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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94화 (1,951/2,000)

2194화. 폐관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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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천도 한립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바다의 힘을 품은 손바닥을 내리쳤다.

그러나 한립은 귀신같이 사라져 그의 뒤에 나타나더니, 홀연히 비슷한 크기의 삼두육비 마신으로 변신해서 여섯 개의 팔을 풍차처럼 돌렸다.

폭풍이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주먹 허상들이 밀집되어 수장천의 등을 때렸다.

쿠쾅쾅쾅쾅.

비처럼 떨어지는 주먹 허상에 수장천은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물빛 갑옷이 박살나 쿵 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거대 수장천의 몸에서 물기가 증발해 주변을 하얀 물안개로 뿌옇게 채우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굉음이 그치고 한립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곤죽이 된 시체 앞에 내려섰다.

수장천의 대라경 육체는 현규를 전부 뚫은 한립의 육신의 힘 앞에 이렇게 무기력했다.

힘차게 주먹질을 하다 보니 한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우울감이 상당히 가시는 것 같았다.

허리를 굽혀 시체 잔해에서 저물탁을 주워 올리려던 그는 주변의 안개를 보고 피식 웃음 지었다.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허공이 구불구불 왜곡되면서 양쪽으로 고층 건물들이 잔뜩 들어선 좁은 길로 변하기 시작했다.

속세의 성 같은 그곳에서 사람과 마차가 물샐틈없이 돌아다니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가 점원들의 소리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귀가 당 멍멍해졌다.

“시끌벅적한 시장이라, 잔혼이 숨기에 적절합니다.”

미소를 짓던 한립은 훅 숨을 내뱉었다.

돌풍이 몰아쳐 기와가 얹어진 고층 건물이며 길을 휩쓸어 안개로 되돌려 버렸다.

시야가 밝아지자 수장천의 잔혼이 벌써 수만 리 밖에서 달아나고 있는 게 보였다.

한립은 장검을 휘둘러 시간법칙의 힘을 품은 검빛을 날려 보냈다.

번득 검빛이 사라지고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수장천이 죽은 것이다.

그를 잡으러 몰려 왔던 감찰선사와 순찰선사들이 그걸 보고 더는 머물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석천공과 자령은 그들을 추격하지 않고 한립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법언천지 신통이 한계에 이르러 만 리 사막이 사라지고 멀리 밀려났던 해수가 쏟아져 들어와 해저를 채우고 있었다.

한립도 움직여 중간에서 그들과 재회했다.

“오늘 전투를 보고서야 한 형이 이제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게 되었어요…….”

한립이 작은 부상도 입지 않은 것을 본 자령이 안심하며 말했다.

그 말에 한립은 침묵하다 답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선계로 돌아오자마자 천정의 매복 공격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군요.”

석천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뭐, 예상한 일 아닙니까? 이제는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한립도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이번 여정도 일단락이 났으니, 마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진선계의 상황이 혼란스러우니 석 형의 신분에는 그러는 편이 그나마 안전할 겁니다.”

한립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한 수사도 진선계에서는 천정의 추적을 피하기 쉽지 않을 텐데 같이 마역으로 가서 잠시 몸을 피하시지요? 적린공경을 벗어난 해 숙부께서 마역으로 진군해 벌써 마역의 절반을 차지하셨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누군가의 추살을 걱정할 일은 없을 거예요.”

“아닙니다. 천정의 추격은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괜한 분쟁에 휘말리느니 조용한 곳을 찾아서 수련에 매진하고 싶어요.”

석천공의 제안에 한립은 의미심장하게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한립은 석천공이 자신을 초대한 목적을 알아차렸다.

“계획이 있으시다면 그리하시지요. 자령 낭자는 어찌할 생각입니까? 마역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석천공이 자령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는 답하지 않고 한립을 쳐다보았다.

그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었다.

“……자령, 진선계는 현재 매우 불안정하다. 네 수행에 석 수사를 따라 마역으로 가는 편이 낫겠구나.”

“한 형은요?”

“완이가 윤회전에 있으니 당연히 데리러 가야겠지.”

그 순간 한립의 눈빛이 칼날처럼 반짝였다.

“윤회전으로 돌아간다고요?”

그 말을 들은 자령이 미간을 좁혔다.

“한 수사, 윤회전은 세력이 강해 천정의 힘으로도 토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윤회 전주의 신통은 우리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고요. 수사도 강한 것은 알지만 윤회 전주에 비하면 부족하니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는 마세요.”

석천공도 놀란 얼굴로 그를 말렸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가겠다는 것이지 지금 당장 그러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최소한 대라 후기에는 이르러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3대 지존법칙은 결코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힘이었다.

아직 대라 후기인 윤회 전주가 골황이라는 명실상부한 도조를 죽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립도 시간법칙을 익혔으니 일단 대라 후기에 이르면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내가 같이 갈게요.”

자령이 뜻밖의 말을 했다.

“자령, 내 곁은 안전하지 않다. 그보다는…….”

“인계에서 그리고 영계에서도 당신 곁에 머물지 못했던 걸 후회했어요. 어렵게 생긴 기회인데, 뜻대로 하게 해줘요.”

자령은 한립의 말을 끊고 물빛 가득한 눈망울로 그를 응시했다.

자신을 직시하는 자령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한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녀와 알고 난 뒤 함께할 수 있던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게 아쉽지 않을 리 없었다.

대답을 들은 자령은 화사하게 웃어 분위기를 따뜻하게 끌어올렸다.

“자령 수사도 남겠다고 하면 저 혼자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해 숙부께는 제가 말씀을 잘 전할 테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귀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힐끗 자령을 보다 한립을 쳐다보는 석천공의 눈에 흐릿하게 실망과 허탈함이 스쳤다.

“석 형도 몸조심하십시오.”

한립은 포권을 했다.

석천공은 함께 선 그들을 보다가 잠시 자령의 모습을 눈에 담고 은빛으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고, 찰나의 흔들림이었지만 수행이 높은 한립과 자령은 당연히 그걸 알아차렸다.

“마역에서 석 수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그와 난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자령이 조그맣게 말했다.

“알고 있다. 너를 믿으니까.”

한립이 담담히 웃으며 하는 말에 자령은 마음을 놓으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가자꾸나.”

“어디로요?”

“하늘 위로!”

한립은 짙은 금빛으로 자령을 감싸고 고공으로 급상승했다.

청명역을 지나 금방 천풍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궁무진한 돌풍의 습격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었다.

수행이 부족한 자령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지만 한립은 바람에 신경 쓰지 않고 날아오르며 청명역, 천풍역 그리고 천외허공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금빛을 반짝여 파문을 일으킨 한립은 주변의 거센 바람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끝없는 바람의 영역을 지나면서도 그는 속도를 줄일 줄 몰랐다. 자령은 안심하며 한립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오래지 않아 천풍역을 통과한 그들은 천외허공에 도착했다.

새까만 공간에 무수한 운석과 혼란한 원기 폭풍이 떠있는 공간을 본 자령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외허공은 이런 모습이었군요.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예요?”

“이곳에서 폐관수련을 하기 위해서다. 천정과 윤회전은 세력이 방대하고 도조급 인물들이 우리를 쫓고 있으니 땅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무궁무진한 천외허공이야 말로 모두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곳이지.”

“그랬군요. 하지만 여기도 위험해 보여요.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안심하고 수련할 곳을 찾을 수 있을까요?”

“걱정 말거라.”

걱정하는 자령을 향해 웃어준 한립은 그녀를 데리고 전방으로 나아가면서 방대한 의식을 퍼트렸다.

자령을 데리고 천외허공을 며칠 동안 돌아다니던 한립은 어느 운석 무리 속에서 멈추었다.

다른 곳과 달린 그 안의 운석들은 정지해 있었고, 그 중앙에 직경이 수만 리에 이르는 검은 구슬이 각기 다른 원기 파동과 법칙파동을 발산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역량의 폭풍도 일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구나.”

한립은 그것을 보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저 거대한 검은 구슬은 뭐예요? 여긴 어떻게 이렇게 안정된 거죠?”

자령이 놀란 얼굴을 했다.

“오는 동안 모든 것을 삼키는 소용돌이를 보았겠지?”

“봤어요.”

“그 검은 소용돌이는 공간의 힘이 각종 영향을 받아 변형된 것인데 누군가는 그걸 허무의 동굴이라 부른다. 허무의 동굴은 운석이든 원기든 뭐든 집어삼키지만 그 용량에 한계가 있어서 한계에 이르면 이런 검은 구체로 변하게 된다.”

“허무의 동굴…….”

“이런 검은 구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보물이다. 대량의 기운을 보유한 극품 광맥이라 볼 수도 있는데, 면적이 너무 크다 보니까 공간 법기에 담아 갈 수도 천풍역을 뚫고 지면으로 가져갈 수도 없지.”

고개를 젓는 한립의 말에 자령도 아깝다는 얼굴을 했다.

“딴소리를 길게 했구나. 검은 구체가 있는 지역은 꽤 오랫동안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게다가 검은 구체가 함유한 농염한 천지원기 덕에 수련하기에도 좋고.”

한립과 자령은 바로 검은 구체에 동굴을 파 동부를 만들고 각종 금제를 펼친 다음 화지공간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립이 영역을 펼치며 광음천선대진을 발동하자 화지공간 내부의 시간유속이 3만 배는 빨라졌다.

“이게 그때 말했던 시간차공간이군요. 진짜 신기해요!”

자령은 진작 한립, 제혼 등에게 시간차공간에 대해 들었기에 이런 효과를 알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한립은 그녀에게 몇 가지 일을 당부하고 누각으로 들어가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육도윤회반을 사용한 탓에 수행이 떨어진 자령도 마음이 급해 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누각 안에서 가부좌를 튼 한립은 윤회 전주가 내준 하얀 옥간을 꺼내 들었다. 연신술의 나머지 공법이 적힌 옥간이었다.

이후 윤회의 삶에서 수도의 길을 걷지 못하더라도 지금은 힘이 필요했다.

오성까지 연신술을 익힌 경험을 토대로 한립은 마지막 구결들을 빠르게 깨우쳐 나갔다.

그렇게 연신술을 수련하면서 각종 재료를 꺼내 금빛 불길로 연화를 했다.

보름 뒤, 금빛 속에서 녹은 재료들이 어두운 금색 괴뢰 두 마리로 다시 태어났는데 시간법칙의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한립은 하얀 병을 2개 꺼내 옆에 두었다.

혼백 파동이 전해지는 병들이었다.

“가라!”

한립의 기합소리와 함께 그의 두 눈에서 수정빛이 튀어나와 두 개의 녹색 소인(小人)으로 변했다.

그의 분신들이었다.

녹색 소인들은 그의 조종에 따라 각각 금색 괴뢰의 체내로 들어가 융합되었다.

빠르게 수결을 맺은 한립의 두 손에서 가느다란 금실들이 뻗어 나가 금색 괴뢰의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시간이 흘러 반년 뒤.

술법을 마친 한립이 손을 거두고 금빛이 가신 금색 괴뢰들은 눈빛이 맑은 게 평범한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한립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가 펼친 것은 진언문에 전해 내려오는 지기화신 제련술이었다.

지선술이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가 유구한 시간법칙의 초대형 종문이다 보니 그쪽으로도 연구해 놓았다.

이번에 제련한 지기화신들은 시간법칙을 함유하고 있어 흑풍해에서 제련한 물 속성 지기화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그가 갑자기 지기화신을 제련한 것은 신앙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시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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