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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79화 (1,936/2,000)

2179화. 괴이한 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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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을 마친 한립이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봉인 결계 속 시간법칙의 힘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적을 죽이는 살진(殺陣)도 아니고 방어진도 아닌데 왜 아무도 뚫지 못한 겁니까?”

“그건……. 직접 시도를 해보면, 한 수사도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귀무가 망설이다 대답했다.

“흥,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아저씨, 내가 깨볼게요!”

입을 비죽인 금동이 금빛으로 변해 한립이 말리기도 전에 결계로 돌진했다.

“잠깐 기다…….”

한립은 그녀를 말리다 강력한 힘을 품고 결계 속으로 들어간 금동이 금빛에 휩싸여 순식간에 결계 바깥으로 돌아 나오는 것을 보았다.

“흥,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아저씨, 내가 깨볼게요!”

입을 비죽인 금동이 금빛으로 변해 결계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원래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또 “흥,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아저씨, 내가 깨볼게요!”라고 말하고 결계로 돌진했다.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시 금동이 결계에 충돌하려는 순간, 한립이 만든 금색 거대 손이 그녀를 낚아채서 끌고 왔다.

“왜요? 시도라도 해보려는데.”

거대 손에서 벗어난 금동이 입을 열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같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제혼, 너는 또 왜 그래?”

금동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한립과 제혼을 보며 물었다.

“주인님 말씀이 맞아. 넌 이미 몇 번이나 시도를 해봤고 실패했다고.”

“뭐라고? 근데 왜 난 기억이 안 나지?”

제혼의 말을 들은 금동은 어리둥절해졌다.

침음하던 한립은 귀무가 기괴하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결계에는 시간을 봉인하는 효과가 있어서 누구든 침입하면 시간법칙의 영향을 받아 영원히 결계로 뛰어들 때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영원히 그걸 깨닫지도 못하겠지.”

“네? 어째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금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혼도 아연한 얼굴이었다.

“네가 백 번 천 번을 시도해도 매번 결계 밖으로 돌아오고 그걸 기억하지도 못할 거란 이야기다.”

“허허, 시간법칙을 수련한 수사답게 안목도 정확합니다. 이렇게 금방 결계의 효과를 꿰뚫어 보고요. 다만 결계를 들락날락하는 것도 무한히 반복되는 건 아니랍니다. 일정 회수를 넘어서면 육신이 시간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와해되어 지니고 있던 선령력마저 전부 진법에 빼앗기고 말지요.”

지켜보던 귀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제혼과 금동은 흠칫 놀랐는데 한립은 과연 그런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까 궁금해 진법을 다시 살폈다.

“이 늙은이가 왜 그걸 이제 말하는 거야! 날 죽일 셈이었느냐!”

금동이 빽 소리를 질렀다.

“겨우 일고여덟 번 시도한 것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내가 말한 지경에 이르려면 최소 만 번 이상은 시도를 해야 하니까요. 도와줄 일행이 없다면 만 번 넘게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자각을 하지 못하니, 처음 결계로 뛰어드는 순간 죽음이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귀무는 차분히 말했다.

“귀무 수사, 이걸 파훼할 방법도 아십니까?”

결계를 살피던 한립이 입을 열었다.

“하하하, 농담하십니까? 그걸 알았으면 염라부는 벌써 내 것이 되었게요?”

헛웃음을 흘리는 귀무의 말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매듭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고. 결계가 시간법칙으로 결성이 되었으니 푸는 방법도 시간법칙을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무는 조언을 해주었다.

일리가 있다고 여긴 한립은 양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시간법칙 파동이 퍼져나가고 금빛에 휩싸인 그의 몸 주변으로 다섯 가지 시간법칙 물건들이 떠올라 회전했다.

묵묵히 <대오행환세결> 공법을 운용하던 한립은 다섯 가지 시간보물을 다섯 개의 방위에서 결계로 진입하게 했다.

결계 표면에 시각법칙 파문 다섯 개가 어리며 퍼져나가다 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계가 마치 거품처럼 터진 것이다.

삽시간에 주변의 독무가 섬으로 쏟아져 들어와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고정되어 있던 불쌍한 새들이 독무에 뒤덮여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빨리!”

귀무는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한립은 달리 해명하지 않고 금동과 제혼을 데리고 섬으로 날아갔다.

겉에서 볼 때는 황량하던 섬이 내부로 들어가자 미약한 시간법칙 파동을 내뿜어 그를 이끌었다.

지대가 점점 높아져 관목과 풀들이 무성한 곳에 절반만 남은 비석 하나가 서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간 한립은 잡초를 치우고 녹색 이끼가 잔뜩 낀 비석 잔해에서 희미하게 부(府)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갈라진 비석의 중간에는 주먹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저씨, 이쪽이요!”

금동이 소리 높여 그를 불러 날아가 보자 수풀 속에 나머지 절반의 비석이 이끼에 덮여 있고, 희미하게 조각된 염라(閻羅)라는 두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 염라부가 있는 건 맞나봐요. 건물이 보이지 않는 건 비경이나 진법 같은 게 존재하는 거겠죠.”

제혼도 그걸 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여기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요?”

고개를 갸웃하는 금동을 보고 웃음 지은 한립이 손을 뻗어 금빛을 흘려보냈다.

지면에 떨어진 비석 절반이 금빛이 싸여 날아올라 남아 있던 나머지 절반 위에 얹어졌다.

두 비석 조각은 잘려나간 부분이 꼭 맞았다.

“아직 조각이 부족한데요?”

금동이 ‘어!’ 하며 말했다.

두 비석 조각 중앙에 주먹 크기의 구멍이 뚫려 비석이 온전해지지 않았다.

“열쇠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귀무의 목소리가 한립의 허리춤에서 들려왔다.

“귀무 수사, 열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염라부가 언제 만들어진 건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열쇠에 대해 알겠습니까? 그보다 여기까지 찾아 들어온 한 수사야말로 열쇠에 대해 모를 수 없을 텐데요?”

귀무의 말에 한립은 얼굴이 굳었다.

시공간 초월을 해서 미라노조를 보았을 때, 미라노조는 기회가 되면 염라부를 찾아보라고만 했지 정확한 위치나 열쇠에 대해서는 말해주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란 말이지?

비석 앞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아 살피던 한립은 손을 뻗어 비석 중앙의 구멍을 만져보았다.

그 모양이 낯설지가 않았다.

입에 미소가 걸린 그가 손에 묻은 이끼를 털어낸 다음 엎드린 황소 모양의 벼루를 불러냈다.

구원성에서 무양이 내준 금색 벼루였다.

벼루는 나타나자마자 진한 흙속성 법칙의 힘을 내뿜으며 주술문자와 반응하듯 주술문자들을 만들어냈다.

한립이 손을 놓아주자 날아간 벼루가 비석의 빈자리에 꼭 맞아 밝은 빛을 터트리며 금색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이야, 열렸다!”

금동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이 모든 게 노조 당신의 안배란 말입니까?’

한립은 마음속에 떠오른 의혹에 생각에 잠겼다.

“아저씨, 왜 그래요? 문도 열렸는데 안 들어가요?”

금동이 그걸 이상하게 보고 물었다.

고개를 저어 복잡한 생각을 떨쳐낸 한립은 무언가 떠올라 금동과 제혼에게 말했다.

“섬의 금제가 뚫려 외부에서 적들이 쫓아올 수 있으니 너희는 입구를 지켜줘야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깥은 저희가 지키고 있을게요.”

제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동은 염라부가 어떤 곳일지 궁금했지만 한립이 하는 말이라 반대하지 않았다.

“귀무 수사도 맡아주고.”

한립은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풀어서 제혼에게 건넸다.

“조심하세요, 주인님. 제가 잘 지키고 있을게요.”

제혼이 그걸 받아들었고, 검은 상자 안에서는 아무 군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제야 몸을 돌린 한립이 금색 소용돌이 속으로 한걸음에 들어갔다.

강력한 흡입력에 천지가 뒤바뀌는 느낌을 받은 한립이 다시 땅에 섰을 때는 녹음이 푸른 평원 위였다.

면적이 좁지 않은 평원 끝에 멀리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였고, 수백 장 밖에는 높다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서 그 아래 초가집에 그늘을 드리웠다.

초가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기둥이며 초가지붕이 정갈하게 잘 지어져 있었다.

“무얼 보기만 하고 서 있느냐, 이리 오지 않고? 내 너를 기다린 지 오래건만.”

익숙한 목소리가 초옥(草屋)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손에 염주를 쥔 붉은 승복 차림의 뚱뚱한 중이 걸어 나왔다.

기다란 귀가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 실처럼 가늘게 변한 모습이 불룩 나온 배와 어우러져 정감이 갔다.

“사존?”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은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곧 상대는 미라노조의 한 줄기 잔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네 실망한 표정 좀 보거라, 하하.”

미라노조는 아무렇지 않게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 사존이 세상을 떠나지 않으신 줄 알았다가…… 조금 아쉬움이 남아서요.”

한립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탄식했다.

“네가 왔으니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난 이제 아무런 여한이 없다.”

미라노조가 오히려 후련하게 웃어 보였다.

“저도 사존의 가르침을 다시 받을 수 있다니 기쁩니다.”

“내가 남은 힘으로 만든 비경이기는 하지만 봉인 금제가 오래되기도 했고 일단 봉인이 풀려, 금방 내 힘이 유실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간 얼마나 수행을 쌓았는지 보여보거라.”

미라노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대오행환세결> 공법을 운용해서 시간영역으로 초옥 주변 수십 리를 감쌌다.

그걸 본 한립이 의외라는 듯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곳은 보이는 것과 달리 거기까지가 끝이거든. 멀리 보이는 산과 초원들은 환상에 불과하다.”

미라노조가 웃으며 알려주었다.

한립은 자신의 안력으로도 환상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한 것에 놀라며 전력을 다해 공법을 펼쳤다.

금방 둥근 달이 떠오르고 첩첩이 산봉우리들이 들어서며 구불구불 강이 흐르고 나무들이 자라나 숲을 이루었다.

오행환세(五行幻世)였다.

미라노조가 둘러보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구나. 다섯 가지 시간법칙 보물들이 전부 실체화되지는 못했지만 이만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다섯 개의 보물이 전부 준비가 되면 오행환세가 진일보할 것이야.”

“안 그래도 그러려 했는데 변고가 생겼습니다. 거기다 악시에게 시달리다 보니 지금까지 미뤄두게 되었고요.”

한립은 민망한 듯 말했다.

“벌써 참시를…….”

미라노조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러십니까, 사존?”

“흠, 네가 시간법칙의 힘을 이 정도까지 수련했으면 고혹금도 네 존재를 알아채고 있겠구나?”

한립도 고혹금을 알았다.

시간도조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미라노조의 입으로 천정 거물의 이름을 듣으니 가슴이 덜컹했다.

“제자, 진작 천정의 주선방에 올랐으나 시간도조가 저를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도를 향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더냐? 난 고혹금과 도조 자리를 두고 싸울 마음이 없었음에도 시간법칙의 현묘함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제압을 당했다. 네 수련 자질은 나보다 더 뛰어나니 당연히 주목받고 있을 것이야.”

“도조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마음이 없으셨다고요?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허허, 넌 도조가 어째서 도조라 불리는지 아느냐?”

“대도의 정상에 오르니 도조라 부르는 것 아닌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네가 말한 정상에 오르면 그때는 무엇이 정상이 되느냐?”

“그건…….”

미라노조의 물음에 한립은 이렇다 할 대답을 내지 못했다.

“그 정상에 오른 내가 바로 그 정상이 되는 것이고, 그게 도조의 경지이다. 우리가 산봉우리라 일컫는 것이 곧 ‘도(道)’이고 각종 법칙의 본질이다. ‘도’ 아래 각종 법칙과 술법이 있고 ‘도’에 의지해 법칙과 술법을 펼치는 동시에 ‘도’의 구속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네가 도조가 되어 그 대도와 동등한 존재가 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하겠느냐?”

“설마……. 도조가 된 후에는 대도와 융합되어 대도의 일부가 되고 만다는 말씀이십니까?”

섬뜩해진 한립은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내가 알기로, 도조가 된다고 해서 바로 대도에 잡아먹히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일단 도조가 법칙의 힘을 이용하면 무궁무진한 위력을 내는 동시에 대도와의 동화가 가속화되고 만다.”

“그래서 도조들이 직접 나서는 일이 손에 꼽히는 것이었군요?”

“그렇지. 허나 자신의 도조 지위를 위협하는 인물이 나타나면 그들은 반드시 나선다. 그리고 분명 각자 자기만의 천지대도와 융합 속도를 늦추는 수단을 지니고 있겠지. 고혹금도 그럴 것이고.”

이야기를 듣던 한립은 미라노조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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