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210화 (1,967/2,000)

2210화. 천충대전(天蟲大戰)

*

고공에서 상백이 엄숙한 얼굴로 수결을 맺고 산봉우리를 쳐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서리가 끼면서 거대한 하얀 손바닥 자국이 산봉우리로 떨어졌다.

쿵!

거대한 산이 꽁꽁 얼어 얼음 알갱이를 날리며 파괴되었다.

그러나 하얀 얼음 가루 뒤에서 거대한 공간균열을 뚫고 비취색 수정 거대 손들이 쑥 빠져나와 좌우로 흩어졌다.

콰콰콰콰콰…….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공간균열이 비취색 거대 손에 찢겨 십여만 리 규모의 공간통로로 변했다.

이어서 단발의 금강불괴 같은 거대한 머리통이 그 사이로 나와 경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여기였어. 하하하.”

별안간 거대한 몸을 줄인 사내가 공간균열 안에서 빠져나왔다.

“헌원걸!”

상백이 그걸 보고 난색을 표했다.

공간통로를 통해 수만 리에 달하는 방원형의 육지가 넘어왔고, 그 위에 수십만 천정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었다.

육지 최전방 절벽에 선 단발 사내가 바로 헌원걸이었다.

“허허, 너희는 의추와 상백이 아니냐. 청봉이라는 놈도 있었는데 안보이고?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성미를 아직도 못 고쳤구나.”

헌원걸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헌원걸 이 오만방자한 놈! 왕이 도조의 자리로 돌아가시면 네 놈은 끝이다!”

인상을 찡그린 의추가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이전에 도조였을때도 내게 졌는데, 또 도조가 된다고 나를 끝낼 수 있겠느냐? 오늘 네놈들을 일망타진해서 보제연의 선물로 바쳐야겠다!”

헌원걸은 말을 하면서 눈으로 금동이 변한 빛 구슬을 살폈다.

그 모습에 상백도 긴말하지 않고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며 육지를 공격했다.

후후후훅!

남색 빛을 품은 눈보라가 육지의 해안으로 몰아쳤다.

육지에는 눈보라가 치고 그 안에 품은 남색 실들은 헌원걸을 향해 날아들었다.

헌원걸이 따로 명령을 내릴 것도 없이 은색 갑옷을 입은 건장한 사내가 양손에 창을 쥐고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했다.

은색 영역을 펼쳐 거대한 빛의 거울로 변화시킨 그는 그걸 방패 삼아 상백의 눈보라를 받아쳤다.

의추가 상백의 신영이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양손에 창을 든 자의 이름은 인무상으로 헌원걸의 대라 최고봉 수하였다. 금속 속성 법칙의 힘에 속안 은(銀)의 법칙을 익혀 그 실력이 남달랐다.

그 순간 느닷없이 은색 빛의 거울에 서리가 끼고 챙강, 터져버렸다.

흩어진 파편 틈으로 실들이 새하얀 창을 응결해 인무상의 목을 노렸다.

인무상은 허둥거리지 않고 창 하나로 얼음 창을 막고 나머지로 그 뒤의 허공을 찔렀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던 허공에서 가슴에 은색 창이 박힌 상백이 나타났다.

입가에 푸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 실력이 없지는 않지만, 고작 이런 수로…….”

인무상은 상대가 일격에 당한 것을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은색 창이 관통한 상백의 몸이 실로 풀어졌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상백은 전혀 부상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안색이 변한 인무상이 은색 창에서 금속광택이 나는 은색 액체를 날려 상백의 몸을 고정하려 했다.

“비켜라!”

은색 액체를 뒤집어쓴 상백은 두려워 않고 수결을 맺으며 소리쳤다.

다음 순간, 인무상 아래에서 천여 가닥의 새하얀 수정실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뒤덮고 조각냈다.

자유를 되찾은 상백은 새하얀 빛을 터트려 영역 안에 만장 설산을 만들고 천군만마처럼 헌원걸을 향해 떨어뜨렸다.

상백도 자신이 헌원걸의 적수가 못 되는 것을 알았지만 금동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면 족했다.

한편 찢겨나갔던 인무상은 은색 액체로 변해 몸을 하나로 뭉쳤다.

“멍청이.”

헌원걸 뒤쪽의 청포 노인이 인무상이 당한 것을 보고 뭐라 하더니 앞으로 나서며 소매를 펄럭였다.

촤르르!

허공을 찢는 힘이 떨어져 내리는 만장 설산을 향해 날아갔다.

십여 초가 지나기도 전에 설산이 노인의 소매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말았다.

콰릉.

그때 금색 빛구슬에서 금빛이 만발하고 현묘한 소용돌이 문양이 나타나 천지의 기운을 잡아먹었다.

의추가 그걸 보고 크게 기뻐했다.

대륙의 천정 수사들이 그 강대한 기운이 겁먹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전군이 출정한다!”

눈을 가늘게 뜬 헌원걸이 명을 내렸다.

그런데 천정 병사들이 출동하기 전에 대륙 중앙에 하얀빛이 크게 퍼졌다.

설산 공격에 실패한 상백이 어느새 소리 없이 대륙 중앙에 나타나 육지에 천만 가닥의 수정실을 퍼트리고 있었다.

삽시간에 얼음이 퍼져나가 모든 것을 꽁꽁 얼렸다.

“성공…….”

의추가 주먹을 쥐고 환호하려는데, 이변이 벌어졌다.

대륙에 황토색 광채가 번져 지면을 파도처럼 일으키면서 거대 손으로 변해 남색 가죽 갑옷을 입은 백발 사내를 잡아채 고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상백 수사!”

의추는 거대 손에 붙잡힌 상백이 흙 속성 법칙의 힘을 물씬 풍기는 사슬에 묶여 꼼짝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동시에 대륙을 봉쇄하려던 얼음의 힘도 사라졌다.

“천군 노조, 겨우 상백과 의추 따위는 신경 쓰시지 마시고 볼일을 보시지요.”

인무상, 청포 노인과 나란히 선 여인이 힐끗 의추를 보며 말했다.

“속전속결을 내야 한다.”

헌원걸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세 사람은 알겠다고 답하고 천정 대군을 이끌고 돌격했다.

의추는 멀리 천마운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타들어 갔다.

헌원걸이 나서자마자 상백은 제압당했고, 청봉은 천마운으로 들어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그녀의 천갈멸각대진(天蝎滅却大陣)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이를 악문 의추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미리 영충 대군을 이용해 펼쳐둔 진법에서 웅웅 거리는 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영충들도 죽기를 불사하고 천정 수사들과 싸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영충대군과 천정대군이 허공에서 충돌해 역외공간에 전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굉음과 요란한 빛이 만발하고 격전이 이어졌다.

영충의 수가 어마어마했지만 천정 수사들의 수행이 더 높아 누가 보아도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을 듯 보였다.

인무상의 두 은창이 허공에 은빛 구멍을 뚫을 때마다 수만 영충들이 죽어 나갔고, 청포 노인의 소매가 펄럭이면 바람이 불어와 수십만 영충을 흡수했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보랏빛 화염을 일으켜 수십만 영충들을 활활 불살랐다.

세 사람이 길을 트자 천정 수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천갈멸각대진을 뚫고 거대한 금동 본체를 향해 접근했다.

의추는 자의(紫衣) 여인 등이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은 지 오래였다.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져 전갈 모양을 이룬 천갈멸각대진의 머리 부분이 나타난 그녀가 비대한 여왕개미의 몸으로 돌아가 전갈 영충 등 진법을 이룬 모든 영충을 흡수하고 대라 최고봉의 강대한 기운을 발산했다.

자신의 생명을 태워서라도 진법의 최대 역량을 낼 참이었다!

하얀빛이 깃든 의추의 두 눈은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고, 두 앞발을 양쪽으로 펼치며 하얀색과 푸른색 빛을 폭발했다.

강대한 한기가 날아가 청포 노인을 얼음으로 봉하고 다른 쪽에서는 녹색 화염이 자의 여인을 감쌌다.

녹색 화염은 진득진득해서 보랏빛 화염에 엉겨 붙어 금방 자의 여인에게 접근했다.

얼음과 불의 장벽이 대문처럼 서서 금동을 보호했다.

위쪽에서 날아들던 인무상을 향해 거대 전갈 꼬리가 날아들었다.

천갈멸각대진의 위력은 세 사람의 예상을 넘어섰다. 헌원걸이 그걸 보고 얼굴을 굳혔다.

그는 직접 나서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법칙의 힘을 쓰면 천도의 침식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 거린이 정말 도조의 자리를 되찾으면 잃는 게 더 컸다.

“이 쓸모없는 것들! 비키거라!”

마지못해 나선 그는 주먹에 황토색 빛을 일으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가 움직인 순간 뒤쪽에서 푸른 갑옷을 입은 중년인이 나타나 암녹색 나선형 가시를 들고 헌원걸의 귀 뒤쪽에 찔러넣었다.

중년인은 청봉이었다.

진작 천마를 정리했지만 일부러 천마운을 흩어버리지 않고 숨어 있다가 기회를 노려 암습을 한 것이다.

나선형 가시는 그의 본명 법보로 3품 선기라서 제대로 공격만 들어가면 도조라고 해도 부상을 입힐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갑자기 해죽거리며 헌원걸이 주먹 끝의 황토색 소용돌이를 없애고 귀 뒤쪽으로 금색 광택을 흘려보냈다.

그제야 오히려 자신이 걸려든 것을 알아차린 청봉은 곧장 몸을 틀어 뒤쪽으로 달아났다. 감히 헌원걸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상백을 붙잡은 거대 손 위로 떨어졌다.

나선형 가시로 상백을 구금한 사슬을 베어낸 청봉은 그를 잡아당겨 거대 손에서 구출했다.

헌원걸은 그걸 뻔히 보면서도 막지 않고 칭찬의 눈빛을 보냈다.

“은닉신통이 상당한 수준이 이르렀구나. 나조차도 찾아내기 쉽지 않다니. 허나 계속 숨고 싶었으면 감히 땅에 발이 닿지 않게 했어야지.”

그 말을 들은 청봉은 자신의 발이 육지에 닿은 것을 보았다.

은닉법칙의 조화가 깊어 헌원걸 같은 도조의 의식 탐지도 피했지만 일단 흙의 도조 앞에서는 땅에 닿았으니 그러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헌원걸을 기습할 생각을 버리고 상백을 데리고 물러나려 했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네놈들의 주인을 멸해야겠다. 실력이 쓸 만하니 나를 모시겠다면 곁에 둘 수도 있고.”

헌원걸의 손짓에 대륙의 황토 흙이 일어나 청봉과 상백을 덮쳤다.

아직 지면에서 수백 장밖에 벗어나지 못했던 두 사람은 기이한 힘에 속도가 느려져 흙에 파묻혔다.

헌원걸은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전갈 모양의 진법을 응시했다.

이전과 달리 허리춤에서 주먹을 쥐고 강력한 흙 속성 법칙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가라.”

헌원걸이 주먹을 뻗자 응결된 흙의 법칙이 황토색 소용돌이를 이루고 만장 폭풍으로 변해 금동 쪽으로 날아갔다.

천정 수사들은 급히 양쪽으로 물러나 길을 텄지만 영충 대군은 물러서지도 피하지도 않고 황토색 폭풍의 앞을 막았다.

수백만 영충 대군이 폭풍에 휘말려 소멸하고 있었다.

상백과 청봉이 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을 보며 발버둥 쳤다.

의추는 자신의 정면으로 날아드는 무시무시한 힘을 직시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이번 공격을 막기로 결심을 굳힌 터였다.

길게 포효한 그녀가 두 눈에서 더욱 성대한 하얀빛을 내뿜어 법칙의 힘을 연소했다.

천갈대진을 이룬 충족들도 그들의 생명을 불살라 힘을 보태고 있었다.

이에 검푸르던 진법의 색깔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그 안의 영충들이 빛으로 변해 얼음과 불의 장벽을 더욱 높게 세우고 황토색 폭풍을 막아섰다.

쿠쿠쿠쿠.

이때 다른 속성의 법칙의 힘이 충돌해 허공이 비틀리고 공간이 무너져 내려 공간와류인 검은 동굴을 만들었고, 새하얀 눈과 녹색 불길이 그 검은 동굴로 흡수되어 사라져갔다.

그러자 빛이 부족하던 역괴공간이 찬란하게 빛나다 까맣게 변했다.

겨우 십여 초 만에 거대한 천갈멸각대진이 사라지고 금동 주위로 모여 있던 백만 영충 대군이 몰살당해 겨우 육신의 절반만이 남은 의추가 둥실 떠있었다.

“마, 막아냈어…….”

입에서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면서도 그녀의 눈에는 빛이 감돌았다.

하지만 의추가 기쁨을 만끽하기 전에 공간을 뒤흔들며 황토색 주먹 허상이 날아들었다.

만장 주먹 허상을 본 의추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숨을 바쳐도 도조의 일격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왕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구름과 진흙 사이의 거리와도 같은 도조와의 격차는 그녀의 희망을 꺾어 놓았지만 의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달아나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의추!”

청봉과 상백이 그걸 보고 비통하게 포효했다.

그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의추 머리 위 공간균열에서 등에 청포 사내를 태운 태을급 서금선이 튀어나온 것이다.

등장하자마자 서금선의 등을 박찬 키 큰 사내는 의추의 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금빛보륜이 날아올라 더없이 진한 빛기둥을 이루고 황토색 주먹 허상과 충돌했다.

금빛과의 충돌에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황토색 주먹 허상은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파치치칙!

72자루의 청죽봉운검이 금빛 빛기둥을 따라 황금 용 떼처럼 날아가 주먹 허상과 부딪쳤다.

쿠콰쾅!

금빛과 뇌전이 만발하자 황토색 주먹 허상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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