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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88화 (1,945/2,000)
  • 2188화. 협공

    *

    아주 멀리서 한립이 금빛으로 빛나며 영역을 퍼트리고 있었다. 게다가 제혼과 금동 등 일행들은 어느새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고 없었다.

    눈을 크게 뜬 교삼이 기뻐하며 간신히 옆으로 이동해 백골 파동에서 벗어났다.

    “이 인족 놈! 네 놈이 그럴 줄 알고 있었다! 특수한 혼백을 지녀 쓸모가 있을까 하고 살려두었더니!”

    그걸 본 골황이 코웃음을 치며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러자 한립 머리 위로 공간이 무너질 듯 쿠쿵, 압박감이 쏟아지고 백골 거대 손 허상이 나타났다.

    백골 거대 손이 그를 덮치기 전에 한립은 금빛으로 번득 사라져 암홍색 보호막 앞에 나타났다.

    금빛 대도(大道)가 쫙 펼쳐지는 가운데 암홍색 보호막에 막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 것이다.

    이 금색 길은 진언문의 순간이동 신통인 십방대도(十方大道)로 염라부에서 미라노조에게 전승을 받아 배운 술법이었다.

    “교삼 수사, 어서!”

    한립의 외침에 교삼이 놀란 와중에도 얼른 반응해 수결을 맺었다.

    제아무리 한립이라고 해도 홀로 골황과 전면전을 펼칠 수는 없었다.

    “내 일을 망쳐놓고 달아나려고?”

    골황이 휙 고개를 돌려 팔을 움직이자 보호막 위의 거대 백골 주먹이 손을 쫙 펼치고 한립에게 떨어져 내렸다.

    공간의 압박이 엄청나게 커져 한립의 몸에서 관절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합을 터트린 한립이 금빛을 강하게 일으켜 영역을 삽시간에 몇 배로 농염하게 만들었다.

    진언보륜, 단시횃불, 광음정병, 환진사루, 동을신목 다섯 개의 시간보물이 전부 떠올라 그를 중간에 두고 눈부신 빛을 뿜었다.

    영역에 달과 별이 뜨고 강물이 줄줄 흐르면서 환진사루는 거대한 금빛 사막으로 변해 한립의 몸을 지탱하고, 동을신목은 울창한 수풀로 변해갔다.

    실체화된 영역 탓에 회백색 석전 위에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영역의 힘으로 백골 거대 손의 법칙의 힘을 상쇄한 한립은 한숨을 돌리며 전력을 다해 대오행환세결을 운용했다.

    도조 앞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방심할 수 없었다.

    두 눈에 귀화가 활활 타오른 골황은 수결을 맺어 백골 광선을 거대 손에 쏘아 보냈다.

    백골 거대 손의 빛이 강해지더니 다섯 개의 거대한 낫처럼 한립의 영역을 찢었다.

    푸확!

    한립의 영역에 다섯 줄기의 금이 가며 여섯 조각이 났다.

    그때 드디어 교삼이 술법을 완성해 한립 앞 암홍색 보호막에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한 통로가 뚫렸다.

    진언보륜을 역전한 한립이 잔영을 남기며 그 안으로 사라지는데, 그 속도가 놀라웠다. 그리고는 시간영역을 수십 배로 작게 압축한 그는 누구든 그 사이에 따라 들어올 수 없도록 경계했다.

    그런데 하얀빛이 번개처럼 나타나 한립의 시간의 힘을 가르고 통로 안으로 날아들었다.

    사람 키보다 몇 배는 긴 백골 창이었다.

    죽음이 기운이 그득한 주술문자가 새겨진 장창을 보고 골황의 신형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한립은 깜짝 놀랐다.

    이대로 골황이 보호막 안으로 들어오면 끝이었다.

    미친 듯이 법칙의 힘을 운용하자, 금색 영역의 갈라진 부분이 회복되었고 진언보륜 등 보물들의 빛도 강해졌다.

    다섯 가지 시간법칙이 영역 안에 휘몰아치며 내부의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백골 창도 그 안에 멈춰 빛이 빠르게 약해져 갔다.

    “제게 무슨 신통이지?”

    동시에 천살진옥공을 발동한 한립은 천칠백구십구 개의 현규에서 눈을 찌를 듯한 빛을 터트리고 있었다.

    생사의 관문에서 열두 가지 진령혈맥의 힘을 동시에 발휘해 백골 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쿠쿠.

    12종류의 진령 허상들이 한립 주위를 배회하다 융합되어 사라지고, 그 위로 검은빛이 떠올라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무시무시한 흡입력이 수천 계면을 꿰뚫는 공간통로처럼 끝없는 통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때 정순한 기운이 공간통로 안에서 흘러나왔는데 다양한 원기 속에는 마기가 가장 많았고 회백색 궁전 안에서 흘러나온 것도 있었다.

    모든 기운은 빗물이 모여 바다로 흐르듯 한립에게로 흡수되었다.

    이어 몸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미간에 밝은 수정빛이 반짝였다.

    팔황산 비경에서 1,800개의 현규를 뚫으며 마지막으로 남겨뒀던 현규를 드디어 뚫은 것이다.

    크악!

    요란한 흑자색 빛에 휩싸인 그는 비늘로 뒤덮인 산만한 거대 마물로 변했다.

    그리고 흑자색 거마의 머리 주변으로 빛들이 반짝이고 11개의 머리가 더 자라나 각각 희로애락 등 세상의 온갖 감정들을 드러내고 있었고, 등 뒤로 푹푹 24개의 팔이 자라났다. 어떤 것은 용의 발톱 같았고, 어떤 것은 혼백을 잡아채는 갈고리 같기도 했다.

    쿠릉.

    거마의 몸에서 흑자색 광채가 터져 암홍색 보호막마저 흔들렸다. 이 모든 일이 거의 찰나의 순간 지나갔다.

    한편 변신을 마친 한립은 환희에 잠겼지만 주먹을 끝까지 뻗어 백골 창을 강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도와 같은 힘이 백골 창을 수많은 하얀빛으로 퍼트려 흩날리게 했다.

    보호막 바깥에서 한발 늦게 도착한 골황의 노호성이 들려왔다.

    교삼이 그걸 보고 겨우 긴장을 풀려다 또 한 번 피를 토하고 비틀거렸다.

    이때 한립이 손을 저어 금빛으로 그녀를 받쳐주고 정순한 원기를 그녀의 체내에 불어넣어 주었다.

    곧이어 원기는 육신의 상해에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해 교삼의 부상은 금방 호전되었다.

    혈색이 돌아온 그녀는 서둘러 수결을 맺어 암홍색 보호막을 강화하고 결계를 안정시키는 데 힘을 썼다.

    수많은 암홍색 주술문자들이 진법에서 날아올라 굵직한 사슬로 변해 골황을 노렸다.

    그러나 골황이 허공에서 손을 저어 초승달 같은 하얀빛으로 암홍색 사슬들을 두부처럼 썰어 버리고 암홍색 보호막을 갈랐다.

    쿠콰쾅!

    교삼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미간을 좁힌 한립이 수결을 맺어 강대한 시간법칙의 힘을 그녀에게로 불어넣어 주었다.

    윤회법칙과 시간법칙이 공명을 일으켜 암홍색 빛이 갑자기 확 밝아지고 주변의 윤회대진이 그녀의 기운을 받아들여 초승달 모양의 하얀빛들을 막아냈다.

    휘휘휙!

    이때 암홍색 사슬들이 다시 일어나 골황을 둘둘 말았다.

    “터져라!”

    교삼의 외침에 사슬들이 쾅, 터지며 붉은 태양과 같은 빛을 터트렸다.

    그 강력한 여파에 돌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골황 대인!”

    멀리서 지켜보던 흑면 거한이 놀라 소리쳤다.

    곁의 귀무가 점유한 검은 유령은 미세한 파동을 퍼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삼이 수결을 바꾸어 암홍색 태양을 회오리치게 했고 강력한 흡입력이 작용해 모든 것을 안고 사라지려 했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교삼이 망설이다 물었다.

    “고맙습니다. 한……. 한 수사…….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건가요? 그것도 저 도적들과 함께요.”

    “일행이 아닙니다.”

    한립은 이렇게만 답하고 수결을 맺어 변신을 푼 다음 시간영역을 거두었다.

    천살진옥공과 영역을 동시에 일으켜 원기 소모가 컸다.

    이제 보호막 안으로 들어왔으니 선령력을 아껴야 할 때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교삼이 얼굴을 푸는데 한립의 시선이 회오리치는 암홍색 태양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설마?

    교삼의 안색이 달라졌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한립과 교삼의 시선을 받으며 암홍색 태양이 심각하게 흔들리더니 둘로 나뉘었다.

    그 안에서 태연하게 빠져나온 골황은 다친 데라고는 없어 보였다.

    혈려, 흑면 거한 그리고 흑포 유령이 날아들어 골황 옆에 섰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흑면 거한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골황은 대답 없이 손바닥에 눈부신 빛을 일으켰다.

    쿠쿠쿠쿵!

    수많은 하얀빛이 회백색 석전을 향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멀리서 보면 회백색 석전과 그 주변의 암홍색 보호막은 폭풍우가 치는 바다위의 외딴 배처럼 보였다.

    한립과 교삼은 약속이라도 한듯 법칙 공명을 일으켜 윤회대진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이때 골황이 흑포 유령에게 고개를 돌렸다.

    “귀무, 흑포의 몸을 차지했구나. 그러고 있으면 내 모를 줄 알았더냐?”

    “허허, 역시 골황 선배님의 눈은 속일 수 없군요.”

    흑포 유령이 허허 웃고는 몸을 수축해 회색 장포를 입은 귀무의 모습으로 변했다.

    옆에 서 있던 혈려와 흑면 거한이 흠칫 놀랐다.

    “아까 폭풍 속에서 잔혼의 몸으로 버티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저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흑포 수사의 몸을 빼앗은 것입니다.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주십시오, 선배님.”

    귀무가 해명하며 예를 올렸다.

    “내가 전력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를 대신해 저 인족 수사 놈을 죽여주면 네 죄를 없던 것으로 해주마. 그렇게 오래 옆에 붙어 있어 놓고 저놈의 기운 종자(種子)를 수집해 놓지 않았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고.”

    “물론입니다. 저자가 전륜왕 편에 붙겠다니, 우리 유명계의 적이 아니겠습니까. 골황 대인은 제게 은인이시니 당연히 뜻대로 따를 것입니다.”

    골황의 서늘한 엄명에 씩 웃은 귀무가 입에서 손바닥 크기의 잿빛 인형을 뱉어냈다.

    눈코입이 없는 괴이한 인형이었다.

    귀무가 회색 부적을 인형에 붙이자 신기하게도 한립의 기운이 퍼지며 인형의 얼굴이 한립과 비슷하게 변해갔다.

    암홍색 보호막 안에서 돌연 고개를 든 한립은 골황 쪽을 의아한 낯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투항하지 않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귀무는 말과 달리 잔혹한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튕겨 불러낸 7개의 검은 바늘을 인형의 가슴과 단전 미간 등 급소에 찔러넣었다.

    그때마다 인형의 기운이 흩어지며 선홍색 피가 흘러나왔다.

    보호막 안, 한립이 온몸에 7개의 구멍이 뚫려 피를 줄줄 쏟아냈다.

    그뿐 아니라 극심한 두통이 느껴지고 의식세계에 희미하게 일곱 바늘 허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윽!

    왈칵 피를 토한 한립의 기운이 급감했다.

    “한 수사, 왜 그러는 겁니까!”

    교삼이 놀라 소리쳤다.

    고통 속의 한립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눈을 감아 버렸다.

    의식세계에 태풍이 불어 닥친 것처럼 혼란스럽긴 했지만 금빛이 들불처럼 일어나 몸과 마음을 보호했다.

    겨우 응급조치를 한 한립이 눈을 뜨고 제혼 등을 은색 빛의 문에서 불러냈다.

    “교삼 수사를 도와 금제를 지키고 있거라!”

    그 말을 마치고 한립은 당장 자리에 주저앉아 대오행환세결과 연신술로 미친 듯이 의식세계의 일곱 그림자를 없애려 노력했다.

    교삼이 그걸 확인하고 다급히 수결을 맺어 홀로 보호막을 유지하는데, 바깥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다.

    은빛 문을 빠져나온 제혼 등은 상황은 모르지만 일단 바깥의 힘에 대항해 교삼을 도왔다.

    보호막 바깥에서 귀무가 인상을 찡그리고 인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형은 피를 줄줄 흘리기는 해도 한립의 얼굴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래도 안 죽는다고?”

    귀무의 혼잣말에 혈려가 냉소를 흘렸다.

    “됐으니 다 같이 공격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윤회대진을 부숴야 한다!”

    “예!”

    “예, 대인!”

    골황 쪽 네 사람이 총공격을 퍼부어 교삼의 가녀린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코입귀 할 것 없이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을 부릅뜬 그녀는 그래도 윤회대진을 포기하고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암홍색 보호막이 흔들리고 잠자리 날개처럼 얇아졌을 때, 웅장한 기운이 궁전에서 흘러나와 무너지기 직전의 진법을 되살렸다.

    윤회대진의 암홍색 빛이 웅웅 울어대는 게 꼭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는 듯했다.

    쿠쿵.

    골황 등의 공격이 튕겨 나오고, 그 충격으로 두 걸음을 물러선 골황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혈려 등은 말할 것도 없이 멀리 튕겨 나간 뒤였다.

    교삼은 드디어 긴장의 끈을 풀고 풀썩 주저앉을 수 있었다.

    암홍색 광채가 부드럽게 그녀의 몸을 받치고, 그 옆에 윤회 전주가 나타난 것이다.

    “전주……. 일은, 마치신 건가요?”

    “수고가 많았구나, 구진아. 푹 쉬거나. 남은 일은 내가 알아서 하마.”

    온화하게 말한 윤회 전주가 손짓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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