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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225화 (1,982/2,000)

2225화. 일촉즉발

*

세 산봉우리를 버티느라 허리가 굽은 한립을 보고 주안이 피식 웃으며 사라져 금동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처음부터 그들은 기회가 생기면 바로 금동의 허공탄서부터 막기로 입을 맞추었다.

귀신처럼 사라진 그녀가 금동 뒤에 나타났을 때 한립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다음 순간 금빛이 번져 금색 산맥을 이루고, 주안이 피할 틈도 없이 떨어져 노파를 내리눌렀다.

산맥에 깔린 그녀는 강대한 시간의 힘을 품은 모래에 둘러싸였다.

빛을 번쩍이면서 환진사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금색 모래알들은 느긋하게 그녀를 침입해 들어갔다.

마치 수많은 가느다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다 큰일 나겠어.”

불길한 느낌에 자삼이 폭발적으로 물러섰고, 칠흑 같은 하늘에는 유성우처럼 불길이 떨어졌다.

동시에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도 들려왔다.

산봉우리들에 꼼짝없이 깔려있는 줄 알았던 한립의 몸이 백 배로 불어나 삼두육비의 마신 형상으로 변해 한 손으로 세 산을 번쩍 들어 올렸다.

헤아릴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동리호마저 밀려났다.

공중에 뜬 한립은 드디어 자삼이 가리고 있던 백발 사내를 포착했다. 그는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몸 아래쪽에 하얀 빛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빛무리 속에 주술문자들과 수많은 별빛이 떠서 괴상하기 짝이 없는 법칙의 기운을 뿜어냈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오행법칙과도 동떨어져 있고 의식류 법칙과도 달랐다.

“뭘 기다리나 했더니, 이거였습니까?”

한립이 세 사람을 내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자삼은 슬쩍 뒤를 살피며 맹연에게 물었다.

“이 정도 시간을 끌어 주었으면 되었겠지요?”

천천히 눈을 뜬 맹연의 눈동자 속에 천만 줄기의 별빛이 그득했다.

“됐습니다.”

* * *

한편 보제연의 변고에 이원구 등 천정칠군들도 표정이 심각해졌다.

고혹금만이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을 뿐.

“석공어, 천정과 마역은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협정을 맺었습니다. 갑자기 대군을 이끌고 천정에 침입하다니 전쟁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백운도인이 위엄있게 소리쳤다.

“너희 천정은 마역의 자원을 훔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수많은 마족을 죽였다. 피의 대가는 피로 치러야겠지.”

마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에 마족 대군이 분노가 담긴 포효를 하며 눈동자를 핏빛으로 빛냈다.

만황계역 종족들이 천정에 품고 있는 피맺힌 원한도 이에 못지않았다.

백택 등이 진작 엄명을 내려 두지 않았으면 몇몇은 벌써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백운도인은 새까맣게 몰려든 대군을 보고 속으로 식겁하고 있었다.

천정이 보제연을 앞두고 자신이 직접 천정 병력을 배치하고 여러 금제를 설치했건만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요지승경은 천정 심처에 존재하고, 여러 도조와 대라들이 머물러 뚫릴 리 없다고 여겼기에 중토선역 곳곳을 공격하는 윤회전 병력을 막기 위해 천정 대부분 병력이 사방으로 파견을 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 틈을 마족과 만황진령들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난색을 표하던 백운도조는 천정 쪽 진선계 인사들을 훑었다.

보제연에 참석한 이들은 수로는 마역, 만황계역 대군에 비해 부족하지만 신선계 최고의 실력자들이기에 전력은 막강했다.

대라만 해도 백여 명이고, 도조도 창오진군을 포함해 셋이나 되었다.

전력으로는 그들이 압도적이었다.

계산이 선 백운도조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고혹금을 향해 어떻게 하냐는 시선을 보냈다.

마주나 백택 등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윤회 전주에게 뭐라 말하려던 고혹금이 급히 오른손을 움직여 허공을 쥐었다.

오른손이 가리킨 곳 수백 장 밖에서 금색 거대 손이 나타나 천황대수인 신통을 펼쳤다.

짜악!

허공이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누군가 비틀거리며 떨어지는데, 바로 윤회 전주였다.

제자리에 앉아 있던 윤회 전주는 두 번 정도 깜빡거리다 빛으로 흩어졌다.

금색 거대 손은 멈추지 않고 내려갔다.

윤회 전주는 고요한 얼굴로 암홍색 빛을 일으켜 주먹을 뻗고 있었다.

쿠쿵.

암홍색 육각판이 머리 위로 떠올라 급격히 돌며 방대한 흡입력으로 요지승경 사람의 혼백을 뒤흔들었다.

마치 육각판으로 의식이 흡수되는 것 같았다.

암홍색 육각 판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금색 거대 손을 막아 둘은 충돌했다.

경천동지할 소리와 눈을 찌를 듯한 금빛과 붉은빛이 광활하게 퍼져나갔다.

바로 그 순간, 윤회 전주 옆 허공에 이원구, 적융, 백운도조, 난쟁이 노인 네 사람이 나타났다.

금빛, 붉은빛, 하얀빛, 검은빛이 네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와 두꺼운 4색 보호막을 이루고 윤회 전주와 폭발하는 금빛과 붉은빛을 가두었다.

보호막의 네 가지 색 주술문자들은 강력한 힘을 품고 요동치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마치 네 사람이 함께 발휘할 수 있는 신통을 수련해 숨 막히는 구금의 힘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윤회 전주는 백만 장 거산에 깔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흩어지던 금빛과 붉은빛은 4색 보호막에 흡수되었다.

모든 일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가 엇! 하니 상황이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마주, 백택 등이 그걸 보고 분분히 기운을 일으켰고, 고혹금이 곁의 진여연과 은명도조를 보고 눈빛에 파문이 일었다.

미간을 좁힌 진여연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백택 등 앞에 나섰고, 그녀와 동시에 얼음 덩어리 같은 설의(雪依) 사내도 그곳에 나타났다.

“만황 진령왕 수사분들, 저는 당신들과 싸울 마음이 없으니 괜한 충돌은 삼가시지요.”

진여연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말을 하는 그녀의 몸에서 남색 빛이 드리워 은은하게 고풍스러운 남색 석문을 이루고 황량한 기운을 드러냈다.

문 안쪽으로 거대한 물이 철썩이는데, 수많은 파도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서로를 가루로 만들며 사라지고 있었다.

“만수문(万水門)!”

백택, 악면 그리고 대머리 중년인이 안색이 달라져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편 마주 쪽에는 은명 도조가 홀로 나타나 마역 대군을 막아섰다.

마주는 걸음을 멈추었으나, 백의 여인은 코웃음을 치고 자기 체구만 한 검은 낭아봉을 불러내 휘둘렀다.

검은 낭아봉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튀어 나가 은명 도조를 때렸다. 마주는 표정이 살짝 달라졌으나 그녀를 막지는 않았다.

은명 도조는 검은 방망이 허상을 맞고 펑, 하고 터져 핏물이 아니라 검은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다.

“저놈은 또 뭔지!”

흠칫 놀란 백의 뚱보 여인이 콧김을 내뿜고 검은 낭아봉을 횡으로 휘둘러 거센 광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때 백의 뚱보 여인의 눈빛이 흐릿해 지면서 환술에 빠진 듯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은명 도조를 공격하려던 것도 잊었는지 손에 든 낭아봉을 미친 듯이 휘둘러 사방팔방으로 검은 돌풍을 일으켰다.

괴이한 변화에 나머지 마족 도조 세 명이 멈춰 섰다.

얼굴을 굳힌 마주가 소매를 휘두르자 백의 뚱보 여인 곁에 파동이 일어 물결쳤다.

뚱보 여인은 물결에 막힌 낭아봉을 열심히 휘두르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그 순간 마주가 여인 앞에 나타나 손끝으로 미간을 건드렸다.

겁먹은 기색이 사라지고 백의 여인의 눈빛이 맑아졌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주.”

뚱보 여인은 감사를 표하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순간적으로 광증이 발작한 듯 심력을 크게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마주는 여인이 멀쩡해진 것을 보고 손을 저어 주변의 파문을 거두었다.

은명도조는 사라진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 있었다.

“심마법칙보다 더 수준이 높다는 천마법칙(天魔法則), 당신이 천마도조였습니까?”

마주가 은명 도조를 직시하며 힘을 주어 물었다.

은명 도조는 대답 없이 그들을 앞길만 막고 서있었다.

“천마도조!”

백의 뚱보 여인이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른 마족 도조들도 멈칫했으나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얼굴이었고, 요지승경 안 진선계 수사들도 내막을 모르는 듯했다.

창오진군을 포함한 3명의 도조와 헤아릴 수 없이 오래 산 몇몇 늙은이들만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했다.

몽파가 그중 하나였다.

“스승님, 천마도조는 어떤 사람이죠? 천마도조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그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여몽한이 분위기가 싸해진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마도조는 아주 아주 오래전에 도조가 된 존재이다. 그가 살아온 세월은 무척 길어, 지존 고혹금보다 더 오래 산 도조라는 이야기도 있지. 천마법칙의 위력은 괴상망측하면서도 대단한데……. 천마도조가 폐관할 때마다 그 혼백이 천외를 유람하며 억만 개로 분화되어 각 계면의 수사들의 심경을 파고들며 수행을 높인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하계의 수사들은 그 분화된 심경을 역외천마(域外天魔)라 부른다지.”

힐끗 제자를 본 몽파가 남들이 들을까 염려하여 전음 비술로 말해주었다.

“역외천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요?”

여몽한은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천마가 심경에 침투해 목숨을 잃은 수사들이 얼마나 많던가.

“물론 이건 다 소문에 불과하니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천마법칙이 수사의 체내에 침투해 광증을 일으키고 대상의 감정의 힘을 삼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만은 사실이지.

천마도조는 원래 대마두로 수많은 이들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삼키기 위해 하계 공간 천여 개와 진선계 일부까지 없앤 자다. 천정의 주인이 이에 분노해 열댓 명의 도조를 파견해 추살한 이후 종적을 감췄다더니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이야.”

몽파도 두려움을 드러냈다.

“원래 천마도조는 진작 죽고 저 사람은 천마법칙을 수련해 도조경에 이른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지도. 허나 그렇든 아니든 천마도조는 위험한 존재다. 가까이하지 않을수록 이로워.”

여몽한의 말에 몽파가 당부했다.

* * *

십방만선진 안, 맹연을 보고 있는 한립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하얀 광채를 두른 맹연은 뽀얗던 피부가 말라비틀어져 나무 테처럼 문양이 남고, 기운도 사람이 아니라 고목(枯木)처럼 변해버렸다.

짚풀로 만든 허수아비처럼 변한 사내를 보며 한립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건 무슨 법칙이지?’

“세상 사람들은 상고 선인들이 말 한마디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던데, 내 저주법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이는 또 누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허수아비 같은 맹연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하는 사이 그의 왼손에 핏빛 덩어리가 맺혔다.

동시에 한립은 왼쪽 옆구리에 달린 세 개의 손에서 극통을 느끼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는 세 손이 뚫려 핏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서둘러 선령력으로 치료하려 했지만 새살이 돋기는커녕 출혈만 심해졌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진짜는 이제부터입니다.”

맹연의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한립의 왼팔도 구멍이 뚫려 출혈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 상처가 나고 연신술을 극성으로 운용해 의식의 힘으로 대비를 했는데 대체 어떻게 공격을 가하는 것인지 소용이 없었다.

‘정말 저주로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다음은 어디가 좋을까나……. 어깨로 합시다.”

맹연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립은 성신지력을 어깨로 이끌어 어깨의 현규에서 새하얀 별빛 갑옷을 응결했다.

푹!

그러나 이마저도 소용이 없는지 왼쪽 어깨에 구멍이 뚫렸다. 안색이 가라앉은 한립은 번쩍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신기한 공격입니다. 스스로 혼백이나 육신이 강하기로 손에 꼽힌다 여기는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답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한립은 멀리 허수아비 인간을 쳐다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상세히 설명해드리지요. 다음은 아랫배에요.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참아 보세요. 하하하!”

맹연이 말을 하다말고 광소를 터트리자 한립의 아랫배가 뚫리고 그는 엄청난 극통을 느꼈다.

핏물이 새어 나와 의복을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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