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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70화 (1,927/2,000)

2170화. 준비완료

*

한립의 이야기를 들은 지기화신이 숙고하다 입을 열었다.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반드시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7할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

“제가 신앙의 힘을 끊어내면 앞으로 오몽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낙풍이 벌써 진선급 수사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을 지켜주고 싶다면 네가 이곳에 백년 정도 머무르면 될 것이다. 내 영약과 법보를 남겨주면 흑풍해의 어떤 세력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게다가 조신을 모시는 풍습을 버리는 게 그들에게 꼭 해가 된다고 볼 수도 없다.”

한립의 말에 지기화신은 오래 고민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쉽지 않은 일일게다. 지금 네 몸으로 악시의 막대한 힘을 받아낼 수도 없을 테고, 혼백을 따로 보호하지 않으면 악시의 간식거리가 될 뿐이겠지.”

상대가 수긍을 하자, 한립이 말을 이었다.

“생각해 두신 대책이 있겠지요?”

“그래, 낙풍에게 건설하라고 한 거대 진법이 네 육신을 단련해 줄 것이다. 혼백은 따로 의식을 치러 비술을 이용해 봉인해 두어야겠지. 네 혼백이 깊은 잠에 빠져버리면 악시가 네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해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깊은 잠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그 전에 네 몸을 무상도에 구금해 두고 악시가 몸을 차지한 뒤에 달아나지 못하게 할 테니까. 내가 대라 중기 경지를 안정시키기만 하면 악시를 제압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이야. 그때 비술을 써서 악시를 몸에서 떼어내 따로 봉인을 해주마.”

손을 저은 한립이 미소 지었다.

“관건은 악시가 철저히 제 몸을 장악해 달아나 버리기 전에 당신이 대라 중기 경지를 안정화시키는 것이겠습니다?”

“이전의 위험천만한 고비도 넘겼던 나다. 이번에도 해낼 수 있을 것이야.”

“……그렇다면, 이번 일은 당신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지기화신은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답했다.

그 말을 기다렸던 한립은 긴장을 풀며 속으로 탄식했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의 계획에 동조를 해줘야 참시술의 효과가 최고로 높아졌기에 설득은 필수였지만.

시간이 지나, 이레 뒤.

흑풍해역, 물에 검은 광택이 흐르고 새까만 암초들이 밀집한 곳에 바람이 세서 산만한 파도가 철썩였다.

그런 흑초수역 중앙에 회백색 외딴 섬이 바로 무상도였다.

주변의 새까만 암초들과 회백색 섬은 비교가 되어서 멀리서 보면 서리가 낀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 고공에서 네 사람이 내려섰다.

푸른 장포를 입은 사내와 남색 장포를 입은 사내는 똑같은 얼굴을 지닌 한립과 지기화신이었고, 나머지 둘은 낙풍과 금동이었다.

원래 섬 중앙으로 갈수록 땅이 봉긋 솟아 있던 지형은 매끈하게 깎여 나가 넓은 지역에 수십 장 높이의 남색 육각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인, 진법도 대로 진법 제단을 완성했습니다. 이건 남은 재료이고요.”

낙풍이 검은 저물반지를 돌려주려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제단이 규격대로 지어진 것을 확인한 한립이 손을 저었다.

“두고 쓰거라.”

“감사합니다.”

낙풍이 속으로 좋아하며 허리를 굽혔다.

“진법을 어떻게 발동하는지는 알려주었고, 금동이 남아 진법을 지키게 할 것이니 안심하고 수련하거라. 네게 줄 수 있는 시간은 딱 49일뿐이다.”

“이 진법이 당신의 말대로 효과가 있다면 그거면 충분할 겁니다.”

한립의 말에 지기화신이 답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낙풍의 눈에 의혹이 어렸지만, 한립은 모른 척 제단으로 날아올랐다.

제단에 뚫린 구멍에 짙은 물 속성 법칙의 힘을 지닌 둥근 돌들을 일일이 박아 넣은 그가 돌아왔다.

“이제 들어가도 좋다.”

한립의 분부에 지기화신이 훌쩍 뛰어올라 제단 중앙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후웅!

격렬하게 흔들린 제단에서 하늘을 뚫을 기세로 빛기둥들이 솟아올라 거대한 깔때기 모양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해역 도처에서 물 속성 영기가 홍수처럼 소용돌이로 쏟아져 들어와 지기화신을 흠뻑 적셨다.

“여기 남아 49일간 진법을 지켜야 한다.”

한립은 금동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알겠어요, 아저씨.”

금동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립도 천지보물을 씹어 삼키는 거나 싸움 외에 그녀가 열정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낙풍, 넌 나와 오몽도로 돌아간다.”

한립이 먼저 출발하고 낙풍이 따라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겠지.”

날아가던 한립이 낙풍이 뒤쫓아 온 것을 보고 말했다. 낙풍은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숨길 일도 아니니 말해주마. 실은…….”

한립은 지기화신이 겪게 될 변화를 참시와 관련된 부분을 빼고 말해주었다.

천천히 오몽도로 향하며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겁 먹은 얼굴을 하던 낙풍이 그가 오몽도를 위해 그 후의 일도 다 계획해 놓은 것을 듣고 차차 안정을 찾아갔다.

“오몽도가 지금의 태평성대를 이룬 것은 류 대인의 비호와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제게 이런 말씀을 굳이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인께서 안배를 해두신대로 저는 따르기만 하겠습니다.”

낙풍이 포권을 한 채 한립을 향해 예를 차렸다.

“그렇게 여긴다니 다행이구나.”

흡족히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오몽도로 돌아갔고, 다음 날부터 낙풍을 시켜 일을 진행했다.

신앙과 혈연관계를 중시하던 섬의 전통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한립은 기초부터 다지기로 마음먹었고, 근골과 자질이 괜찮은 어린 아이들을 섬에서 선발해 조신을 모시게 한다는 이유로 조신전으로 불러들여 기초 수련을 하게 했다.

이렇게 그가 씨를 뿌려 두고 낙풍이 육성을 하면 오몽도도 언젠가는 종문이나 세가처럼 수도를 하기에 적합한 풍토가 형성될 터였다.

49일이 지나 오몽도를 떠난 한립은 무상도로 돌아왔다.

도착하기도 전에 금동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저씨, 이제야 오면 어떻게 해요. 아저씨 화신은 나흘 전에 출관을 해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서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고요.”

“심심했다니 주변이 조용했나 보구나. 누가 염탐을 하려들지는 않았고?”

“아저씨가 떠나고 다음 날부터 몇 무리가 다녀갔어요.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몰래 숨어서 보기에 아저씨 말대로 다 쫓아 보냈어요.”

“어떻게 쫓아 보냈느냐?”

한립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아저씨가 시킨 대로 오몽도 조신이 이곳에서 폐관수련 중이니 관련 없는 것들은 가라고 했죠.”

금동이 슬쩍 그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때린 건 아니고?”

한립의 눈썹이 슬그머니 올라갔다.

“안 때……. 아니, 딱 한 명 때리기는 했는데. 쫓아버렸는데도 또 몰래 숨어들어서 섬을 조사하려 하잖아요. 그래서 머리통을 콱 쥐어박았더니 바다에 가라앉아서 반나절이 지나도 안 떠오르더라고요.”

금동은 해사하게 웃었다.

“죽인 것이냐?”

“아뇨, 아뇨. 힘도 거의 안 줬어요. 어쨌든 그렇게 한 대 때리고 나니까 그 녀석은 물론이고 다른 녀석들도 다시는 안 나타났어요.”

고개를 끄덕여준 한립은 별 말 없이 섬의 제단으로 날아갔다.

제단 진법에 박아두었던 물 속성 선원석들이 머금고 있던 선령력을 모두 지기화신에게 빼앗겨 회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가부좌를 튼 상태로 몸이 반투명한 남색 수정처럼 변한 지기화신은 오장육부와 몸을 타고 흐르는 신앙의 힘과 선령력이 훤히 보였다.

화신의 머리 위에 떠있는 물빛 인영은 다른 평범한 수사들의 원영처럼 선명하지 않고 안개처럼 흐릿했다.

“자 마무리 되었구나.”

한립이 결과를 보고 만족하는데 물빛 인영이 몸으로 돌아가고 투명하던 몸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눈을 뜬 지기화신의 질문에 미소를 지은 한립이 은색 빛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빠져나온 검은 치마 차림의 소녀는 제혼이었다.

오랫동안 요양을 해서 부상도 치료하고 기운도 최상의 상태였다.

“제혼이다. 이 아이가 혼백에 비술을 펼쳐 봉인을 해둘 것이니, 한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될 것이야.”

한립의 소개에 지기화신이 제혼을 훑고 입을 벌렸다가 말없이 다시 다물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제혼이 술법을 펼치기를 기다렸다.

제혼이 지기화신에게 다가가 검지와 중지로 미간을 가리키자 콩알만한 암홍색 빛이 손끝에서 나와 고리형태의 파동을 일으켰다.

한편 강렬한 혼백 파동을 느낀 한립은 잠시 그걸 보고 있다가 제단을 내려왔다.

그는 혼백 비술을 펼칠 동안 진법 깃발과 원반을 섬 곳곳의 암석 틈에 설치해야 했다.

두 시진이 지나 그가 섬의 거의 모든 땅을 밟았을 무렵 준비해온 1,800여 개의 진법 도구들이 동이났다.

제단으로 돌아온 그는 제혼이 술법을 마쳐서 지기화신이 머리 위의 물빛 인영만 없을 뿐, 남색 수정돌 같이 변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의식의 힘으로도 화신의 혼백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설마 몸 밖으로 끄집어 낸 것이냐?”

“혼백이 화신의 몸을 오래 벗어날 수 없을 거라 한 것은 주인님이시잖아요. 주인님도 못하는 걸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한립의 어리둥절한 물음에 제혼이 웃음 지었다.

“그만큼 네 혼백 비술이 강력하다는 소리구나. 나조차도 전혀 혼백을 찾아낼 수 없으니.”

한립의 칭찬을 들은 제혼은 손을 뻗어 용 눈알 크기의 흐릿한 인영을 화신의 몸에서 불러냈다가 없애보였다.

“악시도 지선의 몸을 점유하는 동안 화신의 혼백을 찾을 수 없겠어.”

한립은 청죽봉운검 한 자루를 불러내 바닥에 주술문자들을 새기기 시작했다.

주술문자로 이루어진 진법은 그가 보았던 진법들 중에 가장 복잡해서 세 개의 층으로 중첩되게 고안되어 있었다.

가장 안쪽은 음양을 뜻하는 태극문양의 두 마리 물고기 형식을 띠고 있고, 그 다음은 여러 주술문자들이 회(回) 자 형을, 마지막 층에는 고리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 틀 안쪽을 손톱 크기의 주술문자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으니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문양들을 다 그려 넣은 한립은 십여 개의 선원석과 8점의 다양한 영력을 지닌 보물들을 꺼내 진안과 진법 중추에 두었다.

일을 마쳤을 때는 석양이 바다 끝에 걸려 해역을 귤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되었다. ……금동은 또 놀려고 먼 바다의 폭풍을 찾아 갔구나. 네가 불러와서 각자 섬의 남쪽과 북쪽을 맡아 진법을 이끌거라.”

“네.”

청죽봉운검을 거둔 한립이 금동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말하자 제혼이 바로 찾으러 가려 했다.

“제단의 금제가 발동되면 너희도 동시에 섬의 결계를 일으켜야 한다. 제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간섭하지 말고 오직 섬의 결계를 지키는 데만 집중해야 할 것이야. 누구도 안에 들이지 말고 나가려는 자도 막아야 한다. 기억하겠느냐?”

한립은 진지하게 당부했다.

“네, 기억해 둘게요.”

제혼이 대답하고는 날아올라 무상도 상공에서 사라졌다.

천천히 시선을 거둔 한립은 가부좌를 틀고 있는 지선 육체를 진법 중앙의 태극 문양의 음양어(陰陽魚) 중 음을 뜻하는 검은 물고기의 눈 쪽에 두고 자신은 양을 뜻하는 하얀 물고기의 눈 쪽에 자리 잡았다.

자리에 앉은 그는 심경과 기운을 조정해 마치 만규공적술을 펼친 것 마냥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머물렀다.

잠시 후 금동과 제혼이 돌아와 각각 섬의 남쪽과 북쪽을 지키러 가자 눈을 뜬 한립이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웅!

제단 가장 바깥층의 고리형 진법이 불경소리를 내며 금빛을 장단에 맞추어 퍼트려 반구형의 보호막을 만들었다.

금색 보호막 위에는 불가의 진언이 담긴 구절들이 떠올라 눈부신 빛을 발했다.

중간층의 회(回) 자 형 진법이 다음으로 빛을 머금고 8가지 보물들이 동시에 빛을 모아 하늘 높이 각기 다른 속성의 빛기둥을 뿜어냈다.

그 중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짙은 뇌전과 극한의 냉기 등이 있었다.

쉭! 쉭! 쉭…….

그렇게 빛기둥 속에서 응결된 화염, 뇌전, 얼음 등의 기운이 사슬 허상을 이루고 지기 화신의 주요 혈자리를 파고들었다.

전부 악시가 지선의 육신을 개조할 때 관건이 되는 부위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반드시 통제를 해두어야 했다.

두 번째 진법이 지선의 몸을 사슬로 연결한 다음 가장 중앙의 음양어가 검은색과 하얀색의 빛을 발했다.

앞선 두 층의 진법과 달리 세 번째 층은 아주 옅은 광채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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