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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207화 (1,964/2,000)

2207화.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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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남궁완을 마주 안으며 한립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와 재회했으나 윤회 전주가 전생의 기억을 소생시킨 것에 다시 화가 치밀었었다. 여러 이유로 무력하게 그녀를 두고 떠나야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이별은 다시 만날 날을 위한 희생이었다.

그러나 후에 남궁완이 천정에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불안했는지 몰랐다.

이제 남궁완을 품에 안고 나니 가슴을 억누르던 바위를 겨우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돌연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은 심경의 급격한 변화를 연신술로 억누르며 의식세계를 다스렸다.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킨 그는 방금 원영에 기묘한 변화가 생겨 아주 미세하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동안 제자리걸음이던 연신술 7성 수련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의식의 힘이 성장했다.

연신술은 1성, 2성, 3성 그리고 7성에 이를 때까지 의식의 힘을 키워주었지만 강력한 힘이 의식세계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방금 그 힘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지표가 생긴 것 같았다. 연신술 7성을 완전히 익히지는 못해도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궁완이 그의 심경의 변화를 눈치채고 품에서 살짝 떨어졌다.

“부군, 왜 그러세요?”

“아니요, 당신이 나를 알아보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뻤던 것 같소.”

한립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다시 꼭 안아 주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단단히 껴안고 있는 이 시간이 백 마디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 팔을 풀고 서로를 마주 본 그들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까는 의심해서 미안해요. 괜히 증명하게 만들고…….”

“괜찮소. 당신의 신중한 성격에 당연한 일이지.”

청죽봉운검과 원합오극산을 거두며 한립은 남궁완을 침상에 앉혔다.

“진선계에 와서 어떻게 지낸 거예요? 감구진과 윤회 전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선계에 명성이 자자하다면서요?”

“명성은 무슨. 온갖 일에 휘말려 이리저리 달아나고 분투하다 여기까지 온 것뿐이오.”

“원래 진중한 성격인 건 알지만, 우리 사이에 그럴 것 없잖아요. 난 진선계에서 당신의 실력이면 어느 정도 위치인지 알고 싶은 거예요.”

눈을 깜빡인 남궁완은 조금 토라진 기색으로 말했다.

“진선계의 최강자는 시간도조인 고혹금일 테고, 두 번째 인물을 꼽으라면 내가 볼 때 다른 도조들이 아니라 윤회 전주일 거요……. 난, 그럭저럭 열손 가락 안에는 들 수 있겠지.”

진지하게 생각하던 한립이 웃으며 답했다.

“역시 영계를 주름답던 한립다워요! 선계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싶어요. 당신에게 줄 선물도 있고요.”

얼굴이 밝아진 남궁완이 절반 짜리 녹색 옥패를 들고 웃으며 그를 응시했다.

옥패를 받은 한립은 움찔했다.

옥패 표면의 여리여리한 신영은 자령이었다. 자령이 당시 그에게 내주었던 옥패의 신영은 남궁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선계까지 왔으니 몇 가지 일들은 해결해야겠어요. 당신은 신경 쓸 것 없고, 어서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줘요.”

“듣고 싶다면 얼마든지 말해주리다. 처음 진선계로 비승했을 때 북한선역의…….”

남궁완의 재촉에 쓴웃음을 지은 한립이 진선계에 온 뒤로 겪은 일들을 천천히 풀어 놓았다.

자세히 말하기 꺼려지거나 너무 남궁완을 놀라게 할 만한 일들 그리고 자령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넘어갔다.

그는 수도 생활을 함께한 희대의 보물인 장천병에 대해서도 남궁완에게만큼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남궁완은 그가 겪었던 기상천외한 일들을 들으면서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하며 집중했다.

꼭 속세의 아낙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낭군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또한 그녀는 자신이 마음에 품은 사내에 대한 자부심과 그간의 세월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재회의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수도계에 들어선 후 속세의 감정과는 멀어졌지만 일생의 반려에 관해서 만큼은 진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신이 풍청수에게 잡혀간 것을 알고 용연선역으로 와서, 풍청수와 진여연 두 도조와 전투를 치르고, 하늘이 보우하셨는지 당신을 무사히 구해올 수 있었소.”

“당신이 비승을 한 후에 어떻게 살고 있을지 수도 없이 상상해 봤는데. 당신이 실제 경험한 것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되지 않네요.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목숨을 수십 번은 잃었을 거예요.”

남궁완은 눈동자 가득 한립의 모습을 담고 탄복했다.

“가족이라고 나를 그리 띄워줄 것 없소. 운이 좋았고, 인연이 닿아 지금까지 평안할 수 있었던 것뿐이니까.”

“아, 능력 있는 홍안지기(紅顔知己)들도 곁에 많이 있었고요? 감구진에게 들으니 제혼과 금동도 사람이 되어, 그것도 엄청난 미인이 되었다면서요. 자령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소리 마시오. 제혼은 당신도 알다시피 인계에서부터 생사를 함께한 동료이고, 금동은 서금선이 수련해 사람이 되었다고만 여겼는데 그런 놀라운 과거를 지니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소……. 자령은, 아무래도 그녀의 전생도 나와 인연이 있는지라…….”

한립이 어색하게 웃으며 남궁완을 향해 해명했다.

특히 자령에 대해서 더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는데 남궁완이 고운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지금에 와서 내가 질투 같은 걸 할 것 같아요? 모든 인연은 하늘에서 정해 준 것 같아요. 당신과 내가 그렇듯이요.”

“그러고 보니, 내 이야기만 했소. 하계에서는 그간 어떻게 지낸 것이오?”

“하계에서 내 생활이야 당신의 삶보다는 단조로웠어요. 부군이 비승한 뒤, 줄곧 청원궁에서 수련을 했으니까요. 당신이 남겨두고 간 자원과 몇 가지 기연을 만나 순조롭게 대승기에 이르렀고 수천 년을 더 수련해 대승기 최고봉에 이른 다음에 천겁을 이겨내려 도전했죠. 진선계에서 당신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천겁은 어떠했소?”

“충분히 준비했다고 여겼는데, 비승천겁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더라고요. 몇 번이나 고비를 넘기고 결국에는 천겁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어요. 마지막 순간 당신을 향해 유언도 남겼다니까요.”

천겁 당시를 떠올린 남궁완이 쓰게 웃음 지었다.

한립은 그녀가 고생한 것을 알고 남궁완의 뺨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이제 죽겠구나 했는데, 어두운 세계에서 깨어나게 되었어요. 체내의 법력도 선령력으로 바뀌어 있고, 주변 사람들도 마량보다 더 강한 진선들이더라고요.”

남궁완이 그런 그의 손을 자신의 뺨에 바짝 붙이고 말했다.

“유명계를 말하는 것이오?”

“맞아요. 윤회 전주가 날 구해 주었던 거예요. 곧바로 기억이 봉인 당해서 이제야 제대로 깨어났지만요.”

“내가 곁에 있어 주지 못해 고생을 시켰소. 그런데 어쩌다 홀로 윤회전을 떠나게 된 것이오?”

한립이 남궁완의 두 손을 잡고 물었다.

“윤회 전주는 날 정중하게 대했고 무엇을 해도 막지 않았지만, 내가 떠난다고 하면 보내 줄 것 같지 않았어요. 당신과 하루빨리 만나려 몰래 떠났다가 괜히 사고만 치고 말았네요.”

고개를 숙인 남궁완이 자책하듯 말했다.

“사고라니? 나도 당신을 윤회전에 남겨둔 것이 마음에 걸렸소.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오.”

한립이 웃음 지으며 하는 말에 남궁완도 활짝 웃어 보였다.

“영계 인족은 어떻소? 청원궁 사람들은 잘 지내는 것이오?”

“부군께서 기반을 탄탄히 다져두셔서 인족은 그 후로도 번창했어요. 청원궁 제자들의 수행도 날로 높아져 제가 비승하기 전에 기령자와 해대소는 합체 최고봉이었고, 백과아도 자질이 뛰어나 대승기에 이르러 있었죠. 빙봉 수사와 은월은 나보다도 먼저 대승기에 이르렀지만 비승도겁에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해 준비하는 중이었어요.”

여러 사람들을 나열하던 남궁완이 이채를 띠었다.

한편 한립은 친숙한 이름들을 들으며 그들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지는 한편 오랜 세월과 공간 너머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허해지기도 했다.

수행의 길은 늘 외로움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럼 원요는 어떻게 되었소?”

“원요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남궁완이 말을 잇지 못하자 한립은 심장이 철렁했다.

“원요도 대승기까지는 순조로웠어요. 청원자 선배님의 의발을 전수받아 빠르게 수행이 늘어서 저보다 먼저 비승의 겁에 도전했으니까요. 허나 결국에는 도겁에 성공하지 못하고…….”

남궁완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몸이 경직된 한립의 뇌리에 원요가 창백한 얼굴로 웃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악시와 선시를 참해 심경이 더없이 굳어진 그는 설명할 수 없는 비통함에 잠겼다.

“삶과 죽음은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원요가 도겁을 하기 전에 함께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도겁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후회가 없다고 했었어요.”

“걱정하지 마오. 내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어디 한둘 보았겠소. 그저 오랜 벗의 부고를 듣고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구려.”

한립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윤회 전주가 말하기를 육도윤회반은 천만생령의 윤회에 관여할 수 있다고 했어요. 기회가 되면 보물을 통해 원요의 환생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천겁을 치르다 죽은 원요는 천도로 인해 생을 마감한 것이니 그 혼백이 남아 윤회를 떠돌지 알 수 없소. 게다가 환생을 했으면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윤회 전주처럼 억지로 전생의 기억을 깨워서야 되겠소. 그건 이번 생의 원요를 세상에서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요.”

한립이 고개를 저었고, 남궁완도 직접 겪어본 일이었기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영계로 돌아가 그녀가 묻힌 곳으로 가서 인사나 나눕시다.”

대라 최고봉에 이른 그가 무턱대고 영계로 향하면 천지원기의 동요를 불러와 심하게는 계면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었다.

진선계에서도 급이 낮은 선인들밖에는 하계로 내려가지 못했다.

“인연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계에서 장천병 같은 진귀한 보물을 얻었을 줄은 몰랐어요. 인계와 영계에서 빠르게 성장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요.”

눈을 반짝이며 화제를 돌린 남궁완이 한립을 흘겼다.

“절대 바깥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는 일이고, 알고 있다고 해도 화만 불러들일 일이라 이야기하지 못했소.”

“알아요. 당신의 결정이 옳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천정도 장천병이 당신 수중에 있는 걸 알았으니 빼앗으려 들겠죠?”

“괜찮소. 천정은 윤회전과 싸우느라 당장 나를 신경 쓰지는 못할 것이오. 진선계에서 단 세 명을 제외하면 누구에게서든 벗어날 자신이 있으니 장천병을 지키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오.”

남궁완의 걱정에 한립은 자신 있게 답했다.

“하아, 그 말을 들으니까 안심이 되네요. 수행이 너무 떨어져 부군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세상에 기인기사가 수없이 많다지만 정말 시공간초월이 가능하다니 놀랍기도 하고요.”

“흥미가 있다면 직접 데려가 줄 수도 있소.”

장천병을 꺼내든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됐어요. 장천병을 사용할 때마다 시간도문의 힘을 소모해야 한다면서요. 위험한 때를 대비해 아껴놔야죠.”

사실 대라 최고봉에 이르며 천도의 힘과 소통하게 되어 장천병으로 시공간초월을 하는 대가가 이전처럼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궁완이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따스해졌다.

“완이의 말대로 하겠소.”

“부군,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이에요?”

“이제까지는 당신을 구할 생각만 가득해 후일은 계획해둔 것이 없으나 풍청수, 진여연과 용연선역에서 대대적으로 붙은 일이 알려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소.”

한립의 말에 남궁완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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