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211화 (1,968/2,000)
  • 2211화. 힘으로

    *

    “누구…….”

    그제야 눈을 뜬 의추가 자신을 막아선 인족 사내의 등을 보고 아연하게 물었다.

    그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것은 그녀뿐이 아니었다.

    육지 위에서 헌원걸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냐!”

    “난 한립이다!”

    뒷짐을 쥔 인족 사내가 낭랑하게 답했다.

    태을 서금선을 타고 나타난 인족 사내는 한립이었다.

    72자루의 청죽봉운검이 유성우처럼 그의 주위로 돌아와 맴도니 기세가 위풍당당했다.

    “한립? 담도 크구나! 내 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다니!”

    헌원걸이 한립을 싸늘하게 훑었다.

    그도 한립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당신이 헌원걸인가? 금동이 도조의 자리에서 밀려나 육신을 흩어버리고 수많은 선역을 떠돌게 한 자.”

    “금동……. 거린을 말하는 것이냐? 거린과 무슨 사이인 것이냐?”

    “내 영충이다.”

    헌원걸이 의외라는 듯 묻는 말에 한립이 느긋하게 답했다.

    “허튼소리 마라! 충조(蟲祖)께서 당신의 영충이라고?”

    의추가 벌컥 화를 내며 질책했다.

    “부상이나 치료하세요. 내가 헌원걸은 막을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걸 다 막아줄 수는 없을 테니.”

    한립은 상반신만 슬쩍 돌려 말했다.

    의추는 그의 평범한 용모에 약간 실망했다. 그의 앞을 막아선 뒷모습을 보고 그 기세와 실력에 매우 놀랐기 때문이다.

    할 말을 마친 한립은 다시 의추를 등지고 더 왕성한 기운을 드러냈다.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강력한 시간법칙 파동이라니…….’

    “내가 괜한 걸 물었구나. 네 놈이 목숨을 바치러 왔으니 뜻을 이뤄져야겠지.”

    냉소를 흘린 헌원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립은 대답 없이 금색 장막을 퍼트려 거대한 시간영역으로 수십만 리를 감쌌다.

    양쪽으로 물러났던 천정 수사들은 진흙에 빠진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 중 인무상 등 대라경 세 명과 극소수의 인물들은 움직일 수는 있있지만 속도가 훨씬 떨어졌다.

    “네 놈이 시간법칙을 이 정도까지 수련하게 놔두다니 고혹금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것인지!”

    그의 영역에 담긴 웅장한 역량을 느낀 헌원걸은 한립을 이 자리에서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손짓에 헌원걸을 태운 대륙이 마치 전함처럼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그걸 본 한립은 72자루의 청죽봉운검을 검빛으로 바꾸어 헌원걸을 공격했다.

    열 손가락을 앞으로 뻗어 노란빛을 일으키고 있던 헌원걸은 검빛들이 접근하며 뇌전을 방출하지도 않는 것을 보았다.

    “겨우 이걸로…….”

    헌원걸이 말을 마치기 전 한립이 민첩하게 쇄도해왔다.

    헌원걸의 눈에 희색이 스쳤다.

    시간법칙을 이용해 강제로 흙의 본원 법칙을 뚫으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는데, 이렇게 바보같이 직접 힘 대결을 하려 한다면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같았다.

    물론, 한립은 바보가 아니었다.

    충돌하기 직전 뇌전빛을 반짝인 한립은 번개처럼 사라져서 헌원걸을 미끄러지듯 스치는 청죽봉운검들 중 한 자루에서 나타났다.

    “빠르다!”

    휙 고개를 돌린 헌원걸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조금 전 한립의 순간이동은 시간법칙이 아닌 뇌전법칙의 기운을 담은 술법이었다.

    헌원걸 뒤쪽 육지에 이른 한립은 두 손을 움직여 시간법칙의 힘을 응결한 금빛을 횡으로 날렸다.

    대륙에서 들썩들썩 일어나 있던 흙들이 시간법칙에 의해 고정되면서 상백과 청봉이 곤경에서 벗어나 고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여기는 내게 맡기고 거린을 보호하세요…….”

    한립은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시선을 마주친 청봉과 상백은 한립이 아까 한 말이 무척 거슬렸지만 일단 그에게 포권을 하고 금동 쪽으로 날아갔다.

    인무상 등이 그걸 보고 서둘러 금동을 공격하려다 의추, 상백, 청봉과 맞부딪쳤다.

    천정 수사들은 십중팔구는 한립의 영역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신경 쓸 것도 없었다.

    “겨우 대라 주제에, 네가 벌써 도조가 된 것 같으냐!”

    포효한 헌원걸이 손바닥을 내리쳤다.

    한립이 밟고 선 대륙에 삽시간에 노란 광채가 퍼져 노란 늪처럼 그의 두 발을 잡아당겼다.

    이어서 헌원걸은 고공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쿠쿠쿠…….

    공간 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든 한립은 크기가 각기 다른 수백여 개의 천외운석들이 강대한 힘에 이끌려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찰의 힘으로 운석들은 붉은 불이 붙어 어두운 하늘을 밝혔고, 이런 유성들에 헌원걸의 흙 속성 법칙의 힘이 더해져 위력이 백 배 이상은 되었다.

    미간을 찌푸린 한립은 천살진옥공을 운용해 천팔백 개의 현규를 동시에 밝히면서 종아리에 힘을 주었다.

    헌원걸도 인상을 찡그리며 빠르게 수결을 맺어 합장하고 있었다.

    쿠쿠쿠쿵…….

    갑자기 대륙 양쪽의 땅이 들리고 평지가 순식간에 거대한 두 개의 산맥으로 변해 중앙으로 충돌해왔다.

    발이 묶인 한립은 두 산맥 사이에 끼고 말았다.

    쿠콰콰!

    대륙이 크게 흔들리고 충돌한 두 산맥이 붕괴되었다.

    “저런…….”

    의추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대륙을 보고 속으로 탄식했다.

    아직 한립과 금동이 무슨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왕을 지키기 위해 온 사람이 분명한데 헌원걸에게 제압당했으니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곧 대륙 상공의 천외운석들이 연달아 떨어져 폭발했다.

    쾅! 쿠쿵! 쾅! 콰쾅! 콰콰…….

    안 그래도 두 산맥이 충돌하며 난장판이 된 대륙에 운석 비가 내리며 십여 초 만에 울퉁불퉁하던 곳들이 전부 평지가 되었다.

    구멍이 뻥뻥 뚫린 대륙에는 흙먼지가 자욱했다.

    흡족하게 자신의 작품을 본 헌원걸은 몸을 돌려 금동을 향해 가려 했다.

    그러나 멈칫한 그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망가진 대륙 위에 흩어져있는 바위들이 들리고 3개의 진령 머리와 6개의 팔뚝이 솟아오른 것이다.

    “마족의 연체술!”

    헌원걸은 멀리서 자신을 쳐다보는 삼두육비 마신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당신의 돌덩이들은 실컷 맞아 주었으니 당신이 내 주먹을 맞아볼 차례 같습니다.”

    한립의 3개의 머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대오행환세결 공법을 운용하며 몸을 굽힌 그는 6개의 팔을 옆구리로 당겨 힘을 비축했다.

    동시에 다섯 가지 시간법칙이 응결되어 다섯 가지 광채가 하나로 융합되어 갔다.

    “저놈, 시간법칙을 이렇게까지 익혔다고?”

    드디어 헌원걸도 안색이 달라졌다.

    한립이 준비하는 공격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합장하고 두 눈을 감았다.

    노란 광선들이 그의 몸에서 퍼져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모으던 한립도 이상한 느낌에 자기도 모르게 헌원걸을 쳐다보았다.

    분명 헌원걸의 육신은 그 자리에 떠있었는데 홀연히 사라져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조의 몸을 대도화 시킨 것이다.

    “저게 합도(合道) 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한립은 흥미로웠지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다섯 가지 시간법칙의 힘을 응결하고 표면에 검은 문양을 드러냈다.

    등 뒤로 진언보륜 등 다섯 가지 시간 물건들이 떠올라 둥근 고리처럼 분포해 눈부신 금빛을 발산했다.

    “박살내라!”

    한립의 외침에 여섯 개의 팔이 주먹을 쥐고 앞으로 뻗어 나갔다.

    수많은 흑금색(黑金色) 주먹 허상들이 전방으로 튀어 나가 순식간에 헌원걸 앞에 이르렀다.

    번쩍 눈을 뜬 헌원걸의 눈동자는 검은색이 아니라 노란빛을 담고 있었다.

    “대도의 위력을 네 놈이 힘으로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가 주먹을 들어 서서히 허공을 밀자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황토 색깔 빛이 나타나 노란 장벽을 이루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립이 펼친 대오행멸절권은 헌원걸의 손바닥이 응결한 노란 장벽과 만나 폭발했다.

    쿠웅!

    거대 주먹 허상들의 폭발에 강력한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크게 흔들린 노란 장벽에도 균열이 생겼지만 부서지지 않고 한립 쪽으로 그 충격을 튕겨냈다.

    막 대오행멸절권을 완성한 한립은 그 충격을 피하지 못하고 반탄력에 당해 뒤로 튕겨 나갔다.

    높은 장벽 뒤의 헌원걸도 멀쩡하지는 못해 퍼져나간 시간법칙의 힘에 휩싸여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뒤쪽으로 날아가 있던 72자루의 청죽봉운검들이 갑자기 동자들로 변해 검진의 위치에 선 것이다.

    스스로 백 장 크기의 거검들로 변한 비취 검령 동자들이 뇌전을 일으켰다.

    콰르릉!

    새까만 역외공간에 만장 천문(天門)이 떠올라 사방으로 금색 구름을 응결했다.

    아직 꽉 닫혀 있음에도 천문 안쪽에서 엄청난 뇌전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시간법칙의 힘을 수련했는데, 어떻게 검진만으로 이렇게 강대한 뇌전법칙의 힘을 사용한단 말인가!”

    인무상이 상백과 싸우다 그걸 보고 경악했다.

    한립의 72자루 청죽봉운검이 한립과 마찬가지로 온갖 고난과 제련을 겪고 뇌기의 힘을 흡수한 뒤로는 각각이 3품 선기가 되었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평범한 대라경 수사가 3품 선기 하나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그런 게 무려 72자루였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한립은 검진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의식이 연계되어 있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만장 금문이 쿠쿵, 열렸다.

    금색 바다가 뇌전 폭포를 이루고 떨어지며 수천수만 마리 뇌전 교룡들이 입에 뇌주(雷珠)를 품고 빠져나왔다.

    콰르르 콰쾅!

    엄청난 소리가 들리고 천문의 위력에 허공에 공간균열들이 만들어졌다.

    “이건 어떻습니까?”

    천문의 구금의 힘이 사라지며 뇌전 교룡들이 더는 구속받지 않고 미친 듯이 헌원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역외공간에 뇌전 호수를 부어 놓은 것 같았다.

    “왕을 보호하라!”

    청봉의 외침에 의추와 상백이 뒤로 물러나며 금동 주변에 둘러섰다.

    금동을 감싸고 있던 금빛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더 이상 또 다른 서금충이 날아들어 흡수되지 않았다.

    그렇게 더없이 증폭된 기운을 품고도 금동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는지 탄서법칙의 도조 진신(眞身)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무상 등도 멀리 뇌전 호수를 보고 더는 달라붙지 못하고 멀리 피했고, 꼼짝없이 제 자리에 붙잡힌 천정 수사들이 가장 먼저 뇌전 호수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파치칙!

    수천수만 마리 뇌전 교룡들이 끊임없이 헌원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순한 뇌전의 뜻을 품은 뇌주도 교룡들의 입에 물려 헌원걸에게 가까워졌다.

    “오늘 네 놈을 죽이지 못하면 윤회 전주와 같은 화근이 되겠구나!”

    눈빛이 사나워진 헌원걸이 기괴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역외허공에 불경소리 비슷한 신비로운 소리가 들리고, 헌원걸의 음성과 어우러져 멀리 퍼져나갔다.

    백만 리 공간이 정지한 것처럼 거대한 소리가 역외공간을 뒤덮었다.

    안색이 변한 한립은 금빛으로 몸을 가리고 날아올랐다.

    그가 피한 공간은 연달아 폭음이 들리며 모든 것이 폭발하고 있었다.

    산과 돌, 흙과 나무가 재가 되고 흙 속성을 지닌 것이라면 전부 노란빛의 강으로 흡수되었다.

    헌원걸은 그 노란빛의 강을 이끌어 뇌전 호수로 향하게 했다.

    쿠앙!

    파치치치칙.

    어둡던 역외공간이 확 밝아지며 뇌전 교룡들이 노란 강에 휘말려 뇌전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그리고 보라색, 푸른색, 금색, 은색 등 뇌전 소용돌이가 가장 정순한 흙 속성 법칙의 힘을 담은 강에 의해 뒤집히면서 수십만 장의 거대한 뇌전 채찍으로 변해 사방을 내리쳐 멸했다.

    이제까지 살아남은 천정 수사들은 각기 다른 선역과 연결된 공간균열로 몸을 던져 피했고, 폭발의 여파는 금동이 있는 곳까지 미쳐 의추 등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원형 보호막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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