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212화 (1,969/2,000)
  • 2212화. 천도동화(天道同化)

    *

    한편 한 손으로 검결을 맺어 검진과 뇌둔술을 운용한 한립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청죽봉운검 한 자루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손을 고공으로 뻗어 시간영역 파동을 퍼트리자 진언보륜, 광음정병, 환진사루, 동을신목, 단시횃불이 날아올라 각자의 위치를 지켰다.

    역외공간 하늘 위에 금색 달과 붉은 별들이 뜨고 아래로는 산과 강이 나타나 울창한 숲을 이루고 하나의 세계를 완성했다.

    오행환세가 수백만 리를 장악하자 의추 등이 느끼던 압박감도 줄어들어 금동을 보호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한립, 넌 나를 화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도조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보여 줘야겠구나.”

    헌원걸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기대하지요.”

    한립은 피식 웃음 지으며 답했다.

    의추가 멀리서 그가 웃음 짓는 모습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어느 대라경 수사가 도조 앞에서 저리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대라경 수사와 도조는 반딧불과 달빛의 차이라 하기에도 부족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헌원걸은 같은 도조였던 충조가 육신을 흩어 세상 각지로 흩어지게 만든 강자였다.

    “태산을 앞에 두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심지어 웃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

    의추는 이번만은 한립이 죽을 거라 여기면서도 그의 기개에 감탄했다.

    사실 한립은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그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다 헌원결을 도발해 그가 진정한 공격을 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물론 당장 금동이 도조의 지위로 올라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오래 대치하던 뇌전 호수와 노란 강이 드디어 흩어지며 역외공간에 검은 소용돌이들만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헌원걸이 허공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금빛이 웅웅 울리며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공간과 공명했다.

    그를 관찰하던 한립의 표정의 달라졌다.

    헌원걸의 두 눈에 감정이 사라지고 마치 검은 구멍처럼 특이한 문양을 품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걸음마다 육안으로 보이는 공간 파동은 태초부터 이어진 흙의 진의(眞意)를 품고 있었다.

    즉 육신과 땅을 하나로 합쳐 천도와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돌연 걸음을 멈춘 헌원걸은 갑자기 종이 댕! 하고 울리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지멸(地滅)!”

    그의 말 한마디에 역외공간의 기운이 돌변해 강대한 흡입력이 헌원걸을 향해 몰려들었다.

    두 팔을 활짝 편 헌원걸은 전신이 노란빛으로 변하며 신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하지만 한립은 반색을 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한립이 재빨리 검결을 맺자 72명의 검령 동자들이 날아들어 금동과 의추 등을 가운데 두고 둘러쌌다.

    파치칙!

    동시에 눈부신 뇌전빛과 뇌전파동이 한립을 둘러쌌다.

    더는 금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 한립은 두 다리를 굽혀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대오행환세결 공법을 미친 듯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머리 위로 금색 달이 회전해 달빛을 뿜어냈고 단시류화가 변한 별들은 반짝반짝 빛나며 하늘을 수놓았다.

    이어 광음정병이 변한 광음의 강이 콸콸 흘러 그의 주의를 감싸고, 환진사루가 응결한 거대한 산맥이 만 리를 퍼져나가 동을신목이 변한 울창한 삼림의 토대가 되었다.

    달과 별, 산과 강 그리고 숲을 이룬 세계가 한립의 영역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역공간 안에서 강줄기가 퍼지며 물결이 움직이는 속도가 백배로 빨라지고 주변에서 몰려들던 흙 속성 법칙의 힘도 백배는 빨리 헌원걸의 육신으로 흡수되었다.

    촤아아.

    한립은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보았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일고여덟 개의 대륙이 선역에서 떨어져 나와 청명역, 천풍역, 천외역을 지나 역외공간까지 올라왔다.

    대륙이 갑자기 고공으로 떠오르자 새까만 둔광들이 떠올라 대륙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대륙들이 천외역에 이르렀을 때는 산은 이미 무너지고 강물은 날아가 대륙이 대륙 같지 않았고, 오직 강대한 흙 속성 법칙의 힘만이 헌원걸에게 몰려들었다.

    그렇게 법칙의 힘을 많이 모을수록 헌원걸의 기운은 정순해지고 점점 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를 발산했다.

    아직 평온한 얼굴의 헌원걸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흙의 본원의 힘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더 준비를 해드려야겠습니다!”

    한립은 남은 시간법칙의 힘을 끌어모아 오행환세의 도문과 시간정사들을 주입했다.

    영역 안의 시간 가속이 더욱 빨라져 한 호흡에 천만년이 지나갈 정도였다.

    그렇게 한립의 영역이 뽑아 들이는 흙의 본원 법칙을 헌원걸이 모조리 흡수했다.

    역외공간의 수많은 운석도 흙 속성의 본원의 힘을 뽑아내 헌원걸에게 모아주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흙의 소용돌이가 헌원걸 뒤에 나타나 샘물처럼 흙의 본원의 힘을 뿜어 헌원걸을 감싸 안은 것이다.

    “안 돼…….”

    번쩍 눈을 뜬 헌원걸은 뒤늦게 이성을 찾았지만 이미 천도의 침식이 시작된 후였다.

    “멈춰! 한립, 멈추란 말이다.”

    헌원걸은 살아남고자 발악했고, 한립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체내의 시간법칙이 너무 빠르게 유실되어 몸이 텅 비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헌원걸이 뭐라고 하든 그는 전력을 다해 오행환세를 이어나갔다.

    이 정도로는 헌원걸이 천도와 동화되기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시간법칙의 힘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소모해야 희박하지만 승산이 있었다.

    “한립, 너와 시간도조가 대도를 두고 다투는 것을 안다. 우리 사이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원한도 없지 않더냐. 이대로 멈추기만 하면 내 너를 돕겠다. 너를 도와…….”

    “지난 생에서 금동을 해친 당신을 내가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절망한 헌원걸의 사정에도 한립은 흔들리지 않았다.

    “맹세할 수 있다! 어떤 맹세라도 할 수 있어…….”

    헌원걸이 목이 쉴 듯 소리치는 말에는 한립도 내심 고민이 되었다.

    오행 본원도조의 도움을 얻으면 천정을 상대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이런 생각은 빠르게 지워졌다.

    무슨 맹세를 어떻게 하든 그에게 본원도조를 제약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더는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전신의 법칙의 힘을 뽑아내 헌원걸의 천도 침식을 더욱 빠르게 진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헌원걸은 한립이 자신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알고 저주와 욕을 퍼부었다.

    “한립,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을 안다. 내 천도동화가 진행되더라도 이대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니 네 놈은 가루로 만들고, 원영은 뽑아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느끼게 할 것이다! 으하하…….”

    역외공간에 헌원걸의 반쯤 정신 나간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들으며 한립도 머리가 멍해졌다.

    그는 한계에 이르렀고 역량이 고갈되어 오행환세도 서서히 분해될 조짐을 보였다.

    “내가 힘을 빌려주랴?”

    그때 한립의 고갈된 의식세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령 선배님……. 아니, 아니야. 넌 누구냐!”

    모골이 송연해진 한립이 물었다.

    “난, 너다. 너도……. 나이고.”

    “자아시(自我尸)! 너는 자아시로구나!”

    한립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상대의 정체를 눈치챘다.

    대라 최고봉에 들어선 후 자아시를 찾을 수 없어 고생했는데, 한계에 이르렀을 때 자아시가 먼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선시와 악시가 네 감정과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난 너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내가 너이고 네가 곧 나인 것이지.”

    “이런 때에도 육신을 두고 다투려는 것이냐? 네가 몸을 벗어나든 이 몸을 차지하든 너와 난 죽을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린 닮았다고. 그러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자아시가 이런 말을 하고 한립은 돌연 몸이 따뜻해지며 완전히 고갈되려던 법칙의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아시가 정말 그에게 힘을 빌려준 것이다.

    그러나 그 찰나의 정체가 헌원걸이 숨 돌릴 틈을 주었고, 눈빛에서 본원 주술문자가 사라진 그는 철저히 천지대도와의 연계를 끊고 절반이 석화된 몸을 살폈다.

    “한립…….”

    한 번의 실수치고는 그 대가가 너무 컸다.

    격노한 헌원걸이 다시 공격하기 전에 홀연히 금빛이 나타나 그 뒤에서 괴이한 각도로 다가갔다.

    금빛 속에는 금동이 방대한 서금충 육신의 입을 쩍 벌리고 거대한 금색 소용돌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진 헌원걸이 노란빛을 폭발적으로 일으켜 이동하려는데, 한립이 이미 예상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한립의 주먹에서 시간법칙의 실들이 뿜어져 나와 그의 움직임을 차단한 것이다.

    헌원걸은 한립의 주먹을 맞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붙들어둔 탓에 금동의 거대한 입에 삼켜지고 말았다.

    “싫어!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이렇게…….”

    헌원걸의 절규가 금동의 몸 안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쿠콰콰쾅!

    헌원걸은 금동의 몸속에서 굉음을 내며 난동을 부렸다. 그러나 빛을 좌르륵 흘려보낸 금동은 그대로 몸을 수축해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립 앞에 나타난 금동은 이전의 어린 모습은 싹 사라지고 여인이 되어 있었다. 안색은 더없이 안정적이었고 두 눈에서 회오리치는 기운도 유유히 선회했다.

    “기운이…….”

    한립은 의아한 얼굴로 입을 뗐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경지를 안정시킬 수 있을 거예요.”

    금동이 그를 보고 차분히 답했다.

    “도조에 이를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천기현상이 뒤따를 줄 알았건만.”

    “원래는 역외허공을 집어삼켰어야 했는데, 본원도조인 헌원걸을 대신 집어삼킨 탓에 이놈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금동의 말에 한립도 안심했다.

    “이번에는 큰 도움을 받았네요.”

    “도조로 돌아가는 큰일을 앞두고 내게 알리지 않다니, 어찌 된 일이냐?”

    걱정을 덜어낸 한립은 엄한 얼굴로 그녀를 혼냈다.

    멀리서 날아들던 의추 등이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들의 기억에 감히 왕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는 지금까지 없었다.

    허나 한립이 목숨을 걸고 금동을 보호하는 것을 보았기에 방해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앉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금동이 미간을 좁히고 뭐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안색이 달라진 그녀가 배를 부여잡고 손바닥에서 금빛을 일으켰다.

    “왜 그러느냐?”

    “그래도 도조잖아요. 어떻게든 버티려고 탄서법칙에 저항하고 있어요.”

    “괜찮겠느냐? 내가 도울 일은 없고?”

    “바깥에서 싸웠으면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웠겠지만 내 뱃속에 들어간 이상 헌원걸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예요. 몸에 품은 흑의 본원의 힘이 거슬리기는 하지만요.”

    한립의 물음에 금동은 숨김없이 답했다.

    “이곳에서 소란을 피웠으니 일단은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 네가 쉴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마.”

    주위를 둘러본 한립의 제안에 금동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헌원걸의 반항을 잠재우는 데 집중했다.

    “당신들도 일단 가시지요. 내가 금동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한립은 쉬고 있는 추의 등에게 가서 말했다.

    청봉 등은 바로 일어서지 않고 금동을 향해 전음으로 의사를 묻고 복잡한 눈빛으로 그에게 인사를 한 뒤 떠났다.

    한립은 청죽봉운검들을 회수하고는 단약을 먹고 잠시 기운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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