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화.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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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인, 무슨 일입니까!”
시선을 마주친 세 사람이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대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들어가 살펴보시지요.”
남포 여인의 말에 그들은 힘을 모아 결계를 풀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결계를 개방하려면 장문인 수중의 보물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결계를 뚫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힘을 모아 결계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엉망이 된 바닥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
덩치 큰 중년인이 손끝으로 피를 찍어 살폈다.
“큰일입니다. 장문인이 중상을 입고 납치당했어요.”
중년인은 서늘하게 소리쳤고, 그 말에 다른 이들도 표정이 가라앉았다.
“대라 최고봉에 이른 장문인을 순식간에 납치해 가다니요? 설마…….”
남포 부인이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난색을 표했다.
“대라 급이었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조가 나선다고 해도 전부 가능하지는 않을 테고요.”
사내아이가 입을 여는데 맑고 청량한 목소리에 애늙은이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이건 아닙니다. 도조들이 왜요? 그 고귀한 신분에 왜 직접 대라 수사를 납치하냔 말입니다.”
덩치 큰 중년인은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고 반박했다.
“혼란한 진선계의 상황을 생각하면, 모든 일을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할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을 거예요.”
사내아이가 말했다.
“그래서 희 장로의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덩치 큰 중년인이 사내아이를 보았다.
남포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장문인의 실종은 십중팔구 도조가 연관된 큰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처리할 수 없으니 바로 노조께 보고를 올리지요.”
사내아이의 말에 중년인과 여인도 수긍했다.
* * *
허공 난류 속, 금빛의 거대한 고치가 떠있고,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금빛으로 만들어낸 실체화된 공간은 상당히 넓어 그 안에 산과 강 그리고 풀과 나무들이 존재했다.
한립은 그 안에서 무용종 장문인을 내려두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추혼술을 펼치는 그윽한 빛이 강해질수록 한립의 미간에는 주름이 좁아졌다.
무슨 비술을 익힌 건지 혼백 속 기억이 단단하게 응축해 특수하게 봉인된 탓이었다.
봉인과 무용종 장문의 혼백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강제로 엿보려다가는 혼백이 터져버릴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립은 수정 사슬을 거두고 장문인의 미간을 가리켰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무용종 장문인은 눈앞의 한립을 보고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는 어느 도조입니까? 어째서 선배님 같은 수행에 이런 짓을 벌이신 겁니까?”
“양산 수사, 난 당신을 죽일 마음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기만 하면 바로 떠날 겁니다.”
한립은 무용종 장문인의 표정을 살피며 미소 지었다. 그 말에 양산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다 눈을 감아버렸다.
“그건 내 제안을 거절하겠단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선배님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노조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저를 데려온 것이라면 그냥 죽이십시오.”
“충심이 깊은 것은 좋은 일이나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협조하지 않겠다니 쓴맛을 좀 보여줄 수밖에 없겠습니다.”
한립이 담담히 말했다.
양산의 거절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강제로 추혼술을 하든 뭐든 해보시지요. 혼백의 구룡봉인(九龍封印)은 노조께서 친히 심어 두신 것이니 당신이 도조라 해도 기억을 읽어낼 수는 없을 겁니다.”
양산은 냉소를 흘렸다.
“아, 풍청수가 직접 펼쳐서 그리 현묘했군요. 대다수 도조들은 확실히 추혼을 하는 게 불가능했겠습니다. 아쉽게도, 당신은 나를 만났지만.”
한립의 말에 양산이 인상을 찌푸렸다가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가 헛소리한다는 듯 비웃는 얼굴이었다.
“구룡봉인은 기억과 혼백을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고 9개의 각기 다른 역량으로 봉인을 해서 외부의 침투에 즉각적으로 폭발하게 되어있습니다. 확실히 까다롭지요.”
눈을 감은 채 한립의 설명을 듣던 양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만, 구룡봉인과 혼백의 힘이 연결된 탓에 혼백의 힘이 약화되면 봉인의 힘도 영향을 받는다는 약점이 있지요. 만일 당신의 혼백이 금선급으로 되돌아가면 제아무리 구룡봉인이라 해도 완벽한 봉인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양산은 뭔가 마음이 불안해졌다.
한립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였던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수결을 맺었다.
다섯 개의 금빛이 그의 손을 빠져나와 불, 물, 흙, 나무 그리고 금속의 속성을 띠고 양산 장문인 주위를 맴돌았다.
그 속에서 오행 속성을 지닌 여러 환영이 떠올라 오행법칙의 힘이 어우러졌다.
주변의 영역도 천천히 기운을 발휘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유속에 변화가 생긴 것을 안 양산이 끙 앓으며 기운을 잃어갔다.
대라 후기…….
대라 중기…….
대라 초기…….
태을 후기…….
태을 중기…….
별안간 양산의 수행이 금선 급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 어떻게……. 어떻게 한 겁니까!”
노인은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겁에 질려 소리쳤다.
한립은 대답 없이 금선으로 변한 양산의 혼백을 구룡봉인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훑을 수 있었다.
“무용비경(霧龍祕境)이라, 그런 곳에 있었구나.”
한립은 몸이 풀리며 쓰러져 버린 양산을 금빛으로 휘감고 사라졌다.
* * *
무용종 깊은 곳의 산골짜기.
세 개의 둔광이 내려와 덩치 큰 중년인 남포 여인과 희 씨 성을 쓰는 사내아이로 변했다.
골짜기 입구, 평범해 보이는 석문 앞에 절을 올린 그들은 향을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향이 타며 흘러나온 연기가 석문에 스며들어 뒤쪽의 다른 세상을 비추었다.
끝 모를 푸른 바다에 남색 태양 같은 것이 하늘에 걸려 있는 공간이었다.
부글 부글 부글!
물의 겉면이 증발하면서 남색 물안개가 일고 파도 틈으로 거대한 꼬리나 발톱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바다 깊은 곳 해저 동굴 안, 기암괴석이 가득한 방대한 공간에 석림(石林)이 있었다.
석림 곳곳에 거대한 유골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작은 것은 언덕만 하고 큰 것은 그야말로 산만큼 거대했다.
이미 생기를 잃었음에도 용의 뼈들이 모여 광오한 기운을 발산하는 곳에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풍청수가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허공에 손을 뻗어 남색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노조를 뵙습니다.”
소용돌이 속에서 희 동자를 비롯한 무용종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데 셋이 함께 나를 찾아온 것이냐?”
풍청수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나, 장문인이 실종되고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 듯하여 어쩔 수 없이 찾아뵈었습니다. 흔적으로 보아 도조 급이 나선 것 같아 저희로서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어찌 된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풍청수의 명에 희 동자가 나서서 앞서 보았던 것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양산이 사기량도진(四氣凉滔陣)을 발동하고도 당했다면 도조가 나섰을 가능성이 크구나.”
말을 하면서 풍청수의 눈빛도 어두워졌다.
양산이 납치를 당한 것은 그럴 수 있었지만, 자신이 그걸 지금껏 몰랐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조사할 것이니, 너희는 관여치 말거라.”
“조사할 것 없습니다. 무용종 장문인 양산은 내가 데리고 있으니!”
그때 누군가 풍청수의 말을 끊고 무용비경이 극심하게 흔들렸다.
굵직한 금빛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심해 동굴로 강림했다.
풍청수와 멀지 않은 곳에 금빛이 내리고, 남색 소용돌이가 부서져 희 동자 등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미미하게 안색이 달라진 풍청수가 하얀 안개를 몸에 두르고 뒤로 물러나 흩어진 금빛 속의 청포 사내를 보았다.
기억 속의 도조에 대한 자료를 다 뒤져도 저런 용모를 지닌 도조는 없었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눈에 익은데?
한립은 풍청수가 뭘 하든 관심 없이 의식을 퍼트려 용무비경을 탐색했다.
깊은 바닷속에는 거대한 용들이 노닐고 있었고, 정순한 용족 혈맥을 지닌 용들중에는 대라급도 십여 마리는 되었다.
해저 동굴 안의 용 뼈는 살아 있는 용들보다 훨씬 많았다.
무용비경은 용족의 소굴이었다.
“넌!”
그때 풍청수가 알았다는 얼굴로 한립을 노려보았다.
오래전 명을 받아 회계 구유역에 가서 음승전을 회유할 때 이상한 놈이 구유성에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자였다!
수행이 태을경에도 못 미치는 존재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조차도 수행을 꿰뚫어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때는 일부러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겁니까? 하긴 그 당시 마족 녀석과 괴이하게 사라지기는 했지요. 마계의 능력자가 구출한 거라 여겼건만, 그게 아니었을 줄이야.”
풍청수가 자신의 짐작을 이야기했다.
“당신이 완이를 잡아간 것이 사실입니까?”
그러든 말든 한립은 풍청수를 향해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수행은 대라 최고봉임에도 기운만은 도조의 경지에 이르렀군요. 어째서 무용종 장문인을 납치한 겁니까?”
“풍 수사, 도조씩이나 되는 분이 자신이 한 일을 모른 척하는 겁니까?”
냉소를 흘린 한립이 금빛으로 남궁완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걸 본 풍청수는 입가에 미소가 스쳤지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이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은 것 같은데, 완이를 내놓으시지요. 그러면 나도 양산을 내주고 그 즉시 돌아갈 겁니다. 내 말대로 하지 않겠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후회하지 않아야 할 겁니다.”
한립의 냉랭한 기세가 강해졌다.
“허허허! 노부 앞에서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 자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여인은 내가 잡은 게 맞습니다. 하지만 천정의 명에 따른 것이라 이미 천정으로 보냈습니다.”
풍청수가 덤덤히 말했다.
한립은 진작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직접 듣고 나니 안색이 좋지 않아졌다.
“천정이 그녀를 노린 이유가 뭡니까?”
“나야 모르지요. 명에 따랐을 뿐 이유에 대해 들은 바는 없습니다.”
풍청수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한립을 훑었다.
“그렇다면, 네 놈은 네가 한 짓의 대가를 치러야겠구나!”
섬뜩한 눈빛을 번득인 한립이 소리 없이 소매를 펄럭였다.
쿵!
만발하는 금빛이 동부를 뚫자 묵직한 시간법칙이 폭발했다.
“시간법칙!”
놀란 풍청수가 번개처럼 피하며 양손을 휘둘렀다.
허공이 울리고 수많은 남색 실들이 떠올라 바다처럼 한립을 감쌌다.
차갑게 웃은 한립은 금빛 빛줄기로 변해 불가사의한 속도로 사라졌다.
잠시 후, 풍청수 뒤에서 파문이 일고 한립이 나타났다.
남색 빛은 모조리 뜯겨 나가고 풍청수의 몸에는 세로로 한 줄기 선이 생겨 있었다.
푹!
몸이 두 동강이 나던 풍청수가 남색 물안개로 변해 거리를 벌리고 창백한 얼굴로 돌아갔다.
“대체 누굽니까! 이런 시간법칙의 힘이라……. 설마 진언문의 후예!”
“똑똑하군요. 원래 쓸데없이 똑똑한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하는 일이 많던데요.”
한립은 대답을 하면서 기운을 왕성하게 일으켜 영역으로 풍청수를 가두었다.
진언문이 떠올라 둥근 달로 변하고 풍청수는 진한 금빛 속에서 얼어붙었다.
한립은 사정없이 주먹을 뻗어 다섯 줄기의 시간법칙의 힘을 하나의 금색 주먹 허상에 실었다.
다섯 가지의 시간법칙이 붕괴하지 않고 언제든 터질 것처럼 위험하게 공존했다.
시간법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스스로 만들어낸 대오행멸절(大五行滅絶) 신통이었다.
펑!
풍청수의 육신이 갈라져 핏물이 비가 되어 내렸다.
그러나 풍청수를 중심으로 직경 수백만 리의 금색 태양이 핏물에 뒤덮여 무(無)로 돌아갔다.
강력한 권풍에 바다가 넘실거리고 무용비경이 좍좍 갈라져 붕괴하기 시작했다.
무용종 상공이 흔들리고 하늘에서 갑자기 해수가 쏟아져 내려 종문은 물론이고 천해대륙 절반을 뒤덮고 떨어져 내렸다.
비경 안의 남색 태양이 강력한 빛을 발산했다.
해수 속의 용족들은 바들바들 떨며 감히 날아오르지도 못하고 물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오만한 용족들은 어떤 종족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도조에게는 선천적인 경외감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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