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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166화 (1,923/2,000)
  • 2166화. 천마운(天魔雲)

    *

    한립, 금동, 흰둥이를 등에 얹은 악면이 날개를 펼치고 고공으로 날아올랐다.

    이미 구름이 가득한 만장 고공인데도 멈추지 않고 상승하니 천지 영기가 희박해지면서 하늘이 맑아졌다.

    “잘 앉아들 있거라.”

    악면은 두 발톱을 펼쳐 수많은 법결을 날려 보내 기류를 만들었다. 그러자 푸른 거대 새의 속도가 백 배는 빨라지면서 주변 풍경마저 뿌옇게 변해갔다.

    한립은 바깥으로 날아갈 것 같아 서둘러 공법을 운용해 몸을 거대 새 등에 딱 붙였다.

    화앗.

    곧 주변에 환영이 어리고 거대 새가 어떤 경계를 통과하는 듯한 독특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끝없이 짙푸른 공간은 구름, 먼지조차 없어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천지영기는 커녕 어떤 역량도 작용하지 않는 끝없이 펼쳐진 허무(虛無)의 공간이었다.

    “이런 곳은 처음 와봐.”

    “여기는 청명역(靑冥域)이에요.”

    금동이 두리번거리다 중얼거리니, 흰둥이가 말했다.

    “청명역?”

    한립이 생소한 단어를 읊조려 보았다.

    “아버지 기억 속에서 봤는데 진선계 고공에는 세 가지 구역이 있대요. 여기가 지면에서 가장 가까운 청명역이고, 청명역을 지나 천풍역(天風域), 천풍역을 지나 전설 속의 천외역(天外域)에 갈 수 있다고 해요. 천외허공(天外虛空)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요.”

    “청명역, 천풍역, 천외역…….”

    “세 구역은 극히 높은 곳에 있고 아주 위험해요. 청명역만 해도 천지 영기가 전혀 없어 오래 머물면 수사의 몸에 안 좋으니까요. 일반 수사들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어 이런 내용이 기록된 경전도 드물고요.”

    흰둥이의 설명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수행에 청명역까지 올라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수련을 한다고 바쁘고 천정의 수배를 피해 다니느라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금동은 청명역 환경에 적응이 되지 않는지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금동, 괜찮은 것이냐?”

    “괜찮아요. 서금선은 만물을 삼키면서 살아가는데 천지 영기가 전혀 없다 보니 불편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화지공간에 들어가 쉬고 있거라.”

    한립의 제안에 금동이 화지공간으로 들어갔고, 푸른 거대 새는 날개를 펄럭이면서 더 높은 고공으로 올라갔다.

    청명역의 높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는데 거대 새의 속도로 반 시진이 지나서야 끝에 도달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거무스름한 폭풍들이 몰아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이곳이 천풍역인가 보구나.”

    눈을 가늘게 든 한립이 말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천풍역은 구천강풍(口天罡風)이 몰아쳐서 극도로 위험한데, 그래도 천외허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흰둥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푸른 거대 새가 구천강풍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바람도 세지만 그 소리가 고막을 때려서 한립도 귀가 아파 시간법칙으로 청력을 보호해야 했다.

    곁의 흰둥이는 하얀빛을 몸에 드리워 전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거대 새가 푸른 빛의 장막으로 전신을 가리고 쏜살같이 구천강풍을 돌파하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폭풍의 위력이 강해 내부에 미세한 공간균열이 가서 검은 실 같은 것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 새는 이런 미세한 공간균열도 푸른 빛으로 막으며 지나쳤다.

    눈을 반짝인 흰둥이가 하얀 보따리를 꺼내 구천강풍을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잡아 가두었다.

    보따리는 그의 아버지가 남겨준 본명선기였다.

    “구천강풍은 가져다 뭐 하려고?”

    한립이 물었다.

    “제가 원하는 건 구천강풍이 아니라 흑악풍(黑堊風)이라 불리는 저 검은 실들이에요. 구천강풍 안에서 수천만 년이 지나야 탄생하는 물건인데, 이걸 보니까 갑자기 아버지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예전에 흑악풍을 이용해 파풍주(破風珠)라는 것을 제련하셨더라고요. 위력이 강해서 대라경 수사에게도 쓸 수 있으니 본 김에 모아다가 제련해 보려고요.”

    흰둥이는 웃으며 하얀 보따리에 흑악풍을 잔뜩 모았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이채를 띤 눈으로 보따리를 보았다.

    흰둥이가 꺼냈을 때 의식으로 살피려 했는데 하얀 보따리에 접근하는 순간 잡아 먹혔다.

    모종의 특수한 역량을 지닌 것 같아서 흰둥이가 제대로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막대한 위력을 발휘할 듯싶었다.

    그러는 동안 천풍역도 거의 끝나갔고, 거대 새는 두 앞발을 휘둘러 거대한 공간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새까만 공간에 접어들었다.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운석들이 떠다니는데 어떤 것은 집채만 하고, 또 어떤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았다.

    그런 운석들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쳐 쾅쾅 소리를 냈다.

    어둡기는 했지만 이런 운석들이 다양한 빛을 발해서 검은 공간을 밝혔다.

    어딘가에서 십만 리에 달하는 지역에 남색 얼음 폭풍이 불어와 운석들을 꽁꽁 얼렸다. 그러고 나서는 거대한 보라색 구름이 또 나타나 뇌전을 품고 운석들을 부수었다.

    구름 다음에는 검은 소용돌이가 쳐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검은 소용돌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곳이 천외허공!”

    한립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유마동을 발동해도 그리 멀리까지 볼 수 없고 의식도 마찬가지였다.

    은근하게 해와 달을 움직이게 하는 힘보다 수억만 배 강한 힘이 작용해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외허공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대신, 안에 품고 있는 보물도 무궁무진하다. 너희의 수행이 간신히 이곳에 들어올 수준이 되었으니,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것이야.”

    푸른 거대 새가 입을 열고 날개를 펄럭였다.

    “정말 그렇네요!”

    하얀빛에 휩싸여 비휴 형태로 돌아간 흰둥이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신이나 펄쩍 뛰었다.

    다시 하얀 보따리를 꺼낸 그는 하얀빛을 뿜었다.

    반투명하게 변한 보따리가 하얀 실을 엮은 어망처럼 변하더니 수백 리를 뒤덮고 강력한 흡입력으로 운석들 틈에서 오색찬란한 진귀한 광석들을 골라 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따리 안에 수백 개의 진귀한 재료들이 가득 담겼다.

    한립도 그걸 보고 보따리에 호기심이 생겼다.

    “한 수사, 자네 수행이 낮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조가 아니니 모르는 것이 많을 것이네. 도조의 능력은 자네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이야. 나도 다른 구역의 상공을 날면 다른 도조가 감응을 할까봐 비교적 감응에서 자유로운 천외공간을 이용하고 있는 거라네.”

    “그렇군요.”

    거대 새는 푸른 빛으로 파문을 일으켜 수많은 운석을 거의 증발시키듯 없애면서 날고 있었다.

    얼음 폭풍, 뇌운, 검은 소용돌이를 품은 동굴 등등 수많은 재난도 거대 새를 만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립은 거대 새의 능력을 보면서 무척 놀라고 있었다.

    진령왕의 신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도조경 수사 중에서도 능력자에 속하는 거대 새의 실력을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던 거리가 천만리로 늘어난 기분이었다.

    길게 숨을 내뱉은 한립은 가부좌를 틀고 운공을 시작했다.

    천외허공은 위험한 곳이었지만 각종 천지 원기가 농염해서 수련하기에 좋았다.

    그리고 흰둥이는 하얀 보따리를 발동해 즐겁게 인근의 광석 재료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반 시진이 흘렀을 때 갑자기 밤이 찾아온 듯 주변이 어두워졌다.

    수련하던 한립이 눈을 뜨고 눈썹을 끌어올렸다.

    천외허공에 밤이 찾아온 게 아니라 전방에 거대한 검은 구름이 드리워 빛을 막은 것이었다.

    그림자 같은 게 어른거리는 게 괴이했다.

    “저게 뭐죠?”

    흰둥이가 광석 수집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천마운(天魔雲)이라는 것이다. 역외천마가 응집한 것으로 형태가 없어 없앨 수 없고, 천외 공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라 볼 수 있지. 둘 다 조심해야겠지만 한 수사는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야.

    푸른 거대 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이 흠칫 놀라 뭐라고 말하기 전에 푸른 거대 새가 검은 구름 속으로 진입했다.

    몸이 서늘해진 그는 새까만 얼음 물속에 들어온 것 같아 타고 있는 푸른 거대 새와 바로 옆의 흰둥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생각할 것도 없이 시간법칙으로 전신을 보호하는데 무형의 파동이 그를 감쌌다.

    느닷없이 잿빛 공간에 들어선 그는 거대 새와 흰둥이를 찾을 수 없어졌다.

    “심마 공간?”

    한립은 얼굴을 찌푸리고 연신술을 발동해 머리를 맑게 했다.

    전방 허공에 흑의 소녀가 비틀비틀 나타났는데, 그 얼굴은 남궁완의 것이었다.

    소녀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 머리를 산발하고 필사적으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부군, 살려주세요! 기억을 회복한 나를 윤회전에서 쫓고 있어요! 잡히면 천정으로 보낸다고 해요. 도와주세요!”

    절박한 남궁완의 비명소리는 듣기만 해도 심장이 찢기는 것 같았다.

    “뒤따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데 누구에게 쫓긴단 말이오.”

    한립은 남궁완의 얼굴을 직시하며 평온히 말했다.

    “너무 무서워요! 살려주세요!”

    남궁완이 그의 앞에 도착해 겁에 질린 어린 새처럼 품에 안겼다.

    묘한 얼굴이 된 한립이 서늘한 눈빛으로 손에서 대량의 금색 뇌전을 일으켜 소녀의 가슴을 뚫어버렸다.

    “왜…….”

    피를 토한 남궁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진짜 같은 환술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소용없다.”

    한립은 다섯 손가락을 벌려 금색 뇌전 다섯 줄기로 소녀의 몸을 찢어버렸다.

    참혹한 비명을 지른 남궁완이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동시에 잿빛 공간이 사라지고 한립은 다시 거대 새 등 위에 앉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도하던 그가 미간을 좁혔다.

    심마를 죽였을 때 억눌러둔 악시가 발악을 하면서 마음속에 강렬한 살의가 차오르고 있었다.

    한립은 의식과 <대오행환세결>을 발동해 끔찍한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나갔다.

    ‘천마가 악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그걸 알고 악면 선배님이 조심하라는 것이었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악한 마음을 다 지우기 전에 또 다른 무형의 파동이 그를 덮쳐왔다.

    이번에는 자령이 왜 자신을 구해주지 않느냐며 원망을 퍼붓고 있었다.

    펑!

    금색 뇌전 구슬로 자령을 감싸 검은 연기로 변하게 한 다음에야 다시 푸른 거대 새 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잇따른 심마 공격으로 안색이 창백해진 한립이 끔찍한 생각들을 누르는데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또 다른 천마 파동이 전해졌다.

    금빛 찬란한 세계에 들어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구원도조 이원구였다.

    “한립, 구원관 금지에 숨어들어 귀령자, 묘법선존 두 명의 성사들을 공격하고 윤회전 것들이 보물을 훔쳐 달아나게 돕다니! 내 전생의 인과를 생각해 한 번은 살려보냈다만, 이번에는 어림없다!”

    흉흉한 기세로 이원구가 날린 금색 신검(神劍)이 날아들었다.

    동공을 수축한 한립은 <대오행환세결>과 <연신술> 발동해 금빛으로 몸을 두르고 금색 신검을 무시한 채 주먹을 내질렀다.

    신검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검 그림자들이 비처럼 떨어지는 와중에 한립은 그 틈을 뚫고 구원도조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몸으로 이원구에게 접근한 그는 방대한 시간의 힘을 터트렸다.

    펑!

    이원구의 육신이 폭발하면서 금색 공간도 사라졌다.

    눈앞이 흐릿해진 한립은 다시 푸른 거대 새 위로 돌아온 것을 확인했지만 붉게 물든 눈동자가 풀린 채 몸을 덜덜 떨어야 했다.

    “안 돼…….”

    악한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살의가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주위가 환하게 변하면서 푸른 거대 새가 드디어 천마운 영역을 벗어났다.

    천마운의 천마의 힘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자 한립도 안간힘을 써서 의식을 통제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아서 제때 벗어난 것이지 더 늦었으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흰둥이도 옆에서 몸을 잘게 떨고 있다가 눈을 뜨고 길게 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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