이 만황진령을 막고 있던 설의 사내가 공중에서 등장해 소매를 떨치자, 하늘에서 남색 얼음송곳들이 화살처럼 떨어져 세 사람을 노렸다.

    각각의 얼음송곳이 지닌 한기파동이 막강해서 공간에 얼음결정들이 생기고 있었다.

    슈슈슈슉!

    수백 개의 얼음송곳들이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윤회전주 등 셋을 향해 날아들자, 인근의 천정 휘하 대라 백여 명도 공격을 개시했다.

    백여 명 대라의 협공은 그 위력이 놀라웠다.

    가볍게 코웃음을 친 윤회전주는 그들에게 시간을 허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 마역 대군 위쪽으로 이동했다.

    그가 떠나는 것을 본 이원구와 적융도 윤회전주 쪽으로 날아갔다.

    “이 배신자들!”

    설의 사내가 치를 떨며 그들을 따라붙으려 했고 천정 대라들도 그를 쫓았다.

    잘려나간 몸을 회복한 백운 도조와 난쟁이 노인도 증오에 찬 눈빛으로 달려들려 하고 있었다.

    “모두 멈추세요.”

    붉은 불덩이와 금색 빛의 실들 사이에서 고혹금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설의 사내 등은 그 말을 듣고는 곧바로 추격을 멈추었다.

    금색 안개는 계속 퍼져나가 붉은 불덩이와 금색 빛의 실은 물론 검은 발톱까지 감싸 믿기 어려운 속도로 부식시켜 재로 만들었다.

    남은 것은 대량의 금색 안개뿐이었다.

    인근 수사들은 금색 안개를 피해 멀리 물러났고, 고혹금은 금색 안개 속에서 옷에 주름도 지지 않은 태연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지존, 괜찮으십니까?”

    간신히 몸을 합친 백운 도조와 난쟁이 노인이 날아들었다.

    “이런 같잖은 수에 내가 부상이라도 당했을까 걱정되어 그러십니까?”

    고혹금의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에 백운 도조는 마음이 들썩였다.

    윤회 전주, 이원구, 적융 셋은 누구 하나도 진선계 10대 강자에서 빠지지 않는 실력자들이었는데 그들 셋이 협공을 하고도 고혹금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고혹금이 수결을 맺어 백운 도조와 난쟁이 노인의 체내에 금빛을 쏘아 보냈다.

    몸을 대충 결합한 부위에 금빛이 어리면서 빠르게 부상이 회복되었다.

    그냥 겉으로 보이는 부상만 괜찮아진 게 아니라 전투를 치르기 전처럼 기운도 돌아와 있었다.

    “시광회소(時光回遡) 신통!”

    멀리서 윤회 전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감사합니다, 전주!”

    몸을 움직여본 백운 도조와 난쟁이 노인이 기뻐하며 고혹금에게 예를 취했다.

    손을 저은 고혹금은 멀리 이원구와 적융을 보았다.

    “이원구, 적융! 천정이 그대들을 박대하지 않고 칠군의 지위까지 주었는데. 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한 지존을 배반하고 윤회전에 투항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백운 도조가 그의 시선을 따라 이원구와 적융을 보고 질책했다. 다른 이들도 이원구와 적융의 행보가 의문이었다.

    창오진군 등 셋도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미묘하게 눈빛이 달라졌다.

    윤회 전주와 고혹금이 천도에 대해 언급했을 때만 해도, 고혹금이 윤회 전주의 말에 반박하려 별 뜻 없이 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뭔가가 진행되던 중이었다.

    도조들은 당연히 천도 침식에 저항하는 문제에 민감했고, 천도를 초월해 아예 침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었다.

    “백운 수사는 아직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입니까……. 조심하세요, 고혹금에게 이용당하지 마시고요.”

    이원구가 잔잔히 미소 지었다.

    “감히 지존을 모욕해!”

    움찔한 백운이 버럭 화를 냈다.

    “내가 괜한 사람을 모욕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지켜보면 알 것입니다.”

    이원구는 미소를 잃지 않고 윤회 전주 뒤로 물러났다.

    적융도 함께 물러서 윤회 전주를 홀로 남겨두었다.

    “진선계 각지에서 오신 수사 여러분. 내가 이번 보제연에 끼어든 것은 모두에게 알려줄 일이 있어서입니다.”

    윤회 전주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고혹금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금방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

    “고혹금이 오래전부터, 아마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수도의 길에 오르기 전부터 꾸며온 극악무도한 계획에 대해서 말입니다!”

    윤회 전주가 고혹금을 손으로 가리키며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무엄하다!”

    “윤회전 죄인이 어디서 함부로 떠드는 것이냐!”

    그걸 들은 천정 수사들이 성을 내며 악을 썼다.

    “전주, 그런 거짓말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어디 내가 무슨 극악무도한 짓을 꾸미고 있는지 들어나 봅시다.”

    고혹금은 화내는 기색 없이 미소를 머금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곳에 있는 수사들이라면, 누군가 어느 법칙에 정통해 도조의 경지에 이르면 천도법칙을 이용해 횡포하기까지 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천도 침식의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은 알 겁니다. 이게 고금 이래 모든 도조들의 근심이었고, 대대로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방법이 연구되었지요.”

    의미심장하게 고혹금을 힐끗 바라본 윤회 전주가 술술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어떤 사람은 의지를 다스리는 비술을 수련해 천도에 저항했고, 또 어떤 사람은 특수한 선기를 마련해 천도의 침식을 막았습니다. 지선(地仙)을 따라해 대량의 신앙의 힘을 체내에 흡수한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효과가 크지 않았지요. 그런데 천정의 9대 지존 그러니까 전대 지존이 통치하는 동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윤회 전주가 말을 이어갔고, 여기까지 들은 고혹금의 눈빛에 이상한 기색이 어렸다.

    “천정의 9대 지존은 하늘이 내린 기재였습니다. 진법에 심취해, 시간법칙으로 도조의 경지에 이르고도 진법을 통해 다른 법칙을 융합하는 절세의 신통을 창조해 냈으니까요.”

    윤회 전주는 감탄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듣고 있던 이들도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였다.

    고혹금이 있어 대놓고 티 내지 못해도 몰래몰래 전음으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각기 다른 법칙을 융합하는 것은 극히 어려워서 두 수사가 합심해 오래 합을 맞춰야 겨우 해낼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누군가 진법으로 해냈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과 절세의 신통이라면 당연히 천하에 이름을 떨쳤을 텐데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그 전대 지존의 성은 고 이름은 도신이라 합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다른 사람들은 모르더라도 고혹금 그리고 천정의 수사 중에서는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윤회 전주가 백운 도조 등을 보며 웃어 보였다.

    “고도신…….”

    요지승경이 술렁였다.

    고도신과 고혹금은 모두 고 씨 성을 썼다.

    둘 사이에 무슨 관계라도?

    “과거사가 지금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마역과 만황계역 존재들을 끌어들이고 이원구와 적융까지 꼬여냈으니 천정과 전쟁을 하려는 속셈일 텐데, 싸울 테면 싸워 봅시다! 허튼소리는 그만하고!”

    백운 도조가 슬쩍 고혹금의 눈치를 보고는 윤회 전주의 말을 끊으려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윤회 전주의 말을 묵인한 것과 같아서 연회장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했다.

    “과거라 해도 진실이라면 들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왜 찔리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윤회 전주가 웃는 듯 마는 듯하자 요지승경 사람들도 고혹금 등을 훔쳐보았다.

    지금 듣고 있는 이야기가 다 사실이면 고혹금과 천정이 남들 몰래 정말 이상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원래 천정 편에 서려고 마음을 정했던 이들은 머리가 복잡해졌고, 백운 도조 등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백운 도조 등도 고도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다.

    고도신은 확실히 전대 지존이었고, 그 자리를 승계하면서 고혹금과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다.

    고혹금은 평온한 얼굴로 주변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윤회 전주의 말을 막지도 않았다.

    “지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사람들을 현혹하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요. 상대가 수는 많아도 지존의 신통에 우리 쪽 승산이 칠 할은 될 것입니다. 다른 선역 수사들이야 우리를 돕지 않더라도 감히 윤회전을 돕기야 할까요.”

    난쟁이 노인이 초조해져 전음을 보냈다.

    “상관없으니 말하게 두세요. 뭐든 알고 있는 게 있으면 말해 보세요.

    고혹금은 전음으로 답하지 않고 육성으로 노인과 윤회전주에게 말했다.

    “그러지요. 과연 천정 지존답습니다, 악인이기는 해도 기개는 높이 살만해요.”

    이상하다는 기색이 스친 윤회 전주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고도신은 후에 여러 종류의 법칙을 동시에 사용하면 천도에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렇게 아홉 가지 법칙을 융합해서 도신인(道神印)이라는 신통으로 천도의 침식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보았고요. 여러 도조들이 복용한 보제도과가 천도 침식을 지연시켰던 것도 그 안에 함유된 도신인의 힘입니다.”

    윤회 전주는 자신이 받았던 보제도과를 꺼내 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말에 연회장 사람들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오진인 등도 멍하니 서서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동시에 창오진인은 심경이 복잡했다.

    속으로 윤회 전주의 경솔한 행동을 비웃었는데, 실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손에 쥐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자였다.

    자신은 그에 비하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오늘 기필코 복수를 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왜인지 갑자기 실망감과 패배감이 찾아들었다.

    “도신인 신통까지 알아내다니 아는 게 상당합니다. 오늘을 위해 준비도 많이 한 것 같고요.”

    고혹금의 표정은 고요했다.

    “고도신에게 도신인은 별것도 아닌 신통이었습니다. 그가 정말 필생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삼천도신대진(三千道神大陣)이었는데, 고혹금 수사도 모를 리 없겠지요. 그가 진법을 완성하게 도운 사람이 바로 고도신의 자아시였던 당신이니 말입니다.”

    “뭐라고요!”

    윤회 전주의 한 마디에 연회장 사람들이 아연한 얼굴로 고혹금만 바라보았다.

    백운 도조 등도 이 순간만은 마찬가지였다.

    고혹금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다가 평정을 회복하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반박하지 않자 광장에는 더 큰 소란이 일었다.

    “윤회 전주, 방금 말한 삼천도신대진은 어떤 진법입니까?”

    창오진군 옆에서 홍포 노인 견사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주목되었다.

    천정이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고혹금의 위세가 있었기에 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데 견사음이 직접 윤회 전주에게 말을 건 것이다.

    창오진군과 풍 씨 성의 도조도 놀란 기색이었다.

    “그건 천지를 멸할 수도 있지만, 또 천지개벽할 수도 있는 거대 진법입니다.”

    윤회 전주가 그런 견사음을 보고 답해주었다.

    “천지를 멸하고 천지를 개벽한다? 윤회 전주, 무슨 말인지 확실히 설명을 해주세요.”

    하얗게 센 눈썹을 끌어올린 견사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삼천도신대진은 동시에 세상의 삼천 법칙을 운용할 수 있는 역천의 진법입니다. 그 진법이 일단 발동되면 흙, 불, 물, 바람이 동시에 세상을 휩쓸어 모든 것을 없애고 혼돈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진법을 발동하는 사람은 그 힘을 이용해 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 법칙의 근원이라 전해지는 혼돈법칙(混沌法則)을 장악할 수 있지요. 천도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어 새로 열리는 세상에서 다시 만물이 생겨나고 번영할 때 그 신세계의 주인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윤회 전주의 설명에 요지승경이 고요해져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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