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221화 (1,978/2,000)
  • 2221화. 불청객

    *

    정체 모를 계역의 십방만선진 안.

    암흑 공간에 뜬 한립은 72자루의 검령 동자들을 불러내 절정의 위력을 지닌 통천검진을 펼치고 있었다.

    금빛 뇌전이 번득이고 본모습인 검으로 돌아간 동자들이 검빛을 교차해 금색 천문을 만들어냈다.

    평소의 통천검진이 변한 천문과 달리 기세가 약하고 환상처럼 뚜렷했지만 그 안의 뇌전법칙의 힘만은 진짜였다.

    결계를 사이에 두고 지켜보던 자삼 등이 혀를 찼다.

    “아니, 시간법칙의 힘을 수련하면서 본명비검은 어찌 또 저리 패도적인 힘을 품을 수 있는 겁니까?”

    주안이 별일 다 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다른 셋도 놀라 서로를 보았지만 그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 벌로 된 본명비검 개개의 힘도 강대합니다. 무슨 조화를 얻어 저런 선천신병(先天新兵)을 손에 넣은 것인지…….”

    동리호가 찬탄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십방만선진 안의 천문이 열려 금빛 바닷속에 수천수만 마리 뇌전 교룡들을 풀어놓았다.

    콰르르르.

    정순한 뇌전법칙의 결정체인 금색 교룡들이 결계와 충돌해 금빛 불똥을 튕기며 폭발했다.

    결계 전체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고 금빛 뇌전실들이 내부를 휩쓸었다.

    튕겨 나오는 힘의 파동을 피한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대체 무슨 진법이기에 이렇게 공간을 완벽히 봉쇄하고 그와 금동의 육신의 힘이나 술법으로도 뚫고 나갈 수 없단 말인가?

    그와 백만 리 거리를 두고 다른 쪽 결계 앞에 선 금동은 금색 주먹으로 허공을 펑펑 내려치고 있었다.

    충격에 주변이 일렁였고 십방만선진과 연결된 10곳의 선역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파도가 하늘까지 솟아올랐다.

    십방만선진을 운용하기 위해 각 선역에 퍼져 있는 수사들도 영향을 받아 대라 강자들은 그나마 아직 버티고 있었지만 태을옥선들은 힘이 달려 괴로워했고, 금선들은 눈코입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더 참혹한 꼴이었다.

    그러나 진법 안의 수사들이 쓰러지면 새로운 인원이 와서 교대했기에 십방만선진 안에서는 흔들림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겠어요.”

    백발 사내가 웃음기를 숨기고 말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주시하다 틈이 생기면 우리가 나서야 할 겁니다.”

    자삼은 표정을 풀지 않고 관찰을 지속했다.

    “같은 생각입니다.”

    동리호가 먼저 답하고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법 안에서 검령 동자들을 불러들인 한립은 허공에서 서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멀리서 금빛이 날아들어 금동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진법이 너무 이상해요. 내 힘으로도 깰 수가 없어요.”

    금동은 답답한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퍽퍽 쳐댔다.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어 내 통천검진으로도 천지와 소통할 수가 없더구나. 이대로는 결계를 깰 수 없겠어.”

    “그러면 결계를 깨고 나가려고 하지 말고 공간을 찢는 건요? 공간균열을 만들어서 어디 역외공간으로라도 빠져나가면 되잖아요.”

    눈을 반짝인 금동이 하는 소리에 한립도 고민해보다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그들은 신속히 거리를 벌리고 수만 리 거리에서 한 명은 맨주먹으로 다른 한 명은 검으로 한 곳으로 공격했다.

    쿠콰쾅!

    강대한 공간 파동이 오래도록 진법을 뒤흔들었다.

    금동은 여파를 피해 한립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지만 그들이 힘을 모아 내지른 일격에도 공간균열은 생기지 않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일까요?”

    “우리가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가하면 공간이 열릴지 몰라도 부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노리는 자들이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한립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이게 무슨 진법인지 모르겠어요. 꼭 호랑이에게 잡아 먹혀 뱃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에요.”

    “호랑이 뱃속이라…….”

    한립이 금동의 말을 따라 하며 손뼉을 쳤다.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금동도 퍼뜩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 탄서법칙으로 이 공간을 집어삼켜 보면 어떻겠냐는 거죠? 결계까지 한번에요?”

    “그래, 결계도 어쨌든 어느 공간 안에 설치되어 있을 테니 네가 공간을 집어삼키면 진법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때 결계를 뚫으면 일이 쉬어질 것이야.”

    “탄서법칙을 전력으로 발동하면 허공을 삼키는 게 가능은 할 텐데, 중간에 방해를 받으면 천도 침식이 더 심해질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말거라. 허공을 삼키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는 내가 맡으마.”

    한립이 주위를 휙 둘러보며 담담히 대꾸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금동은 바로 날아올라 결계의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금빛을 일으켜 서금선 본체로 돌아온 그녀는 입을 크게 벌려 혼돈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허공이 금동에 의해 땅굴이 파지는 것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한립은 미소를 머금었고, 반대로 진법 바깥의 자삼 등은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했다.

    “이번 일의 가장 큰 실책은 도조의 지위를 회복한 서금선을 같이 가둔 겁니다.”

    맹연이 탄식했다.

    “지금 와서 그런 말이 소용이 있나요?”

    주안은 날카롭게 말했다.

    “자삼 수사, 그래서 이제는 싸워야겠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동리호가 자의 여인을 향해 의견을 구했고, 다른 이들도 그녀에게 결정을 맡긴 듯했다.

    “저자가 탈출하게 놔두면 지존의 엄벌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한숨을 내쉰 자삼의 말에 동리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수결을 맺어 두 손을 결계에 가져다 댔다.

    장막이 꿈틀거리면서 그를 진법 내부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수백만 리 바깥에서 감응한 한립이 차갑게 웃음 지었다.

    “드디어 나타난 겁니까.”

    그의 소매가 펄럭이고 뇌성이 공간을 울렸다.

    * * *

    천궁대륙.

    요지성경 안으로 속속들이 다수의 선인들이 들어와 천정의 어린 제자들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름다운 선자들이 춤을 추니 연회 분위기가 났다.

    친분이 있는 이들은 서로 모여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거의 다 자기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천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수도 종문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각 선역 선궁과 관련이 있거나 선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각각 동법종(同法宗)과 창용산(艙容山)에서 온 두 명의 대라 노조가 모여 있지는 않았지만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곡 수사, 오는 길은 평안하셨습니까?”

    청포 중년인이 물었다.

    “그럭저럭요. 듣자니 오는 길에 암습을 당한 이들이 많답니다. 우리가 알던 호량 수사도 그렇고요.”

    수곡이라 불린 금의(錦衣) 노인이 간담이 서늘해져서 답했다.

    “동쪽, 남쪽, 서쪽 천문 밖에 늘어선 군대도 보셨겠지요. 윤회전이 이번에 제대로 천정과 한판 붙으려나 봅니다.”

    “윤회 전주가 인물인 것은 확실하나 너무 서두른 것이 아닌지……. 좋게 말하면 용기가 있는 것이고, 안 좋게 말하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과 같은 짓인데…….”

    수곡은 말하다 말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멈추었다.

    “천정도 오래 참았으니 이번 기회에 윤회전을 멸하려는 것 같아요. 우리야 받아먹은 게 있으니 돕지 않을 수도 없고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는 것이지요. 우리 수행에 스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지존과 윤회 전주의 일전이면 몇만 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성대한 전투일 거예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청포 사내가 웃으며 말할 때 뒤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백옥 통로를 통해 흑백 도복을 입은 마른 도인이 검은 장포를 입고 삿갓을 쓴 키 큰 사내를 안내해 오고 있었다.

    “흠, 누구기에 청추진인이 직접 안내를 한단 말입니까?”

    “설마 그자는 아니겠지요.”

    “정말 그자가 아닙니까? 감히 이곳에 나타나다니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허허, 오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헌원걸이 목숨을 잃은 일이 저쪽 인물들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쯧쯧, 그래도 그렇지. 이건 보제연입니다!”

    “천정과 오랜 암투를 벌인 세력답게 담이 크기는 합니다!”

    둘이 지나는 동안 의견이 분분하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벌떡 일어나 노기를 드러내고 또 누군가는 두려움에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유, 윤회 전주…….”

    수곡이 안색이 급변해 중얼거렸다.

    청포 사내도 좋지 않은 얼굴로 그쪽만 보고 있었다.

    윤회 전주는 누가 쳐다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청추진인이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윤회 전주, 당신이 감히 이곳에!”

    누군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몽한이 놀라 돌아보니 창오진군이었다. 성격 좋아 보이던 노인이 무슨 일인지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의 스승인 몽파가 신중히 삿갓 쓴 흑포 사내를 주시했다.

    후손이 없는 창오진군에게 유일하게 제자가 하나 있었다.

    창오진군의 제자는 촉천선궁에서 일을 하다 명을 받고 감구진을 쫓았는데, 그녀를 궁지로 내몰았지만 결국 잡지는 못했다.

    후에 감구진 모르게 윤회 전주는 윤회팔자 중 탐랑을 보내 촉천선궁의 선사들을 몰살시키고, 창오진군의 제자도 그 와중에 죽고 말았다.

    후에 그 일은 의문의 사건으로 남았다.

    윤회 전주를 제외하고는 윤회전이 어째서 이런 피비린내 나는 살육극을 벌였는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윤회전과 원수가 된 창오진군은 어떻게든 탐랑과 윤회 전주를 죽이고 싶어 했고, 탐랑의 얼굴에 남은 험악한 상처도 그가 남긴 것이었다.

    그런 창오진군 앞에 윤회 전주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그가 가만있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폭발하기 직전의 창오진군을 본 윤회 전주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떤 창오진군은 붉은빛을 방출해 도조의 위압감을 드러냈다.

    윤회 전주와 목숨을 걸고 싸우기라도 할 것 같았다.

    “창오 수사, 안 됩니다.”

    몽파가 여몽한을 보호하며 상대를 말렸다.

    하지만 창오진군은 그런 소리가 들릴 상태가 아니어서 한발을 쿵, 앞으로 내디디며 요지성경을 흔들리게 했다.

    “창오 수사, 윤회 전주는 지존의 요청으로 온 손님입니다. 괜한 일을 만들지 마십시오.”

    청추진인이 어쩔 수 없이 나서서 말리려 했지만 이마에 힘줄이 솟은 창오진군은 짧게 답했다.

    “비키세요.”

    청추진인이 비키지 못하고 가라앉은 얼굴로 표정을 굳혔다.

    “창오 수사, 그만하시지요.”

    그때 위엄 어린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요지성경에 퍼져나갔다.

    고공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창오진군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가 두 주먹을 풀고 몸을 돌렸다.

    정명호에 가까운 일곱 자리에 고공에서 상서로운 광채가 떨어졌다.

    그 중앙에 준수한 얼굴에 기다란 눈꼬리를 가지고 검은 수염을 기른 중년인이 백옥 바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바로 시간도조 고혹금이었다.

    품이 넓은 하얀 장포를 입은 그는 허리춤의 금색 띠에 구룡 옥패를 걸고 있었다.

    그 왼쪽으로 학 머리 지팡이를 든 홍의 노파가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었다.

    섬뜩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노파는 적몽의 조모되는 불의 본원 속성 도조 적융이었다.

    고혹금의 오른쪽에는 남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머리에 솟은 부드러운 용 뿔 2개와 검은 머리카락을 곱게 땋은 모습이 순진한 어린 아가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천정 칠군 중 물의 본원 법칙 도조의 신분을 지닌 진여연이었다.

    적융은 진여연을 보지 않았고, 진여연도 적융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게 물과 불답게 서로를 싫어하는 듯했다.

    적융 옆으로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마른 얼굴을 지닌 노인이 평소에 입던 베옷이 아닌 화려한 자금색 도포를 입고 서 있었다.

    등이 약간 굽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한 구원관 관주 이원구였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