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3화.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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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 모처의 금색 궁전 주변.
수많은 기류가 흐릿하게 궁전을 감싸고 있어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혼돈과 같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색 궁전은 전혀 화려한 느낌이 없고 오히려 고풍스러운 도관의 정취가 느껴졌다.
그때 금색 궁전 안으로 누군가 바람처럼 들어서는데, 바로 고혹금이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광활한 금색 공간에는 지면이 없어 하늘 위의 역외공간과 비슷했고 집채만 한 구슬들이 떠서 반짝였다.
대문을 닫자 내부는 외부와 단절되었고, 고혹금은 손을 뻗어 소매 속에서 노란 두루마리를 불러냈다.
양쪽 끝에 황금용 모양의 봉이 달린 두루마리는 그 자체로 진귀한 보물이었다.
양쪽의 황금용들이 살아나 두루마리를 쫙 펼치고 그 위의 이름들을 선보였다.
각기 다른 색깔의 이름들은 빛나는 정도도 달라 어떤 것은 아주 밝은 데 반해 어떤 것은 어두웠다. 그중에서 잿빛으로 변한 것은 바로 ‘헌원걸’의 이름이었다.
“누가 헌원걸을 죽이다니.”
고혹금의 두 눈에서 금빛이 뻗어 나와 헌원걸의 이름을 비추었다.
두루마리에서 기운이 흘러나와 공간통로 비슷한 것을 이루고 수많은 운석들이 떨어지는 혼란한 역외공간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한립과 금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충조? 충조가 돌아왔구나. 일일이 찾는 것도 귀찮았는데, 잘 되었어. 흠, 저자는…….”
고혹금은 금동을 보다가 곁의 한립을 발견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역외공간 안, 한립이 돌연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다 양손을 좌우로 펼쳤다.
십여 줄기의 뇌전 형태의 검빛이 왼손에서 뻗어 나가 사방팔방을 베어 시간과 공간을 가르고 사라졌다.
오른손에서는 금빛이 뻗어 나가 앉아 있는 금동을 감쌌다.
곧바로 인근 허공의 시간유속이 흐트러지고 백 리 크기의 금색 거대 손바닥이 나타나 그들을 내려치려 했다.
그러나 한립이 먼저 뇌전 전송진을 이용해 금동과 함께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는 거대 손바닥에 의해 공간과 시간이 붕괴되었다.
그리고 허공에 넘실거리는 거대한 금빛 물결이 괴이하게도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수백만 리를 재로 만들었다.
용연선역 인근의 만황계역.
사막 위에 뇌전빛이 반짝이고 금색 뇌전 검이 허공을 뚫고 나타났다.
그 아래 한립과 금동이 있었다.
“방금 그건 미라 사존의 목숨을 앗아간 시간거장(時間去掌) 신통이었다. 아무래도 시간도조가 우리를 쫓는 것 같구나…….”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되기도 했다.
“누구라고요?”
금동이 수련을 갈무리하고 눈을 떴다.
“고혹금. 헌원걸을 죽인 걸 들킨 것 같아.”
한립의 대답에 금동도 안색이 달라졌다.
천정 금색 궁전 앞에서 고혹금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건 석공어의 순간이동에 맞먹는 속도가 아닌가.”
그는 감탄하면서도 손은 빠르게 놀려 노란 두루마리에서 공간통로 같은 것을 만들어내 한립과 금동의 위치를 포착했다.
수결을 맺은 그의 손이 허공을 쳤다.
사막 상공에서 한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수결을 맺어 금빛 뇌전을 일으켰다.
전송하기 전에 기운을 지우고, 거의 선역 하나를 가로지를 만큼 멀리 왔기에 시간법칙 도조라 해도 의식으로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일러 다시 전송할 참이었다.
그때 머리 위로 금색 거대 손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과 달리 다섯 손가락이 굽어 수결을 맺었고 속도도 훨씬 빨랐다.
“어떻게!”
놀란 한립은 급히 뇌전빛을 번득여 머리 위 뇌전 검과 함께 사라졌다.
용연선역 인근의 천하선역.
하늘 위에 뇌전 검이 떠올라 웅웅 울어대고 그 아래로 한립과 금동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한립도 바로 뇌검전송술을 준비했다.
전송을 통해 달아나는 동시에 소매를 저어 스무여 자루의 청죽봉운검을 불러내 주변 허공에 녹아들게 했다.
콰릉.
천하선역 변두리에 뇌전빛이 반짝이고 한립과 금동이 나타났다.
그런 식으로 열댓 번을 여러 선역을 돌아다니다 독무와 썩은 내가 가득한 선역에 도착해서야 한립은 술법을 멈췄다.
‘이렇게 멀리 왔는데 설마 찾아내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한립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에 금색 거대 손바닥이 나타나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얼굴을 굳힌 한립이 뇌검전송을 하려는데 웅, 하고 수많은 금빛이 허공에서 뻗어 나와 그와 뇌검들의 감응을 차단했다.
한립은 놀라기는 했지만 허둥거리지 않고 양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파도처럼 금빛이 퍼져나가 수많은 주술문자를 품은 수십 리 규모의 금색 영역으로 변했다.
진언보륜, 광음정병, 환진사루, 동을신목, 단시횃불 다섯 개의 시간 물건이 그를 가운데 두고 회전했다.
영역 안에는 산과 강 하늘과 땅이 실체화되어가고 있었다.
거대 손바닥이 떨어지려는 찰나 전력을 다해 시간법칙을 운용한 영역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곧이어 거대 손바닥은 수많은 파문을 내뿜어 모든 것을 정지시켰지만 한립의 영역에 영향을 받지 않고 또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쿠아아…….
경천동지할 폭음이 울렸다.
금색 거대 손바닥에 맞은 금색 영역은 그대로 떨어져 지면에 처박혔다.
아래쪽 대륙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쩍쩍 갈라져 지하 깊이 숨겨 두었던 용암을 분출하고 대륙 전체가 깨져나갔다.
하지만 영역은 내부의 산과 강이 갈라지기는 했어도 흩어지지 않고 완강하게 버텼다.
영역을 두들겨 맞은 한립이 비틀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내 천황대수인(天皇大手印)을 영역이 견뎌냈다고?”
천정에서 고혹금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즉시 수결을 맺은 손으로 허공을 가르니 멀리 금색 손바닥에 각종 문양이 떠올라 한립의 영역을 쥘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커졌다.
때려서 부서지지 않으면 짓이겨 버릴 작정 같았다.
금색 영역이 삐걱삐걱하며 금빛을 혼란스럽게 깜빡거렸다.
피를 토하기는 했어도 중상을 입은 것은 아니라서 한립은 급히 영역에 힘을 실었다.
쿠쿵.
영역 안에서 거대한 금색 천문이 나타났다.
풍청수, 진여연과 싸울 때도 그는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했다.
이번에도 의미 없는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각 계면을 연결하는 천문 신통을 사용하지 않고 힘을 조절했다.
이런 선한 의지가 쌓여 무형의 힘이 작용해 <대오행환세결> 구결을 읊는 그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청명했다.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한립은 수결을 맺었다.
곧이어 천문의 빛의 파동이 다섯 줄기의 금빛으로 퍼져 각각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의 속성을 띠고 <대오행환세결>의 다섯 가지 시간법칙의 힘을 대표했다.
천문이 열리며 대량의 대도의 힘이 금색 홍수처럼 콸콸 쏟아져 영역으로 흘러들었다.
영역 안의 천지(天地)가 더 이상 갈라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텼다.
한립은 기쁜 마음에 양손에서 금빛을 뿜어 하늘을 뒤덮은 금색 상서로운 구름인 불후금운 신통으로 바깥의 금색 손바닥을 받쳤다.
옆에서 여인의 외침이 들리고 금동도 서금선 본체로 돌아가 입을 벌렸다.
그때 금색 수정빛이 거대한 빛기둥을 이루고 금색 손바닥을 강타했다. 한립과 금동은 힘을 합쳐 금색 손바닥을 밀어냈다.
그러자 금빛이 가득한 영역이 안정을 되찾고 균열이 복구되어가고 있었다.
한립은 영역을 최선을 다해 운용하면서 탈출 방법을 고민했다.
시간법칙을 퍼트려 달아날 시간을 버는 것은 언제든 가능했지만 관건은 고혹금이 어떻게 그들을 번번이 찾아내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고혹금의 추적이 계속되면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릴 것이다.
자신의 몸을 점검하던 한립이 곁의 금동을 보고 눈을 번득였다.
“알아냈다! 금동, 어서 체내에 품은 헌원걸의 법칙의 힘을 바깥으로 방출하거라!”
한립이 하는 말에 금동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고 얼른 공격을 멈추고 공법을 운용하려다 하늘의 거대 손바닥을 올려다보았다.
“내게 맡기거라.”
망설이는 그녀의 눈빛을 본 한립이 다시 외쳤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금동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탄서법칙으로 체내의 이질적인 법칙의 힘을 밀어내는 데만 정신을 집중했다.
금동의 보조가 사라지자 견뎌야 하는 압박감이 커진 한립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의 의지에 수십 자루의 뇌전 검이 체내에서 튀어나와 영역 곳곳에 떨어졌다.
콰르릉!
뇌전 검들이 수십 개의 뇌전 기둥으로 변해 거대 손바닥을 지지했다.
천정에서 고혹금이 그걸 보고 무언가를 하려는데 뒤쪽 궁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표정이 싹 달라진 고혹금은 한립을 신경 쓰지 못하고 궁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금빛들이 교차해 태극도안을 이루고 흔들리던 궁전을 가라앉혔다.
그 틈에 한립은 숨을 돌리고 금동을 살폈다.
도조의 경지로 돌아갔다지만 법칙의 힘이 오랜 세월 도조의 자리를 지킨 헌원걸보다 약해 힘을 몰아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한립은 빠르게 수결을 맺어 영역에서 금빛들을 이끌어 그녀가 앉은 지면에 금색 진법을 새겼다.
광음천선대진과 흡사한 진법이었다.
웅웅!
진법이 영역과 공명해 시간유속이 거의 만 배로 빨라졌다.
천정에서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궁전 쪽의 이상을 억제한 고혹금은 다른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쾅!
금색 고리가 한립의 영역 인근에 나타나 단단하게 조였다.
한립의 허리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고리가 나타나 있었다.
무시무시한 힘에 몸이 뻣뻣하게 굳은 한립은 고개를 쳐들고 눈빛을 이글거렸다.
고혹금, 내가 반격하지 못할 거라 여기는 것이냐!
수결을 맺은 한립은 전신에 검은 문신을 퍼트리며 순식간에 12개의 머리와 36개의 팔이 달린 천살마신(天煞魔神)으로 변신했다.
엄청난 괴력으로 금색 고리를 끊어내려 했지만, 고리도 구금의 힘을 발휘해 거꾸로 천살마신을 제약하려 했다.
이때 낮게 포효한 천살마신의 몸에서 검은 문신들이 눈을 찌를 듯한 빛을 내뿜었다. 강대한 힘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천처럼 시간법칙의 힘을 품고 금색 고리를 감았다.
부들부들 떨린 금색 고리가 조금 벌어졌을 때, 36개의 팔이 고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폭발적인 힘에 고리가 펑, 터져 작은 빛 알갱이로 흩어졌다.
자유를 회복한 천살마신은 펄쩍 뛰어올라 상공의 금색 손바닥을 향해 돌진했다.
36개의 팔에서 일렁이는 금빛과 몸의 검은 빛이 어우러져 휘황찬란한 빛을 뿜고 있었다.
영역 안의 진언보륜 등 시간 물건들도 빛을 밝히고 날아올라 마신의 등 뒤로 흡수되어 금색 문양으로 변했다.
36개의 금색 주먹 허상이 튀어 나가 불가사의한 속도로 금색 손바닥을 공격했다.
각각이 <대오행환세결>의 다섯 가지 시간법칙이 담긴 대오행멸절권이었다.
퍼퍼퍼퍼퍼펑!
36개의 태양이 터진 것처럼 금색 손바닥이 폭발에 휘말리고 하늘은 종이처럼 구겨졌다.
썩은 내가 가득한 부토선역(腐土仙域)의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져 용암과 진흙이 솟구쳤다.
공간이 갈기갈기 찢겨 구금의 힘도 사라졌다.
그걸 안 한립이 뇌검전송을 하려는데 돌연 작열하는 금빛을 뚫고 금색 손바닥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표면이 어둑해지기는 했어도 그의 영역을 부수려던 손바닥이었다.
그의 전력을 다한 일격에도 손바닥은 부서지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금동이 번쩍 눈을 뜨고 노란 숨을 내뱉었다.
정순한 흙 속성 법칙의 힘을 품은 노란 기운이 즉시 하늘로 솟구치며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들을 노리던 손바닥이 주춤하다 방향을 틀어 노란 기운을 쫓았다.
의외의 반응에 한립은 전송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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